어젠 죙일 미뤄뒀던 집안 일을 하느라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다
저녁에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였는데 회심에 차서 밥솥을 여니
아뿔싸 술밥이 되었다. 다시 물을 뿌리고 재가열을 하였으나
밥은 나아지지 않고 하는 수 없이 그냥 먹었더니 한 밤중에 일찌감치
깨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폰을 열어 저장된 사진을 보았다.
그 중에 뭔가 긴 문장이 있는 손글씨가 여러장 있어 보니 부모님께
보낸 (특히 아버지) 큰언니의 애틋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였다.
큰 언니는 맏이라 온갖 특혜와 사랑을 받고 자라 그런지, 그리고도
내가 초딩 때 언니는 대학생이었으니 그런 편지를 썼으리라.
엄마가 돌아가시고 마지막까지 같이 한 내가 유품정리를 하면서
눈에 띄었던 것이다. 곱게 문종이로 싸여져 보관된 둘째사위인 형부와
큰언니가 보낸 편지가 눈에 띄어 사진으로도 찍고 편지도 따로 챙겼는데
편지는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안나고 사진으로 남긴게 눈에 띈 것이다.
어린 나도 종종 편지를 썼지만 큰언니처럼 유려하거나 애틋한 편지는
아니었다. 투정을 부릴 나이였던지라 그저 의젓한척 보낸 상투적인 편지였다.
부모님 전상서
부모님 그동안 옥체무고 하시오며 기체후 일향만강 하시온지요.
(한자표기로는(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 萬康)이며, 기체후 일향만강,
기체후 일향 만강이라고 쓰이기도 합니다.)
기체후로 시작해 이 딸은 어쩌구 저쩌구 블라블라~~~로 했던 편지..
아무도 단어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해 주지 않아 철자법도 틀린
단어를 그럴싸 하게 쓰곤 해서 먼 훗날에야 기체 후가 아니가
기체후라는 것도 알게 된 문구였지만 그게 학업을 하는 자식이
유식한 척 하는게 도리라 생각하고 의례 그렇게 시작한 편지로 부모님께
안부를 여쭙고 나의 근황(?)을 알리는 일종의 보고통이였다.
그런 내가 보낸 편지는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자식들의 상장, 졸업장,
편지를 보관 하고 있던 부모님이 생각나는 것은 연말이라 그리고 또 한살을 먹
는 탓이리라.
손쉽게 톡으로 다 해결하고 안부를 묻는 시대지만 문득 손편지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추신: 가볍게 삶의 이야기를 올린다고는 하나 혹여 처음 대하시고 제가 틀린 내용으로 올린 것을
옳은 걸로 알고 가실지도 몰라
내용 중 한문 인용이 잘못되어 바로 잡습니다.
첫댓글 저 역시 가끔 그런짖을 해요.
깜박 건망증인지 잘 모르지만
당황할때가 가끔 있답니다.
본문에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는건
없어요
@워킹 맨 시차로 정신이 오락가락
해요~ㅎ
참 좋은 세상이지요.
이역만리 떨어져 계셔도 이렇게 정담은 댓글도 달고
한 집에 사는 것 처럼 그러니요.
따님과 정담도, 보고자 했던 일도 잘 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귀국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체후 일향만강 아닌가요?
밥은 저도 잘하는데
어찌 술밥을 만드셧데요 ㅎ
氣體候一向萬康(기체후일향만강) ~
제가 제대로 안 것을 그 분은 다시 틀린 것으로
가르켜 준 것이었나 봅니다.
한자에 유식한 분에게 여쭈니
한자는 모두 붙여서 쓴다라고만 말씀해 주시네요.^^:"
우리는 한글로 쓸때 기체후 일향만강이라고들 쓰곤 하지요.
워킹맨님 댓글로 자세히 알고 오류를 바로 잡게 되어
감사합니다.
일년의 마지막 한 주 월요일 시작 힘차고 멋지시기를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곱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살면서 엄마의 투병과 함께한 세월이 가장
보람되고 값진 기억이 되었습니다.
손편지~까마득한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ㅎㅎ
그래도 소중한 추억이 있으시니...좋으시겠네요.
좋운추억 오래오래 잘 간직
하시고 현대문명의 편안함도
많이 이용 하세요~^^
요즘세상 휴대폰 없으면
세상을 다 잃은거 같아요.ㅋ
옛날 추억도 폰속에 저장~
그러게나 말입니다.
자주 머리와 가슴에 꺼내 보기도 하지만 이렇게
기억 뒷편 저 멀리고 멀어져간 추억도
핸드폰을 통해서 볼 수 있으니 좋은 세상이라
하겠습니다.
옛생각이 나네요
부모님과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지금생각해보면
언제나 자녀들을 위한
애틋한 사랑과 염려로
보살핌이 참 곱기도 하신 그때가
그립습니다
아로마 향기님 손편지의
정성이 담긴 그시절이
옛 이야기가 되었네요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평안 하세요~^^
감사합니다. 바다같은 사랑님도
닉 만큼이나 많은 사랑의 추억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평안한 연말연시 되세요.~^^
기체후...
이 단어만 보아도
오래전 기억들 입니다..ㅎ
전에는 주어 보다는 서술적
문장이 더 많았지요..ㅎ
그래서 지금 보면 약간 유치하단 생각도 들고..ㅎ
어머니의 유품이니
지금까지 소중하게 담고 계셨군요~
술밥=꼬드밥.ㅎㅎ
드신 뱃속은 안녕 하신지...ㅎ^^
ㅎㅎㅎㅎ 안녕하지 못했습니다.
햇볕에 닳아 건조해지고 짜진 된장 염도
낮추는 일로 손에 일이 떠나질 않아
늦게 들어왔습니다.
이상하게 저는 다른 것은 척척 잘 하면서도
밥을 잘 못합니다. ㅋㅋㅋ
되거나~ 질거나~
그리움을 담아 정성으로 보낸 편지가 정겹지요
요즘은 정겨움이란 다 사라지고
없는듯 하지요.
연말이라 그럴까요
저도 그리운이의 모습이 그려지는 하루입니다
네~ 손편지가 훨씬 정겹지요.
손쉽게 이모티콘으로 오가는 것이 한동안
적응이 되지 않아 거부감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입니다.
그래도 전 아직 이모티콘보다는 한줄이라도
문자가 더 좋은 세대입니다.
밥이 그 지경이 되니 정말 예쁜낙엽님이 생각 나더군요.
ㅋㅋㅋㅋ
대단한 부모님과 자식들 입니다.
일단 부럽습니다.
학식이 높으신 가정임에 틀림이 없다고
개인적인 판단을 해봅니다.
틈새님의 글솜씨를 보면 부모님께
편지를 을매나 멋지게 보냈을지
안봐도 비됴 입니다.
자식 세명 키우지만
우리집에도 제법 자식들이
보낸 편지들과 상장들이 쌓여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한번도 부모님께 편지를 써본적이 없네요..ㅠㅠ
부모님이 다 돌아 가셔서
많이 생각이 납니다.
그 시대 부모님들이 다 그렇지요. 뭐.
위로 언니 오빠들은 지금 다 70이 훌쩍 넘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소양대로 가르켰어야 했는데 그걸 모르시고
시대에 맞춘 교육만 시켜 자기 소질대로 전공을 한다든가
한 것이 없어요.
그냥 힘쓰고 애써서 학교만 보내는게 단 줄 알고 등록금 대느라
고생하셨을셨을 뿐 사람들만 착했지.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가정교육은 엄하게 하셔서 인성은 다 좋습니다.^^
저는 위문편지, 연애편지, 결석계, 사유서 대필 전문으로(글씨체가 애 같지 않아서)
빵 많이 얻어 먹었지만 책 만 보고 공부 안 한 것이 천추의
한이랍니다. 그거슨 순전히 유학시킨 부모님의 실쑤입니다.
그저 자식은 곁에 두고 키워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O박사라고 불리시던 아버지의 기술을 물려받았더라면
제가 O가이버로 장가이버님과 업계의 라이벌이 되었을 아쉬움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