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푸근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어서 모처럼 추위에 약해서 물주기를 삼가던 몇몇 관엽에 물을 주다가
직사광선에 노출되어 검게 탄 마리안느 이파리 몇 개를 무심코 손으로 따내었다.
화상 입은 이파리를 잡고 제치는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실팍한 줄기 가득 들어 있던 수액을 손에 묻히고 난 뒤라
기왕에 만진 것 따내고 씻지 싶어서 잎 색 나쁜 나머지 서너 잎을 마저 따내었다.
그리고는 수돗물을 틀어 여러 번 비누칠을 하고 씻었지만 손에 묻은 악취는 좀처럼 가시지를 않는다.
손 뿐만이 아니고 잘린 부위의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냄새가 금시 가게에 가득 퍼졌다.
거기다 딴엔 깨끗이 씻느라고 박박 문지른 것이 화근인지 옻을 타지 않는 피부인데도 손등이 슬슬 가렵기 시작한다.
일순 짜증이 가게에 퍼진 악취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애꿎은 화살을 남편에게 돌린다.
'왜 내가 진열해 놓은 대로 두면 될 걸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해서 멀쩡한 나무를 태우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내 평생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그러다 피식 쓸데없는 원망을 하고있는 자신에게 웃음이 난다.
따지고 보면 자식처럼 돌보아야할 녀석들을 두고 연말이랍시고 외출이 잦았던 내 탓이지 그게 누구 탓이랴?
어쩌면 저 녀석 저를 그곳에 옮겨 두었는데도 여러 날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내 무심함에 앙탈을 부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식물은 무조건 다 햇볕을 좋아한다고 믿는 남편에게 대개 그런 것이지 다는 아니라고,
음지식물이나 반음지식물은 너무 유리창 가까이 놓으면 화상을 입고 색도 나빠진다고 몇 번이나 설명을 해주고
어떤 것이 대표적인 반음지 식물인지 가르쳐줘도 번번이 잊어버리고 어쩌다 하루 가게를 부탁하면
상품 빠져나간 빈자리를 채운답시고 여린 녀석들을 창가로 옮겨놓곤 한다.
식물들이 살아가는 모양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 세상처럼
식물의 세계도 저마다 성격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굳이 들이나 산에까지 나가보지 않아도 가게에 앉은 몇 가지의 관엽이나 화초에서도
그런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녀석은 마리안느처럼 강한 햇볕에서 대번 잎 색이 나빠지기도 하고
반면 크로톤 같은 녀석은 강한 햇볕 아래서 잎 색이 더 고와지기도 한다.
또 실내에 들이면 비실비실 맥을 못 추던 녀석이 밖에 내어 놓으면 강단 있는 모습으로 살아나기도 하고
포인세티아처럼 크리스마스 꽃이니 당연히 추위에 강할 거라는 추측을 하지만 추위가 맹점인 의외성을 지닌 녀석도 있다.
문제의 마리안느란 녀석.
디펜바키아종의 하나인 녀석은 크림색 고운 반점과 둥근 타원형 이파리 모양이 예뻐서 웬만하면 빼지 않고 갖추어두는
수종인데 이름도 예쁘고 잎 색도 고운 녀석은 꺾지만 않으면 아무도 그 본색을 모를 만큼 이름처럼 얌전한 외모를 가졌다.
그런 녀석이 이파리 하나 따내면 이렇게 악취를 내뱉고 자칫 먹게되면 일시적으로 말을 못하게 하는 벙어리줄기를 가졌다.
그런 사실을 아는 나도 녀석의 해말간 얼굴을 보면 그런 사실을 깜빡 잊고 오늘 같은 실수를 하게 되는 데 누가 알겠는가?
더러 독성이나 좋지 않은 냄새를 품고 사는 나무가 있지만 대개 이름이나 겉모양에서 어느 정도의 낌새를 풍기는데 비해
마리안느는 겉모습이 너무 유순해서 저 악취가 더 황당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너무 연약해서 자기 방어장치를 더 첩첩이 마련해 두었을 수도 있다.
문득 내 살아가는 모양새는 어떨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건드리지 않으면 얌전하고 품행 방정한 여인 같지만 이파리 하나라도 꺾으면 여지없이 악취와 독성을 내뿜는
마리안느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여리고 순한 잎 색의 내부에 음흉하게 감춘 이중성과 나의 장삿속이 혹여 조금이라도 닮지는 않았는지....?
딴엔 자기방어랍시고 앵돌아진 내 처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순간이라도 불편하게 한적은 없었는지...?
그래서 그들이 내 가까이 오는 일을 망설이고 있지는 않은지...?
어느 나무인들 꺾이고 상처 입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살아가면서 혹여 누군가 내 작은 가지 하나쯤 부러뜨리더라도 뽀얀 진액 뱉어내 자신의 상처를 감싸며
잘린 줄기 아래서 뿌리 하나 뱉어내고 그 뿌리를 근간으로 새 가지를 만들어내는 고무나무는 어떨까?
홧증으로 동동거려 주변을 갑갑하게 하는 마리안느같은 사람이 아니라
항시 주변 공기 맑히며 살아가는 고무나무처럼 무던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지천명을 맞는 세모에서 한번 세워본다.
첫댓글 짝짝짝.... 여린듯하지만 꿋꿋하게 용감하게 험한 세상살이를 잘 헤쳐나가는 강한 우리 수선님 마리안느 덕분에 수선님의 고운 심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네요.
한 해가 끝나가는 시점이다보니 생각이 좀 많아지나 봅니다.더구나 이제 해 바뀌면 나이의 앞자리 숫자를 바꾸어야 한다 싶으니 내가 나이값을 제대로하고 살기는 하는지 착잡합니다요.
크헉 ~~ 수선님 앞자리 수가 이제는 5자가 되는 군요. 으짜쓰까나 나는 아직 3년이 남았는디..
마리안느를 거쳐 남편에게까지 다시 자신에게로 그래서 수선님이 좋으네요.결국은 나를 돌아보는것 ^^
ㅎㅎㅎ... 생각으로 반성은 많이하는 편인데 그게 생활에 얼마나 반영이 되고 있는지 따져보면 글쎄요. 자신있는 대답을 못하겠네요.여긴 어제 오후부터 비가 내립니다. 비 그치면 추워진다는데 건강 잘 살피세요.
화분 하나로 많은 걸 생각하셨군요. 그래요 그게 우리네들의 삶 아닌가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식물의 세계도 사람 세계랑 참 많이 닮았어요.생명체의 순환과정이 다 그렇게 비슷한지도 모르겠네요.행복한 날 되세요.
그렇군요. 많은 화초들이 햇볕을 사랑하는 줄 알았더니 그늘에서 짝사랑도 하는군요.^^ 오랜만에 글 반가웠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