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545장)
※말씀: 로마서 10장 9-13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라”(10절)
■ 주님의 뜻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J.I. 패커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지만, 우리 안에 드러난 그 모습대로 그분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____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밑줄에 재판관, 아버지, 예술가, 창조자, 친구 같은 단어를 채울지도 모릅니다. 비록 성경에서 가져온 말이지만 인간의 유한한 이해로 해석된 그런 단어들이 정말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묘사하는 말일까요? 그 단어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전능하심, 무소부재하심을 표현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제한된 인간적인 지식에만 의존해 그분을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님을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 천장에 그려 넣은 대로 상상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묘사는 경외감은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나, 절대로 하나님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알기 원한다면, 평생 그분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분과 지속적으로 동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을 통해 부지런히 그분을 알아가야 합니다. .
우리의 긍정적인 사고는 정말 중요합니다. “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열정이 있습니다. 하려고 합니다. 환경이 어렵고, 자본이 적고, 불리한 조건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도전합니다. 그리고 성취합니다. 그러나 “해도 안 된다”는 부정적인 사람들은 가장 좋은 조건 속에서도 도전하지 못합니다. 성경적인 말씀으로 해석하면 히브리적 사고와 헬라적 사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적 사고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사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행위를 말합니다. 헬라적 사고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적인 사고를 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의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입니다. 이것은 절대 변할 수 없는 논리입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입니다. 이것은 헬라적 사고입니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철저하게 논리적이고 이론적이므로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지 그것이 열이 되거나 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적인 사고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면서 동시에 열도 될 수 있고, 백도 될 수 있고, 천도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적 사고입니다. 믿음의 사고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히브리적 사고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세계에서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고 하는 이 법칙을 무시하면 미신이 되고 맙니다. 믿음의 세계에서도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열도 될 수 있고, 백도 될 수 있고, 천도 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믿음의 사람들은 성경적인 사고를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곳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감탄을 합니다. 세상이 왜 감당하지 못하느냐면 세상 사람들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인 줄만 아는데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인 동시에 열도 되고, 백도 되고, 천도 된다고 믿고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세계를 만들어갔습니다. 헬라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 더하기 하나를 열이다 백이다 하면 틀렸다, 무식하다, 그리고 문화를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다 깨뜨리고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인 동시에 열도 되고 백도 되고 천도 된다고 믿고 행동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사고입니다. 이 성경적인 믿음의 틀을 갖고 세상에서 승리해 가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 주님께 기도
하나님,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마다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믿음의 눈으로, 긍정적이고 성경적인 사고를 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