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905)... ‘행복교육’ 문용린 장관 별세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패혈증(敗血症)
“사람은 행복해야 성공한다”는 지론으로 ‘행복교육’을 강조한 이우(以愚) 문용린(文龍鱗, Moon Yong-lin) 전 교육부 장관이 최근 앓기 시작한 패혈증(敗血症)이 악화돼 5월 29일 새벽 향년 75세에 별세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은 1947년 7월 3일 만주(서간도) 무순에서 태어났으며, 국내로 돌아와 여주에 정착했다. 여주농업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미네소타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9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정책 수립에 관여하여 대통령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한국교육개발원 도덕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미네소타대학교 풀브라이트(Fulbright) 교환교수도 역임했다. 고인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 1월 제40대 교육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2012년 8월 서울대 교수에서 정년퇴임한 뒤 그해 12월에 치러진 제19대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보수진영 후보로 출마해 5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서울시교육감 재직시절에 학생들의 정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행복출석부’를 시행했고,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과 비전을 찾게 한다는 취지로 진로직업 체험교육을 강화했다. 또한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가정이 있어야 교육이 살아난다”며 교육청 직원들에게 오후 6시에 ‘칼퇴근’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감성지수(EQ)와 다중지능이론(多重知能理論)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학자이다. 그는 교육의 목적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성지수(感性指數, Emotional Quotient)는 미국의 세계적인 심리학자 다니엘 골만(Daniel Goleman)의 저서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에서 유래되었지만, 타임(TIME)지가 이 책을 특집으로 소개하면서 ‘EQ’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여 학계와 기업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감성지수(EQ)는 지능지수(IQ)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여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마음의 지능지수’이다. 골만은 “EQ는 학습을 통해 계발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펼쳐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 Theory)는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교수(인지교육학)가 1983년에 소개한 개념으로, 인간의 지적 능력은 서로 독립적이고 상이한 여러 유형의 능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대적 중요성이 동일한 여러 하위능력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한다는 다차원적 지능 이론이다. 가드너는 지능을 한 문화권 혹은 여러 문화권에서 가치 있게 인정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산물을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인간에게는 9개의 다양한 지능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잠재력을 파악하고자 했다.
문 전 장관은 2014년 6월 서울시교육감 재선에 도전했지만, 진보진영의 조희연 후보에 밀려 패배한 뒤 학교폭력 예방단체인 푸른나무재단(구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그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전인교육(全人敎育)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 피해자의 상처 치유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부터 최근까지 대교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평균 지능에 도달하지 못해 학습과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 활동에 나섰다.
주요저서에는 도덕과 교육(1988),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젊은이를 위하여(1990), 나는 어떤 부모인가(1993), 신세대 부모여 확신을 가져라(1994), 나는 어떤 부모인가(1996), 이젠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부모가 필요하다(1997), EQ가 높으면 성공이 보인다(1998), 학교교육 이렇게 살리자(2002), 지력 혁명(2004), 그러나 그의 삶은 따뜻했다(2004), 열 살 전에 사람됨을 가르쳐라(2007), 내 아이 크게 멀리보고 가르쳐라(2008),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유산(2009), 그리고 역서(譯書)와 공저(共著)가 다수 있다.
필자는 1990년대 한국청소년연구원 정책연구실장, 한국청소년자원봉사센터 소장, 한국청소년학회 부회장,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겸임교수 등으로 활동하면서 문용린 서울대 교수를 만나 청소년 관련 정책에 관하여 논의했다. 필자가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에서 25년간 근무했을 때는 주로 아동(어린이) 분야의 국내외 인사들과 교류를 했으며, 1989년 봄 당시 UNICEF 기획관리관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창립에 기여하여 부회장, 회장을 역임한 후 현재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패혈증(敗血症, Sepsis)이란 말 그대로 피(血)가 썩는(敗) 병(症)으로 치명률은 방치 시 100%, 치료 시 20-35%인 무서운 병(국제질병분류기호: A40-A41.0)이다. “웃고 살면 무병장수한다”고 외친, 일명 ‘신바람 전도사’ 황수관(黃樹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생리학)도 패혈증으로 지난 2012년 12월에 향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원인은 장내 세균에 의한 간농양으로 밝혀졌다.
세계보건기구(WHO) 2017년 총회에서 패혈증을 전세계 최우선 보건 과제로 선정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600만명 이상이 사망하며, 국내에서도 매년 2500명 이상이 사망한다. 패혈증 사망률은 전 세계 평균 약 24%이며, 우리나라는 28.6%로 외국에 비해 높다. 특히 지난 2020년 서울아산병원 임채만 교수팀이 질병관리청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는 국내 사망률이 약 39%로 세계 평균의 거의 2배에 육박했다.
패혈증은 인체가 세균 및 기타 미생물에 감염되어 이들이 생산한 독소에 의해 중독 증세를 나타내거나, 전신성 염증 반응, 심각한 장기 손상 및 합병증을 보이는 증후군를 말한다. 상처, 호흡기, 소화기관 등을 통해 침투한 혈액 내 병원체가 숙주(宿主)의 면역체계를 뚫고 번식하는 데 성공하여 숙주를 이겨 버린 상태이다.
패혈증의 원인은 미생물에 의한 감염이므로 감염 부위는 신체의 모든 장기가 가능하다. 패혈증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대장균, 폐렴균, 진균, 녹농균(綠膿菌), 클렙시엘라 변형 녹농균 등 다양하다. 폐렴, 신우신염, 뇌막염, 봉와직염(cellulitis), 감염성 심내막염, 복막염, 욕창, 담낭염, 담도염 등이 패혈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감염증이 발생한 경우, 원인 미생물이 혈액 내로 침범하여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다.
언론에 많이 보도되는 여름철 ‘비브리오 패혈증(Vibrio Vulnificus Sepsis)’은 바다에 사는 비브리오 불니피쿠스(vibrio vulnificus) 세균 감염으로 발생한다. 여름철 바닷물에 피부 상처가 오염되거나, 오염된 해산물을 먹어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흔하게 일어난다. 패혈증은 어떤 균이든 감염 후 인간의 면역체계를 이겨내고 번식에 성공하면 생긴다.
면역계가 항원을 인식하고 바로 염증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짧은 잠복기를 가지고, 균종과 면역 상태, 처치법에 따라 수시간에서 수일 안에 사망하거나 만성적인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한편 완치해 원만하게 회복할 수도 있다. 큰 외상(外傷)을 입었을 때 사망하게 되는 주원인 중 하나가 패혈증이다. 즉시 상처를 소독하지 않고 방치했을 경우, 미생물이 신체 내로 침투하기 매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패혈증의 공통된 증상으로는 체온이 38도 이상으로 올라가거나(발열) 혹은 35도 이하로 내려가며(저체온증), 호흡수가 정상 호흡수에 더해서 분당 24회 이상으로 증가하며(저산소증), 혈압이 떨어지면서(저혈압) 신체 말단에 공급되는 혈액량이 저하되므로 피부가 퍼렇게 보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피부가 썩기 시작하는 조직 괴사가 나타난다. 구토, 설사, 부정맥, 장 마비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패혈증의 초기 증상으로는 호흡수가 빨라지고, 지남력(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인지력)의 상실이나 정신 착란 등의 신경학적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균혈증(세균이 혈액 내에 돌아다니는 증상)이 있으면 세균이 혈류를 따라 돌아다니다가 신체의 특정 부위에 자리를 잡아 그 부위에 병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혈관 투과성이 증가하여 혈관 내 알부민(albumin)이 빠져나가서 혈관 내 교질삼투압(oncotic pressure)이 낮아지며, 이로 인해 환자 혈관 내의 물이 주변 조직으로 빠져나가 쇼크, 부종 등도 생한다.
페혈증은 짧은 시간 내에 사망하는 케이스가 많으므로 패혈증 증상이 보이면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일반적인 패혈증의 경우도 사망 위험도가 20-35%에 달하며, 빠르게 더 악화되어 패혈성 쇼크가 오게 될 경우 40-60%가 사망하는 매우 치명적인 질환이다. 특히 환자가 자가면역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당뇨병 등의 기저질환을 앓고 있을 경우 사망률이 더욱 높아진다. 패혈증에 저혈압이 동반된 경우를 ‘패혈성 쇼크(Septic shock)’라고 한다.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연구팀은 패혈성 쇼크 환자를 추적 관찰한 결과 근감소증(筋減少症) 동반 시 사망률이 최대 26.5% 증가했다.
거의 대부분의 균들이 패혈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치료법은 일단 대량의 수액 공급으로 혈압 유지, 광범위 항생제로 경험적 치료를 시작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균배양 검사를 보고 항생제를 조절한다. 세균에 따라 듣는 항생제의 종류가 달라지므로 균종(菌種)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원인균을 찾는다고 항생제 투입 시점이 늦어져서도 안 된다.
매년 9월 13일은 세계 패혈증의 날(World Sepsis Day)이다. 전 세계 패혈증 관련 단체들이 모인 ‘패혈증 연대’가 패혈증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시행해 오고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도 지난 2012년부터 ‘세계 패혈증의 날’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지난 2018년부터는 ‘한국패혈증연대’를 조직하여 패혈증 관련 질병관리청 용역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패혈증 조기진단과 치료를 위해 국내 실정에 맞는 ‘패혈증 치료 지침서’를 개발해야 한다.
패혈증은 치명률이 높아 빠른 시간 내에 치료가 요구되며, ‘묶음 치료’가 사망률을 낮추는데 핵심적 역할로 꼽히고 있다. 패혈증 묶음치료(Surviving Sepsis Campaign bundle)란 패혈증 환자에게 젖산 농도 측정, 혈액 배양 검사, 항생제 투여, 수액 치료, 필요시 승압제 투여 등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중한자의학회는 2018년 지침을 통해 패혈증 환자에게 1시간 이내에 5가지의 묶음치료(1 hour bundle)권고했다.
국내 19개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이 참여한 연구에서 패혈증 묶음치료 수행률이 패혈증 사망을 줄이는 주요 요인으로 나타났다. 1시간, 3시간, 6시간 이내 수행률 모두 예후와 유의한 연관성을 보였다. 2017년 미국 뉴욕주의 패혈증 관리 분석연구에서 묶음 치료가 3시간보다 빠르게 시작돼 완료될수록 환자의 예후가 호전된다고 밝혔다.
패혈증은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으며, 신체 장기 기능의 장애나 쇼크 등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사망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러나 패혈증은 치명률이 매우 높지만 사회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제대로 관리만 한다면 사망률을 줄일 수 있는 질병이다. 패혈증 발병 후 짧은 시간 내에 사망할 수 있으므로 증상이 나타나면 신속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패혈증 발생 시 반드시 ‘골든타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진> (1) 고 문용린 박사, (2) 고 황수관 박사.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The AsiaNㆍ시사주간 논설위원, The Jesus Times 논설고문) <청송건강칼럼(905) 2023.6.10.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