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발상이라는 상식밖의 비하를 하는데요, 자신의 의견은 뭐 대단한 발상인것처럼 만드는 군요. 욕하는 걸로 들리니 취소해 주시고요.
달가님이 왜 그렇게 신라가 당을 끌어들인 것을 옹호하는 지 모르겠네요. 고구려, 백제가 외세라고 했지만, 그 역시 신라가 당을 끌어들인것을 옹호하는 괘변이라고 봅니다. 외세라지만, 고구려,백제,신라의 문화권과 중국의 문화권을 엄연히 구별됩니다. 신라야 당연히 고구려나 백제, 당이나 모두 다른 나라라고 여겼을테지요.
막말로 신라인 자기들이 아둥바둥 살려고, 당의 고구려 공격을 도운 것을, 우리가 왜 삼국통일이라고 불러 주어야 하느냐 이말입니다. 엄연히 고구려 멸망 후의 격동기에 신라가 기회를 잡은 것을 삼국통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는데, 그러한 것과 신라에게 백제나 고구려나 당이나 같은 외세였다고 하는 것이 뭔 상관입니까?
신라가 어떤 선택을 했든, 그것은 우리에게 오류였고, 우리가 신라의 입장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 정당성을 인정해 줄 수는 없는 겁니다. "역사를 바라볼 때 그 당시 사람이 되본다" 고 하더라도, 잘못된 선택까지 용서되는 건 아니지요. 심하게 이야기해서 신라 사람들이 뭘 생각했던지 간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군요. 조각난 50개의 대한민국 (이런 미치광이 표현이 어디있는가?) 이 나중에 고대를 어떻게 재조명할지 한번 두고 볼까요?
달가님이 써놓은 역사 해석의 관점은 역사를 생각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 알고 있으니, 그 정도로 하시죠.
쟁점은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표현이 그 당시에 대한 적당한 표현이고, 정당한 표현인가 하는 것입니다.
쟁점이 번져서 신라가 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인 것이 옳은가라는 것까지 논란이 된다면, 잘못된 것이다 라는 입장에 선다, 이겁니다..
보십시요. 고려에선 발해의 문화 유물 흔적이 별로 보이질 않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고려에선 발해 유민들에게 고려의 것만 강요했다는 뜻이겠지요. 신라는 고구려 백제 유민을 받아들여 자국 문화와 결합시켰습니다. 신라의 포용성은 고려보다 좋았습니다. 정말 이해 못하시는군요.
삼국사기 좀 보십시요. 문무왕은 666년에 고구려를 공격하고자 당에 군사 요청을 합니다. 고구려를 멸망 시키려는 주체는 나당이 공동이지 당이 혼자 다 하고 신라가 밥만주면서 거든게 아닙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엔 김유신이 일찍이 삼한 통일의 보부를 가지고 산에 들어가 수련도 했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릴 하시는군요. 고구려 백제 유민이 신라에 들어와봤자 신라 영토에서 비율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문화의 전파는 사람의 이동입니다. 소말리아가 아무리 문화적으로 뒤쳐졌어도 대한민국 사람이 거기 간다고 거기가 금새 대한민국 되는거 아닙니다. 상식선에서 말 좀 하시지요.
영토보다 정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신라 왕조가 포용성이 있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고구려, 백제 출신은 분명히 신라의 주류에 편입되지 못했고 후기 신라 문화가 고구려 문화까지 융화되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백제와 신라 두 나라의 문화가 융합된 결과물이 석굴암이나 불국사 아닐까요? 신라는 고구려,
백제 유민은 물론이고 자국 내에서도 차별을 합니다. 골품제에 의한 신분 차별, 서울(경주)와 지방 차별. 그 결과가 고구려와 백제의 부활과 후삼국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남북국 시대 태평성대 속에서 신라가 많은 문화 유산을 남긴 것은 평가해야겠지요. 그러나 신라나 근세조선은 사대주의와 중국화 속에서 한계를 드러
"신라는 과연 삼국을 통일하였는가"가 본래 주제였죠. 저는 영토적으로 통일을 이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통일신라 시기의 영토에서 한주는 대개 옛 고구려 땅이고 웅주, 전주, 무주는 옛 백제땅으로 보입니다. 예전에도 수차례 말씀드린 바가 있지만 신라는 정서적이나 민족적 통일을 이룩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통일
만약 신라가 삼국통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고려 또한 삼국통일을 이룩한 것은 아니라고 봐야 되는 셈입니다. 과거 신라의 영토 내에서 나온 것이 후삼국이며 고려는 이들을 다시 통일하므로 신라의 경우도 당시의 일을 삼국통일이라 부르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라가 지역(고구려 백제유민)들에세 차별을 해서 후삼국이 되었다 그 말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골품제는 같은 원신라인도 차별하는 전근대사회에 볼수 있는 신분제의 한 모습일뿐니다 조선시대까지 양반계층까지 신분제가 존재했습니다 수도와 지역의 차별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있었으며 특정지역에 대한
차별과 우대는 어느시대 아니 어느국가라도 다 있었던 문제입니다 이런 차별보다 신라말기의 혼란으로 지역에 등장한 호족세력이 자신을 세우기 위한 명분으로 내세웠고 그 시대의 혼란에 동조했던 그 지역사람들이 거기에 호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전에는 일단 모두 어느정도 신라인였다고 봅니다 물론 지역성을 배제
신농님 지적처럼 영토적 통일을 따진다면, 고려의 후삼국통일은 완성된 것이 맞고, 고구려 멸망 후의 신라는 삼국통일을 한것이 아닙니다. 고려는 후삼국의 영토를 넘어서서 북방으로 더 진출했고, 신라는 님께서 고구려 땅이라고 지적하신 한주에 대한 지배권 확립도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신라의 골품 차별은 백제 고구려인한테만 한게 아니라 골품을 가지지 못한 신라 영토안의 모든 사람들에 해당된겁니다. 그래서 3최가 골품이 없어서 높은 관직 못얻고 은둔생활한거 아닙니까. 자부심 하나로 따지면 또 고려 조선은 통일왕조가 아닙니다. 조선은 사대를 지향했고 고려또한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것 참.. 고려, 조선는 스스로 자부심이 별로 강하지 못했다 라는 새로운 주장을 하시는 겁니까? 꽤 역사를 아시는 분이 왜 그렇게 왜곡까지 하십니까? 제가 인용한 한예찬님의 자부심 이야기에서의 핵심은 자부심이라는 단어뿐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문명권이라는 단어임을 주의하십시요.
말 뜻을 못알아 듣습니까? 계승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이었고 통일 왕조다운 포용성을 보여줬다는 겁니다.
유민들이 들어왔으면 당연히 그들의 문화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으니, 당연히 신라의 문화에 나오겠지요. 그걸 가지고 삼국을 통일하며 통일 왕조 다운 태도를 보인거라 말하면 곤란하죠
보십시요. 고려에선 발해의 문화 유물 흔적이 별로 보이질 않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고려에선 발해 유민들에게 고려의 것만 강요했다는 뜻이겠지요. 신라는 고구려 백제 유민을 받아들여 자국 문화와 결합시켰습니다. 신라의 포용성은 고려보다 좋았습니다. 정말 이해 못하시는군요.
달가님 제 말 뜻도 못 알아듣는군요. 계승의식을 가졌다는 말도 의심스럽고, 역사는 신라 혼자만 이끈것도 아니고, 도리어 당을 도와 고구려 멸망 시키고, 그 공백기의 한켠을 차지했는데,
그것은 신라의 포용성이 아니라, 그 유민들의 문화를 압도할 문화 역량의 부족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이해 못한다 어쩐다 는 표현 자제바랍니다.
삼국사기 좀 보십시요. 문무왕은 666년에 고구려를 공격하고자 당에 군사 요청을 합니다. 고구려를 멸망 시키려는 주체는 나당이 공동이지 당이 혼자 다 하고 신라가 밥만주면서 거든게 아닙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엔 김유신이 일찍이 삼한 통일의 보부를 가지고 산에 들어가 수련도 했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발해의 경우는 그들이 그들의 터전에서 몸만 나왔다 보면 될 것이고, 신라의 경우 그 유민들은 그 자리에 거의 남아있었다는 차이 때문임을 알려드립니다.
이것 보시요. 당이 고구려와 휴전하면, 고구려의 다음 목표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삼한 통일이 뭘 의미하든 그건 삼국통일의 의미 부여는 될수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릴 하시는군요. 고구려 백제 유민이 신라에 들어와봤자 신라 영토에서 비율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문화의 전파는 사람의 이동입니다. 소말리아가 아무리 문화적으로 뒤쳐졌어도 대한민국 사람이 거기 간다고 거기가 금새 대한민국 되는거 아닙니다. 상식선에서 말 좀 하시지요.
뭔소리를 하는 건지. 자꾸 상식 같은 비하적 발언 그만 하시죠. 지금 언급한 내용이 논쟁의 본질은 아닌데요. 유민의 숫자가 얼마 안된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 소말리아가 대한민국은 안되겠지만, 대한민국 문화의 영향은 엄청 받겠죠.
신라의 포용성을 말하는 겁니다. 얼마 안되는 비율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문화까지 계속 유지해도록 해준 신라의 포용성을 말하는 겁니다. 그정도는 되어야 통일왕조 다운 포용성이라 말할 수 있겠죠.
유민들의 비율이 얼마 안된다는 건 왜곡의 소지가 많아 보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 포용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울테고, 그들을 동화시킬 문화역량의 미달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포용성으로 따지면 발해가 신라보다 더 월등합니다.
무조건 신라는 삼국통일했다는 전제하에, 이것 저것 죄다 통일왕조다운 특징이라고 우기고, 통일왕조답다고 우기면 곤란합니다.
영토보다 정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신라 왕조가 포용성이 있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고구려, 백제 출신은 분명히 신라의 주류에 편입되지 못했고 후기 신라 문화가 고구려 문화까지 융화되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백제와 신라 두 나라의 문화가 융합된 결과물이 석굴암이나 불국사 아닐까요? 신라는 고구려,
백제 유민은 물론이고 자국 내에서도 차별을 합니다. 골품제에 의한 신분 차별, 서울(경주)와 지방 차별. 그 결과가 고구려와 백제의 부활과 후삼국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남북국 시대 태평성대 속에서 신라가 많은 문화 유산을 남긴 것은 평가해야겠지요. 그러나 신라나 근세조선은 사대주의와 중국화 속에서 한계를 드러
냅니다. 물론, 신라나 조선도 한국사에 끼친 공로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건 인정하지만 우리가 고구려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게도 굴하지 않고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과 그 자부심을 뒷받침할 힘(군사, 경제,문화 모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라는 과연 삼국을 통일하였는가"가 본래 주제였죠. 저는 영토적으로 통일을 이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통일신라 시기의 영토에서 한주는 대개 옛 고구려 땅이고 웅주, 전주, 무주는 옛 백제땅으로 보입니다. 예전에도 수차례 말씀드린 바가 있지만 신라는 정서적이나 민족적 통일을 이룩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통일
신라라는 국가가 통일을 이룩했다고 해도 정서적, 민족적 통일을 이룩하지는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것이 아니라 백제땅만 차지했다면 궁예는 "고려"를 건국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신라가 삼국통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고려 또한 삼국통일을 이룩한 것은 아니라고 봐야 되는 셈입니다. 과거 신라의 영토 내에서 나온 것이 후삼국이며 고려는 이들을 다시 통일하므로 신라의 경우도 당시의 일을 삼국통일이라 부르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라가 지역(고구려 백제유민)들에세 차별을 해서 후삼국이 되었다 그 말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골품제는 같은 원신라인도 차별하는 전근대사회에 볼수 있는 신분제의 한 모습일뿐니다 조선시대까지 양반계층까지 신분제가 존재했습니다 수도와 지역의 차별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있었으며 특정지역에 대한
차별과 우대는 어느시대 아니 어느국가라도 다 있었던 문제입니다 이런 차별보다 신라말기의 혼란으로 지역에 등장한 호족세력이 자신을 세우기 위한 명분으로 내세웠고 그 시대의 혼란에 동조했던 그 지역사람들이 거기에 호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전에는 일단 모두 어느정도 신라인였다고 봅니다 물론 지역성을 배제
신농님 지적처럼 영토적 통일을 따진다면, 고려의 후삼국통일은 완성된 것이 맞고, 고구려 멸망 후의 신라는 삼국통일을 한것이 아닙니다. 고려는 후삼국의 영토를 넘어서서 북방으로 더 진출했고, 신라는 님께서 고구려 땅이라고 지적하신 한주에 대한 지배권 확립도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다들 언급해주신 고구려 백제 유민에 대한 차별과 골품제에 의한 차별, 조선 양천제의 차별을 똑같은 차별이다 라고 언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각 시대마다 그 차별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고, 그들이 내세웠던 명분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군요..
한예찬님 언급처럼, 고구려의 자부심과 그 자부심을 뒷받침할 힘(군사, 경제,문화 모두)은 하나의 문명권에서 나온 것이고, 고구려 멸망 후의 신라는 그 문명권의 파괴속에서 하나의 기회를 잡은 것이지, 삼국통일이라고 추켜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라의 골품 차별은 백제 고구려인한테만 한게 아니라 골품을 가지지 못한 신라 영토안의 모든 사람들에 해당된겁니다. 그래서 3최가 골품이 없어서 높은 관직 못얻고 은둔생활한거 아닙니까. 자부심 하나로 따지면 또 고려 조선은 통일왕조가 아닙니다. 조선은 사대를 지향했고 고려또한 지배를 받았습니다.
고려 조선은 자부심이 별로 강하지 못했으니 통일 왕조가 아니군요.
이것 참.. 고려, 조선는 스스로 자부심이 별로 강하지 못했다 라는 새로운 주장을 하시는 겁니까? 꽤 역사를 아시는 분이 왜 그렇게 왜곡까지 하십니까? 제가 인용한 한예찬님의 자부심 이야기에서의 핵심은 자부심이라는 단어뿐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문명권이라는 단어임을 주의하십시요.
모두의 말이 다 옳습니다. 다들 자기식으로 해석을 하나 틀린말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 당시에 산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여. 이렇게 토론하여 나중에 합의를 봐서 결론이 된것이 새로운 역사가 될것입니다. 아무쪼록 삼국의 역사에 더욱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바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