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설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며 한 해의 무탈을 빌었다. 설이 되면 먼저
집안의 뿌리를 돌아보고, 그 다음 가까운 친지와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올리는 것이 오랜 풍습
이다. 요즘은 교통이 편리해져 먼 길도 마음만 먹으면 금세 닿지만, 예전에는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 몇십
\리 길을 걸어 다녔다고 한다. 눈이 내려 길이 꽁꽁 얼어붙기도 하고, 햇볕이 퍼지면 녹은 흙길이 질척여
고무신이 빠지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세배 길 또한 정성과 인내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요즈음은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디지털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인사는 문자와 영상 통화
로 대신된다. 먼 친척은 물론 가까운 이웃과의 인사도 휴대전화 화면 안에서 오간다. 나 또한 많은 지인에게
서 새해 인사를 받고 답장을 보냈다. 손가락 몇 번의 움직임으로 마음을 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에게서 이런 메시지가 왔다.
“제가 과문한지는 몰라도 오늘은 설날이지 새해는 아니잖아요?”
순간, “그럼 헌해인가요?”라고 답하고 싶은 마음이 스쳤다. 그러나 곧 멈추었다. 괜한 말 한마디가 공연한
논쟁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옛말에 참고 넘기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괜히
설의 아침을 시비로 흐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양력을 기준으로 모든 집안 행사를 치르는 분이다. 생일도, 제사도, 기념일도 모두 양력으로 지낸다.
역사적으로 1895년, 고종 때 양력이 공식 채택된 이후, ‘신정’이 새해의 첫날로 자리 잡았고 우리의 설은 한때
‘구정’이라 불리며 격하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의 고유 명절을 약화시키려는 정책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흐름 속에서 어떤 집안은 자연스레 양력 설을 쇠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이라는 말의 뿌리를 더듬어 보면, 단순히 해가 바뀌는 날 이상의 뜻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설’은
‘사리다’에서 왔다고 한다. 삼가고, 조심한다는 의미다. 또 ‘설을 쇠다’라는 표현은 몸가짐과 언행을 조심하여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뜻을 품고 있다. 그러니 설날은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한 해를 시작하며 마음을 다잡는
의식에 가깝다. 말과 행동을 경계하고, 자신을 낮추어 복을 맞이하겠다는 다짐의 날이다.
중국 사서(️ 《隋書 新羅傳》(Book of Sui – Silla section)《舊唐書 新羅傳》(Old Book of Tang – Silla section)
에는 신라에서 정월 초하루에 왕이 잔치를 베풀고 일월신에게 배례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는 설이이미 오래전
부터 국가적 의례이자 민간의 명절이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양력이 도입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농경 사회였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달의 움직임을 따르는 음력이 삶의 리듬에 더 가까웠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시기를 정하는
데에도 음력이 쓰였으니, 설 역시 그 흐름 속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음력 설만이 새해이고, 양력 1월 1일은 새해가 아니라고 따지고 싶지는 않다. 관습에 따르면 둘 다 새 출발
의 의미를 지닌 날일 것이다. 다만 설이라는 말 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오롯이 담겨 있다
는 점을 기억하고 싶다.
그날 나는 그에게 따로 답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나는 설을 제대로 쇠고 있는가. 몸가짐
을 삼가고, 언행을 조심하며, 한 해를 겸허히 시작하고 있는가.
설은 날짜가 아니라 마음의 자세인지도 모른다. 해가 바뀌는 날은 달력에 적히지만, 스스로를 경계하고 새롭게 하는
날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올해도 설을 쇠었다. 조용히, 그리고 삼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