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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이는 오감을 따러 곰삭은 맛의 고장, 나주로 가다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
소설가 황석영이 나주에서 홍어를 처음 먹은 후 뱉은 감상이다. 주르륵~ 쓰읍. 그저 상상만으로 군침을 닦아내게 하는 나주 음식. 영산강과 나주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먹을거리 풍부하고, 맛의 대명사인 전라남도의 중심에 서서 요리도 훌륭한 그곳. 꿀 같은 과즙이 들어찬 멜론과 배, 환상적인 마블링을 선보이는 한우, 진한 국물이 일품인 곰탕, 소설가 황석영이 반한 홍어,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장어 등. 나주의 황홀한 음식을 찾아 맛깔스러운 여행을 떠나보자.
나주에는 신비한 ‘거리’가 있다. 언뜻 보기엔 한적하고 특별할 것 없지만 ‘어디선가, 누군가의, 무슨 일이 생겨도’ 식사시간이면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마술처럼 등장한다. 평범해 보이는 거리에는 남다른 향기가 존재한다. 매콤하고, 달콤하고, 구수하고, 절로 침이 고이게 하는 마법의 향수가. 특히 지역 주민이라곤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억양의 언어를 구사하며 나타나기 일쑤다. 마치 공간의 게이트를 통과한 듯 서울, 부산, 강원도 등지의 사람들이 나주의 거리에 나타나는 것이다.
먼저 ‘곰탕의 거리’가 그러하다. 목문화관에서 매일시장까지 넓게 펼쳐진 거리는 언제나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그들의 발길을 붙잡는 것은, 거리의 이름이 말해주듯 ‘나주곰탕’이다. 유난히 맑은 국물에, 씹기를 거부하며 녹아내리는 고기. 주르륵~ 쓰읍. 진한 국물에 밥 한 공기를 퐁당! 국물에 젖은 밥알을 한술 떠서 붉은빛으로 반짝이는 묵은지와 깍두기를 얹어놓고는 우적우적, 꼴깍!
나주곰탕은 남도 육류문화의 대표 음식으로, 오래 삶으면서 끊임없이 불순물을 건져내는 독특한 노하우로 방문객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다음으로 ‘홍어의 거리’가 그러하다. 영산대교를 지나 영산포터미널 방향으로 오른편에 위치한 이곳. 거리의 마법은 향기에서 시작된다. 콧속으로 스며든 홍어의 향기는 작은 종이 되어 목표지점에 도달함과 동시에 징~ 울려대기 시작한다. 주르륵~ 쓰읍. 맛은 또 어떠한가? 혀에 닿는 순간 하염없이 흐르는 침, 치아의 방아 찧기와 함께 온몸으로 번지는 전율, 반면 목 삼킴은 질 좋은 육회를 삼킨 듯 부드럽기 그지없다.
마지막으로 ‘장어의 거리’가 그러하다. 장어의 활달한 생명력을 닮은 듯, 거리는 유독 여행객의 발길로 분주하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소금구이와 매콤한 양념구이는 한 번 맛보면 반드시 되찾게 하는 마력이 있다. 주르륵~ 쓰읍. 거리는 구진포 삼거리에 위치한다. 특히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구진포의 독특한 지역조건에서 탄생한 구진포장어는 전국적으로 마니아가 형성되어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유독 이곳이 맛있다’ 혹은 ‘이곳이 원조 음식점이다’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들어 귀가 아프고, 창의력이 부족한 광고문구에 마음이 아프다. 그런 중 들려오는 반가운 소리 ‘나주의 밥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라니. 부리나케 달려가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홍어가 유명한 나주답게 홍탁(홍어+막걸리+묵은지)이 한 상을 가득 메운다. 물론 군침은 돌지만, 약간의 실망이 눈가에서 피워 오른다. 짜잔! 그때 등장한 건더기가 수북이 쌓인 육개장스러운 붉은 국물의 정체는? 나주의 밥상에서만 볼 수 있다는 ‘홍어애보릿국’이 등장한 것이다. 주르륵~ 쓰읍. 군침을 닦아내곤 호호 불어가며 한술 떠서 후루룩 비워냈다. 사람의 몸에 땀구멍이 몇 개나 있는지 아는가? 필자는 몰랐다. 그저 몸 안에 쥐죽은 듯 존재하던 시원한 기운이 온몸의 구멍을 통해 세상으로 분출되는 기분을 느꼈을 뿐이다.
특히 홍어애보릿국은 발효시킨 홍어 특유의 구린 냄새가 없어 처음 맛보는 이들도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물론 경험하기 전, 스스로 질문을 되씹어보기 바란다. ‘나의 땀구멍은 몇 개인가?’
또 하나의 숨겨진 나주음식. 사실 전라도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음식은 전주비빔밥이다. 하지만 비빔밥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전라도의 각 지역엔 저마다 독특한 비빔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나주비빔밥의 경우는 타 지역 비빔밥과 달리 ‘들’이 아닌 ‘장’에서 시작돼 화제가 되고 있다. 지역 주민은 “장날에 놋그릇에 밥과 양념, 나물 등을 한꺼번에 넣고 (뚜껑을) 닫고는 손으로 돌려 흔들어 먹었다”라고 회상한다. 돌려 흔들어 먹었다 해서 이전엔 ‘뱅뱅돌이비빔밥(뱅뱅돌이장터 비빔밥)’이라고 불렸다.
나주비빔밥은 여느 비빔밥과 마찬가지로 형형색색의 색동옷을 입고 있다. 단, 유난히 개운하고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신선한 밥알에 살아 있는 채소를 씹는 기분이랄까? 이유인즉, 8가지 채소를 우린 물로 밥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나주에는 어팔진미(조금물 또랑참게, 몽탄강 숭어, 영산강 뱅어, 구진포 웅어, 황룡강 잉어, 황룡강 자라, 수문리 장어, 복바위 복어)와 소팔진미(동문안 미나리, 신원 마늘, 흥룡동 두부, 사매기 녹두묵, 전왕면 생강, 솔개 참기름, 보광골 열무, 보리마당 겨우살이)가 나주 팔진미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