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님이 타부세 이야기를 밑에 올리셨길래,제가 예전에 저장한 후추닷컴에 kuki님 농구칼럼과 이봉석님이 쓰신 타부세 유타에 관한 글을 여기 올려보고자 합니다.그리고 한가지 짚고 넘아갈 건 타부세의 경우 19세때부터 이미 미국무대(ncaa-2)에 진출해서 끊임없이 nba의 문을 두드렸고,그런 그의 열정과 도전 정신만큼은 결과가 어찌됐건 간에 우리가 높이 사줘야 한다는 겁니다.
끊임없이 nba 문을 두드렸고,하부리그나 썸머리그를 거의 거르지 않고 참가한 타부세입니다.
그런 그에게 저역시 결과가 어찌됐건 간에 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봄에 씨를 뿌려서 여름에 장마 내지는 가뭄으로 쌩고생과 어려운 과정을 다 겪은 다음에 가을에 수확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이 알차다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바로 현재의 타부세 경우가 이런 농부의 마음은 아닐런지.저의 짧은 생각이였습니다.
먼저 이봉석님의 글입니다.
타부세 유타.
태생: 1980년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출신
신장: 173 체중: 75
국민학교 2학년때 농구 시작
중학교 시절 카나가와현 오오미치(大道)중학교를 현대회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본인은 현대회 베스트 5에 뽑힘.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된것은 일본의 유명한 통신교육회사 베네세 코퍼레이션이 만든 CF에 페트릭 유잉과 함께 출연한 것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가 단순한 청소년 유망주에서 차세대 스타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부터다. 일본 북부의 아키타현에 있는 명문 쿠시로공고에 입학한 타부세는 첫 데뷰를 입부후 2주만에 아키타현 종합선수권대회(고등학교, 대학교, 실업단이 모두 참가하는 대회임)에 스타터로 모습을 나타내고 또한 결승의 JR동일본과의 시합에서 26득점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이면서 인상을 강렬하게 남기게 된다.(아키타 신문의 기사에서 발취)
타부세가 있던 3년간 쿠시로공고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기게 되는데 바로 고교 3대 전국대회 3년연속 우승이라는 것이다(일본 고등학교의 경우 전국대회가 인터하이, 전국체전, 윈터컵이다) 이것은 그 어느 학교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며 그 중심에서 팀을 견인했던 선수가 타부세 유타임. 그리고 사실 이때가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접했던 때이다.
고등학교 졸업이후 차세대 일본대표를 이끌 것이라고 기대가 되었던 타부세 유타. 그의 농구인생에 전기가 찾아오게 되는데. 그것은 일본농구협회의 강화선수라는 이름으로 미국대학에 유학을 보내는 프로그램하에서 미국 하와이에 있는 브링엄영 하와이 분교(NCAA 2부)에 입학을 하게 되므로써 농구유학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말이 많은 유학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과연 이것이 타부세 개인에게 좋은 결과였는지 아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센슈(전수)대학교의 트레이너와의 이야기중에 알게 된 이야기 지만, 그 유학에는 전 이스즈자동차(일본 실업단의 명문)이자 국가대표 감독까지 역임한 코하마씨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는데 그 속셈은 유학이후 일본농구의 인기스타인 타부세를 이스즈에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말도 있다.(문제는 2002년에 이스즈가 해체되었다는 것이다....-_-)
하여간 브링엄 영에서 처음 1년간은 영어및 학업문제로 공식경기에 뛰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 (연습경기에는 나섰다고 한다.) 2001년 일본에서 열린 영맨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팀 대표선수로 복귀를 했으며 그때도 아직은 녹슬지 않은 빠른 템포의 경기를 보여주면서 활약을 했으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2000년에서 2002년까지 미국 하와이의 브링엄영 하와이 분교에서의 생활이 어땠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에 관해 쓰여진 책도 있고 팀과의 문제가 있었다는 둥. 영어가 안되서 고생했다는 둥 꽤 많은 말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적어도 타부세 본인은 미국대학에서의 농구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하와이 분교, 미국대학농구 2부 팀인 대학에 있다는 것이 본인의 능력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게다가 코트위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라던지 개인생활면에 있어서 언어의 문제라는 것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 지는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터인데......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불확실하나, 그는 2년만에 대학을 그만두고 토요타 알바크에 입단을 하게 된다. (위의 이스즈의 해체와도 무관하지는 않다는 소문도 있기는 한데...)
타부세의 인기는 일본의 농구선수들 가운데서는 그 정도가 아주 다르다. 그것은 그가 토요타 알바크에 입단해서 뛴 첫해 JBL슈퍼리그에서 올스타전에 뽑히는 한편, 신인왕에 뽑인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의 입단이 알려지면서 타부세가 출전하는 경기의 표매진이 연속되고 또한 올스타 최다득표를 하게 된 것으로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물론 토요타 알바크에서의 그의 플레이가 그정도 가치가 있는지는 좀 의문점이긴 하다만....-_-(다른 선수들이 못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다. 타부세가 특기로 하는 업템포의 빠른 전개에 따라가 줄 선수가 있었을까?) 또한 토요타에는 일본 성인대표팀의 가드인 나야, 오리모 등이 있는 상황에서 주전을 따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겠다만...... 좌우간 그렇게 그는 토요타에서 1시즌을 보내게 된다.....
개인적으로 그의 시합은 많이 보지 못했지만, 느낀 점이라면 빠른 탬포의 경기운영과 센스는 죽지 않은 반면, 여전히 외곽슛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즉.... 그는 영맨때와 크게 향상되었다고는 볼 수 없는 타부세 유타였다.....(전적으로 개인적 사견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퇴단.... 이유는 미국에의 재도전이었다. 그리고 매버릭스 캠프에의 참가, 그리고 덴버 프레시즌 로스터 참가이며 현재 시즌개막로스터에 남기 위해서 피튀기는 경쟁중이다. 과연 어떨까?
173의 결코 크지 않은 신장.... 그리고 결코 안정적이지는 않은 그의 외곽..... 발군의 스피드와 기존의 일본선수와는 완연히 다른 패스센스를 지녔음에도 그 핸디를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을까? 고교시절 쿠시로의 빠른 속공농구를 이끄는데 있어서 그가 보여준 스피드와 패스는 수준이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최고의 수준들이 모여서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 NBA라는 곳이서...
아무리 덴버가 올해의 유망 꼴지후보이긴 하지만, 덴버에는 얼 보이킨스라는 또 하나의 단신가드(그것도 검증된)가 있으며, 그가 한자리 차지할 것이고 또한 후보군 가운데 USC출신의 제프 트라파냐가 있다.
또한 안드레 밀러, 보션 레너드라는 선수들 가운데서 솔직히 그가 로스터에 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과연 그 이후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까? 아니면 모리시타 처럼 미국 독립리그에서 기회를 엿볼까......(개인적으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나는 타부세 유타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물론 결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고교 졸업이후 도미때 느꼈던 찝찝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결과가 어찌 되었던 그는 이번에는 자기가 원해서 도전을 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의 마음이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후의 그의 농구인생은 어찌 될까? 과연 그의 패스 센스가 빛을 완전히 발할 날이 올까?......현재의 일본농구계가 과연 타부세 유타를 얼마나 살릴 수 있을까..... 앞으로 주목할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건 예전 후추닷컴 농구 고수분중 한 분이신 kuki(임재일님)의 농구 칼럼글 중 타부세 유타에 대한 글입니다.
2001-2002 시즌은 동양의 반란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가운데 '괴물신인' 김승현 이 있었다. 그의 섬광같이 빠른 플레이에 상대팀 수비수들은 당혹해했으며, 얼음같이 냉정한 판단력에 상대팀 벤치에서는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첫 데뷔부터 화려했던 이 '능구렁이' 청년은 결국 마지막 결승전에서도 자신의 힘으로 우승을 거머쥐며, 화려한 연극의 커튼을 직접 내렸다.
그리고 한국의 농구팬들이 김승현의 등장에 환호하고 있을 때, 같은 시간 저 미국 땅에서는 '일본의 김승현'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175cm의 타부세 유타는 고교시절 경기당 20득점 10어시스트 4스틸을 해내면서 소속팀을 3년 연속 전국대회의 패자로 만들어낸다. 이후 그의 활약에 고무된 일본 남자농구 대표팀은 그를 '가장 어린 나이의 대표선수'로 만들게되고 타부세는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서 인정받는다. 하지만 JBL에 안주할 것이라고 믿어졌던 타부세는 '의외로' 미국행을 선택하고 그후 타부세의 전설는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되지 않고 있다.
그가 미국에 온지 올해가 3년째. 그동안 타부세가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NCAA의 엄격한 전학생 규칙(1년째)과 부상(2년째)이라는 난제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을 뿐 그 모든 족쇄가 풀리자 한때 "전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다"는 이 가드는 바로 팀의 주전 자리를 차지한다.
현재 그의 등번호는 아마추어 레벨에서 PG가 주로 차지하는 4번. 농구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 4번이 지니는 무게감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알다시피 미국 출생도 아니고, 더구나 아시아의 농구강국인 한국이나 중국도 아닌 일본 출신의 자그마한 '농구소년'이 NCAA 데뷔 첫해에 주전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 농구는 만만하지 않다. 생각해보자. 예전에 BYU-Hawaii와 우리나라 국가대표가 시합했던 일을. NCAA 2부리그라는 점을 감안해도 타부세 유타가 데뷔 첫해 팀의 주전 자리를 차지한 것은 충분히 놀랄만한 일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타부세 유타는 이렇게 쉽게 팀의 주전 PG로 굳힐 수 있었을까?
타부세의 소속팀 코치인 Brandyn Akana는 그에 대해서 요즘 찾기힘든 '정통 PG -패스 먼저 생각하는-' 라는 점를 먼저 들었다. 특히 그는 타부세가 볼을 잘 다루고, 필요할 때 득점해주며, 우리 팀 선수들에게 딱 맞는 패스를 해준다고 매우 칭찬한 바 있다. 이런 평가는 그의 고교 시절이나 세계 유스선수권 대회에 나갔을 때 들었던 평과 아주 흡사한 것이다. 적어도 그의 플레이가 NCAA 2부 리그 수준에서는 통한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약점도 지적당하고 있다. 타부세에 대해서 팀 코칭 스탭들은 그가 좀 더 적극적으로 많은 슛을 시도하길 원하고 있다. 물론 그런 팀의 요구사항을 타부세 역시 잘 알고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타부세의 플레이에 급격한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난 패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 팀에는 좋은 슈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 슛을 시도할 필요가 없어요. 단지 그들이 득점하도록 만들어 줄 뿐입니다. 이것이 내가 전에 생각하던 겁니다. 하지만 나도 내 생각을 바꾸고 좀 더 득점을 할 필요는 있겠죠."
타부세의 말이다. 이 '바비 하리' 타입의 PG는 KBL의 김승현과 똑같은 문제에 봉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 역시 똑같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가드에게 절대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농구 센스'라고 한다. 반면 연습에 의해서 가장 쉽게 키울 수 있는 것을 '슈팅력'이라고 본다. 신기성이 그랬듯, 주희정이 그랬듯 타부세 역시 시간이 가면 갈수록 현재보다 훨씬 나은 슈팅력을 보여줄 것이다.
어머니가 농구 선수이고, 아버지 역시 럭비와 유도, 야구를 한 이 소년은 9살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농구를 시작하자마자 곧 비범한 소질을 보여왔고, 이후 농구는 그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됐다. 그가 농구에 대해서 가지는 애정은 분명 남다를 것이다. 비록 시즌 중에 시간이 나면 쇼핑을 하고,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매직과 자신의 아버지를 꼽는 전형적인 일본농구소년이지만, 적어도 그의 농구실력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타부세가 속한 BYU-Hawaii는 올해 컨퍼런스 올해의 선수와 올해의 감독상을 배출하며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NCAA 토너먼트를 시작과 동시에 침몰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팀의 상승세에 타부세가 끼친 영향은 적지않다고 그의 좋은 볼배급 덕분에 BYU-Hawaii는 PG를 제외하고도 1명의 20PPG 선수와 2명의 약 15PPG(14.1과 15.3) 선수를 보유할 수 있었다. 마치 올 시즌의 대구 동양처럼 말이다.
김승현을 보면서 내내 타부세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의 활약에 매우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 적어도 농구에 대한 재능만 놓고 보면, 김승현에게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타부세 유타가 대학 4년간 착실하게 농구의 본고장에서 조련받고 온다면 과연 타부세가 이끄는 일본 대표팀을 상대로 한국팀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라고 말이다.
얼마 전 일본 농구협회는 일본농구 부활을 위해 거액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미 한국에 비해 농구 인프라가 발달한 일본이, 한국에 비해 뛰어난 자금력을 무기로 단기간에 업그레이드하려는 시도를 하고있다는 말이다. 솔직히 그들의 이런 움직임이 당장 위협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약점을 인정하고,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만은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축구팬 아니 스포츠 팬들이라면 일본 J리그가 '일본축구 100년대계'라는 치밀한 계획안에 의해서 완성됐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리라.
이미 축구에서 비슷한 사례를 성공시킨 일본이, 농구에서 다시 똑같은 계획으로 성공하지 말란 법은 없다.(물론 한국 프로농구는 발전 중이다. 다만 그 발전 속도가 주변국들에 비해 미미하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일본 농구협회는 타부세 유타를 이번 아시안 게임 대표로 선발했다.
현재 그의 기량이 어느정도인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포지션상 그의 힘 혼자서는 한국과 일본과의 경기력을 뒤집기 힘들다. 다만 '미국물'을 먹은 선수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한번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 기간동안 외도 중인 농구팬들이여…시간이 나면 한번 그를 주목해보자. 그리고 그를 보면서 좁은 우물 안에 있는 한국농구에 대해서 반성하자.
더 많은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해서 이렇게 올립니다. I Love NBA 게시판에 지노짱 님께서
첫댓글 참고로 타부세 유타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때 발목 부상으로 일본 대표팀에 합류를 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