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중 가장 이단아들이 많았던 시절의 화풍이 바로 인상주의입니다. 물론 자로 재단하듯이 화풍의 사조를 나눌 수는 당연히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리힐리즘) 그리고 인상주의까지 그 화풍이 칼로 자른듯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새로운 화풍이 등장하는 것은 실로 모험 아니 그 화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일종의 대도박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화가도 당연히 직업이니까 자신의 작품을 팔아야 먹고 살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화가들은 그냥 앞선 선배들의 화풍을 닮아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창작욕에 불타는 예술가들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창작이라는 그 거대한 명제를 잊었겠습니까. 그 중 일부 혁신주의자들은 부단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시대를 읽는 눈을 가지고 그 선각자들은 그시대에서는 다소 특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그 당시 그 시절을 이끄는 기득권이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물결을 거부하는 기득권들은 온갖 트집을 잡아 새 물결을 거침없이 밀어내고 파괴합니다. 그 물결이 행여나 자신들의 영역을 해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런 기득권과 새로운 물결은 끊임없이 부딪히고 갈등하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그런 물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는 한국사뿐 아니라 세계사가 정말 자세히도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인상주의는 19세기 말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화풍입니다. 대략 1867년부터 시작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절 과연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을까요. 정치적으로는 혁명의 시절이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시작으로 거의 백년동안 갖가지 혁명이 발생했습니다. 그 당시 혁명은 왜 일어났을까요. 여러 학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유럽 사회가 엄청나게 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상의 혁신과 이와 관련해 일어난 사회적 경제적 구조상의 변혁을 말합니다. 산업혁명으로 농촌의 인력이 대거 도시로 집중됩니다. 대량생산이 일어나면서 그 물건을 팔 식민지가 필요했습니다. 식민지 쟁탈전이 더욱 심화됩니다. 돈을 많이 번 중상계층 즉 부르주아계급과 그 반대적 개념인 프로레타리아 계층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시작되고 심화됩니다. 도시에 몰린 노동자 계층들은 고된 노동과 열악한 삶에 지칩니다. 당시 왕이었던 루이16세는 미국 독립전쟁에도 간여를 합니다. 재정이 파탄나기 시작합니다. 왕과 귀족들은 거덜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세금을 대폭 인상합니다. 왕과 귀족 그리고 종교인들은 한푼도 내지않으면서 말입니다.게다가 대흉작이 찾아옵니다. 그런 분위기속에 계몽주의가 확산됩니다. 계몽주의가 무엇입니까. 이성을 통해 사회의 무지를 타파하고 현실을 개혁하자는 일종의 사상 운동아닙니까. 이런 복합적인 사회상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시적인 행동이 아닌 쌓이고 싸인 그리고 곪고 곪았던 사회상이 터져 분출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처음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왕과 왕비를 처형하고 당시 사회악들을 제거했지만 바로 내분때문에 붕괴되고 맙니다. 그 혼란상을 잠재운 것이 바로 나폴레옹입니다. 혼란속에 빠진 국민들은 나폴레옹을 환호합니다. 하지만 영토확대욕과 자국이기주의에 사로잡힌 나폴레옹은 유럽전역을 전쟁터로 만들어버립니다. 스스로 황제가 됩니다. 나폴레옹의 욕망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유럽전쟁속에 파멸의 길을 걷고 외로운 섬에서 홀로 사라졌습니다. 프랑스는 다시 왕정이 부활하고 다시 혁명이 일어나고 또 제정이 탄생하고 또 혁명을 하면서 지금에 이르런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과 이어지는 갖가지 혁명속에 프랑스는 깨어납니다. 프랑스 파리의 대대적인 모델링이 펼쳐집니다. 새로운 파리가 탄생합니다. 똥오줌으로 범벅이 됐던 파리의 거리가 정화됩니다. 국민들도 그 험난 정치적 여정을 겪고 엄청난 깨닳음을 얻습니다. 극단적인 대결도 느슨한 현실 안주도 나라의 발전을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것입니다. 왕이 군림하는 왕정도, 황제가 제압하는 제정도 아닌 그야말로 민주시민의 대표들이 운영하는 그런 공화정을 만든 것이죠.
프랑스에서 정치적 사회적 변화는 극심하고 부단한 흐름속에 나름 큰 결실을 얻었지만 상대적으로 문화예술적인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냥 옛것에 만족하고 변화를 두려워했습니다. 틀에박힌 화풍속에 새로운 물결을 거부했습니다. 오로지 기득권 세력인 화가들이 살롱전을 배경으로 확고하게 자신들만의 공고한 성을 쌓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로지 역사적 사실과 신화에 입각한 역사화와 초상화 종교화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풍경화 정물화 그리고 풍속화는 저급해서 작품이라 인정도 받지 못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를 중심으로 하는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온 프랑스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사회는 엄청나게 변화고 있었습니다. 정치적뿐 아니라 과학 기술도 상당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진기의 발명입니다. 요상하게 생긴 기계를 이용하면 그리고 싶은 사물이 그대로 재생됩니다. 며칠을 걸쳐 그린 그림보다 훨씬 세밀한 사진이 단 몇초 몇분만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당시 화가들은 망연자실합니다. 이제 그림 그려 밥먹고 살기는 불가능한 세상이 찾아왔다고 느낀 것입니다. 게다가 뉴턴의 광학이론이 나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빛의 현상에 대해 다양한 실험적 연구와 이론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물감을 힘들게 들고 다닐 필요가 없는 튜브물감이 만들어집니다. 물감을 튜브에 넣어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증기기차가 만들어져서 마차로 며칠 달려야 할 거리도 단 하루안에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정말 혁신적인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기득권 세력들은 이런 점을 모르거나 간과해버렸습니다.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는 세계라고 판단한 것이죠.
그렇지만 선각자들은 달랐습니다. 아니 기득권에 끼지못한 아웃사이더들 다시말해 루저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세상을 바로보는 눈이 생기고 새로운 물결과 사회환경을 파악하는 힘을 가진 것입니다. 그들은 캔버스 안에 그들만의 세계를 펼쳐 냈습니다. 사물은 항상 똑같은 형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빛이 변하면 사물들의 색체가 다양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지요. 물론 그 전에도 빛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그것을 화폭속에 다양하게 접목시키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색채의 원천인 빛의 흐름을 쫒기 시작합니다. 또한 상상속의 신화나 역사화에만 심취했던 상황에서 벗어나 시대상을 담기위해 노력했습니다. 현실을 도외시한 예술이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이지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마네의 풀밭위에 점심이나 올랭피아 같은 작품입니다. 대낮에 공원 풀밭에 신사 두명과 여인 두명이 식사를 하고 난 뒤의 모습입니다. 여인은 나체상태입니다. 당시 누드화는 신화속 여신의 차지였습니다. 하지만 마네는 거리의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당시 화풍을 능멸하는 짓으로 판단됐습니다. 신화속 여신의 나체에 열광하던 파리 시민들은 마네의 매춘부 나체 그림에 분노가 폭발해 버립니다. 마네는 처단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올랭피아도 마찬가집니다. 올랭피아는 당시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작품 춘희에 나오는 매춘부의 이름입니다. 그런 매춘부의 누드화를 큼직하게 그린 것입니다. 당시 돈 많은 파리의 브루조아들이 벌이는 매춘부와 정사를 작품속으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젊잖은 척 하면서도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그런 계층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기득권들은 당연히 분노하지요. 자신들의 일상을 표현한 것에 얼마나 놀라고 흥분했겠습니까. 그러니까 더욱 마네의 작품을 폄하하고 마네를 제거해야할 사회악으로 규정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마네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열정과 그의 화풍을 배운 모네 등 그의 후배들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인상주의입니다. 특히 모네의 해돋이 인상은 인상주의 작품의 대표적입니다. 해가 돋을 때 모습을 담은 것인데 당시 화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그냥 술에 취해 졸면서그리다 만 그런 그림으로 평가했습니다.당시 비평가들은 모네의그림에는 그림은 사라지고 인상만 남았다라고 악평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림 제목에 있는 인상을 따서 인상주의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인상주의는 예술의 예자도 모르면서 거저 기득권에 대항을 하는 하나의 패배자 예술가들의 집단으로 취급됐습니다. 하지만 세상 인식이 바뀌면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프랑스 아니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그런 화가들로 불립니다. 그당시 기성 화풍에 만족하고 안주했으면 지금 이 세상에 인상주의 그리고 그 이후 발전해 나가는 현대 미술 사조는 없을 런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그 시대에서는 힘들고 좌절하고 존재가치가 없었을런지는 몰라도 한 세대를 깨우치는 그런 선각자들이 있어 예술은 또 그렇게 발전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사회는 급격하게 변하는 데 아직 구태의연한 모습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집단이 바로 정치인들이 아닌가 판단합니다. 그들에게는 변화는 두렵습니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으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번 잡은 권력을 최대한 유지하고 평생 간직하느냐만이 유일한 목표처럼 보입니다. 자신들은 그안에 안주하고 있으니 그속만 보이겠지만 조금만 떨어져 한국의 정치판을 보면 참으로 암담하게 보입니다.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하면 내가 잘하고 있는데 왜 훼방질이냐 라면서 오히려 역정을 냅니다. 그리고 그런 세력들이 다시 모여 구시대적 집단을 조직합니다. 이른바 쌍팔년도에 자행됐던 구시대의 행위들이 아직도 권력유지에 활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세상 흐름에 역행하고도 그들은 자신이 그런 행위를 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마치 따뜻한 냄비속에 들어가서 졸고 있는 개구리처럼 말입니다.
그런 자세로는 사회적 욕구를 전혀 담아낼 수 없습니다. 세상은 지금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그런 세계입니다. 머지않아 평균수명이 백세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주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의 위치가 갈수록 위축되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엄청나게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국민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불안하고 피곤합니다.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한다는 긍정적인 소식속에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뉴스가 범벅이 되는 혼돈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은 자국 이기주의에 함몰돼 주변 약소국들을 꾸준하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혼란과 또 언제 전세값 등으로 거리로 내앉아야할 지도 모른다는 심적 압박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의대정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사들의 강대강 대립이 국민을 더욱 피곤하게 합니다.
국민들은 제대로 민심을 읽고 대처할 정치집단을 희구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정치집단은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 상황속에 아날로그식 아니 원시시대의 유품들을 간직하고 그것을 껴앉고 놓치 않으려는 그런 자세로서는 세상 민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컴퓨터 활용한다고 SNS 쓸 줄 안다고 시대의 흐름을 깨닳지는 못합니다. 그 정신속에 들어있는 세포가 변해야 합니다. 또한 정치라는 것 자체가 민심을 얻는 과정이라고 볼 때 절대 꼼수로 세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시대상을 읽어야 아니 제대로 읽어야 민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도를 걸으면서 부단히 자기혁신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정치가만이 세상 민심도 얻고 후세에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당대에서는 온갖 욕을 다 먹고 저질에다 패륜아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말년에 그의 작품과 그가 추구한 예술세계의 가치를 인정받고 지금은 인상주의 아버지라고 추앙받는 에두아르 마네처럼 말입니다.
2024년 3월 1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