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西安)출장 (2016. 08)
숙소 주변의 시내 풍경
子曰(자왈).“爲命(위명)에 裨諶(비침)이 草創之(초창지)하고 世叔(세숙)이 討論之(토론지)하고 行人子 羽修飾之(행인자 우수식지)하고 東里子産(동리자산)이 潤色之(윤색지)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鄭나라에서> 辭命(사명 : 외교문서)을 만들 적에 裨諶(비침)이 초고를 만들고, 世叔(세숙)이 토론하고, 行人인 子羽(자우)가 修飾(수식)을 하고, 東里의 子産이 潤色을하였다.
(裨 : 도울 비 諶 : 믿을 침, 진실로 심 修飾(수식) : 교열 교정의 뜻)
-논어 헌문 9장-
今釋(茶山의 해석)
공자께서는“鄭나라는 오교문서의 작성에 있어서, 비침이 초고를 쓰고, 세숙이 내용을 검토한 후에 의견을 제시하고, 외교관 자우가 字句(자구)를 수정하고, 마지막으로 자산이 다듬어 윤색을 가했다”라고 하여, 鄭나라의 네 사람 어진 대부가 외교문서의 작성에 자신들의 장점을 협업한 것을 칭찬하고 있다.
朱註(朱子의 집주)
裨諶以下四人은 皆鄭大夫라 草는 略也요 創은 造也니 謂造爲草藁也라 世叔은 游吉也니 春秋傳에 作子大叔이라 討는 尋究也요 論은 講議也라 行人은 掌使之官이요 子羽는 公孫揮也라 修飾은 謂增損之라 東里는 地名이니 子産所居也라 潤色은 謂加以文采也라 鄭國之爲辭命에 必更(갱)此四賢之手而成하니 詳審精密하여 各盡所長이라 是以로 應對諸侯에 鮮有敗事라 孔子言此는 蓋善之也시니라. (使 사신으로 보낼 시)
裨諶(비침)이하 4인은 모두 鄭(정)나라 대부이다. 草(초)는 대략이요, 創(창)은 처음 만드는 것이니, 처음으로 草稿(초고)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世叔(세숙)은 游吉(유길)인데, 「춘추전」에는‘子大(태)叔’으로 되어있다. 討(토)는 찾아내고 연구하는 것이요, 論(논)은 강론하는 것이다. 行人은 사신의 임무를 맡은 벼슬(외교관)이고, 子羽(자우)는 公孫揮(공손휘)이다. 修飾(수식)은 보충하고 삭제하는 것이다. 東里는 땅 이름이니 자산이 거처하던 곳이다. 潤色은 문체를 더하는 것을 말한다. 鄭나라에서는 외교문서(辭命)를 작성함에 반드시 이 네 賢人의 손을 거쳐 이루어져서 상세히 살피고 정밀하여 각각의 장점을 다하니 이로써 제후를 응대함에 실패하는 일이 적었다. 공자께서 이것을 말씀한 것은 그것을 좋게 여기신 것이다.
家苑 註(가원 이윤숙 선생의 집주)
공자가 鄭(정)나라의 정사를 맡았던 네 명의 대부들을 칭찬하고 있는 내용이다. 자산(기원전 585?~ 522?년)은 법치주의 확립과 개혁정책으로, 강대국인 晉(진)나라와 楚(초)나라 사이에 끼여 있던 약소국 鄭나라를 50여 년간 온존하게 지켜낸 인물이다(공야장편 15장 해설 참조).
춘추시대는 각 제후국들이 본격적으로 부국강병을 추구하던 약육강식의 시대인지라 많은 약소국들이 강대국에게 침탈되어 병합되는 상황이었다. 약소국이 나라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인근 강대국과의 외교적 교섭을 통해 평화협약을 잘 체결하여야 했다.
이에 內治(내치)와 더불어 외교적 능력이 높이 평가받는 시대였다. 鄭나라가 대표적인 나라이다. 정나라는 총리격인 자산의 지휘 하에 각 관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일을 맡겼으니 능력이 통합적으로 발휘되어 약소국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잘 보존하는 큰 공적을 이루었다.
춘추좌전 襄公(양공) 31년 편에 衛(위)나라의 北宮文子(북궁문자)가“정나라는 禮가 있어 수 세대의 복이니 큰 나라가 정나라를 칠 일이 없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바로 위의 내용을 두고 하는 말이다.
1, 爲命(위명) :‘爲(위)’는‘제작’,‘命(명)’은‘使者(사자)가 외국을 방문하러 가기위해 준비하는 외교문서’
2, 世叔(세숙) : 鄭나라의 대부로, 이름은 游吉(유길), ⟪좌전⟫⟨양공31년⟩에 나오는 太叔(태숙)과 동일 인물이다. 고대에는‘太’와‘世’두 자가 서로 통용 되었다.
3, 討論(토론) : 요즘 여러 사람이 모여 의논하는 토론과는 달리, 한 사람이 검토․연구한 후에 의견을 제출하는 것.
오늘도 고운 날 되시고 행복하십시오.~
_()_나무아미타불_()_
-碧 松(智 㒤)-
행복하십시오!
첫댓글 외교문서도 한 사람의 창작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협의와 분업, 공동참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중국에서 역경을 할 때 그렇게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지혜를 빌어서 공동번역한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