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무언가를 위해 이토록 달려 본 일이 있을까.
끝없는 마라톤과도 같았던 삶 위에 홀로 서 있던 이소라 씨는 럭키를 만난 후 나아갈 힘을 얻었다.
청각 장애인의 귀가 되어 주는 도우미견과 그런 도우미견을 돌보는 사람 사이엔 반려를 넘어선 어떤 것이 있다.
빵! 총소리에 출발선을 박차며 그녀가 읊조린다.
‘네 덕분에 달린다. 너를 위해 달린다.’
그녀와 럭키의 나날
요란한 알람 소리가 소라 씨를 깨운다. 거실 한 쪽에선 TV가 뉴스를 전한다.
부산히 아침 준비를 하는 그녀에게 밥솥이 취사가 완료됐음을 알린다.
특별할 것 없는 아침 풍경 속 이소라 씨는 청각 장애인이다.
열병으로 청력을 잃은 소라 씨가 이처럼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건, 그녀 곁을 지키는 도우미견 ‘럭키’ 덕분이다.
“럭키는 청각 장애인 도우미견이에요. 보통 도우미견 하면 시각 장애인 도우미견을 많이 떠올리시고
럭키 같은 아이는 조금 생소하게 보시더라고요.”
시각 장애인 도우미견이 사람의 눈을 대신하듯이, 청각 장애인 도우미견은 듣는 데 어려움이 있는 반려인의 귀가 되어 준다.
올해 5년 차 노련한 도우미견 럭키는 알람과 초인종, 가전제품 알림음 등 생활 속 다양한 소리를 듣고 소라 씨에게 달려가 알려 준다.
“럭키를 만나기 전엔 알람을 듣지 못해 회사에 지각하기 일쑤였어요.
이제는 소리를 들은 럭키가 침대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니 도무지 깨지 않을 수가 없지요(웃음).”
칭찬을 받으면 받을수록 소라 씨에게 더 많은 걸 들려주려고 노력한다는 럭키. 럭키가 알려 주는 게 소리뿐만은 아니다.
얼마 전엔 열려 있던 현관문도 럭키 덕에 발견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라 씨다.
생활 속 불편함부터 예고 없이 벌어지는 사고까지,
청각 장애인의 생활 전반을 살피는 도우미견은 단순한 반려견이 아닌 신체의 일부 같은 존재다.
반려 그 이상임을
반려인을 이끌어야 하기에 대부분 대형견인 시각 장애인 도우미견과 달리,
예민한 청력이 조건인 청각 장애인 도우미견은 견종에 구애받지 않는다.
소형견인 슈나우저 럭키 또한 한국 장애인 도우미견 협회에서 우수한 청력을 인정받아 도우미견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3대 악마견 중 하나라는 슈나우저의 악명을 들은 터라 처음엔 내심 걱정스러웠다던 소라 씨.
그러나 염려가 무색하게 럭키는 소라 씨의 곁을 든든하게 지켰다.
발랄한 럭키는 외출용 노란 조끼를 입는 순간 의젓한 도우미견으로 다시 태어났다.
타지에서 홀로 외로웠던 소라 씨의 일상은 럭키라는 소울메이트를 만나 몇 배로 즐거워졌다.
그녀의 앨범이 럭키와 함께한 여행지 속 추억으로 빼곡하다.
그런데 행복해야 할 그들의 여행은 종종 편견과 무지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도우미견은 법적으로 모든 장소 출입이 허용되어 있다.
그러나 그녀와 럭키는 음식점부터 이동수단, 숙소까지 번번이 입장을 거절당했다.
그래도 럭키와의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 건,
다른 도우미견들이 소라 씨의 뒤를 따라 조금 더 편안하게 다녀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럭키와 함께하며 도우미견들이 마음껏 다니기 힘든 현실에 대해 알게 됐어요.
도우미견은 단순히 반려견이 아니에요. 장애인과 한 몸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애가 있는 자신조차 처음 럭키를 편견으로 대한 것에 반성하고 있다는 소라 씨.
럭키와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고 싶기에,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여행 다닐 거라며 미소 짓는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마라톤
이소라 씨는 도우미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매년 참가하는 럭키와의 마라톤은 그중 하나다.
“도우미견 인식 개선을 위해 어떤 일을 하면 될지 고민했어요.
그 와중에 럭키가 뛰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마라톤이라면 인식 개선에도 효과적이겠다 싶어서 참가하게 됐어요.”
처음엔 참가자들에게 피해가 될까 럭키를 안고 뛰었었다.
많은 사람들이 럭키와 소라 씨를 응원해 줬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다음 해부턴 시작점에서 같이 달렸다.
10km라는 긴 행렬을 씩씩하게 이끌어 주는 럭키를 보며 모두가 힘을 냈다.
지난 4년 간 매번 멋지게 기록을 경신해 온 소라 씨는 벌써 다음 마라톤 준비에 한창이다.
“럭키와 함께 뛰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럭키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았을 테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죠.
삶의 의욕을 선물해 준 럭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어려움은 있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는 럭키가 곁에 머무는 한 그녀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오늘도 소라 씨는 럭키와 함께 인생이라는 이름의 마라톤에 도전하고 있다.
첫댓글 아우 이뻐라 ㅠㅠ 천사댕댕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