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Ⅰ 북위 38도, 그러나 따뜻한 연천_구석기 체험숲과 전곡선사유적박물관
221024 송혜영
포근한 온기를 느끼며 잠에서 깬다. 아, 잘 잤다!는 짧은 탄성과 동시에 평소와 다른 공간 인식. 맞다. 여기 지금 캠핑장이지? 어젯밤, 축 젖은 수건마냥 무거운 몸을 느끼며 잠시 뒤척였던 기억이 나는데 어느 순간 잠이 들었나보다. 보통 텐트 속에서의 잠은 아이들도 살펴야 하고 나도 편치 않아 자주 깨는데, 어제 추울까봐 애들을 내의 위에 겨울잠옷을 입히기도 했고 아이를 가운데 두고 부부가 잠시 헤어져 양 끝을 지키니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뜨뜻한 장판 위에서, 감사하게도 간밤에 생각보다 춥지도 않아 간만에 피로를 떨치는 잠을 자고 기분 좋게 일어났다.
거의 동시에 깬 낭군님과 모닝수다를 주고 받는데 사이에 참새들도 짹짹거리며 일어난다. 차에서 외투를 들고 오겠다며 아빠가 몸을 일으키고 한 마리는 화장실을 가고 싶으시다네. 장판 위에서 노글노글 누리는 짧은 안락함은 끝났다. 그래, 아침산책을 하자. 아쉬움을 떨치듯 지익! 순식간에 텐트를 열고 차갑고 상쾌한 아침공기 속으로 들어간다. 이른 아침 옅은 안개로 약간 부연 공간 속에 살며시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들, 연한 황토빛 풀들로 차분한 숲길이다. 꽤 키가 큰 자작나무도 이국적인 분위기에 한 몫 하는 듯 하다.
산책로로 연결되는 선사유적공원 초입에 들어서자 자연스레 서은가은이 앞장서서 우리를 이끈다. 어제 선생님과 공원 산책을 했나보다. 구석기인 세 명이 사슴을 뜯어먹는 하이에나 두 마리와 대치하는 장면의 동상이 있었는데, 이 하이에나의 콧구멍을 언니가 두 손가락으로 찔렀다느니 동물의 내장이 다 나와있으니 놀라지 말라느니 재잘거린다. 조금만 더 가면 꽃이 잘 가꿔진 멋진 정원이 있었는데, 더 가야 하는데! 이 참새들은 표정이 리얼한 구석기인들 포즈 따라하기 놀이하다, 자기들 어제 한 것 자랑만 잔뜩하다, 매머드뼈로 만든 움집 방문을 끝으로 돌아가자네. 앞장서서 저만치 걸어가는데 당할 도리가 없다.
이건 양보하지. 그러나 캠핑장으로 바로 돌아가기엔 엄만 아직 아쉽다구. 가는 길 오른편에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전곡 선사유적박물관. 이 주변이 또 예술이지! 도토리 줍고 가자 꼬셔서 방향을 틀었다. 초입에 상수리 나무 아래 도토리를 몇 개 같이 줍고는 저어쪽에 도토리 또 많이 있다며 건물까지 50여m를 성큼성큼 내딛는다.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한 은빛 용이 드러누운 모양의 박물관 외관은 자연과 참 잘 어우러진다. 약속한 도토리를 또 다시 주우며 건물 왼편 계단을 오르면 박물관의 옥상이다. 마침 이전에 왔을 때는 개방되지 않았던 옥상 산책로가 열려있어 반갑다. 한탄강 쪽 전경을 내려다보며 용의 등어리를 밟고 지나 반대편으로 내려오면 우리를 반기는 억새. 갓 오른 태양에 빛나는 황금빛 억새. 박물관에 들어가 따스한 통창 앞에 앉아 억새 바라보며 한참을 앉았고 싶어라. 나도 낭군님도 여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처음 여기 온 것은 딱 3년 전 이맘때이다. 10월 중순 서은이의 여섯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연천 재인폭포 주변의 카라반에서 1박을 하고 들렀더랬다. 그 때는 연천도 처음, 캠핑장도 처음이었다. 잠자리가 불편했던 것만 빼면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모든 것이 좋았기에 캠핑장에 눈을 뜨게 한 곳이 연천이다. 그리고 까페처럼 예뻤던 박물관. 이 곳에서 친절한 박물관지기님 도움으로한 곳이 연 만든 양말목 냄비받침은 지금도 잘 쓰고 있다. 어린 참새들이 지금보다 더 보챌 때라 그 땐 그 재미가 주로 기억에 남는데 사실 여기는 고고학적으로도 의미가 큰 곳이라 한다.
1977년, 그렉 보웬(Greg Bowen)이라는 주한 미군이 한탄강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에, 커피를 마시려고 물을 끓이기 위해 주변에서 돌을 모았다. 그 때 고고학을 전공한 보웬은 애인이 주워 온 돌이 심상치 않다 여겨 프랑스의 고고학 권위자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 서울대에서 유물을 발굴하게 된 것이다. 이 돌은 약 30만 년 전 것이라고 추정되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로 밝혀졌다. 이전에는 모비우스교수가 주먹도끼는 서양에만 있다는 학설을 펼쳤다. 그런데 전곡리 유물로 인해 동아시아에도 똑똑한 구석기인들이 살고 있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당시 주류 학설의 흐름을 바꾸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한다. 이후 인근 토층의 발굴 조사로 유물 1만여 점을 발굴했고, 국가사적(제268호)으로 지정하고 이를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2011년에 박물관도 열게 되었다. 정말 소설같은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곳 연천에서 하는 선사캠프를 온 것이다. 문화재청, 연천군과 한양문화재연구원이 함께 개최한 생생문화재 사업에^^ 왠지 이리 쓰고 보니 거창하다. 아무튼 어제 프로그램이 알찼다. 한양문화재연구원 소속 선생님들이 짹짹이들만 데리고 가 미니움집도 만들고 led전등에 구석기인 그려보기도 했지. 그동안 엄마는 캠핑 의자에 앉아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다가 그래도 시간이 남아 텐트 속에 누워 바깥 풍경보기 놀이를 했었다. 정말 기특한 프로그램이다 감탄을 하면서.
저녁에는 박물관 관람 후 구석기 시대 세계지도가 배경인 작은 음악회에 참석했다. 캐러비안의 해적, 인어공주와 아기상어 곡을 구석기와 연결하다니! 정말 기발하다. 왠지 친근해 보이는 연주자 아저씨들 덕에 더블베이스와 트럼펫도 친근하게 느껴졌고 피아노 연주자 이모의 설명은 구석기 여행이 더 실감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프로그램. 서울보다 어두운 밤하늘, 그래서 더 별이 빛나는 연천의 밤에 망원경으로 목성과 토성을 본 것은 덤이라 하기엔 너무 큰 재미였다.
산책 후 먹는 아침식사는 무엇을 먹든 맛날 수 밖에 없다. 갈비탕 국물이 목을 타고 들어가는데 뜨끈한 것이 좋다. 아빠는 라면을 꼭 먹어줘야 한다며 궂이 물을 올리고, 면이 좋기만 한 아이들은 배가 부를 법도 한데 아빠가 끓인 게 역시 맛있다 해가며 또 찹찹거린다. 냄비가 바닥을 보이자 포로롱 날아가 옆 텐트 친구와 막대기 하나 찾아들고 논다. 막내는 모닥불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귤 구워먹기에 재미를 붙였다. 장작이 다 탈 때면 집게로 새 거 하나 집어 살째기 올려놓고 그 위에 귤을 올렸다 뺐다 하는 것이 재미있나보다.
10시가 되자 선생님이 또 아이들만 데리고 나가시고 어른들은 텐트 철수 모드이다. 1박 2일 캠핑은 접을 때마다 아쉽다. 낭군님은 손 까딱 않고 쉬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꾸물럭 거리던 나도 느지막히 일어나 정리를 도왔다. 집이 사라지고 의자만 남을 때즘 다시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손가락 두세개 정도 크기의 날카로운 뗀석기로 나뭇잎도 잘라보고, 나뭇가지로 실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막집을 만들어 들어가 보기도 했다고 한다. 외투의 주머니가 너무 볼록하고 무거워서 보니 돌멩이가 한가득이네. 안 볼 때 돌 세 개를 나무 밑에 고이 내려놓았다. 있던 곳에 원래 두고 온 대로 돌아가는 것이 나들이의 원칙이지만 가장 날카롭고 모양이 그럴싸했던 뗀석기 하나는 다음에 교구로 쓰게 들고 올 것을 그랬나 조금 아쉽다.
10월 중순의 아침공기는 차다. 그러나 남아 있는 모닥불의 온기가, 보온병에 담긴 모닝 커피 한 모금이 따뜻하다. 눈 앞 여기저기 노랑 주황으로 환복 중인 나무들과 흔들그네에서 까르르 그네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따스하다. 아주 아주 오래전 살았던 사람들이 주먹도끼를 사용해 사슴을 사냥하고, 그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움집의 불 주변에 모여앉아 숯불고기를 뜯었을 그 자리 즈음- 구석기 체험숲에서 우리도 하룻밤을 따뜻하게 참 잘 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