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교사되기를 포기한 어느 ‘예비교사’의 이야기

[김재민]

안녕하세요. 조합원 김재민입니다. ^^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대학 재학 시절 《우리교육》을 구독할 때, 독자의 소리에 “예비교사들의 이야기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교육공동체 벗’이 생기면서 ‘공교육 중심, 교사 중심의 교육 담론에서 벗어나 학교 안과 밖을 아우르고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전문지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교육공동체 벗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총회 때 제가 교육공동체 벗을 사랑하는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뻘쭘하게 이야기 한 것이지요.

벗에서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먼저 제안해서 모임을 만들고, 《오늘의 교육》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읽은 소감을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네요.

1년 3개월 동안 근무한 시민단체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면서 그 동안 묵혀둔? 《오늘의 교육》을 즐겁게, 한편으로 슬프게 읽고 있답니다. 아, '벗 마을 이야기'도 잘 읽고 있어요! ^^

 

그리고 전부터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제야 써서 올리네요.

<교육 불가능 시대, 교사는 가능한가> 특집에 신규교사 혹은 예비교사의 목소리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답니다.

조합원이 《오늘의 교육》에 글을 투고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건가요? ^^

예비교사이야기_김재민_투고용_2012.2.10.hwp

쓰다 보니 엄청 길어져서 지루하지 않게 중간에 사진도 몇 장 넣어 봤습니다.

교사되기를 포기한 어느 ‘예비교사’의 이야기

- 학교 안과 밖, 그 경계에 서다

김재민

09년 4학년 재학, 중등교원임용시험 일반사회 모집 인원 경기도 34명, 서울 19명, 전국 131명.

10년 졸업 예정 시기 첫 응시, 모집 인원 경기도 10명, 서울 7명, 전국 65명.

11년 7개월간 임용 공부 올인, 경기도 4명, 서울 0명, 전국 32명.

12년 응시조차 안함, 경기도 0명, 서울 10명, 전국 41명.

11년 경기도 일반사회 응시자 637명, 경쟁률 159대1.

합격자 4명, 불합격자 634명.

나는 634명 중 1인.

나와 같은 ‘예비교사’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어김없이 2012년에도 중등교원 임용시험 합격자 발표가 났다. 1차에서 2배수, 2차에서 1.5배수, 마지막 3차 시험까지 3개월간의 피를 말리는 경쟁을 통과한 이들은 곧 있으면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겠지. 그런데 왜 일까. 임용고사 시험을 10년, 11년 두 번 불합격한 여전히 ‘예비교사’인 나는, 임용고사에서 합격해서 ‘예비교사’에서 벗어날 이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신 ‘오늘의 교육’에서 읽은 자살한 새내기 교사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교사가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은, 내가 가진 교육 이상과 교육 현실(대다수의 학생, 학부모, 교사가 지향하는 것-좋은 대학 갈 수 있게 지도)과의 어마어마한 괴리 때문.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것만 이룰 수 있다면, 삶이 행복할 것 같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그 속에서 힘을 얻고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게 되기를.

- 김요한, 《오늘의 교육》 2011년 5·6월호, ‘어느 새내기 교사의 죽음’에서

고 안혜영 선생님이 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대를 다니며 쓴 일기와 2011년 임용고사 3차 시험을 남겨 두고 쓴 일기의 내용이라고 한다. 고인은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행복한 교사가 되기 위해 힘겨운 임용시험 기간을 이겨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새내기 교사가 맞닥트린 것은 기대하고 바라던 학생들과의 교육적인 만남보다는 네이스 행정 업무 등의 비교육적인 학교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 일을 임용 관련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서 뉴스 기사를 통해서 처음 접했었다. 뉴스 기사 게시글에는 그토록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합격한 사람인데 왜 자살을 했을까 의문을 제기하는 댓글도 있고 교과부가 문제라는 댓글도 있었지만 학교 교사들이 신규 교사에게 힘든 업무를 떠넘긴 것이 주요한 요인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분위기였다. 그 중에 눈에 띤 댓글이 신규 교사로 보이는 이가 꿈과 현실의 괴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현재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두 가지 원인=신임교사에게 차세대나이스 업무를 떠넘긴 교직사회의 일 안하려는 풍조, 그리고 시험운영을 가장 바쁜 3월에 시작하는 교과부의 미친 운행... (새해복좀주세요)

┗ 22222 나이스뿐만 아니라 서로 하기 싫어하는 업무를 만만한 신규나 기간제에게 떠넘기는 풍조... 선배 교사들이 먼저 나서서 힘들고 어려운 업무를 좀 맡아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 까요 (하얀세~)

단지 업무 때문에 그랬겠습니까. 자신이 꿈으로 믿었던 길에서 배신을 당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아직 이제 개학한지 얼마 되지 않지만 저도 제가 꿈꾸고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네요. 어서 일 년이 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포천 Y 고교 새내기 국어교사 자살’글의 댓글에서

ㅊ카페 자유게시판 2011년 3월 14일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잘 견뎌낼 수 있었을까, 라는 고민도 잠시, 나는 그 당시 근무하던 시민단체에서 토론회 실무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어느새 이 일은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 후 3달 뒤에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오늘의 교육》에 고인의 남자 친구가 기고한 글을 보면서 자세한 사연을 알 수 있었고,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포기한 길의 결말이 이럴 수 있구나,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새내기 교사는 자신이 원하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견딜 수 없이 힘들었겠지.’

나 역시 교사가 되는 것이 두렵지만 아이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즐거운 수업을 하는 행복한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도전도 해보지 못하고 교사의 길에 대한 꿈을 접었다. 내가 꿈꾸고 기대하던 교육적 만남이 오늘날의 학교에서 가능할까. 학교에 공동체 문화는 차츰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교과부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는지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이고 오히려 교사와 학생의 교육적 관계를 방해하고 있다. 교사를 꿈꾸는 이들은 ‘아무리 해도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애착이 가지 않는’ 업무를 배우러 교직에 들어가려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임용시험에 실패한 수만 명 중 1인의 증언

교사도 문제고, 학생들도 문제고, 교육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한국 사회에서는 누구나 교육에 대해 한마디씩 할 수 있는 전문가이지만,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교사가 되는지 관심이 없는 듯하다. 교과부는 이런 저런 정책을 내놓으면서 교원들이 정책에 따라가기를 요구하지만, 교사가 될 이들이 대학에서 배우는 것에서부터 바꿔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사범대 교수는 학생들의 진로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고, 수업은 미국에서 배우고 온 이론을 전달해주면 그만이다. 학부모가 관심 갖는 것은 내 자녀의 교사가 학벌이 좋거나 영어, 수학, 국어(티오 많은 순)주요 과목 교사인지 여부이다. 전교조는 이미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된 사람들이고, 뭔가 더 큰 일을 하느라 바쁜 듯 보인다. 전교조의 활동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며 비판적으로 활동할 신규 조합원이 왜 늘지 않는지 관심이 있나 모르겠다. 사범대생, 교직이수자, 교육대학원생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어, 교육 재정 확충, 교원 1인당 학생수 축소, 법정 교원수 확보 투쟁을 하기도 벅차다. 그 이상의 근본적인 것에 대한 물음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고 한다(오늘의 교육, 2011). 이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연스럽게 교사 불가능이 떠올랐다. ‘예비교사’가 교사가 되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고, 힘들게 교사가 되더라도 학생과 교육적 관계를 맺기 어려운 현실이다.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은 한 인간이 온전한 주체로서 사회를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한 상태로 치닫는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공동체 사회에서 서로 연대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다른 이들을 밟고 올라서서 남보다 더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기를 원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학교는 인간으로서 알아야 할 자유와 평등의 가치,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생명, 생태, 환경보전의 가치, 인권, 양성평등, 연대의 가치,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 등에 소홀해지고, 사회 기득권층이 될 수 있는 높은 학벌을 얻기 위한 입시교육에 매달리고 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를 살고 있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가정에서 이미 슬픔과 절망을 안고 학교로 오는 아이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며,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풍부한 감성과 경험이 있는 교사가 현재의 교원양성과정과 임용 체제에서 가능한가.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고 개개인이 파편화 되는 사회에서 다른 이와 관계 맺음이 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교육이 가능한가.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 홍수를 손 안의 스마트 폰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정보를 내 삶의 맥락에서 선별해 지식으로 만들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낼 수 있는가. 국가가 짜놓은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교실 안에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준을 극복하고, 학교를 넘어서 지역에서, 사회에서 아이들이 교육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교사가 교육과정을 새롭게 구성해서 안내해 줄 수 있는가.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교육적 관계가 가능한지를 성찰해야 하며, 그러한 교육이 가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교원양성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예비교사’들이 희망을 안고 교직에 들어섰을 때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배움의 기쁨을 느끼고 행복한 삶이 가능할 수 있도록 교원양성과정과 임용체제에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사범대에서 나는 어떤 경험을 했는가. 더 근본으로 돌아가 나는 왜 교사가 되려고 했을까. 그리고 교사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2011년 임용시험에 실패한 5만여 명 중의 1인이자, 2012년 임용 시험을 응시조차 하지 않고 교직의 길을 포기한 몇 명인지 조차 모를 이들 중의 1인이 던지는 이야기이다. 개인적인 고백을 넘어 시대와 사회를 향해 내놓는 행위이자 사유를 촉발하는 증언이 되기를 바라며(엄기호, 2011),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더 많은 증언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아부지’는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목수였다

교사가 학생에게 욕을 먹고, 학부모에게 따귀를 맞는 이야기가 뉴스에 흔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교사는 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 1순위라고 한다. 학생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직업이 교사여서 일까, 취업도 힘들고 퇴직도 빠른 시기에 한 번 임용되면 62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이어서 그런 걸까. 왜 교사가 되려고 하는 걸까. 나는 사범대에 진학 할 때도 교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노동자의 자식이라는 나의 존재로 인해 내 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던 ‘교육’이라는 두 글자가 나를 교육학과로 불러들였나 보다.

나는 목포에서 태어났지만 아부지가 자식들은 열심히 공부를 가르쳐야 한다고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로 이사를 했고, 형은 주소 이전을 해서 서울로 학교를 보내려고 할 정도로 교육열이 대단했다. 가난해서 초등학교 밖에 다니지 못했다는 아부지는 배우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었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와 형은 서울대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 집이 가난하고 대학도 못 나왔어도 사시를 패스했다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식의 훈훈한 이야기는 나의 아부지 이야기는 물론 아니었고, 그 자식이 부모의 한을 풀어주었다는 스토리 역시 나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부지는 가난했기에 공부를 할 수 없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목공일을 배운 목수였다. 아부지는 가구 공장에 가고 엄마는 미싱 돌리러 공장에 가고, 좁은 골목길 끝 반지하 어두운 집에 있기 싫었던 나는 낮에는 동네 논에서 개구리 잡고 밤에는 뚝방에서 불장난하고, 감성적으로는 좋았지만 공부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랐다.  

엄마와 아부지는 휴일, 야근 가릴 것 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근로자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지하를 벗어나 주공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골목길에서 함께 어울리며 슈퍼에서 물건을 훔치는 법을 알려주던 동네 형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집에 안 들어가고 놀던 버릇은 남아 있어서 중학교에 가서는 농구, 축구, 판치기에 빠져 지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와 형에게 학교에서 배우고 온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신문지 여백에 빼곡하게 한자를 적는 등 공부에 대한 열정을 몸소 보이셨던 아부지와 힘들게 고생하며 일하시는 엄마를 생각해서 시험기간에는 공부에 전념했고, 고교 비평준화 지역에서 가장 좋다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수이북 최고의 명문’이라고 하는, 상위권 대학에 학생들을 진학시키는 것이 최우선시 되는 고등학교에서의 3년간의 생활로 나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로 변하게 됐다.

중학교 때는 시험기간에만 열심히 해도 성적이 잘 나왔는데, 고등학교 때는 평소에 열심히 해도 성적이 안 좋았다. 근처 도시, 시골 학교 할 것 없이 성적이 좋다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에서 주말, 방학 때 체계적으로 학원 강의를 들은 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었고 나는 중간 정도 성적을 받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좋아하던 농구, 축구도 하지 않게 됐고, 성적을 잘 받아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스트레스는 점점 높아만 갔다.

그런 시기에 아부지가 공장에서 해고됐다.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하자 아부지는 술을 마시고 공장에 불을 지르겠다고 사장에게 항의 했다. 이것을 빌미로 사장은 오히려 아부지를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 전화를 했고, 결국 아부지는 돈도 못 받고 다른 공장을 알아 봐야 했다. 서울대 법대니, 판검사니 이야기 할 때 마다 아부지에게 난 그냥 평범하다고 대들었고, 반항심으로 법대는 생각도 안했는데 처음으로 법률가에 대해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 보다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충격으로 나는 평소보다 더 무기력하고 자신감이 떨어지게 됐다.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 두 교사

수업은 눈에 안 들어오고, 정신은 딴 데가 있고, 성적은 갈수록 떨어졌다. 이 때 무엇보다 나에게 큰 힘이 되었던 분이 담임 박영복 선생님이다. 나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힘겨운 일들을 선생님이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지금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고 힘든 시기를 극복할 용기가 생겼다. 선생님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준다는 것이 느껴졌고, 졸업한 이후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도 아부지의 안부를 물어봐주셨다. 박영복 선생님은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쓰지 않고,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고, 입은 여전히 거칠던 나는 욕을 하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매 아픈 줄은 잘 알지만, 말 아픈 줄을 모른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직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도 제 마음속에 기억되던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매 보다는 말 아픈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자." 라고. 무슨 일이든 물리적인 압력(체벌이나 폭언)이 뒤따르는 경우에는 긴장을 하고 조금은 더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하는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세요."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세요."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던 모습을. 그런데 물리적 압력이 없다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강압 앞에서는 약하지만 부드러움 앞에서는 강해지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는지. 여러 학생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아쉬운 점들 중에 하나가 바로 그런 점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강압에, 특히 매에 길들여진 것이 아닐까, 그래서 부드러움을 그리워하면서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분을 만나면서 제일 노력했던 부분이 꼭 물리력이 아니어도 서로의 의사를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 박영복,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중에서

1999년 ㅇ고등학교 1학년 4반 학급문집 《참 맑은 물결》

선생님은 우리에게 모둠 일기를 쓰도록 이끌어주었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친구와 선생님과 나누면서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내 일기에 선생님이 어떤 답글을 달아주실까 궁금해 하면서 열심히 모둠 일기를 쓴 기억이 남아 있다. 하지만 박영복 선생님을 보고 교사의 꿈을 키울 수 없었다. 오히려 교사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비폭력을 실천하고 학생을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박영복 선생님을 다른 학우들은 그냥 만만한 교사, 착한 교사, 대들어도 때리지 못하는 교사로 인식하는 경우를 보고 좋은 선생님은 힘이 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보경 선생님도 비슷한 경우였다. 박영복 선생님이 나에게 마음의 안정으로 힘을 주었다면, 이보경 선생님은 나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이보경 선생님의 영어 수업은 설레고 기다려지는 시간이었고, 영어 교과목이 아니라 삶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어 교과서에 나와 있는 영어 문법이나 독해, 생활 영어들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의미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수업을 이끌었으며, 영어를 학생들의 삶과 연계해 재미있고 흥미롭게 가르쳐주었다. 첫 수업시간에 머라이어 캐리의 ‘히어로HERO'를 들으면서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5월 18일을 전후해서는 광주시민군의 이야기가 담긴 시를 읊어 주셨고,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학생이 부모님께 드리는 슬픈 시를 내가 우연히 지목돼서 학생들 앞에서 읊었던 기억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선생님은 수업에서 자신의 생활이 담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가령 아침에 만원버스를 타고 오다가 학교 앞에서 내려야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자 운전하는 기사님을 존중해서 호칭을 “기사님, 문 열어주세요”라고 외쳤는데 문을 안 열어주자 다급해진 나머지 “아저씨, 아저씨”를 외쳤다는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난다. 그 선생님은 몸이 삐쩍 말라서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자신이 담임으로 있는 반 아이들과 아침이나 저녁 야자시간 전에 운동장에서 같이 축구를 하면서 어울리곤 했었다. 무엇보다 이보경 선생님을 좋아했던 것은 학생들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것이다. 담임이 아니면 수업에 들어가는 반 아이들 모두의 이름을 알기 어렵지만 이보경 선생님은 학생들 얼굴을 칠판에 그려서 이름을 외우고 항상 번호 대신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학생들이 단지 교과를 가르치는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설 수 있도록 인격적으로 대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학급에서 가정환경 조사를 할 때 집에 차가 없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고, 아부지가 목수이고 엄마가 공장에서 미싱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이보경 선생님 역시 착한 교사라는 이유로 수업시간에 자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떠들고 개기는 학생이 많았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 고등학교의 우수하다는 학생들은 수능 점수 잘 받을 수 있게 지도해 주는 수업을 원하고, 교사가 엄격하게 통제해주는 것을 더 원했던 것일까. 무서운 교사에게는 순응하고 인자한 교사에게는 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나 역시 알게 모르게 그런 체제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우수하다는 학교에서 평범했던 나는 수능 점수에 맞게 집에서 가까운 서울 외곽에 있는 대학 사회과학부에 지원했지만 모두 불합격했고, 집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독학으로 재수를 했다. 수능을 다시 본 후 삼수를 하게 되는가 절망했는데 가채점한 점수보다 운 좋게 언어영역이 10점 더 높게 나와 예비 번호를 받고 기다린 끝에 삼성이 밀어준다는 그 대학, ‘민중의 불꽃’ 교육학과에 간신히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나

외롭고 쓸쓸한 재수 시절을 보냈기에 대학에 입학하면 학교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다양한 체험을 하고 싶었다. 아부지의 영향으로 술을 싫어하고 잘 마시지도 못하지만,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사람들과 어울렸다. 선배들은 매사에 적극적인 나에게 집회 참여를 권유했다. 처음에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껴서 집회를 가지 않았지만, 학과 내에 있는 학회와 소모임에서 하는 역사와 교육에 대한 세미나는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선배들이 하는 활동에 조금씩 동의를 하게 됐고, ‘등록금 인상 반대’, ‘WTO교육개방반대’ 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에 참여했다. 4·19 떼지어 달리기와 5·18 광주망월동묘지 참배를 계기로 중·고등학교 때 배우지 못한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사회의 모순에 대해 점점 눈을 뜨게 됐다.

여름 방학 때는 대학 근처에 사는 초·중·고 학생들이 새로운 시각에서 교과를 배우는 ‘빵점학교’라는 사범대 학생회 행사를 준비하는데 참여했다. 학생회에서 대안적인 교육실습의 의미를 두고 기획하는 활동이었지만 긴 시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준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은 일주일간 대학생들과 신나고 즐겁게 놀다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빵점학교가 끝나고 강원도 횡성으로 9박 10일간 농활을 갔다. 각박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체험이었다. 피사리를 할 때 맨발로 논에 들어가면 물컹물컹한 느낌이 참 좋았다. 밭에서 감자 캐는 일을 많이 했는데 비록 밭농사 전체에서 마지막에 단순히 감자를 거두는 작업이었지만, 농민들이 느끼는 수확의 기쁨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무더운 여름 날, 논과 밭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 동기, 선배들과 우정을 더욱 돈독히 다질 수 있었고, 농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농촌의 열악한 현실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마을잔치를 했는데 풍물패가 마을 전체를 돌면서 길놀이를 했고, 아이들과 우리들은 신나게 뒤를 따라다니며 흥을 돋웠다. 농활을 통해 단순히 농사일을 돕는 차원을 넘어서서 농민들의 삶을 같이 체험하고, 오늘날 농촌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실천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갖게 됐다. 한칠레FTA 체결 반대 농민 집회에도 열심히 참여했지만, 도시에서 살면서 그 때 가진 문제의식은 점점 무뎌져갔다.

나 자신이 비평준화 지역에서 힘든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재수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학벌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김상봉 선생님의 「학벌사회」라는 책을 통해 ‘학벌없는사회’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됐고, 홍세화 선생님의 강연도 듣게 됐다. 진보정당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2006년 여름에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되면서 학내에 있던 학생 위원회에 들어가 함께 활동을 하게 됐다. 당의 교육정책인 ‘무상교육, 등록금후불제’ 등을 선전했고, 정부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생기는 이자를 학교에서 대신 납부해주도록 요청하는 서명을 학우들에게 받아서 학교에 건의해 성사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당에 대해 잘 알아갈수록 당에 대한 실망감이 커졌고, 계속된 고민과 실천 끝에 진보신당의 당원이 됐다.

민주노동당 성균관대 학생위원회에서 진보신당 성균관대 학생모임이 되면서 더 많은 학우들이 함께 하게 됐고, 우리들은 더 신나고 즐겁게 활동을 만들어갔다. 당시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의원,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등의 강연회를 개최해 학생들에게 진보의 가치를 알리고자 했다. 그리고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했을 때는 대자보를 만들어 학내에 부착했고, 다양한 사업을 기획해 의미 있는 활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을 지정했다는 것이 언론에 알려졌을 때는 학교 앞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과 함께 ‘불온서적’을 지정해 학내에서 판매전을 열었고, 방학 때는 당의 정책과 관련된 사회과학 서적을 선정해 세미나를 했다. 그리고 학내에서의 활동을 넘어 지역위원회와 중앙당의 활동에 함께 결합했다. 지역 위원회와 연대해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했고,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는 종로구에서 학교 친구들과 함께 자체적으로 선본을 조직해 주경복 후보 지지 유세를 했다. FTA반대 집회, 기륭 비정규 투쟁 집회에 함께했고, 대운하 건설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을 때는 자전거를 타며 대운하 반대 지역 선전전을 하기도 했다. 학생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은 정당 활동을 넘어 등산 소모임 ‘객기’, 영화 소모임 ‘키노’, 춤 소모임 ‘광기’, 도장리 농활단 등을 통해 일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판을 벌였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임용 시험을 보겠다는 결심을 하며, 잠시 사회 문제에 눈과 귀를 닫고 나 자신에게만 전념하기 위해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가르치는 활동의 윤리적 특성을 고려할 때 교원양성기관의 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인간으로서 자신을 성찰하고 시대를 성찰하고 교육 현장을 성찰할 수 있는 풍부하고 폭넓은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 이혁규, 《오늘의교육》 2012년 1·2월호, ‘교원양성체제는 어떤 교사를 길러 내는가?’에서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나 돌이켜봤을 때, 강의실에서 수업을 통해 배운 지식 보다는 사범대 교육과정에는 없지만 교실 밖에서 경험한 다양한 활동들이 먼저 떠올랐다. 개그콘서트에 사라진 우리의 전통 문화를 찾는다는 ‘위대한 유산’이라는 코너가 있다. ‘운동권’이라는 용어도 조만간 등장하지 않을까. ‘아아~(90년생 이상 공감 가능), 운동권 다 어디 갔어?’ 점점 사라져가는 소위 운동권이라고 불리던 학생들은 학생회 활동, 학회 세미나, 동아리 모임, 농활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성찰하고 진지한 고민과 실천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 농부를 만나 교사의 길을 꿈꾸다

수능을 보고 교육학과에 원서를 냈을 때는 교육행시에 대해 알아보고 교육부에서 일하는 교육 행정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부모님의 설움을 보고, 돈이 없어도 배우고 싶은 사람은 돈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입시 스트레스를 받고 자라서 입시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고 행복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게 되면서 내가 참 단순하고 어렸구나, 차라리 교육부가 없어지는 것이 낫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행정고시는 머리에서 지워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라는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하는 게 있는지, 고민을 하게 됐다. 잘 할 자신은 없어도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은 확실하기에 아이들과 만나서 배우고 가르치는 교사가 고민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와의 만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여름 방학 때 농활을 다녀 온 후에 쉴 틈도 없이 선배의 손에 이끌려 두 번째 농활 겸 ‘도장리 생활학교’ 보조교사로 인천시 강화도 도장리에 가게 됐다. 그 선배는 ‘새로운 삶과 교육을 생각하는 잡지’ 격월간 《처음처럼》을 구독하면서 서울 지역에 있는 사범대 학생들과 함께 《처음처럼》의 발행·편집인으로 있는 황덕명 형님의 농사를 돕고 교육에 대한 담소를 나누기 위해 도장리에 주기적으로 가고 있었다.

황덕명 형님은 ‘내일을 여는 책’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오리를 이용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었다. 초·중·고 학생들이 방학이나 주말을 이용해 2박 3일정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여러 활동을 하는 도장리 생활학교도 꾸려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논에 있는 오리를 보고 무척 놀라워했다. 어린 학생들은 밭에서 잡초 뽑기, 고구마, 감자 캐기를 하고, 고등학생들은 논에서 피사리도 했다. 밤에는 칠흙 같은 어둠을 맛보며 옆에 있는 친구를 의지해 마을을 도는 경험을 하고, 별을 보고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준비해 온 옷에 황토염색을 하면서 매우 신기해했고, 산을 오르면서 계곡에서 가재를 잡는 경험도 했다. 갯벌에서 놀았던 일은 나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겨울에는 썰매를 만들어서 타고, 나무를 깎아 솟대와 만년달력을 만들며 아이들에게 몸의 교육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 체험하는 것이지만, 도시에서만 살던 아이들이 농사와 자연을 경험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보조교사로 아이들과 호흡을 함께 한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은 논과 밭이 다 없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어릴 적 골목길이 있는 좁은 동네에서 구슬치기, 비석 까기, 지불놀이, 연날리기 등의 놀이를 하고, 논에 들어가 개구리를 잡고, 지금은 오염된 물이 흐르는 중랑천으로 변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멱을 감던 뚝방에서 물놀이를 하며 지낸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는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 커가면서 그런 추억들을 잊고 살았는데 도장리에서 소중한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살벌한 경쟁에서 벗어나 이웃과 삼라만상과 조화를 이루어 공생하며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죽임의 교육을 걷어치우고 살림의 교육을 꽃피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삶과 교육이 떨어지지 않고 서로 어우러질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교육을 통해 학생과 교사가 함께 자라고 행복해질 수 있을지, 그 모든 문제들을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근본부터 다시 고민하고자 한다.

- 1997년, 《처음처럼》 창간사에서

잡지를 내며 우린 이렇게 고백했다. 그리고 진정 나부터 내 형편에 맞게 이렇게 사는 대열에 서고자 약속했다. 내가 책에서 읽었던 많은 선각자들이 이루어 놓은 ‘길’에는 항상 ‘실천’과 ‘사색’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농사를 짓기로 했다. 농사는 명분과 실리만 좇는 거짓 삶을 버리고, 노동과 사랑과 평화와 연대가 있는 참된 삶을 가꾸는 데 내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 황덕명, 2003년 2월호, 《작은 것이 아름답다》, ‘삶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에서

황덕명 형님은 지금은 출판일은 하지 않지만, 도장리 생활학교를 계속 운영하고 있고, 지역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특성화 교과인 ‘지역과 세계’, 야학 수업인 ‘황구의 시사 뽀인트’, ‘대안 경제학’으로 아이들을 만나며 마을에서의 교육을 고민하고 있다. 나는 《처음처럼》이나 ‘내일을 여는 책’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읽은 적도 없고 덕명이 형이 어떤 책을 내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덕명이 형과 교육에 대해서 세미나를 하거나 진지한 토론을 벌이며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다.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보고, 어떠한 삶이 진정 행복하고 잘 사는 삶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다. 도시의 출판사 사장의 삶을 버리고 시골 농부의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경제적 풍요로움보다는 진정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타' 강사의 전문성

다양한 경험을 통해 거리에서 살아 있는 지식을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교실에서 학생들과 수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했다. 교과서에 나온 지식을 나의 삶과 연결시켜 썰을 풀 수는 있겠지만, 그 보다는 아이들이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을 꿈꿨다. 그런데 교육학과 전공에 정치외교학을 복수전공한 나는 일반사회과 교사가 되기에는 교과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수강한 대부분의 정외과 수업은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과정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었다. 예를 들어 정치학 교수가 미국에서 배우고 온 포스트모더니즘 정치 철학을 원서로 한 학기 동안 배우는 식이었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정치 과목이 어떻게 다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것을 다루는 적합한 교육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 거칠게 말해 교육적 이해(이혁규, 2011)는 말할 것도 없고 교과지식 조차 배우기 힘든 상황이었다. 경제, 사회문화, 법과 관련된 수업을 듣지 않아도 일반사회과 교원자격증은 나왔다. 법과사회는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선택과목에도 없었기에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도 몰랐다. 모교 교육학과지만 교육적 경험뿐만 아니라 교과 지식도 부족한 전문성 없는 교사를 배출한다는 아쉬움이 컸고, 자괴감이 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현실성 없는 티오를 보며 1년 동안 임고에 올인 할 수 없었고, 수능 시기를 즈음해서 논술학원 첨삭 강사를 하게 됐다. 아는 선배가 논술 첨삭 알바를 제안했을 때 전과는 다르게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고 임용 공부에 필요한 돈도 마련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실력도 없는 내가 학벌에 기대어 과외를 할 수 없다는 예전의 고집은 살며시 고개를 내렸다. 임용 공부도 한 적 없이 졸업예정자로 치른 합격 가능성이 제로였던 2010년도 시험이라 1차 시험을 본 후 바로 ㅊ논술 학원에 가서 약 한 달 정도 논술 첨삭 일을 했다. 말로만 듣던 논술 문제는 정말 어려웠고, 학교에서 대비를 해줄 수 없으니 불안한 수험생들이 어쩔 수 없이 학원에 와서 시험 전에 한 번이라도 써보는 연습을 하는 상황이었다. 논술 교육에 대한 사유를 할 여유도 없이, 아침9시부터 저녁 12시까지 학생들이 쓴 답안을 읽고 첨삭해주는 일을 했다. 1대 1로 학생을 만나서 논술 문제에 대해 토론도 하고 진로에 대한 상담도 해주며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논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올해는 몇 명의 티오가 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 졸업 학점 3.1의 공부와는 거리가 먼 나의 능력, 그리고 기질상 1년 내내 임용시험에만 매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 장기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연히 M학원 사탐 ‘일타’ 전철수(가명) 강사의 개인 연구실에서 연구원을 뽑는다는 채용 공고를 봤다. 그곳에서 연구하는 것이 임용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교육 관련 경험을 더 풍부히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했는데, 조건이 맞아(채용 공고에는 없었지만, 밤새 일할 수 있는 남자) 채용됐다. 12월 초부터 2월 말까지 3개월 동안 정신없이 일했다. 처음으로 정치, 사회문화, 법과 사회 교육 과정을 보게 됐고, 밤새며 교재 만드는 일을 하고, 크리스마스 때도 학원에 나가 강의 보조 일을 했다. 전철수 강사는 교재가 편집되는 최종 마감일 까지도 꼼꼼히 자료를 검토 했고, 수능 정치에서 기출 될 만한 사회 이슈가 터지자 출판사에서 내용을 정리해서 교재에 넣는 열정을 보여줬다. 수능에 나올만한 중요 부분을 정리해서 전달하는 데 있어 전철수 강사는 최고로 느껴졌고, 대치동 M 학원 현장강의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2시간 내내 전철수 강사의 강의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나는 강의 보다는 학생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나중에 학교에 가면 일단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교육적 관계를 찾기 힘든 수능 대비 수업이 학생들이 원하는 최고의 수업인건가, 회의감에 젖어 들었다.

연구원 일에 능숙해지면서 점점 불안해졌다. 수 억 원의 연봉을 버는 '일타' 강사 밑에서 일을 배우면서도 학원 강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 생활에 안주하게 되면 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라 생각했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갔고, 무엇보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싶었다.

누가 교사가 되는가

같이 근무한 실장 형, 연구원 동생과 밤새 일하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져 일을 그만두기가 쉽지 않았지만, 단호한 결의로 연구원 생활을 정리하고 3월부터 9월 17일 티오가 발표되기 전까지 임용 시험 공부에 전념했다. 대입 재수를 할 때처럼 집과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려고 했으나 모든 합격 수기를 분석한 결과 학원 강의는 필수였다. 교사가 될 사람이 인터넷 강의에 의존해야 하는가, 학교에서 아이들이 교사 수업은 안 듣고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는 집중해서 듣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나, 라는 문제의식은 꼭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는 한가한 고민이었다. 노량진까지 직접 갈수는 없었고 사회과 교육론, 정치, 경제, 사회문화, 법과사회, 교육학 기본 이론을 인터넷 강의로 수강했다. 교육학 강의는 방대한 분량의 내용 중에 시험에 나올 만한 핵심적인 부분만 압축적으로 정리하며 5지 선다형 시험에 최적화 될 수 있는 수험생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다. 사회과 인강 역시 출제 경향에 맞춰 기본서 여러 권의 내용을 종합 정리해서 제시해주었다. 강사들은 내가 경험한 수능 '일타' 강사와 마찬가지로 교과 지식에 대한 전문성과 내용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일타' 전철수 강사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모든 강의를 수강하고, 인강 질문 게시판에 진로에 대한 상담도 받고, 전철수 강사 미니홈피와 블로그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도 나누는 열렬한 수강생을 보며 학교 선생님과는 관계가 어떨지 궁금했는데, 강의도 즐겁게 하고 인간적으로도 좋아 보이는 임용 학원 강사를 믿고 임용 공부에 매진하는 나의 모습에 흠칫 놀라게 됐다. 교사는 사대가 아닌 노량진에서 양성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사범대에서 배우지 못한 임용 시험 공부를 처음으로 제대로 하는 것이 즐거웠으나 한편으로 씁쓸함을 느꼈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에게 들은 수업이 불만이었으나, ‘교수님’이라는 직함보다는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스승으로 생각하며 존중의 의미를 담았던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던 강사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강의가 떠올랐다.

교직 경력을 바탕으로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 ‘중등 교육의 이해’

대안교육에 대해 눈 뜨게 해주고 협업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

교사의 삶과 교실 수업을 연구하며 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안내 해준 ‘교육 실습의 이해’

나의 교육적 경험을 글쓰기를 통해 이끌어 주고 학생들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 ‘삶과 교육’

내가 교실 밖에서 경험한 바를 교실 안으로 끌어 들여와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몇 안 되는 수업들이 나의 성장을 도운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은 사범대 수업이 아니었고, ‘삶과 교육’은 강사가 바뀌어서 후배들은 들을 수 없었다. 좋은 강사의 수업은 안정적으로 학기를 보장받지 못했고, 열정을 지닌 강사의 수업은 부담되고, 학점을 받기도 어렵다며 학생들 스스로가 기피했다. 왜 임용 시험에 도움이 되는 강의가 없는지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교사가 되고 싶어서 사범대에 온 많은 ‘예비교사’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처음부터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임용시험을 통해 국공립학교에서 교사가 되려면 동아리, 학회, 농활 등의 학생회 행사에 눈 돌리지 말고, 새내기 때부터 학원 강의를 잘 알아보고 임용 시험에 매진해도 졸업할 때 합격이 가능할까 말까다. 이제는 학생회의 공약으로 임용고사 대비 학원의 수강료를 할인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까지 나왔다고 한다.

졸업 후 재수, 삼수하면서 임용 시험에만 매진하던 동기들은 언제부터인가 기간제 혹은 학원 강사 일을 하면서 임용 시험을 병행하게 됐고, 사수를 넘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임고를 포기하고 사립으로 눈을 돌렸다. 지방에 있는 사립학교에 정교사(국어과)로 임용된 친구는 학교에서 학벌이 크게 작용했다고 선생님들이 솔직하게 이야기해줬다고 한다. 연세대, 서울대, 고려대(하파타순)를 졸업한 교원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 지방에 까지 내려와서 교사를 하려고 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성균관대 정도 학벌이면 지방 사립에 노려볼만하니 다른 동기들도 지방 가릴 것 없이 많이 지원해 보라고 조언을 해줬다.

임고를 통해 ‘예비교사’를 벗어나 교사가 된 이들은 사회에서 경쟁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내면화 된 상태에서 교직에 들어서서 아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립학교에서 정교사가 된 이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는 학벌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고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도 상위권 대학에 가야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알려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신규 교사도 있을 테고, 재수, 삼수 그 이상의 힘든 수험 생활을 견뎌 내고, 비정규직의 설움을 벗고 정규직이 돼서 열정적으로 교사의 삶을 사는 이도 있겠지만, 학교와 사회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아 보인다.

행복한 교사는 정년과 상관없이 평생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공부가 아닌, 어떤 보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배움과 가르침의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교사 양성 과정에서 임용 시험을 준비하면서 혹은 사립학교 교사 채용 과정에서 비교육적인 일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벼랑 끝에서 만난 일자리와 매너리즘

국어과와 사회과를 비롯한 임용 수험생들은 2010년 9월 17일을 ‘917티오사태’로 기억하고 있다. 이전 해에 32명이던 공통사회 전국 티오가 0이어서 1년간 준비하던 수험생들은 아노미 상태에 빠졌고, 국어, 역사, 윤리, 일반사회, 지리 등의 티오도 그 전 해에 비해 대폭 축소됐다.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4학년 수험생들 중에는 모여서 울었다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독서실에서 나와 멍하니 하늘만 보다가 집으로 돌아와 기간제, 시간강사에 지원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다. 그런데 일반사회 기간제와 시간강사 공고는 몇 군데 있지도 않았다. 집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포함해서 기간제, 시간강사에 지원했지만 ‘경력’이 없었던지 모두 떨어졌다. 대안학교가 아닌 임고를 선택했을 때 사립은 생각하지 않았었다. 전교조 활동과 전국사회교사모임 활동을 열심히 하고 싶었기에 아무래도 사립은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것저것 생각 안하고 사립도 지원했는데 그마저도 안 되니, 영어를 복수 전공했어야 했나, 데모는 적당히 하고 임고 준비라도 시작했더라면 티오에 흔들리지 않았을 텐데 애초에 길을 잘못 들어섰나,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동안 못 본 친구들을 만나고, 나의 성장을 이끌어준 강사 선생님 두 분을 찾아갔다. 낮에 삼청동에서 맥주를 사주신 선생님은 ‘네가 임고 공부한다고 했을 때, 안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과 함께 왜 다들 교사하려고 하나, 다른 일도 많으니 좀 넓게 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저녁에 명륜동에서 누룽지 막걸리를 사주신 선생님은 ‘전부터 일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려 했는데, 임고 공부 한다는 소식 듣고 얘기 못했다’며 선생님이 연구소 부소장으로 있는 시민단체에 지원해보라고 제안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단체였지만, 주말 내내 카페와 블로그를 둘러보고 내 처지를 생각해서 시각을 조금 달리해서 보니 이것저것 다 감수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교사를 하고 있는 선배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기간제, 시간강사를 구하기 어려운 상태고, 전교조나 다른 시민단체에는 그런 급여에 그런 일을 할 자리가 없으니 가서 일 배우라는 조언을 들으니 꼭 채용에 합격해야한다는 절박감이 몰려왔다.

기간제 지원할 때 작성한 자기소개서에는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절반 가까이 삭제한 ‘운동권’경력을 솔직하게 쓸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런 나를 받아준 단체가 너무 고마웠다. 국민들이 의무적으로 낸 세금으로 받는 교사 급여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후원금으로 받는 급여가 더 값지게 여겨졌다. 학부모를 비롯한 성인들이 시민 교육 강좌를 듣고, 인터넷 공간에서 소감문을 서로 나누고, 배운 바를 자신의 삶과 자녀 교육에 실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느꼈다. 그런데 교육 강좌를 들을 수 있고, 교육 정책을 연구할 수 있으며,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나에겐 과분하게 여겨지는 그 일자리를 1년 3개월 동안 근무하고 내려놓고 말았다. 단체의 주요 관심사인 ‘사교육 문제’에는 애초에 큰 관심이 없었고, 현장 경험 없이 학교와 관련된 정책을 다루는 일은 손에 잘 잡히지 않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즐겁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그 자리에 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삶과 교육의 일치를 위해

조나단! Jonathan!

나는 좋은 학점 받고 토익 공부 열심히 해서 돈 잘 버는 직장에 취직하는, 먹기 위해 사는 갈매기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4년 내내 임용고사에 매달려서 학생들에게 삶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하고 교과서만 달달 외우게 만드는 고리타분한 교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좁은 인식 속에 갇혀 살던 나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세계의 흐름과 한국사의 질곡을 알게 되었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회의했어. 인문학을 통해서 나와 세계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었고,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갖기 위해 노력했지. 이러한 것들이 단순히 책 속에서 얻은 허깨비 지식이 아니라 아스팔트 거리 위에서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외치며,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고, 농활을 가서 논과 밭에서 일을 거들고 농민들과 새참을 먹으면서 같이 땀 흘려 일하는 과정을 통해 내 자신의 삶 속으로 깊이 스며드는 참된 지식이라 느꼈지.

오늘날 잘 사는 삶이란,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돈을 많이 가지고 떵떵거리며 사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제대로 된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비로소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 날 수 있을 거야. 잘 사는 삶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인간의 행복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먼저 제대로 된 음식과 운동을 통해 몸의 건강이 우선되어야겠지. 그리고 이해와 배려, 믿음에 기초해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가 되어야 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발견과 성찰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야. 또한 이것이 단지 혼자만의 삶과 행복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모두 함께 행복하고 즐겁게 어우러져 사는 것이어야 할 테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서 삶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에 깊이 매료돼 있어. 단순히 교사가 돼서 안정적인 삶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공부와 노력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고, 아이들과 내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사회 변혁에 이바지하고 싶기도 하지. 처음에는 조금 일찍 깨우친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대안학교를 지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공립 학교로 들어가 힘들고 어렵게 사는 아이들을 만나 행복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살 수 있는 삶을 보여주고 싶구나!

- 김재민,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과제에서

2008년 1학기, 성균관대 교육학과 ‘삶과 교육’수업

나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느꼈고, 아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내가 꿈꾸던 교육 현장이 더 나은 환경이 될 수 있도록 사회 활동을 했지만, 임용 시험 준비는 열심히 하지 못해 현실적으로 교사가 되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하고, 치열한 경쟁 속으로 다시 들어갈 자신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꼭 학교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동안 나는 조금 더 편한 환경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교사의 길을 고집했던 것 같다.

학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다시 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상태의 학교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의 유지가 불가능한 시대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을 외치며 전환을 위한 사유와 실천을 시작하는 움직임이 있고, 사회 어디에선가 삶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장애인차별철폐운동, 무료파산상담, 학교급식 조례제정운동 등의 활동을 해오며 20여 년간 민생 정치를 위해 노력한 진보정당 활동가는 최근 뉴타운 건설에 반대하며 그 지역에서 평생을 사신 지역민들과 연대해 투쟁을 하고 있고, 어르신들은 그 정치인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늦은 나이에 진보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4년 전 총선 때 후보 유세를 하며 만난 당원은 채무, 빚 등으로 힘겨운 생활을 하다 파산학교를 거쳐 파산면책을 하고 새 희망을 찾은 지역민이었고, 당원이 돼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보았다.

도장리에 갈 때 주기적으로 찾아가고, 4주간의 교육실습도 했던 대안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지역과 세계’시간에 강화 지역을 탐방하고, 인권연대, 참여연대 등의 단체를 방문하기도 했다. ‘통합기행’시간을 통해 울릉도·독도 생태문화기행, 제주도 역사문화기행, 광주5·18 역사기행, 민통선 평화기행 등 학교 밖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고 있었다. ‘생태 농업’시간에는 미술 시간에 만든 이름표를 붙인 자신의 텃밭에서 감자를 키우고, 주말에는 근처 농민회를 통해서 농사일을 거들기도 했다.  또한 농부,  평화운동가, 언론인, 인권활동가 등 다양한 사회 인사를 초빙해 강연회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었고, 야학 시간에는 지역의 화가, 대금 연주자, 연극인, 인근 대안 학교의 교사 등 지역 사람들이 교사로 참여하며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교육공동체 벗에서는 현직 교사뿐만 아니라 퇴직교사, 시민단체 활동가, 학부모, 대학생, 청소년 활동가, 교수 등의 다양한 주체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교육 담론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우리교육을 구독하던 독자에서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넘어 온 나는 단순히 잡지를 구독하던 대상에서 벗어나 게시판에서 나의 이야기를 올리고 다른 조합원들과 소통하고, 나눔 공방 ‘르포 연수’를 신청해서 연수를 들으며 직접 르포를 써보기도 했다. 교육공동체 벗에서 향후 하고자 하는 일 중에 하나인 대안교육대학원 개발에 대한 기대가 크고 조합원으로서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나는 교사가 되는 것은 포기했지만, 배우고 가르치는 삶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았다. 학교 안과 밖을 떠나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배움과 가르침은 삶의 전 영역에서 평생 이어지는 것이니까.

[김재민]

최영란 선생님 안녕하세요. ^^ 선생님께 보내드린 답메일에서, 제가 '오늘의 교육'에 투고했다는 글입니다. 글 쓰면서 '삶과 교육' 수업과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ㅎㅎㅎ
'교육공동체 벗' 카페 게시판에 올린 글인데, 올리기 쉽지 않아서 그대로 스크랩해왔어요. 제가 쓴 글인데도 새롭게 수정이 안 되네요. ㅠㅠ
'교육공동체 벗'도 소개할겸(출처 클릭하면 카페로 이동이 될 거예요.http://cafe.daum.net/communebut) 저의 근황도 전할겸해서 졸고 올리고 합니다.

[옹달샘]

재민이군요. 올려주신 긴 글을 읽고 자전거 타고 가는 재민이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네요. 재민이처럼 훌륭한 잠재력을 가진 또 다른 수 많은 예비교사들이 처한 상황을 진솔하게 전해주어 가슴이 멍~ 합니다. 어째거나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들, 바라는 일들이 하나하나 여물어 가시길 바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소명을 가진 모든 이들이 이 시대 진정한 교사죠. 재민, 오아시스 카페에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참 고맙습니다. ^^

[이숙현]

저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 글에 담긴 열정, 그 뜨거운 온기에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돌아보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최영란 선생님과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