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假途滅虢(가도멸괵)
假:거짓 가, 途:길 도, 滅:멸망할 멸, 虢:범 발톱자국 괵,
어의(語意): 길을 빌려서 괵을 멸하다. 괵은 주문왕의 아우인 괵중(虢中)이 세운 나라로 평왕(平王)이 동천할
때 서괵으로 옮겼다가 진(晋)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 이야기는 바로 괵이 진나라에 의해 망할 때 나온
것이다.
출전(出典): 천자문(天字文)
진나라 헌공(獻公)이 괵을 치고자 하여 순식(荀息)에게 의견을 물었다. 왜냐하면 괵으로 가자면 중간에 있는 소국인 우(虞)나라를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소식이 계책을 말했다.
"우나라 임금은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수극(垂棘)에서 나는 구슬과 굴(屈)지방에서 나오는 명마를 보내 길을 빌려 달라고 하면 분명 허락할 것입니다"
순식의 계책대로 구슬과 말을 보내자 우임금은 마음이 흔들려 이 일을 궁지기(宮之奇)라는 책사에게 의논하였다. 궁지기가 말했다.
"진나라 군대는 우리에게 길을 빌려 괵을 무너뜨린 뒤에 반드시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니 길을 빌려 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우나라와 괵은 이빨과 입술 같은 사이로,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린 것처럼 괵이 망한 뒤엔 우리 우나라도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에 눈이 먼 우나라 임금은 이를 허락하고 말았다.
결국 진나라는 괵을 멸망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까지 공격해서 함락시키고 말았다. 궁지기의 건의를 묵살한 우나라 임금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눈앞의 이익으로 앞날을 예측하지 못한 어리석음이 빚어 낸 비극이었다.
# 이 이야기에서 함께 나온 성구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家徒四壁(가도사벽)
家:집 가, 徒:무리 도, 四:넉 사, 壁:벽 벽.
어의: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집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네 벽밖에 없다는 뜻이다. ‘서 자 막대기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다’거나 ‘털어봐야 먼지밖에 나오지 않는다.’ ‘가랑이가 찢어지게 가난하다’ 등의 속담과 같은 뜻
을 담고 있다.
한나라 때의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시 창작으로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지만 당시의 황제(한경제 유계)가 시는 즐기지 않고 사냥에만 몰두한 까닭에 크게 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는 고작 사냥터를 관리하다가 그것도 신통치 않아 그만두고 임공이라는 곳에 가서 왕길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당시 임공에는 탁왕손(卓王孫)이라는 갑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귀빈을 접대하는 기회에 성대한 연회를 베풀면서 왕길과 사마상여도 초청했다. 연회에서 사마상여가 거문고를 타는 소리를 들은 탁왕손의 딸 탁문군(卓文君)은 그만 사마상여를 사랑하게 되었고, 사마상여도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탁왕손은 사마상여의 집안이 너무나 빈곤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자 탁문군은 사마상여를 좇아 성도에 있는 그의 집으로 야반도주를 하였다. 그런데 사마상여의 집은 지독하게 가난해서 방 안에는 네 벽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탁문군은 실망하지 않고 사마상여와 함께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고 술집을 차려 생계를 꾸렸다.
나중에 한무제가 사마상여의 글을 읽고 크게 기뻐하며 도성으로 불러들여 벼슬을 내렸는데 이때부터 사마상여는 필명을 드날리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탁왕손 집안에서도 감히 그를 깔보지 못했다고 한다.
가도사벽은 한서 사마상여전에 나오는 ‘탁문군이 야밤에 사마상여에게로 도망쳐 나오자 그는 그녀와 함께 성도로 말을 달려 돌아왔다. 집에 와 보니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다만 집 안에는 네 벽만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文君夜亡奔相如 相如馬馳歸成都 家徒四壁立.문군야망분상여 상여마치귀성도 가도사벽립)는 구절에서 나온 성어다. 가도벽립((家徒壁立)이라고도 한다.
加也勿減也勿(가야물감야물)
加:더할 가, 也:어조사 야, 勿:말 물, 減:덜 감.
뜻 :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라는 뜻으로, 오곡백과(五穀百果)가 풍성해 임심이 후하고 친지들이 모여 조상
의 음덕을 기리는 한가위(추석)의 만족감을 나타내는 말이다.
출전: 열양세시기(列陽歲詩記)
추석(秋夕)이란 명칭은 신라(新羅)시대 때부터 비롯되었다. 만물이 풍성하게 자라 민가에서는 일년 가운데 가장 큰 명절로 여겼다. 이날이 되면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饌)을 만들고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준비했다. 더욱이 이때는 추수를 한 직후이기에 양식도 넉넉하고 인심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때다. 그래서 흔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아라.’고 말했다. 보통 설날과 한식(寒食), 추석 , 동지(冬至)의 네 명절에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특히 한식과 추석이 가장 성대했다.
추석에는 더욱 풍성하여 병졸이나 노예, 고용인, 거지 등 사회의 가장 천대받는 하층민조차도 이때만은 모두 조상의 산소에 성묘(省墓)를 했다.
可與樂成(가여락성)
可:옳을 가, 與:줄 여, 樂:즐거울 락, 成:이룰 성.
어의: 일의 성공을 함께 즐기다.
출전: 사기 상군열전(商君列傳)
상군(商君)은 위(衛)나라의 여러 첩들 사이에서 태어난 공자 중의 한 사람으로 성은 공손씨(公孫氏)며 이름은 앙(鞅)이다. 일찍이 위나라의 재상 공숙좌를 섬겨 중서자(中庶子)가 되었는데, 그곳에서 중용되지 못하자 진나라의 효공을 찾아가 자신의 뜻을 열심히 피력했다.
그런데 효공은 “저 자의 말은 너무 허망해 도무지 뜬구름 잡는 얘기잖은가, 쓸만한 게 하나도 없어.”
상앙이 돌아간 뒤 효공은 그를 천거한 경감이라는 신하에게 그렇게 말했다. 상앙의 신법(新法)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경감의 간청으로 중임되자 상앙은 묘안을 짜냈다. 열여덟 자가 넘는 나무에 “이것을 옮기는 자에게 10금을 준다.” 고 썼다. 그러나 백성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옮기지 않자 이번에는 50금을 준다고 썼다. 어떤 이가 장난삼아 그것을 옮기자 그를 불러 50금을 주고 새법을 공표 시행하여 진나라를 부ᅟᅡᆼ하게 만들었다. 상앙이 말하기를 “일이 성공하였으니 함께 즐기자.” 하였다.
(강영수 엮음 고사성어로 배우는 지혜에서)
家喩戶曉(가유호효)
家:집 가, 喩:깨우칠 유. 戶:지게 호, 曉:새벽 효.
어의: 집집마다 다 알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말한다.
출전: 한나라 열녀전(烈女傳)
어느 마을에 양고자(梁故姉)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그녀의 집에 불이 났다. 집에는 오빠의 아이와 그녀의 두 아이가 있었는데, 양고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집으로 뛰어 들어가 오빠의 아이부터 구해 내려 하였다. 그런데 아이를 안고 나와 보니 자기 아이였다. 이미 불길은 맹렬하게 타올라 다시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양고자는 발을 구르면서 외쳤다. “이게 어디 될 말이냐 내가 내 자식만 생각한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구나! 이제 집집마다 서로 알려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될 텐데,(戶告人曉.호고인효) 내가 어찌 남의 비웃음을 받을 수 있으며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대하랴!
결국 오빠의 아이들을 구하려고 그녀는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끝내 구해내지 못하고 그 맑은 영혼과 몸을 태워 버렸다고 한다.
호고인효(戶告人曉)는 집집마다 서로 알려 사람들이 모두 안다는 뜻인데, 나중에 가지호효(家知戶曉) 또는 가유호효로 바뀌었다.
佳人薄命(가인박명)
佳:아름다울 가. 人:사람인. 薄:얇을 박. 命:목숨 명
어의: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는 대개 운명이 기구하거나 짧다는 말
출전: 蘇軾(소식)의 詩 <佳人薄命(가인박명)>
적벽부(赤壁賦)로 너무나 유명한 소식(蘇軾)의 시 [佳人薄命]에 나오는 대목이다.
본명보다 아호를 딴 소동파로 더 알려진 소식은 북송 후기의 대시인이며 문장가요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관계에 들어간 이래 줄곧 정적과의 싸움으로 보낸 덕분에 지방의 변변찮은 관직만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오히려 그의 문학은 자유롭고 활달하게 전개되어 오늘날에도 인구에 회자되는 불후의 작품들을 남겨 놓았다. 어떤 연유로 여승이 된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가인박명]은 칠언율시로 되어 있다.
雙頰凝酥髮抹漆(쌍협응수발말칠) 두 뺨은 우유 빛, 머리칼은 옻칠을 한 듯 새카맣구나.
眼光入廉珠的礫(안광입염주적락(력) 주렴사이로 내비치는 여인의 눈빛 구슬처럼 또렷하도다.
故將白練作仙衣(고장백련작선의) 원래 선녀의 옷을 하얀 비단으로 짓고
不許紅膏汚天質(불허홍고오천질) 붉은 연지는 타고난 바탕 더럽힌다고 바르지 않네.
吳音嬌軟帶兒痴(오음교연대아치) 오나라의 애교 있는 말씨는 앳되기만 한데
無限間愁總未知(무한간수총미지) 무한한 인생살이 근심은 다 알 수가 없네.
自古佳人多命薄(자고가인다명부) 예부터 아름다운 여인 운명 기박함이 심하다네.
閉門春盡楊花落(폐문춘진양화락) 문을 닫고 봄이 다하면 버들 꽃도 지고 말겠지
이 시는 작자 소식이 지방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을 때 우연히 어느 절에서 아름다운 여승을 보고 문득 옛날부터 아름다운 여인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지었다고 한다.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
苛:매울 가, 政:정사 정, 猛:사나울 맹, 於:어조사 어, 虎:범 호.
어의: 백성에게 무거운 세금이나 부역 들을 강요하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더 흉포하게 사람들을 괴롭
힌다는 말
출전: 예기 단궁편(檀弓篇)
하루는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泰山)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게 여긴 제자들이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그곳에는 한 부인이 세 개의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는 것이었다.
공자는 수레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제자인 자로(子路)를 보내 연유를 물어 보라고 했다.
"부인의 울음소리를 가만히 들으니 아무래도 여러 번 슬픈 일을 당한 것 같은데 무슨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부인은 울음을 그치고 대답했다. "네 이곳은 범의 피해가 아주 심한 곳입니다, 오래 전에는 제 시아버지께서 범에게 물려 돌아가셨고, 얼마 전에는 제 남편 또한 범에게 물려 죽었는데, 이번엔 제 자식이 또 범에게 물려 죽고 말았읍니다."
공자는 부인의 말을 듣자, "그러면 어째서 이 무서운 땅을 떠나지 못하는 거요?" 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부인이 대답했다. "그래도 이 고장에는 가혹한 정사(政事)가 없기 때문이지요."
공자는 자못 느낀 바가 있어 제자들을 유심히 둘러본 뒤 말했다. "너희들은 명심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백성들이 범보다도 더 무서워한다는 것을".
가혹한 정치란 백성들을 달달 볶아 못 견디게 하는 정치를 말한다.
가렴주구(苛斂誅求)란 바로 가정(苛政)의 구체적인 설명이라 하겠다. 낼 힘도 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거둬들이는 것이 "가렴"이고 정당한 법적 근거도 없이 강제성을 띤 요구가 "주구"인 것이다. 범에게 물려 죽을 때는 죽더라도 우선 아침저녁으로 시달릴 걱정을 않게 되어 순진한 백성들은 첫째 마음이 편한 것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춘추시대 말엽이다. 이때 노(魯)나라에서는 대부(大夫) 계손씨(季孫氏)가 조정의 실권을 쥐고 흔들며 혹독한 정치를 하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자연 백성들은 덜 가혹한 지방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내몰리게 되고 말았다.
위정자를 잘못 만나면 도무지 피해나갈 구멍도 없이 수탈을 당하는 일이 예사였다.
범이야 조심하면 되지만 가렴주구는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기근 편저 고사성어 대사전에서)
價重連城(가중연성)
價:값 가, 重:무거울 중, 連:잇닿을 연, 城:성 성.
어의: 값어치가 여러 성을 합할 만큼 중하다.
춘추시대 초나라의 변화(卞和)라는 사람은 옥벽(玉璧)이라는 아직 다듬지 않은 구슬을 임금에게 바쳤다가 돌을 들고 와서 임금을 속였다는 누명을 쓰고 한쪽 다리를 잘리고 말았다. 그 후 임금이 세상을 떠나고 무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다시 옥벽을 올렸지만 역시 같은 누명을 쓰고는 나머지 한쪽 다리마저 잘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문왕이 그 옥벽을 알아보고 이를 초나라의 국보로 삼으면서 변화지벽(卞和之璧), 또는 화씨벽(和氏璧)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전국시대에 이르러 그 옥벽이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조나라 혜문왕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진왕(秦王)이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억지로 빼앗지는 못하고 처음에는 15개성의 영토와 바꾸자고 조나라에 제의하였다. 조왕은 이것을 내주기는 아까웠지만 진나라의 원한을 살까 두려워 안 줄 수도 없는 일이어서 매우 난처해하였다. 나중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을 파견하여 진나라와 교섭을 하였는데 인상여의 재치 덕분에 다행히 옥벽을 뺏기지 않고 무사히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이대부터 옥벽은 다시 조벽(趙璧) 또는 연성지벽(連城之璧)등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귀중한 보물 또는 가치가 높은 물건을 가리켜 연성지보 또는 가중연성, 가치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
家:집 가, 和:화할 화, 萬:일만 만, 事:일 사, 成:이룰 성,
어의: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이 성어의 출전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예로부
터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말임은 분명한듯하다.
출전: 대학(大學)
몸을 수양한 뒤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이어 나라를 다스리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
이 말은 집안사람들을 불평 없이 고르게 대우할 수 있는 역량은 곧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천하를 이롭게 하는 데 있어 첫 번째 관문이라는 뜻이다.
수신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덕목이지만 ‘제가’부터는 나와 남이라는 집단 속에서 조화를 꾀하는 차원으로 바뀐다.
때문에 가장 적은 구성원을 가진 사회집단인 가정을 화목하게 다스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한다면 국가나 천하를 경영하는 일도 그만큼 순조로울 것이다. 국가나 천하는 다만 가정에서 구성원의 수효가 늘어났을 뿐이기 때문이다.
통속편(通俗篇) 윤상(倫常)에 보면 “집안에 어진 아내가 있으면 장부가 횡액을 당하지 않는다.”(家有賢妻丈夫不曹橫事. 가유현처장부부조횡사) 는 말이 있고, “사내는 집안일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여자는 바깥일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男不語內 女不語外. 남불어내 여불어외) 는 말도 있는 것처럼 결국 가정의 화목은 남자가 여자를 믿어 일을 맡기고 또 여성 역시 이런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가사를 돌볼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출처:1)고사성어 이야기 윤미길 엮음, 2)고사성어 대사전 임종욱 엮음. 3)신 고사성어 백과사전 신옥희 저.
출처 :손정섭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