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빅터 프랭클의 “무의식의 신”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인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 이론’이라는 것으로 인간성 심리학에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무의식에 관하여 말합니다.
프로이드를 비롯한 정신분석학에서 무의식은 본능적인 무의식만을 다룹니다.
하지만 그는 무의식의 한측면으로 영적 무의식이 있다고 봅니다.
양심이 대표적이고, 예술성이나 꿈에서도 영적 무의식을 발견합니다.
즉,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에 신을 향하는 내밀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무의식이 의식으로 발현 될 때 우리는 그 안에 의미를 찾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과 불행에 관한 말씀입니다.
가난하고, 울고, 고통받는 사람의 행복과
부유하고, 웃고, 풍요로운 사람의 불행이 대비됩니다.
무엇인가 결핍된 사람이 오히려 행복하다는 말씀이 이율배반적입니다.
하지만, 영적 무의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풍요하다는 것이 오히려 영적 무의식의 결핍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미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플랭크에 의하면 우리 안에 영적 무의식이 있습니다.
그 무의식이 의식으로 나올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