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과 관련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부적절한 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됐지만, 재판 개입과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등 핵심 혐의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임 전 차장을 마지막으로 이 사건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에 대한 1심 선고가 끝났는데 이 사건의 두 가지 핵심 혐의는 모두 무죄가 선고된 것이니 사실상 사건의 실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임 전 차장 1심 재판부도 “사법 농단 의혹 대부분은 실체가 사라진 채 행정처 심의관에게 부적절한 지시를 한 혐의만 남게 됐다”고 했는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48개 혐의는 통째로 무죄가 선고됐고, 그 밑에서 사법행정 실무를 담당한 임 전 차장의 핵심 혐의도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사법부를 들쑤시고 5년가량 전직 고위 법관들을 형사 피고인으로 옭아맨 결과가 이러니 그 책임은 사실상 수사 지침을 내린 문재인 전 대통령, 이에 호응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 무리한 수사를 강행한 검찰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최초에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재판 거래’ 의혹을 제기해 평지풍파를 시작한 사람들은 인권법·우리법 출신 판사들이었습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주장한 이탄희 판사, 재판 거래 의혹을 제기한 이수진 판사,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재판 거래 의혹은 헌정 유린”이라고 비판한 최기상 판사, 법원게시판에 사법 농단 진상 조사를 청원하는 글을 올린 김형연 판사가 그들입니다.
이른바 ‘김명수 키즈’로 불리는 이들이 확실치도 않은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이 지경까지 온 것인데, 이탄희·이수진·최기상 판사는 민주당 국회의원이 됐고, 김형연 판사는 문재인 비서에 이어 법제처장까지 지냈습니다.
겉으론 사법 개혁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사법부 독립을 짓밟은 것이며, 이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죄 없이 고통을 당했고, 법원도 망가졌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과 한마디 없으니 너무나 무책임하고, 참으로 파렴치합니다.《조선일보 사설, ‘사법 농단’ 의혹 키우더니 나 몰라라 하는 ‘김명수 키즈’들》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 검사를 키워서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지금 더민당에서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불을 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석열 검사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문재인 정권의 실책인지는 제가 단언할 수 없지만 윤석열 검사에게 온갖 찬사를 보낸 것은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일본의 검찰 신뢰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일본 검사는 기소한 사건이 무죄가 날까 전전긍긍이다. 무죄가 나면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죄를 다루는 특수부 검사일수록 사건마다 목숨을 거는(一生懸命) 자세로 임한다. 그래서 기소가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없지는 않지만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우리나라 검사는 기소해서 무죄가 나도 ‘아니면 말고’다. 특수부일수록 더하다.
1987년 민주화를 전후해 검찰의 특수부가 거악(巨惡)과 싸우던 멋진 시절이 있었다. 당시 재벌 수사는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을 찾지 못하면 제대로 된 수사로 봐주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 때부터 재벌 개혁을 내걸고 배임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서양에선 배임을 형사 범죄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런 식으로 기업을 털면 안 걸릴 기업이 없다. 중수부가 졸렬해졌고 그때부터 폐지론이 제기돼 한참 후이긴 하지만 폐지되기에 이른다.
윤석열 한동훈 두 사람은 박영수 밑에서 수사를 배웠고 이복현 또한 그들 밑에서 배웠다. 중수부 폐지 이후의 특수 수사는 ‘외과수술식 수사’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검찰주의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윤석열과 좌(左)동훈 우(右)복현 체제에서는 저인망식으로 혐의가 걸릴 때까지 수사하고, 걸 수 있는 혐의는 모조리 기소하는 방식이 주(主)가 됐다.
윤석열 검찰총장 밑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사건 기소를 강행한 것은 기업 회계를 잘 안다는 이복현 부장검사였다. 그 덕분에 금감원장이 됐으나 1심 선고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19개 혐의는 모두 무죄가 됐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밑에서 사법농단 수사팀장을 맡은 건 한동훈 3차장검사였다. 법치에 능통해 사법농단 수사를 맡고 법무부 장관이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구속까지 시킨 양승태 대법원장의 47개 혐의는 모두 무죄가 됐다. 두 수사를 총괄한 사람은 대통령이 됐다. 좌천감인 수사를 한 검사들이 바로 그 수사로 승승장구한 셈이다.
삼성 합병 무죄는 단지 그 사건의 무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유의 핵심인 뇌물죄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삼성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합병을 부당한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박 대통령을 위해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조카 장시호를 금전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 뇌물죄 혐의의 대강이다.
뇌물죄를 인정한 대법원의 논리는 명시적 청탁은 없었더라도 현안이 있는 기업과 권력자 사이에 금전이 오간 이상 묵시적 청탁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무리한 논리이지만 설혹 그 논리를 인정한다고 해도 삼성 합병 무죄로 기업의 가장 중요한 현안 자체가 흐지부지됐다.
윤석열-한동훈 조(組)의 수사가 최소한의 절도마저 잃고 남용 가까이 치달은 것이 사법 농단 수사다. 이탄희 판사가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와해를 시도하고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주장으로 불을 붙이고 검찰이 받아쓰기하듯 기소했으나 법원의 무죄 판결에서 보듯 사소한 시빗거리였을 뿐이다.
윤석열-한동훈 조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개입 등 재판 관여까지 새로 엮어서 양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몰이에 들어갔었다. 그들은 박영수와 함께 삼성 현대차 SK 등 힘 있는 재벌 총수란 총수는 다 잡아봤고 대통령까지 잡아봤다.
못 잡아본 사람이 하나 있다면 대법원장이었다. 법원은 늘 검찰에게는 갑이었다. 대법원장마저 잡아서 모든 권력이 검찰 아래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고서는 그 수사를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이 권력에서 독립해 수사하게 됐으나 검찰 내부의 수사 기강이 무너지면 그것은 검찰공화국으로 통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음이 분명해졌다. 검사가 대통령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검사가 뒤늦게 무죄가 된 사건으로 대통령도 되고 법무부 장관도 되고 금감원장도 되고 법무부 장관을 토대로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도 되는 세상이 올 줄은 몰랐다.
우리가 아직 못 해봤지만 꼭 해봐야 할 수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검찰의 수사 농단 수사다. 손준성과 김웅의 고발 사주 시도는 빙산의 자그만 일각일 뿐이다.
저인망으로 샅샅이 뒤지면 농단이 국정에만 있고 사법에만 있었겠나. 수사 농단은 그보다 더했는지 덜했는지도 한 번쯤 확인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
출처 : 동아일보. 오피니언 송평인 칼럼, 검사 윤석열과 左동훈 右복현의 ‘수사 농단’
검찰의 수사 농단을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검사 윤석열의 수사 농단은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권, 그들의 획책에 영문 모르고 박수를 친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더민당의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서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정권 탄생 원인을 제공한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 달라.”는 임혁백 공관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당 핵심 관계자는 “임 위원장의 발언은 사실상 임종석, 노영민, 이인영 등 문재인 정부 출신 및 용퇴론 압박을 받는 다선 중진을 겨냥한 것”이라며 “자진해서 불출마할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친문 진영은 반발했는데, 임종석 전 실장은 “대선 직전 문재인 정부 국정수행 지지율은 45∼47%로 역대 어느 정부보다 임기 말 지지율이 높았다”며 “0.73%포인트의 (대선) 패배는 우리 모두에게 아픈 일이었다. 누가 누구를 탓하는 것은 그 아픔을 반복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 원외 친문 인사는 “이재명 대표도 과거 인터뷰에서 ‘윤석열 검사 같은 사람을 검찰총장 시키고 싶다’고 한 적 있는데 그럼 이 대표도 불출마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저도 송평인 논설위원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윤석열 검사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수사를 하게 만든 사람은 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권이라는 생각은 지우지 못하겠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