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포
철 지난 모포해수욕장(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리)은 여행객의 발길이 끊겨 고요하다. 해가 서둘러 지는 동해의 저녁,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종이컵 하나씩을 손에 들고 집 앞에 앉았다. 뽀얀 눈동자에 비치는 바다 뒤로 '오늘'이 꿀꺽 넘어간다.
포항을 찾은 이들은 모포(牟浦·다른 지역보다 봄에 보리가 일찍 난다고 이런 이름을 얻었다)에 잘 들르지 않는다. 부산 해운대만큼 화려한 북부해수욕장, 일출 명소 호미곶, 과메기로 유명한 구룡포…. 놀고 먹기 좋은 바닷가 휴양지가 지척인데 외지고 작은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올 리 없는 모양이다. 포항시에서 낸 지도에도 모포는 찾을 길이 없다. 이 작은 해수욕장에 굳이 찾아드는 이들은 사람 많은 데를 억지로 피해 다니는, 호젓한 취향의 소유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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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 모포‘해정회식당’아귀수육.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저녁 마실 나온 할머니들에게 "뭣 하러 왔소?"란 질문을 대여섯 번쯤 받은 후 '해정회식당'에 닿았다. 모포초등학교에서 빨간 등대가 있는 방파제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식당 앞엔 곧 떠날 듯한 배 두 척이 나란히 서 있다. 바닷가 옆, 통나무로 만든 식탁에선 아저씨 네 명이 곰 발바닥만한 굴을 막걸리와 함께 해치우는 중이다.
"아구(아귀)가 한 주 전부터 많이 잡히는데예, 점심때 다 팔아서 없어예. 우리 아저씨가 잠수하면 굴또 따아고 하는데 오늘은 쪼매 늦어서예…. 내일 오실 거면 아저씨한테 굴 따아라카고요."
주인 남경주(45)씨에게 다음날 아귀와 굴을 꼭 남겨두겠다는 다짐을 받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튿날 점심, 시커먼 잠수복을 입은 '아저씨'가 바구니 한가득 굴을 잡아다가 성큼성큼 식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옆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남씨는 "아귀는 수육이 맛있다"고 권했다. 포항 사람들은 아귀찜만 찾는 서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맛있고 쫄깃한 아귀를 매운 양념과 콩나물로 범벅해서 먹으면 무슨 맛이냐는 것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대신 좋은 아귀가 들어오면 일단 수육을 만든다. 한 마리를 대가리에서 꼬리까지 큼직하게 잘라 삶은 다음 올통볼통한 뼈 사이사이를 열심히 발라먹는다.
수박만한 접시에 산산이 분해된 아귀가 흰 속살을 드러내며 하나 가득 담겨 나왔다. 밍밍하게 간한 부추 겉절이와 김 풀풀 나는 데친 부추도 따라왔다. 아귀 한 점을 데친 부추로 돌돌 감싸서 간장 살짝 찍어 입어 넣었다. 쫄깃하고 고소하고 통통한 육질이 입안에 퍼진다. 처음엔 체면 차리느라 젓가락으로 살살 먹었지만, 어느 순간부턴 엄지 검지로 움켜잡고 살 한 점 놓칠세라 열심히 뜯어 먹게 된다.
아귀 수육의 절정은 입에서 참기름 뭉치처럼 녹는 '애'다. 생선 간을 일컫는 '애'는 냉동시키면 금세 녹아버린다(푸석푸석해진다). 서울선 쉽게 먹지 못하는, 귀한 부위다. 8㎝ 남짓한 애를 손톱만한 크기로 잘라 젓가락에 올려 입에 쏙쏙 넣었다.
"아이고, 애도 먹을 줄 알아예? 나는 경북 청송이 고향이거든예.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생선 이름 외우는 것도 힘들어예."
무슨 사연인지 바닷가에 살게 된 산골 아지매가 설(說)을 풀어놓는 사이 '아저씨'는 생굴을 쑥 내밀었다. 해변서 250m쯤 배 타고 나가 바다 아래로 7m 잠수해 방금 따왔단다. "엊그제까지는 산란기라 통통한 게 터질 것 같던데 이제는 '우유'를 다 뿜어버려서 푹 꺼졌다"고 안타까워하며 내민 굴은 씨름 선수 손바닥만큼 컸다. 도시 사람들은 산란기인 5~8월에 독이 있을 수 있다고 피하는데 바닷사람들은 통통하게 오른 굴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아무것도 찍지 말고 그냥 드셔요. 뭐든지 재료 그대로 먹는 게 제일루 맛있다 아입니꺼."
손대지 않을수록 맛이 사는 싱싱한 재료들 덕분에 산골 아주머니가 차려내는 해산물 한 상이 충분히 맛깔지다. 아귀수육 2만5000원, 자연산 생굴(5개) 2만원.
첫댓글 아귀 수육!! 먹음직 스럽네요
잘 보았습니다
모포중에 제일은 군용 모포가 일품인데 여기 모포는 아귀가 일품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