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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4月 ☞정직과 순종하는 습관☜
4월은 시편 묵상과 성경적 성숙한 기도와 순종으로 응답받읍시다.
시5:1-12절)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하나님은 죄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지는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지을 때는 징계(懲戒)하시고, 처벌(處罰)하셔서 죄를 버리게 하신 후에 사랑하십니다. 그래야 그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악(惡)한 자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면서 성도들이 조금만 죄를 지어도 징계하시고, 심판하셔서, 얼핏 보기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불행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정결케 되기만 하면,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 운전을 하다보면, 어떤 사람은 교통 법규를 어기는 일을 밥 먹듯이 하는데도 교통경찰에게 잘 걸리지 않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법규를 어기지 않으려고 늘 신경을 쓰다가 딱 한 번 실수로 과속(過速)을 했는데, 그만 단속에 걸려서 딱지를 떼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마음속으로 너무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교통경찰에게 이렇게 사정을 할 것입니다. *저는 법규를 잘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인데, 이번에 딱 한 번만 실수한 것이니까. 한 번만 봐 주세요*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경찰이 그 말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단속에 걸리면 그런 식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단 한 번의 실수로 벌금을 내는 것이 낫습니다. 왜냐면 단 한번 과속을 했다가 벌금을 낸 사람은 그 후에 늘 조심을 하는데, 아무리 과속을 해도 단속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결국 과속이 습관이 되어 나중에는 대형 사고를 만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몇 만원의 과태료로 끝날 일을 목숨과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위에서 죄를 밥 먹듯이 짓는 사람들은 심판도 받지 않고 늘 풍족하게 잘사는 것 같은데, 잘 믿으려고 애쓰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늘 어려움을 주시고 연단(鍊鍛)하는 것을 볼 때, 억울해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驕慢)한 죄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늘 어려움 중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평소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죄짓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지 않는 사람은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더 큰 죄를 지어서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두 번 죄를 지어서 심판을 당하지 않는 자들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우리들을 조롱하고 업신여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이 훨씬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대형 사고를 저지를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Ⅰ.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5:1절)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자녀들이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는데,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가 앞뒤 이야기를 다 듣지도 않고, 야단부터 치면, 아이들이 이렇게 항의 할 것입니다.
즉 *엄마, 우선 이야기부터 들어보신 후에 야단을 치시든지 때리시든지 하세요.* 그 아이는 죄를 고의적(故意的)으로 지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즉 지금 잘못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것이 본심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 때는 마음속으로 이런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나의 부모님은 사려가 깊은 분이시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만 보고 무조건 야단치시지 않고 분명히 내 마음을 헤아려 주실 거야* 사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보통 모르는 사람들은 나타난 곁과만 가지고 맹렬하게 비난합니다. 즉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는데 무슨 잔소리야!* 는 식입니다. 모두가 변명이고, 자기 합리화라면서 아예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믿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확신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나타난 결과만 야단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을 들으시고 *나의 심정을 헤아리시는 분*이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선 나타난 결과는 분명히 죄입니다. 분명한 잘못이고, 처벌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원래 우리는 이 죄가 좋아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즉 죄를 짓는 그 순간 뭔가 귀신(鬼神)에게 홀린 것 같고, 눈에 무슨 보자기 같은 것이 덮어씌운 것처럼 잘못된 욕망에 속아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죄를 지은 자기 자신이 너무나 밉고, 가증스러우며, 그런 죄를 지은 자기 자신을 혐오(嫌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아직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내가 지은 죄만 보고 심판하지 마시고, 내 속에 있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발 헤아려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통법규를 잘 지키려고 하다가 어떻게 잘못해서 법규를 어기고, 경찰에게 걸린 사람과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죄를 밥 먹듯 지어도 잘도 빠져나가는데, 이상하게 성도는 한 번 몰래 죄를 지었는데도 온 세상이 다 알게 되고, 심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온갖 욕을 다 하면서 이렇게 비난할 것입니다.
즉 *평소에 거룩한 체는 혼자 다 하더니...얌전한 강아지 부뚜막에는 먼저 올라간다더니 죄는 혼자 다 짓고 있었구먼.*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딜리마(dilemma)가 있습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완전하게 살려고 애를 쓰지만, 어쩌다가 다윗처럼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온 세상이*좋아라!*하면서 욕을 퍼붓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을 살다보면,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곧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도 어려움과 역경(逆境)은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사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정욕(情慾)이 있고, 우리 밖에는 더 많은 죄(罪)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죄를 짓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 생각한 것이 곧 이 부분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 때에, 어려움이 전혀 오지 않고, 늘 하나님이 주시는 복(福)이 넘쳤더라면, 이방인들을 따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도 어려움은 찾아오고,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징계(懲戒)하시니까 기왕 어려움이 온다면, *싫컷 우리 마음대로 살아보자*는 식으로 생각해서 그들은 이방인들의 길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어려움이 오는 것과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어려움이 오는 것은 완전히 그 성격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데, 어려움이 찾아오는 것은 벌금 2-3만 원 정도의 손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는데, 찾아오는 어려움은 대형 사고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데, 찾아오는 어려움이나 환난을 피하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어려움들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며, 믿음으로 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비난하고. 못살게 굴 때는 마치 당연한 듯이 대처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혀 어려움을 당하지 않으려고 요령(要領)을 부리고,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빠져 달아나니까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게 되고, 급기야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도 어려움은 찾아오며, 사람들은 비난하고 욕을 퍼붓는데, 이것이 실제로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도저히 치유(治癒)할 수 없는 죄에 빠질까? 이런 식으로 중간 중간에 하나님의 경고의 채찍을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 사람은 대형 범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5:2절)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우리는 절대로 완전한 의인(義人)이 아닙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벌써 기도하고 싶지가 않고, 기도의 문(門)이 막힙니다. 즉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뻔뻔스러운 것 같아서 기도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까? 온 몸이 늪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결국 얼굴만 남겨놓고, 온 몸이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되었을 때, 그때는 어쩔 수 없어서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도 미안하고, 죄송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금 똑같은 죄를 저지르고 회개했는데, 돌아선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 같은 죄를 저질렀으니, 얼마나 미안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탓하시지 않습니다. 같은 죄로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 죄를 짓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용서해* 주십니다. 진짜 잘못은 *하나님 앞에 자존심(自尊心)을 내세우면서 회개하지 않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온 몸이 *절망의 늪에 빠져 들어가기 때문에 결국 부르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어떻게 될까?
5:3절)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성도는 밤새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습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다 토(吐)해 내기까지 그의 영혼은 캄캄한 밤중입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몸부림치고 나면, 어느새 아침이 되는데, 그때 벌써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나타난 결과만 보고 비난하거나 야단치시는 분이 아니라, 나의 사정을 들어주시고, 내 심사(心思)를 통촉(洞燭)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성도들의 고통에 대해 최우선적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이때 이미 마음에 하나님의 평안(平安)이 찾아오면서 죄로 인하여 상처받았던 영혼이 치료되고, 다시 기쁨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의 건강을 체크하는데 있어서 *기쁨* 이 얼마나 중요한 지표(指標)가 되는지 모릅니다. 일단 우리 영혼속에 기쁨이 없으면, 영혼이 병든 것이며, 상태가 좋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정직한 마음으로 나아와서 회개하면,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기쁨을 회복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는 왕(대통령)이든 목사(牧師)든 그의 신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오직 한 사람의 죄인일 뿐입니다.
Ⅱ.원수들은 더 위험하다.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악(惡)을 전문적으로 저지르는 토개공들은 지은 죄가 잘 탄로도 나지 않고, 모든 것이 잘되는 것 같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꾀를 믿기 때문에 점점 더 깊은 죄의 수렁에 빠져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하는 영혼은 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멸망하는 것입니다.
시49:20절)...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의 영혼을 소중하게 보시지 않기 때문에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전혀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져서 대형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긍휼을 얻지 못해서 완전한 멸망(滅亡)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5:4절)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사람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죄를 몰라서 그러시는 것도 아니고, 죄를 좋아하셔서 그러시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중요한 때가 곧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 조용하게 침묵(沈默)하실 그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다 알면서도 조용히 침묵(沈默)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우리 인간들의 인격(人格)을 존중하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 인간은 스스로 죄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지 않고, 침묵하시는 동안에 알아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조용히 침묵하시는 동안에 알아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조용히 침묵하시는 동안에 눈물 콧물 흘리면서 회개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자복(自服)하고, 용서를* 빕니다.
어떤 경우는 손바닥으로 자기 얼굴을 철썩철썩 때리면서 회개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자비(慈悲)하셔서 그 모든 죄를 다 사유(赦宥)해 주십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깨끗하게 잊어주십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난 후에도 죄가 발각되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것 같기 때문에 죄를 숨기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까? 드디어 하나님을 *속였다*고 생각하며, 뻔뻔스럽게 죄를 감추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점점 더 교만(驕慢)하게 되어 더욱 담대하게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주 무시무시한 죄들도 겁없이 두려움 없이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속담(俗談)입니다. 즉 *작은 죄를 저질렀을 때, 책망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결국 큰 도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악(惡)한 자들을 책망하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 것이 더 무서운 심판입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곧 *이렇게 아슬아슬한 죄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사탄의 미끼에 걸려들어서 비참하게 멸망(滅亡)으로 끌려가고* 맙니다.
그래서 작은 죄를 지었을 때, 들통이 나서 혼나는 사람이 복(福)있는 사람입니다. 죄를 짓는 데에 머리가 좋으면 안 됩니다.
5:5-6절)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이것이 곧 성도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죄인(罪人)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우리 믿는 자들을 사랑하시되 죄를 깨끗하게 하신 후, 마음껏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만(傲慢)한 자는 어떤 자입니까? 죄를 짓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만(傲慢)한 자는 *완전 범죄가 가능하다*고 착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았다고 잡아떼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 분이 계십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며, 증거를 갖고* 계십니다.
때로는 오만(傲慢)한 자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들을 모두 드러내십니다.
옛날에 *태양은 가득히* 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프랑스 미남 배우 *말랭들통*이 주연(主演)한 영화인데, 그는 친구를 죽여서 바다에 던지고, 그 친구의 요트와 애인을 차지합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일어난 일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세월이 지난 후, 그가 그 요트를 수리하려고 배를 육지에 끌어올리는데, 배의 추진기(推進機)에 그 죽은 친구의 시체(屍體)가 끈에 매달려서 딸려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나서도 뻔뻔스럽게 죄가 없는 것처럼 활보하고 다니는 자가 *오만한 자*입니다.
여기 본문에서 *오만한 자나, 행악하는 자나, 거짓말하는 자나,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다같은 사람입니다. 즉 죄를 짓고서도 뻔뻔스럽게 감추고, 오히려 의인(義人)들의 티끌만한 죄를 들추어내서 맹렬히 비난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지은 죄들이 세상에 낱낱이 드러날 때에 그들은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바위더러 *내 위에 무너져서 나를 깔아 죽여 달라*고 소리를 칠 것입니다.
그래서 오만(傲慢)한자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전혀 균형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 별일도 아닌 사소한 일을 두고 얼굴을 벌겋게 해가지고 소리소리 지르는가 하면, 어떤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인데도 잠잠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영적(靈的)인 감각(感覺)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닌데도 소리를 지르고, 흥분하는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오만(傲慢)한 사람인 것입니다.
Ⅲ.떳떳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감
죄 용서 받은 성도들의 특권은 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5:7절)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아이들은 잘못했을 때, 부모님께 매를 맞고 난후, 더 부모님과 친해집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서로의 사이를 서먹하게 만들던 좋지 못한 감정들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부모님과 나 사이에 온전히 신뢰(信賴)하는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니까 마음껏 부모의 품에 안겨서 장난을 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님께 야단을 맞고 난 후에 더 웃고 더 허물없이 부모님과 뛰놀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서 토(吐)하지 않으면, 마치 음식을 잘못 먹은 것처럼, 속이 몹시 거북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기쁨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의 책망을 받고, 하나님께서 나의 죄에 대하여 얼마나 진노(震怒)하시고,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는가를 깨닫고, 비통한 마음으로 회개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시원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의 전(殿)에 들어가는데, 마치 햇빛이 가득 내려 쪼이는 정원(庭園)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즉 마음속에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가득한지, 그 기쁨을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悔改)한 심령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福)은 마치 비가 온 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햇빛이 가득히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 되고, 나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합동(合同)이라고 말합니다. 서로 완전히 일치(一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신비로운 연합(聯合)의 체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이런 상태에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욕하고, 거역해도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16:32절)....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성부 아버지께서는 더욱더 예수님과 가까이 하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을 핍박하고 못살게 구는 원수(怨讐)들은 결국 성도들에게 유익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만(驕慢)한 것을 봐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결국은 겸손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악(惡)한 자들은 성도들에게 티끌만한 죄가 있어도 산더미처럼 부풀려서 맹렬하게 비난을 해내기 때문에 결국 성도들은 그들의 비난 때문에라도 깨꿋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5:8절)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공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처음에는 왜 악(惡)한 자들이 나를 이렇게 특별히 물고 늘어지는지, 이해가되지 않습니다. 무슨 원한(怨恨)을 진 것도 아닌데, 유별나게 못살게 굴고 핍박을 합니다.
나중에 그 사람에게 *왜 나를 그렇게 미워했느냐?*고 물어보면, 자기도 모르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냥 특별한 이유도 없이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고 말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특명(特命)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좌우간 성도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회개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간섭(干涉)하시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자신의 원래 부패(腐敗)한 본성 그대로 살다가 멸망(滅亡)당합니다.
5:9-10절)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9절 말씀은 인간의 전적(全的)부패(腐敗)에 대한 중요한 성경 구절입니다. 인간은 단순히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전적(全的)으로 그 마음이 썩어 있고, 부패(腐敗)해 있습니다.
그나나 악(惡)을 덜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총(恩寵)으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은총(恩寵)의 손길을 거두시면, 인간들은 곧바로 악마(惡魔)나 미친 짐승으로 변하게 됩니다.
갑자기 대도시에 정전(停電)이 되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야수(野獸)처럼 변하여 상점(商店)을 약탈(掠奪)하고, 강간(强奸)하고, 도둑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다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만약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똑같이 생겼다면, 죄를 짓는데, 더욱 용기(勇氣)를 낼 것입니다. 그나마 얼굴이 모두 달라서 얼굴이 팔릴까봐 죄를 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피하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책임져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하며, 주님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5:11-12절)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와 같은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여기의 방패(方牌)는 전신(全身)을 가리는 방패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곳에서 마귀(魔鬼)의 불화살이 날아와도 발끝 하나 상하지 않게 온전히 보호해 줍니다. 결국은 우리가 믿음대로 살고, 말씀대로 살아도 어려움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들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믿음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얻은 비난과 어려움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큰 방패(方牌)로 우리에게 날아오는 모든 불화살을 다 막아주셔서 안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site/Kakao 선교회 안내
주님의 선교 명령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가치와 아름다운 가정과 영생을 위하여
대상 : ▷불신자 ▷개종자 ▷코로나시대 바빠서 교회출석 못하는 자 자발적인 전화 신청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 ▷영생 받고 사망 후 천국 가길 원하는 자. 즉▷허무에서 가치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멸망에서 영생으로, ▷권태에서 행복으로, ▷염려에서 기쁨으로,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저주에서 풍요로, ▷종교인에서 주님의 제자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으로,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지옥불 땔감에서 천국 맨션(mansion)을 원하는자.
물론 각자 의지와 기질과 순종여부에 따라 차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계21:8절)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상담실 운영
◐신앙 상담 ☞ 갈등 상처 ◐가정 상담 ☞ 폭력. 이혼. 자살충동. 우울증 등
◐내방 장소 ☞ 동탄 종합문화센터 옆 펜케이 카페 주소 반송동 117-5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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