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 주려는 사람이 있을까

지나친 절세 시도가 기업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특히 세금을 적게 내려고 이익을 줄이는 방식으로 회계처리를 하다가 갑자기 위기를 맞은 기업은 비싼 이자를 내고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DBR 그래픽 |
‘이 세상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죽음과 세금을 피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세금을 피하거나 줄여보려고 애를 쓴다. 최근 세계 각국 정부의 과세 규정이 날로 엄격해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본사를 조세 회피 지역으로 이전하는 추세다. 직원들에게 현금 보너스 대신 미술품 등을 지급하는 편법을 쓰는 회사도 많다.
하지만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금을 덜 내려는 시도 자체가 기업의 본능이라 해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며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세금을 줄인다 해도 그 정도가 지나치면 절약한 돈 이상으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그는 이익을 줄여 회계처리를 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줄이려는 시도는 장기적으로 해당 기업에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당 기업이 갑작스러운 자금난에 빠지면 수익성이 낮은 회사에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이 당연히 없을 테고, 설사 돈을 빌린다 해도 조달 금리가 매우 높다는 이유에서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5호(4월 15일자)에 실린 최 교수의 글을 간추린다.
○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숨바꼭질 영국 옥스퍼드대 기업세제센터는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다국적 기업 5000개를 조사한 결과, 이 중 6%가 세제 혜택을 이유로 타국으로 본사를 이전했다고 발표했다. 각국 정부는 세금을 더 걷기 위해 기업들을 옥죄고, 기업들은 이를 피해 점점 외국으로 벗어나려는 추세가 뚜렷하다.
경제위기 때문에 세수가 줄었는데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의 돈을 찍어내야만 하는 미국 정부는 재정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으려 안달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5월 조세 피난처를 이용한 탈세와의 전쟁에 돌입하겠다며 “외국으로 일자리를 옮기는 기업들에는 세금 혜택을 중단하고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는 과거 미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의 강력한 발언이다. 미국 정부는 또 국세청에서 탈세 조사 분야를 담당하는 인력을 무려 800명 늘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미국 의회까지 가세했다. 미 의회는 올해 조세 피난처 경유 여부에 관계없이 본사가 위치한 국가가 어디냐에 따라 세금을 물리겠다는 소위 ‘도겟 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세무조사를 강화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선언 이후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구글, HP, 오라클 등 미국 대기업들이 일제히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타이코, 잉거솔랜드 등을 포함한 10여 개 기업은 본사의 외국 이전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영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영국은 원래 소득세율이 매우 높은 나라다. 이 때문에 영국 기업 중에는 이웃 나라이자 문화가 비슷한 아일랜드로 본사를 옮기거나, 거주 환경이 좋고 세율도 낮은 스위스로 본사를 옮기는 회사가 많다. 맥도널드도 최근 유럽 본사를 영국에서 스위스로 옮겼다.
또 영국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현금 보수 대신 골동품, 미술품, 귀금속 등을 종종 지급한다. 개인들의 소득세 납부 금액을 줄이기 위해서다. 심지어 외국으로 국적을 바꾸는 영국인도 꽤 많다. 영국 정부가 2010년부터 소득세 최고 세율을 40%에서 50%로 높인다고 하자 국적 변경 추세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 디아지오코리아의 모기업인 영국 디아지오도 세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국 디아지오 또한 수익성 높은 사업의 대부분을 해외의 조세 피난처나 세율이 낮은 국가에 페이퍼컴퍼니나 자회사를 세워 이전했다. 이를 통해 디아지오는 지난 10년간 영국 정부에 평균 순이익의 2% 정도만을 세금으로 내면서 사회 각계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디아지오와 비슷한 기업이 속속 등장하자 최근 영국 정부는 조세 회피 방지 부서를 따로 설립해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 KFC가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하지만 무조건 세금을 적게 내려는 기업의 시도가 그 기업에 항상 이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특히 세금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서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즉 적정 금액을 납부하는 일 못지않게 납부 방법의 문제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중국에 진출한 KFC와 맥도널드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1987년 중국에 진출한 KFC는 현재 중국 최대의 레스토랑 체인으로 자리 잡았다. 점포 한 개당 연평균 매출액이 150만 달러(약 18억 원) 정도로 중국의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다. 반면 1991년 중국에 진출한 맥도널드는 점포 수나 매출액 규모에서 KFC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는 지방정부에 대부분의 세금을 납부하기로 한 KFC의 전략과 깊은 관련이 있다. KFC의 중국 본부는 상하이에 있다. 하지만 KFC는 지역마다 별도의 자회사를 두고 중국의 각 성에 모두 진출했다. 당연히 각 성에서 발생한 이익에 대한 세금을 해당 성 정부에 냈다.
반면 베이징에 본사를 둔 맥도널드는 중국 내 모든 사업을 베이징 본부에서 관할하고 있다. 그 결과 이익도 본사에서 집계하고 대부분의 세금 또한 중국 중앙정부에 냈다.
지방정부에 세금을 납부하는 전략을 취한 KFC는 각 성 정부로부터 많은 협조를 얻었고, 점포 설립 허가도 비교적 쉽게 따냈다. 점포 수를 늘리는 일도 순조로웠고 지역사회에도 쉽게 뿌리내렸다. 반면 맥도널드는 중국 지방정부의 비협조와 무관심 때문에 아직까지도 베이징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진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내 서로 다른 성들은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특성, 풍습, 소득수준, 인구 구성비율 등의 차이가 심하다. 하지만 맥도널드는 다른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처럼 중국 전체를 하나의 시장으로만 생각했다. 중국 중앙정부의 협조만 얻으면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처럼 거대한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중앙정부 외에도 지방정부 및 지역사회와의 돈독한 관계 형성이 필수라는 사실을 간과한 셈이다.
○ 한국 기업들이 배워야 할 교훈한국 기업들 또한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국가별, 지역별로 다른 세제 체계에 주의하고, 어떻게 납부해야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누릴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물론 세금을 덜 내 현지 시장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한국으로 더 많이 송금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적정한 세금을 현지 정부에 지급하고, 현지 사회에 일정 부분의 이익을 환원하는 일은 장기적 관점에서 필수적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남의 도움만 받고 도움을 주지 않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기업과 국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해당 기업이 국가나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평판을 얻어야 나중에 그 기업에 유무형의 혜택이 돌아간다. 외국에서 몇 년 영업하다 매각하고 철수할 계획이 아니라면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현지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조건 이익을 줄이는 방식의 회계처리를 선호하는 일도 지양해야 한다. 이 방법을 택해 거의 세금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영업을 한다면 이는 해당 기업의 선택사항이다. 불법만 아니라면 합법적 범위 안에서 이익을 부풀리거나 축소하는 다양한 회계처리 방법이 용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조건 세금을 적게 내려고 이익을 축소하는 방법을 선호하는 현상은 분명 문제가 있다. 특히 해당 기업이 갑작스러운 자금난에 빠졌을 때 이 방법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은행도 수익성이 낮은 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일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익이 적으면 신용평가회사로부터 좋은 신용등급을 받기도 어렵다. 설사 돈을 빌린다 해도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한다. 주식을 발행한다 해도, 수익성이 높지 않은 기업의 주가가 높을 리 없다.
문제는 많은 기업들이 이를 우리 회사와는 상관없거나 아주 먼 미래에 일어날 일로만 여긴다는 점이다. 단기 이익에 지나치게 연연하면 장기적으로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소탐대실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