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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
Ⅳ.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는 제주도 한라산이다
1.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는 파라날 녹야원이다.
석가세존은 원래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고행성도하였다.
그렇다면 석가세존이 먼 인도에까지 가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에서 법을 설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를 중인도 베나레스시(Benares市)의 사르나드(Sarnath)라고
생각해 왔다. 여기에서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가 우리나라인가? 아니면 인도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그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중아함경} 라마경을 보면, 석가세존이 성도한 후 파라날(波羅捺) 선인(仙人)이 사는
녹야원 가시도읍(加尸都邑)에서 교진녀(?陳女) 등 다섯 비구들을 제일 먼저 만나고
거기에서 사제(四諦)의 법을 설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즉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이를 흔히 初轉法輪地라 표현함)는
파라날(波羅捺) 녹야원(鹿野園)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녹야원에 대한 자세한 기록으로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娑論} 제183권을 보면
녹야원은 예로부터 선인이 사는 곳이라 하여 선인주처(仙人住處)라 하며, 예로부터 선인이 법을
설하던 곳이라 하여 선인논처(仙人論處)라 하고, 500 선인이 공중을 비행하던 중에 인연을 잃고
그곳에 떨어졌다 하여 선인타처(仙人墮處)라 하며, 뭇 사슴이 서식한다 하여 녹림(鹿林) 또는
녹원(鹿園)이라 하고, 보리수가 많다 하여 보리수처(菩提樹處)라 하였다.
또한 수양대군의 저술인 {석보상절}에 의하면 녹야원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판단기준으로서 녹야원의 성립요건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녹야원은 산악이다.
* 녹야원은 녹림 내지 녹원이다.
* 녹야원은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이다.
* 녹야원은 선인타처이다.
* 녹야원은 보리수처이다.
* 녹야원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다.
* 녹야원에 가시도읍이 있다.
이상의 일곱 가지 요건이 녹야원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성립요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일곱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면 그곳이 곧 녹야원으로서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라
할 수 있으며, 만약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곳은 녹야원도 아니고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 파라날 녹야원은 인도의 사르나드가 아니다.
그러면 인도 당국이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라고 주장하는 인도 중부의 사르나드가
녹야원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부터 먼저 따져 보기로 한다.
{불교사전}의 기록을 보면 "바라날은 중인도 마갈타국의 서북쪽에 있는 나라로서 별명을 가시라
하고 지금의 오우드 지방, 베나레스시(Benares市)에 해당하며, 석가세존이 성도한지 三七日후에
이 나라의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법을 설하여 교진녀 등 다섯 비구를 제도하고, 그후 2백년이 지나서
아육왕(아쇼카왕)이 그 영지를 표시하기 위하여 두 개의 석주를 세웠다"고 하였다.
또한 다른 기록을 보면 "최초 설법의 땅은 현재 사르나드라고 불리며 베나레스시 북동쪽
약 7km되는 지점에 있다. 이는 '사랑가 나타(사슴의 왕)'를 생략한 말에서 유래한다. 이 지역은
경전에 '사슴동산이나 선인이 사는 곳'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상의 기록과 현지답사를 근거로 인도의 사르나드를 녹야원의 성립요건에 대입시켜 보기로 한다.
* 녹야원은 산악인데, 인도의 사르나드는 약 2천평 정도의 평지였고 산악이 아니었다.
* 녹야원은 녹림 내지 녹원인데, 인도의 사르나드는 산악이 아닌 자그마한 들판으로서
사슴이 살만한 곳도 못되었고, 사르나드에 사슴이 살았다는 기록도 본 바 없다.
* 녹야원은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인데, 인도의 사르나드는 평지로서 근본적으로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가 될 수 없는 곳이었다.
* 녹야원은 거기에 500 선인이 떨어졌다는 선인타처인데, 인도의 사르나드에서 5백신선에 대한
어떠한 물증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전설도 기록도 본 바 없다.
따라서 인도의 사르나드는 선인타처가 아니었다.
* 녹야원은 보리수처인데, 인도의 사르나드는 보리수처가 아니었다.
보리수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인도(東印度)에서 자라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키가 30m쯤 되고, 잎은 염통꼴로 끝이 뾰족하며 가죽바탕으로 윤이 나고, 꽃은 은두화로
무화과와 같은 열매가 열린다. 이 나무를 인도에서 보리수라 한다.
또 하나는 보리수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제주방언으로는 '볼레낭'이라 한다. 키는 3m 정도이고,
잎은 타원형이며, 흰 비늘이 덮이고 어긋나게 나는데 빨간 물렁 열매가 가을에 붉게 무르익는데
그 열매를 먹는다. 이 나무는 줄기를 잘라버려도 좀처럼 죽지 않고 새싹이 돋아난다.
이를 평하면 전자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원래의 이름은 보리수가 아닌 것이다.
단지 인도에서 보리수라 부르므로 보리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후자는 보리수과에 속하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볼 때 진짜 보리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후자의 보리수과에 속하는 나무 즉 제주 방언으로 볼레낭이라 불리우는 보리수는
인도의 사르나드에는 한 그루도 없었다. 따라서 인도의 사르나드는 보리수처가 아닌 것이다.
* 녹야원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인도의 사르나드에 석가세존의 불탑이 없었다.
불탑은 거의 돌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사람이 고의적으로 없애버리지 않는 한 몇 천년이고
그대로 남을 수 있다. 그런데 인도의 사르나드에 석가세존이 입멸하자 조성하였다는 불탑이 없었고,
있었다는 기록도 본 바 없다. 아육왕이 그 영지를 표시하기 위하여 두 개의 석주를 세운 것도
석가세존이 초전법륜한 지 약 2백년 후라 하였다. 그밖에 스투파․불상․승원 등이
사르나드에 있으나 그것은 모두 B.C. 3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들이었다.
* 녹야원에 가시도읍이 있었다. 그런데 인도의 사르나드에 가시도읍이 없었다.
{중아함경}에 의하면 파라날에 녹야원이 있고, 녹야원에 가시도읍이 있다.
그런데 녹야원이라는 사르나드 자체가 약 2천평 정도로서 그 속에 가시라는 도읍지가
존재할 수 없었고, 베나레스시의 별명을 가시라 하여 불서의 기록과 맞지 않는다.
이상과 같이 인도의 사르나드는 판단기준인 녹야원의 성립요건에 어느 하나도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도의 사르나드는 녹야원이라 할 수 없고,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라 할 수도 없다.
더욱이 대성자이시며 대각자인 부처님이 초전법륜한 곳을 입멸하여 2백년 후까지 그대로
방치하였다는 것이나, 1794년 베나레스왕의 대신이 사르나드의 유적을 파괴한 것도 이유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사르나드를 녹야원이라 한 것은 석가세존 당시 또는 입멸 후
비유적으로 불리던 것이 후세에 이르러 인도인의 긍지를 높이고 찾아오는 외국의 불자들에게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비유를 사실같이 조성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3. 파라날 녹야원은 제주도 한라산이다.
글자의 뜻으로 볼 때 파라날은 물결치는 나라 곧 섬나라를 의미하는데, 제주도(濟州島)가 바로
물결치는 나라 곧 섬나라이며, 녹야원이란 사슴이 서식하는 산악을 의미하는데 제주도 한라산에
사슴이 살았고, 정상의 연못에서 흰사슴이 물을 먹었으므로 그 연못을 백록담(白鹿潭)이라 한다.
그 동쪽은 녹산장(鹿山場)으로서 사슴이 놀던 들판이다. 또한 제주도 한라산에는 우거진 숲도 많고
공기도 맑으며 생수도 많다. 이러한 것만 보아도 제주도 한라산이 녹야원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제 제주도 한라산이 녹야원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녹야원의 성립요건에 대입시켜 보기로 한다.
첫째, 녹야원은 산악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도 산악이다.
제주도 한라산은 1950m의 한국 제2의 명산이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로서 설명이 필요없다고 본다.
둘째, 녹야원은 녹림 내지 녹원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도 녹림 내지 녹원이다.
한라산은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로서 선산(仙山)이다. 선산이란 선인이 거처하는 산을 의미하는데,
선인은 동물 중에서 그 품행이 고결하고 장생한다는 사슴과 벗을 한다.
조관빈의 {한라산기}를 보면 "한라산에 본시 사슴이 많았는데 매양 새벽과 저녁이면 사슴들이
백록담에 나와 물을 마신다. 어느 때 한 사냥꾼이 활을 들고 못가의 바위 뒤에 숨어앉아 기다리다가
문득보니 사슴의 떼가 몰려나오는데 100인지 1000인지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중에 가장 큰
사슴의 몸 빛은 희고 광채가 났다. 어이한 백발 노옹이 그 등 위에 올라탔었다. 사냥꾼은 활을 들러
쏘기는커녕 그만 놀라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윽고 맨 끝으로 따라가는 작은 사슴 하나를 쏘았더니,
또 사슴을 타고 오는 신선이 있어 손가락으로 사슴을 헤아리는 듯하므로 엽사는 가슴을 두근거리다
가 다시 문득 보니 그들은 간 곳이 없었다"하여 한라산에 신선과 함께 사슴이 살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한라산 동쪽 허리에 사슴이 논다는 녹산장(鹿山場)과 아울러 소록봉(小鹿峯)과 대록봉(大鹿峯)이
있다. 한라산 서남쪽 중문동에도 겨울이면 사슴이 내려와 서식한다는 녹하악(鹿下岳)이 있다.
이를 보면 제주도 한라산은 녹림 내지 녹원이었고, 동시에 선인녹원(仙人鹿園)이었다.
셋째, 녹야원은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도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이다.
앞에서 한라산의 백록담에 신선이 나타났었다는 기록을 소개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정의․김녕․함덕에 신선이 많다 하였고, 한라산은 원산(圓山)이니 곧 바다 가운데 있다는
원교산(圓矯山)이고 그 동은 동무소협(東巫小峽)인데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하였다.
{법주기}에도 박가범(薄伽梵) 부처 당시에 16존자의 한 사람인 발타라존자께서 한라산 영실(靈室)에
있었다고 하였다. 영실에서 수양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영실은 10평 전후의 신령스러운
자연동굴인데 거기에는 자연석으로 된 불상이 있고, 봄․여름․가을․겨울 언제나 온도의 변화가 없으며,
지금도 계절따라 선인들이 영실에 와서 수도한다고 한다. 따라서 제주도 한라산은
예로부터 신선이 살았다는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인 것이다.
넷째, 녹야원은 선인타처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도 선인타처이다.
선인타처란 신화적인 이야기이지만 녹야원에 500선인과 관련된 어떤 물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라산 서쪽 기슭에 부처님이 왔었다는 불래악(佛來嶽)이 있고,
불래악 맞은 편에 500개의 자연석이 우뚝 서 있다. 이 500개의 자연석이 마치 도(道)를 닦는
수도승 같아서 이를 500나한(羅漢)이라 부르고, 그 일대를 수행동(修行洞)이라 한다.
그러므로 한라산 불래악 수행동에 있는 500개의 자연석이 곧 500신선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니,
제주도 한라산은 선인타처인 것이다.
다섯째, 녹야원은 보리수처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도 보리수처이다.
인도에서는 뽕나무의 일종을 보리수라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보리수과에 속하지 않으며
단지 인도인들이 보리수라 부를 따름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에는 부리수과에 속하는
볼래나무가 많다. 그러므로 제주도 한라산은 보리수처라 할 수 있다.
여섯째, 녹야원에 석가세존의 진신사리탑이 있다.
그런데 한라산 존자암의 터에 상고시대의 부도가 있다.
존자암(尊者庵)은 한라산 정상에서 서쪽 수행동(修行洞, 속칭 靈室) 불래악에 있는데,
김상헌의 {남사록}에 의하면 고량부(高梁夫) 삼성이 처음 일어날 때부터 (정의․대정․목안)삼읍(三邑)이
정립될 때까지 있었다고 하였다. 이는 존자암(尊者庵)이 탐라국 건국초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탐라국은 언제부터 있었는가?
{한단고기} 마한세가(상)을 보면, 단군 을아(乙阿) 을유(B.C. 1596년)에 탐몰라인(탐라인)이 마한왕에게
말 30필을 바치었다고 하였다. 이는 탐라국이 B.C. 1596년 전부터 존재하였다는 것으로 존자암은
석가세존의 출생하기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석가세존이 존자암에 올 수도 있었고,
석가세존이 왔었기에 존자암의 산등성이를 불래악(佛來嶽)이라 부르고, 영실에 석가세존의 석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제주의 민담(民譚)이나 무가(巫歌)에도 부처가 바다에서 제주로 왔다는
설화도 있다. 바다란 수미세계 곧 고조선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존자암의 터에 그 조성년대를
알 수 없고,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부도(불탑)가 있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이 부도는 석가세존의 진신사리불탑(眞身舍利佛塔)이라 할 수 있다.
일곱째, 녹야원에 가시도읍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에 가시리(加尸里;加時里)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에 한라산 동쪽은 동무소협(東巫小峽)으로서 신선들이 살았다고 하였는데
그곳에 가시리가 있다. 가시리에 상가시리와 하가시리가 있고, 상가시리에는 노폭(路幅)이 7-8m되는
넓은 길이 있다. 이 길은 너무나 오래되어 그 길이 만들어진 년대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를 생각하면 가시리는 그 역사가 극히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고,
탐라국 시대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이상과 같이 제주도 한라산은 녹야원의 성립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볼 때, 파라날은 제주도를 의미하고, 제주도 한라산은 녹야원이며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라 할 수 있다.
만약 이를 부정하면 인도의 사르나드도 녹야원이 아니니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는 허무맹랑한 전설이 되고 만다.
증거가 부족하면 독자들이 협력해 주기 바란다.
협력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흠만 잡으려는 사람은 아마도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닌지
자문자답해 보기 바란다. 이것이 또한 남의 일이 아님을 자각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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