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21-23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가족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을 것인데 그럴 때는 지혜롭게 다른 곳으로 계속 피해가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나 이방인 정치 지도자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 걱정 말고 순결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반대자들에게 잡혀 가서 말을 해야 할 때는 아버지의 영께서 할 말을 주신다고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가족들로부터 핍박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라는 것이다.
21절에서 형제가 형제를 죽는데 넘겨준다고 했다. 제자들의 형제가 제자들을 죽는데 넘겨준다는 것이다. 또 아버지가 아들을 그렇게 한다는 것은 역시 죽는데 넘겨준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오늘날도 이슬람국가에서 가족 중에 하나가 기독교로 개종하면 그 형제나 부모가 개종자를 죽이거나 죽는데 넘겨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형제나 자녀까지도 그렇게 죽는데 넘겨주는 것이다.
앞으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도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 자식이 부모를 거스려 일어나고 부모를 죽일것이라는 것도 역시 믿지 않는 자식이 믿는 부모를 죽인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영이 다르기 때문이다. 믿는 자들은 성령을 모시고 살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살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까지 버림을 당할 제자들은 더 나가서 모든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22절에서 말하고 있다. 대적들에게 배척을 받을 때는 오히려 더 용기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배척을 받을 때는 정말 크게 낙심하고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제자들을 배척하는 강도가 남에서 시작해서 가족을 거쳐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되며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라는 것이다.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끝까지 견딜 수 있을까? 그 답은 23절에 나타나 있다.
23절에서 개역이나 새번역 모두 누가 제자들을 핍박하는지 나타나 있지 않다. 이는 앞에서 순서대로 나온 모든 사람들이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과 이방인 정치지도자들과 가족들과 모든 이웃 사람들이다. 아버지의 영을 모시고 살지 않는 모든 자들이 제자들을 핍박할 것인데 그 때 다른 도시로 피하라는 것이다. 피하라는 말은 도망가라는 말이다. 손자병법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술은 위태로울 때 도망가는 것이다. 살아남아야 다음에 다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을 것이고 핍박을 피해 도망다니게 될 것이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도망가라는 것이다. 도망가서 다른 곳에서 계속 영적 게릴라전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왜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고 계속 다른 도시로 도망가게 될까? 그것은 핍박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다른 도시로 가서도 계속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보여주기 때문이다. 계속 다른 도시로 도망가라는 말은 어디가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보여주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핍박을 받게 될 것인데 그 때는 또 도망가라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도시로 계속 도망가라는 것은 16절에서 말한 뱀처럼 슬기로우라는 말의 한 방법인 것이다.
이 구절을 보면 무조건 순교하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다. 복음 전하다가 죽게 된다면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것이 슬기로운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쫓겨 다닌다는 것은 결국 여기저기를 다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다는 뜻이다. 한번 도망 나온 곳으로는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도시를 찾아다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복음이 확산되게 된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 부활 승천하신 직후에는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가 대규모 핍박이 있자 모두가 도망하여 흩어졌고 도망한 곳에서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 나라가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피하라는 말 다음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 이는 분명히 말씀하신대로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인가? 23절 뒷부분의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다”라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원문에는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다음에 “왜냐하면”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왜 진짜로 피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야 하는 이유는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다”에 있다. 원문을 직역하면 “인자가 올 때까지 너희는 이스라엘의 도시들을 다 돌지도 못할 것이다” 가 된다. 어떻게 다른가?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올것이라고 번역하면 인자가 온다는 것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까지 너희는 이스라엘의 도시들을 다 돌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면 다 돌지도 못한다는 것이 강조되는 것이다.
원문에서는 분명히 “다 돌지도 못할 것이다” 가 중심이 되는 절이다. 이에 딸려있는 절인 인자가 올 때까지를 중심 되는 절로 해석하려고 하다 보니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제자들이 '그렇게 도망다니다가 더이상 도망갈 곳이 없으면 어쩌나” 라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걱정마라! 니들 내가 올 때까지 다 돌지도 못할걸?” 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도망갈 곳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전도 실습할 시간이 얼마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혜롭게 피해서 끝까지 살아남으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역시 세상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할 뿐 아니라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까지 배척을 당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도 충돌하기보다는 피해서 도망가야 한다.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반대하고 핍박하는 사람들과 싸우는데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반대하는 사람들과 논쟁하며 싸우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들려주는데 힘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 널리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는 지혜롭고 순결하라고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