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이 떠나고 있다 / 최한나
휴일을 타고 자주 떠나는 집들
창문 밖이 덩달아 떠나고 있다.
남아 있는 집들은 아직 새벽잠에 들어 있고
가끔씩 열리던 삼층집 창문만 내려와
담벼락에 기대어 섭섭한 말 몇 마디 보탠다
먼지 날리는 햇살과 사다리차의 배웅을 받으며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무거웠던 안주(安住)
신문지에 싸인 접시들
꽃잎에 싸인 봄은 남겨 두고
꽃 떨어지듯 순식간에 창문 밖이 떠나고 있다
우당탕 탕탕 소음들이 떠나고 있다
충혈된 아침잠이, 꽝 창문 여닫는 소리
엔진음이 지우며 떠난다
아이들은 벽의 낙서처럼 깔깔거리고 컸다면
두고 가는 소문도 있을 것이다
찌그러진 싱크대도 두고 다리 저는 식탁과
서랍장은 재활용 스티커에게 부탁하고
손 흔드는 매캐함만 남겨 두고 떠나는 창문 밖
어색한 얼굴 하나가 창문을 영영 닫는다
깊은 침대에 잠겨 버린 휴일 아침은
그 어떤 창문의 바깥보다 소중하다
꽁꽁 닫아건 창문 안쪽은 떠나지 않는다
눈 감은 창문들,
뚝 떼는 시침만 눈부시다
끝내 내밀지 못했던 손을
헐렁한 호주머니 속이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 시집 『꽃은 떨어질 때 웃는다』 (문예바다, 2022.06)
* 최한나 시인
전북 무주 출생
1995년 첫 시집 『저 홀로 타오르는 촛불 하나』으로 등단
시집 『저 홀로 타오르는 촛불 하나』 『밥이 그립다』 『꽃은 떨어질 때 웃는다』
2014년 월간 『시와표현』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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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하고 살아도 이웃은 없다는 게 이즈음의 도시 삶의 보편적 모습일 것도 같다.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이 도심 가구의 일반적 모습이 되어가니 면적당 이웃의 수가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바로 옆집이나 위아래 집과도 소통하고 지내는 경우는 드물고, 거꾸로 소음 문제, 주차 문제 등으로
다투거나 불편하게 지내는 경우는 잦다.
이웃사촌은커녕 원수 대하듯 얼굴 붉히며 사는 일도 종종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시인은 이웃에게 자신이 좋은 이웃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을 알뜰히도 간직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이사 나가는 집과 좋은 관계를 갖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
“우당탕 탕탕 소음들이 떠나고 있다”는 표현이 이사 당일의 상황일 수도 있지만
층간소음에 시달린 과거 경험이 반영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한 쪽이 이만큼 이해를 했다손 치더라도 다른 한 쪽이 그만큼 감사하거나 미안해하는 건 아니다.
상대의 이해와 수용의 정도가 서로 간에 불만일 때 이웃과의 관계 개선은 여간 난망한 게 아니다.
층간 소음이든 무엇이든 간에 건물 시공 등 구조적 문제를 탓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나 사람을
탓하긴 쉬워도 자기 책임을 크게 생각하며 자기 탓이 없는지 먼저 돌아보는 일이 마냥 쉬운 건 아니다.
시인은 이웃에게 “끝내 내밀지 못했던 손”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는 자세를 취한다.
이런 자아성찰의 태도는 더 성숙한 인간관계의 초석도 되고 더 나은 공동체에 대한 기대도 갖게 해준다.
따지고 보면, 송파 세 모녀(2014)와 수원 세 모녀(2022)의 불행도 이웃에 무관심했던 고립 사회의
어둔 단면을 그대로 노출시킨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창문 안쪽의 안주(安住)와 평화가 문을 꼭꼭 걸어 잠근다고 지켜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좋은 시는 사유하게 한다.
창문 바깥의 일과 무관할 수 없는, 진짜 평화에 대해서.
- 이동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