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과 심풀은 발음은 닮았으되 삶의 결은 사뭇 다르다. 하나는 영어에서 건너온 니콘의 광고 카피처럼 세련된
옷을 입고 서 있고, 다른 하나는 “심심풀이 땅콩이요”를 외치던 기차 통로의 소리처럼 구수한 체온을 품고 있다.
비슷한 소리 속에 서로 다른 시간이 겹쳐 있다.
심플(simple)은 간단하고 단순하며 소박하다는 뜻을 지닌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본질만 남기는 태도다. 기능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가장 기본만을 남긴 카메라를 내놓겠다는 니콘의 ‘심플니콘’은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쓰지 않을
기능에 값을 매기지 않겠다는 선언, 덜어냄으로써 오히려 선명해지는 선택. 자동차로 치면 폭스바겐의 비틀을 떠올
리게 한다. 풍뎅이를 닮은 둥근 몸체, 과장 없는 선. 음료병 가운데는 코카콜라의 병이,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기꼬만
간장병이 그러하다. 오래도록 손에 쥐어도 질리지 않는 모양은 대개 복잡하지 않다. 심플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응축
이다. 덜어내는 데서 오는 깊이다.
글도 그렇다. 미사여구를 층층이 쌓기보다 단문으로 끝맺을 때 여운이 오래 남는다. 바람이 스치듯 지나가도 마음에
잔물결이 이는 글. 나는 가끔 그런 문장을 꿈꾼다. 취미가 글쓰기라 말해 놓고도 아무 때나 문장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생각과 경험의 실타래는 어느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필’이 꽂혀야 비로소 풀린다. 심플한 문장은 그때 태어난다. 말이
적어도 마음이 많을 때.
반면 심풀은 우리말 ‘심심풀이’의 약어다. 그 곁에는 으레 땅콩이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풍경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 귀에는 아직도 그 소리가 선하다. 6.25 전후, 화로에 석탄을 퍼넣고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던 기차 안.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며 외치던 “심심풀이 땅콩이요.” 몇 시간을 기어가듯 달리던 여정 속에서 나
는 한 번도 심심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다만 그 땅콩을 사 먹을 돈이 없었을 뿐이다.
심플이 덜어냄의 미학이라면, 심풀은 더함의 정서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 길고 느린 시간을 견디게 하던 작은 알갱이.
한 줌의 땅콩은 무료함을 씹어 삼키게 해 주었고, 사람들 사이의 어색함을 바삭하게 부수어 주었다. 심플이 머리로 이해
하는 가치라면, 심풀은 몸으로 기억하는 온기다.
나는 요즘도 글을 쓰며 두 단어를 떠올린다. 문장은 심플해야 하지만, 마음은 심풀처럼 고소해야 한다고. 군더더기를 덜어
내되, 사람 냄새까지 걷어내지는 말자고. 결국 삶이란 복잡한 기능을 자랑하는 기계가 아니라, 오래 쥐고 있어도 편안한
물건과도 같지 않은가. 덜어낼수록 선명해지고, 나눌수록 따뜻해지는 것.
심플과 심풀. 닮은 소리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한 줄을 덜어내고, 한 줌의 추억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