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과 함께 희망하고 행동하십시오
'피조물과 함께 희망하고 행동하십시오. 올래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주제는 바오로 성인이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8장25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에 따라 사는 삶의 의미를 설면하며, 믿음에서 생겨나는 구원의
확실한 희망 곧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 생명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바오로 성인이 우리에게 알려 준 대로, 이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은 더 이상 죽음의 두려
움에 사로잡히지 않는 이들로서 자유를 누리며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여 자유로이 맡은 임무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세상 고통의
가장 깊은 데까지 들어갑니다. 모든 피조물이 탄식합니다.'(로마 8,19-22참조). 탄식은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 현존에 대한 우리의 의탁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피조물과 그리스도인들과 성령의 탄식은 이미 진
행중인 구원을 미리 맛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불의가 왜 이렇게 많고, 아이들을 죽이고 도시를 파괴하며
환경을 파괴하며 환경을 오염시키고 어머니 지구를 유린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동족상잔의 전쟁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온 우주와 모든 피조물이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고 원상태로 회복되기를 '간절하게'탄식하며 갈망합니다. 우리의 해방은
다른 모든 피조물, 곧 인간 조건과 결부되어 종살이의 멍에를 메고 있는 모든 피조물의 해방을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인류의 구원은 피조물에게도 확실한 희망이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끊임없이 인도하시어 우리가
회개하도록 곧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부르십니다. 환경 파괴에 저항하고 무엇보다도 실질적인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증거가 되는 그러한 사회 비판에 참여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피조물과 함께 희망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힘을 모으고 선의 모든 이와 함께 걷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인간의 힘 그리고 의 의미와
한계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힘은 괴물을 만들어 낸 뒤 우리를 배반합니다.
그러하기에 오늘날 인공지능의 개발에 관하여 윤리적 한계를 정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사랑의 성령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곧, 우리는 '약탈자'에서 동선을 가꾸는
'정원지기'로 바뀌게 됩니다. 땅은 우리의 돌봄에 맡겨졌지만, 여전히 하느님의 것입니다.(레위 25,23참조). 제멋대로
자연을 조작하면서 자연에 대한 소유권과 지배권을 주장하는 것은 우상화의 한 형태입니다.
피조물 보호는 윤리적인 뿌만 아니라 대단히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인간의 신비와 하느님의 신비가 만나는 접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자유를 지닙니다. 우리는 그리도 안에서
피죄물의 '대표'입니다.
피조물과 함께 희망하고 행동하는 것은 강생의 믿음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육신을 취하신 영원하신
성자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참으로 성부의 자녀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갈라 2,20 참조).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 삶은 하느님을 위한, 인류를 위한, 피조물과 함께 피조물을 위한 사랑의
노래가 될 수 있고, 거룩함으로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 전문을 교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