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대표팀이 7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습니다.
이종도(설악고)감독에 이어 박영진(상원고감독). 김성훈(마산용마고감독), 김선섭(광주제일고감독)등 코칭스태프가 먼저 입국장에 들어섰고 그 뒤를 선수들이 하나 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한 해단식을 마친 뒤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강화훈련 부터 대회기간까지 거의 20여일이 함께 했던 시간을 가슴에 간직한 채 각자 익숙한 자신의 소속팀을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예선 전승을 거둘 때 까지만 해도 7년 만에 우승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슈퍼라운드 첫 상대 미국에게 4-2로 앞서다 9회 석 점 홈런을 포함 무려 5점을 헌납하며 4-7 역전패를 기록했습니다.
그럴 수 도 있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물론 불길한 무언가를 감지했지만 '괜찮다. 일본 이기면 된다' 등 워낙 선수들이 자신감을 피력해 걱정 할 정도는 아니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그러나 나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한일전에서 한국타자들은 상대 선발 우에노 쇼타로 공략에 실패하며 침묵을 지켰고 반대로 마운드는 맥없이 무너지고말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집중력이 무너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0-12 믿겨지지 않는 스코어. 국가대항전에서 일본에게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혔던 때가 또 있었을까? 오히려 결승전이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이후 남은 게임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전력을 재정비한 대표팀은 호주전을 3-0으로 꺾은 뒤 순위결정전에서 다시 만난 호주를 8-5로 물리치고 최종 순위 3위로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2007년 이후 최강 멤버
결승행 좌절 두고두고 아쉬움 남아
일본과 미국이 맞붙은 결승전에서는 3회 2점을 먼저 뽑아 기선을 제압한 미국이 2-1로 승리, 2012,2013년에 이어 3연패를 이뤄냈습니다.
만약 우리가 미국에게 이겼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우승까지는 어려웠을 거라는 비겁한 합리화로 마음을 추슬러봅니다.
2008년 캐나다에서 열린 제 23회 우승 이후 한국은 그동안 그리 성적이 좋지 못했습니다. 2년 뒤인 2010년 7위 , 2012년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5위 , 2년 전 대만에서 개최된 대회에서도 5위에 그쳤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3위는 결코 실망스러워 할 성적이 아닙니다.
미국에게 역전패, 일본전 대패.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실망감과 당혹감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예선라운드에서 보여준 내용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같은 조에 있던 쿠바와 대만과 팽팽한 접전 끝에 이겼고 복병 캐나다도 최충연의 호투에 힘입어 물리쳤습니다. KBO리그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번 청소년대표팀은 합숙훈련 기간부터 꽤 전력이 탄탄해 보였습니다. 원광대와의 두 차례의 평가전에서 투수들의 컨디션은 100%는 아니었지만 저마다의 장점을 살려 할당된 이닝을 소화해 냈고 타자들의 방망이는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날카로웠습니다. 이를 지켜본 스카우트들도 근래 들어 가장 짜임새를 갖췄다며 기대를 거는 눈치였습니다. 어쩜 그래서 3위라는 성적이 더 안타까운 건지 모릅니다.
과거와 달리 마지막 호주와의 3~4위 순위결정전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는 모두 중계 전파를 탔습니다. 스코어와 승패만을 간략하게 기사로 접할 수 있었던 이전과 달리 야구팬들이 오랜만에 한국 고교야구의 수준과 개개인의 기량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선수들에게도 잘하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안겨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결과는 물론이고 과정까지를 책임져야 하는 사령탑과 코칭스태프는 난처한 입장에 몰려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투수 교체 타이밍, 혹사 논란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시각차
‘혹사’와 ‘투혼’ 사이
이번 대회 최대 화두는 일본전 충격의 콜드패가 아닌 투수기용이었습니다. 유격수와 투수를 넘나드는 박준영(경기고3.우완)까지 포함 대표팀 투수는 9명으로 꾸렸습니다. 풀 리그로 매일 게임을 치러야 했던 일정을 숙지하고 투수 로테이션을 짜고 이를 지키려고 노력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선발들이 이닝을 끌어 주지 못한 게임도 나오고 또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면서 윽박질러 상대 타선을 봉쇄해야 하는 순간이 이어지면서 몇 명이 연투를 할 수 밖엔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야구팬들은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래서 전 경기를 복기하며 꼼꼼히 되짚어 보았습니다. 과연 투수 교체 타이밍과 선수 기용이 최선이었나에 확인해 봤습니다. 물론 조바심을 견디지 못하고 한 박자 빠른 혹은 늦은 선택도 있었고 비교적 피로누적 이 덜한 선수들을 기용도 가능하지 않았나 등을 찾아 봤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매 경기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럴 만 했고 그럴 수밖엔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100% 이해되고 완벽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144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에서도 승부를 걸어야 하는 순간 피로도가 높은 선수에게 볼을 건네주고 틀어막아 주길 바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6개월 이상의 장기 레이스에서도 이런 모습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그런데 하물며 국가대항전이고 승패에 따라 결승진출이 달려 있는 촉박한 상황에서 전날에 던졌다는 이유로 다른 카드를 선택할 순 없지 않았을까요?
전국고교대회에서도 결승진출 혹은 4강에 오른 팀 에이스는 연일 마운드를 오릅니다. 있는 투수들을 균등하게 역할을 배분하고 싶지 않은 지도자가 어디 있을까요? 이상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최선의 대안은 가장 페이스 좋고 믿을 수 있는 신뢰감을 주는 선수에게 볼을 쥐어 주는 것 아닐까요?
이번 대회에서 박세진(경북고3.좌완)과 이영하(선린인터넷고3.우완)은 6경기에 투입,각각 13이닝과 10⅓이닝을 던졌습니다. 볼의 개수는 박세진이 130개, 이영하가 94개입니다.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선발로 2번 출격(쿠바전. 순위결정전) 그리고 이탈리아전에 1이닝을 던진 김표승(경주고2.사이드암)으로 3경기 등판 14이닝 동안 230개의 투구수를 기록했습니다.
박세진과 이영하의 투구수는 많은 편이 아닙니다. 물론 연일 불펜에서 대기하며 몸을 풀었던 것까지 감안하면 피로도는 확실히 높았을 것이고 그것이 대회 후반 실점의 빌미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소속 팀 에이스로 사흘 연속 100개 가까운 볼을 던지며 우승을 이끈 경험이 있습니다. 그 점을 높게 산 거죠. 그래서 연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선수들은 하나같이 ‘무조건 던지게만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힘들긴 해도 이런 기회가 또 오겠냐? 죽을 힘 다해 팀 승리에 보탬이 되고 싶다’ 며 마운드를 향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태극마크는 피곤함도 무력화 시키는 힘을 지닌 것이 분명합니다.
몸 상태가 완벽하지 못한 아쉬움, 구위가 현저하게 떨어져 점수를 내주는 바람에 이기지 못했다는 속상함 , 우승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분함이 전부였을 뿐 자신이 혹은 동료가 혹사 당했다고 느끼는 이는 없었습니다.
투수 어깨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는 논리. 또 하나는 소모품이라는 이론이 공존합니다. 야구관계자나 지도자 마다 견해가 엇갈리기도 하지만 사람마다. 회복속도, 근력, 피로도가 각기 다르다는 견해는 일치합니다.
대표 팀에 입성한 투수들은 이미 연투 혹은 혹사라고 불리는 과정을 몇 번씩 거친 선수들입니다. 부상을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스스로 터득 할 정도로 일정 수준 이상인 것입니다.
혹여 아픈 것을 참으면서까지 등판을 자처하는 미련한 선수가 있었을까요? 절대 그럴 일은 없어야 하고 또 없습니다.
간혹 지명회의 전이거나 혹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줘야 할 순간엔 부상 사실, 아프다는 것을 철저히 숨기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상황이 아닌 겁니다.
물론 박세진,이영하는 투구수 대비 휴식 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혹사논란으로 번질 정도인가요?
만약 미국전에서 이영하가 승리를 지켜내고 결승무대까지 올라가 일본을 꺾고 우승을 했다면 이들의 연투는 빛나는 투혼으로 재해석 됐을 겁니다.
비교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혹사와 투혼은 마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 과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태극마크 달면 끝?
시기와 방법 등 선발 방식 바꿔야
청소년대표 엔트리는 황금사자기 결승전이 끝난 6월 30일 발표됐습니다. 이종도 감독과는 7월 3일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날 유니폼에 관련된 개별적인 치수 확인, 등번호 배정, 강화훈련 일정 및 장소 등을 선수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소집 날짜는 8월 17일. 무려 50여일 후였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과연 이 기간 대회 준비를 착실히 준비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요?
명단 발표 전날엔 kt ,NC 이외 8개 구단의 1차 지명 발표도 있었습니다. 프로행 확정에 이어 태극마크. 긴장감이 한순간에 풀어졌을 겁니다. 중간에 대통령배대회도 열렸지만 참가하지 않은 팀도 절반이 넘었습니다.
뽑히기만 하면 열심히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시간이 흐를수록 퇴색될 수 있습니다. 어른도 초심을 잃기 쉬운 법이거늘 고등학생에게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잃지 않고 한결같기를 바란다는 건 그 자체가 무리입니다.
타자에 비해 투수는 며칠 볼을 손에서 놓으면 감이 틀려지고 밸런스를 잃기 쉽습니다. 그런데 한 달 넘게 제대로 게임을 나서지 않았다면 이전 기량을 보여주긴 힘들겠죠.
최대한 엔트리 발표를 미루고 대신 상비군 제도로 선수들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만약 부상 선수가 나오면 즉각 대체할 수 있도록 후보군을 꾸려놔야 합니다.
유니폼 제작을 비롯해 추가 경비 등 상비군 체제 도입에 따른 추가부담이 뒤따를 것입니다. 허나 큰 뜻과 목표를 위해 그 정도의 투자와 지원은 마음먹기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지명을 받았을 뿐 아직 고등학생의 신분이거늘 합숙훈련 기간부터 마치 프로선수 같은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고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훈련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대회 참가에 있어 별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날까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최종엔트리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안일함은 보이지 않을 테니 말이죠.
잘 익은 벼일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고교 야구 선수 중 최고로 인정을 받은 만큼 이제는 한 단계 뛰어 넘어 철저한 자기관리와 겸손함으로 자신이 있는 곳에서 모범이 되고 존경받는 선수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아울러 향후 아시안게임이나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지금의 이 멤버가 재회하는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3위. 일본에게 완패. 기죽을 이유 없습니다. 반드시 되갚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야구, 모르잖아요.
'홍희정의 베이스볼 다이어리' http://blog.naver.com/ayo3star 에 귀국 당일 선수들의 인터뷰 영상을 실었습니다. 주로 지방 팀 선수들 위주로 꾸렸습니다. 그 대상자는 윤성빈.김표승, 황선도, 안상현 그리고 주장 주효상선수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