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엄한 승부의 세계
K리그 13팀 중 2군 제도를 운용하는 클럽은 9팀이다. 여기에 군 팀인 경찰청이 가세해 총 10팀이 2군 리그에 참가한다. 중부와 남부의 2대 권역으로 나눠 운영하는데, 중부는 서울 수원 성남 부천 인천 경찰청 등 6팀, 남부는 울산 전남 전북 포항 등 4팀이 나선다. 중부는 팀 당 18경기, 남부는 20경기를 치르며 권역별 1,2위가 4강 토너먼트에 진출해 우승팀을 가린다.
특이한 점은 연맹 등록선수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들도 출전 가능하다는 것. 홍우승 프로연맹 2군 담당자는 “K리그 클럽들의 전력 극대화를 돕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구단 별로 용병을 교체하거나 선수를 추가 영입해야 할 상황이 발생합니다. 계약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실력을 가늠할 실전테스트가 필요하고, 2군 리그가 그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지요. 경기 전 연맹에 미리 알리기만 하면 누구든 경기에 나설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전력에 보탬이 될 만한 선수들에게 언제나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일까. 2군 경기는 언제나 치열하다. 어느 하나 몸을 사리는 선수가 없다. ‘실력을 인정받아 1군으로 올라간다’는 희망과 ‘부진하면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이 묘하게 교차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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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원 | 지난해 대통령배 득점왕이자 2군 리그 MVP 한동원(19·FW)은 “2군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1군으로 오르지 못하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며 아쉬움의 일단을 드러냈다.
“아무리 좋은 활약을 보여도 1군의 같은 포지션에 뛰어난 선수들이 많으면 기회를 잡을 수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에요. 2002년에 입단했는데 3년 동안 1군에서 뛴 건 9번 밖에 없어요. 그나마 선발 출장은 한차례뿐이었지요. 솔직히 걱정스럽긴 해요. 어리지만 제게도 꿈과 목표가 있으니까요.
올해도 노나또, (박)성배 형, (박)주영이 형이 들어왔으니 쉽지 않겠죠. 하지만 실망하진 않아요. 그럴 틈도 없고요. 일단은 2군에서 최고 선수 자리를 지키고 싶어요. 기회는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거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뛰면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야 1군행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에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 올라가기 위해, 또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이 2군 멤버들의 숙명이다.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
K리그의 2군 제도는 유럽 등 해외리그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존재 목적이 다르다. 유럽의 경우 원칙적으로 ‘2군’이라는 제도가 없다. 대신 U-20팀, U-17팀 등 연령별 하부 팀을 운영한다. 어린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팀 전력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조치다. 선수 이적이 활성화 되어있는 만큼 유망주의 육성은 클럽의 재정 확충에도 상당부분 기여한다.
1군 부상 선수들은 ‘재활군’에 속해 체계적인 관리를 받는다. 2월 A3대회 당시 요코하마 재활팀 멤버로 제주도를 찾은 안정환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웃 J리그서도 보편화한 방식이다. K리그의 2군 제도는 ‘즉시 전력감 양성’을 제1의 과제로 삼는다. 1군 전력에 누수가 생겼을 때 빠르고 효율적으로 메워내기 위해서다. 따라서 유망주들보다는 어느 정도 실전 경험을 갖춘 선수들을 중심으로 스쿼드가 채워진다.
중·고생 또래의 어린 선수들을 대거 보유해 K리그 구단 중 유럽과 가장 유사한 방식의 2군을 운영한다 평가받는 FC서울이지만 ‘청소년 대표팀 멤버 등 두각을 드러낸 선수들만 골라 영입한 결과이므로 진정한 의미의 유망주 육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 또한 상존하고 있다. 최기봉 FC서울 2군 감독은 이에 대해 “장기적인 비전과 구단의 현실을 모두 고려한 결과”라 설명했다.
“연령별 유소년 팀 보유를 의무화 한 J리그와 달리 구단 자율에 맡긴 K리그 시스템 속에서 자발적으로 어린 선수들에게 투자할 팀은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서울이 엘리트 위주로 선수를 선발한 건 유소년 육성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과도기적인 선택이지요. 구단의 미래 못지않게 현실적으로 향후 몇 년 내에 실전 투입이 가능한 지의 여부를 따지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갑자기 시스템을 갈아엎는 대신 한 발짝씩 내딛으며 조금씩 변화하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한국 프로축구의 현실과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 사이의 딜레마. 2군 리그 존폐와 관련해 매해 갖가지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현 상황에서 한번 쯤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스스로 깨우치는 법 터득해야
2군의 일상은 1군 선수들과 똑같다. 오전 오후 2차례에 걸쳐 팀 훈련을 실시하고 저녁에는 개인훈련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식이다. 차이라면 경기가 열리는 매주 목요일에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하도록 신체리듬을 조절하는 정도. 프로인 만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전적으로 선수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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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용 | 2003년 말 도봉중을 중퇴하고 서울에 입단한 ‘막내’ 이청용(17·FW)은 “자율적인 시스템이 낯설어 한동안 고생했다”면서도 “프로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운동 환경을 갖추고 있어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서 뛰는 또래 친구들은 저를 많이들 부러워해요. 항상 잔디구장에서 공을 찰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좋아요. 학생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죠. 음식에서부터 운동기구, 재활치료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몸 상태를 최고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도 만족스럽고요. 프로의식이 투철한 선배들을 항상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에요. 배울 점이 많아요. 두루 만족하고 있어요.”
석관중을 중퇴하고 2003년 초부터 서울에 몸담고 있는 고명진(17·MF)은 “중요한 건 ‘스스로 하는 법’을 깨우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선 모든 것이 스스로예요. 각자 알아서 행동해야한다는 거죠. 서울은 어린 선수들이 많은 편이라 감독 선생님께서도 그 점을 수시로 강조하세요. 운동도, 휴식도, 공부도,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모두 홀로 터득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해 컵대회서 5경기에 출전하며 고대하던 1군 무대를 경험한 고명진은 “겪어보니 1·2군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고 했다. “간격은 분명 있지만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더라고요. 결국 실전에서 팀에 보탬이 되는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느냐의 문제 같아요. 1군에서 확실히 통할 수 있는 특기 한 두 가지는 갖춰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목표는 내년쯤 1군에 진입하는 건데요, 실력을 키우면서 꾸준히 기다려봐야죠.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음…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네요.”
손현준 FC서울 코치는 2군 지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언제라도 (1군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2군 선수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괜찮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언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불안해하게 되죠. 대부분 화려한 아마 시절을 보낸 선수들인데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멈춘 상황인 만큼 조바심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도록 수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언젠가 찾아 올 영광의 날을 위해 오늘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2군 선수들. ‘희망’ 하나에 모든 것을 내 맡긴 ‘미완의 대기’들을 격려하기위해 한번쯤 2군 리그 경기장을 찾아 ‘파이팅’을 외쳐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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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동원은 그럼 16살에 입단을 했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