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정병호 어르신(1924년생. 103세)을 뵙고 왔습니다. 2018년에 처음 만나 구술채록을 하고 2021년 구술집(『배고픔에 두들겨 맞아가면서도 하얗게 핀 가시나무꽃 핥아먹었지』) 발간 직후 찾아뵌 지 5년만입니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남구 덕남동 산속에 혼자 기거하고 계셨는데, 그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생존 여부가 궁금했습니다.
구술집도 발간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새 돌아가셨을지도 모르지만 마지막 확인이나 해 보자는 심정으로 오래만에 전화드렸더니 놀랍게도 어르신 목소리였습니다. 서둘러 덕남동 산으로 찾아갔더니 공사판이었습니다. 공사 관계자한테 들어보니 그새 남구에서 캠핑장으로 조성하기 위해 일대 야산을 매입해 한참 공사 중이었고, 살던 움막도 얼마전 철거됐다고...
핸드폰 연결도 안돼 마을까지 내려와 다시 전화로 여쭸더니 어르신은 작년 6월 움막에서 나와 남구 행암동 한 아파트로 옮기셨더군요. 5년 전 뵐 때처럼 여전히 건강하셨습니다. 산속에서 생활한 지 45년 만에 나와 꼼짝 없이 ‘콘크리트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고 기회만 된다면 다시 산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왼쪽 눈은 시력을 잃었지만 예전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셨습니다. 그동안 안부 여쭙고 얘기 들어드리다 보니 금방 1시간이 흘렀습니다.
광주향교 인근에서 태어나 서석초등학교의 전신인 광주제1보통학교를 졸업했는데, 교과서에도 소개된 정소파 시인(2012~2013)이 형님입니다. 사직공원은 유년시절의 추억이 서린 곳이라고 하는데 들어 볼 얘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스물한 살 때인 1944년 11월 말 사세보를 거쳐 가고시마 가노야 소재 해군 404부대 군속으로 동원돼 비행장 건설, 방공호 공사, 어뢰발사기지 구축공사 현장에서 모진 고역을 치렀습니다.
구술집 p102~118쪽에 일본에 동원돼 겪은 내용이 실려 있지만, 이와 관련해서도 앞으로 더 얘기 나눠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어르신 댁에 주간 보호센터 한 사회복지 법인 사무국장님이 같이 계시더군요. 정병호 어르신과 얘기 나누는 것을 옆에서 같이 지켜보셨습니다. 2021년 시민모임에서 펴낸 구술집을 보여드렸더니 몇 장 펼치더니 첫 번째로 소개된 정순용 어르신이 같은 집안 어르신이라며 깜짝 놀라시더군요.
정순용 어르신은 아쉽게도 구술집이 발간되기 전에 별세하셔 생전에 책을 손에 전해드리지 못했는데, 집안 형제들도 어르신 징용 다녀온 자세한 내막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인연이 닿으려니 묘하게도 구술 채록한 31명 중 한 분, 그것도 아직 구술집을 전해드리지 못한 분의 집안 분을 그 자리에서 만나다니...
자녀분들에게라도 사연이 담긴 구술집을 전해 드리고 싶다며 작고하신 정순용 어르신 자녀분들과 연결을 부탁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