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의 금석문, 2006년》을 보고 이 비석을 처음 알게 되었다.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몰랐고 앞으로 이런 류의 비석을 소개하려고 한다. 가까운 시일내에 직접 방문해서 상세히 살펴보려 한다.
사진 자료가 없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블로그에 있는 사진을 무단 사용했다. 누군가 땀흘리면 뒷사람의 수고는 덜어진다. 그분께 감사드리고 양해를 부탁드린다. 근접 촬영한 사진들은 다음에 올린다.
우선 각종 공덕비에 있는 명(銘)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이다. 우종서(右縱書)라고 한문은 오른쪽(右)부터 아래로(縱) 글을 써왔다. 쌍으로 댓구를 이루는 구절은 붙어 있으면 먼저 번역해야 한다. 《호서읍지 中 충주읍성 사대문 상량문》은 이 방식을 택했다. 주덕읍 사락리 박효인 정려각(朴孝仁 旌閭閣)도 유심히 보면 이 방식으로 써진 구절이 있다.
碩士安承言氏頌德碑
美哉美哉
安公德惠
想鄕村之文盲
設學校而覺明
文交漸開
字學日成
等江漢之長短
通日月之往來
昭和 拾四年 己卯 八月 十八日
<번역>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안공의 공덕(功德)과 은혜(恩惠)여
시골 사람들이 글 모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학교를 세워서 깨우쳐 밝히셨다
문운(文交)이 점차 열리고
글 배우는(學字) 풍속이 날로 이루어졌으니
그 공덕과 은혜는 장강과 한수 같고
일월(日月)이 오가는 세월과 함께 영원하리라.
소화 14년(1939년) 기묘(己卯) 팔월 십팔일
석사(碩士)는 석박사 할때 석사와 한자가 같은데 <큰 선비> 란 뜻이고 존칭(尊稱)이다.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에
《박사박공원채자선진휼비(博士朴公元采慈善賑恤碑)》가 있다. 안승언씨나 박원채씨나 일제시대 활동했던 분들인데 박사(博士)도 석박사의 박사가 아니고 <마음이 넓은 선비>라는 뜻이고 존칭(尊稱)이라고 본다.
《충주의 금석문, 2006년》에는 拾年이라 했다. 四字가 빠졌다. 그리고 1935년 건립했다고 썼다. 하지만 기묘년은 1939년이다. 어느 출판사에서 출판했는데, 이 글자만 잘못 되었으면 다행인데 다른 페이지를 보면 아마도 무수한 한자가 잘못 되었을 것이다.
<일일이 답사하고 자료를 취합해 어려운 한자를 써넣고 책으로 펴내느라 고생했는데 웬말이냐? 金石文은 원래 난해한 분야인데 오히려 고마워 하고 감사해야 맞지 않는가?> 라고 항의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한자를 모른다는 반증(反證)이다.
예성춘추(蘂城春秋)가 출판된건 1959년인데 6.25난리를 겪고 난 후 얼마 지나서다. 모든 것이 불타 잿더미가 된 열악한 환경에서 가까운 청주에서 활판 인쇄했다. 필요한 한자가 새겨진 작은 활자를 일일이 고르는 걸 문선(文選)이라 한다. 이마저 쉬운게 아닌데 또 교정교열(校正校閱)를 봐야 한다. 보통 세심하고 꼼꼼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는게 출판인데 어떤 한자가 빠지거나 잘못 들어가면 한문의 특성상 번역은 불가능하다. 요령껏 적당한 한자를 채워 넣는 수 밖에.
얼마 지나면 81주년 광복절이 다가오는데 일본놈들 욕할거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여러 여건이 좋아졌으니 교정교열을 철저히 해서 누구나 안심하고 인용할 수 있도록 책을 출간해야 한다. 충주에서 출간된 오타 투성이 책이 한 권 더 있는데 다음에 소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