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한동네 천사표 친구내외랑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봉평 막국수집인데 꽤 유명세를 타는 맛집입니다.
홀이 좁지 않은데도 빈자리가 없고, 계속 오는 손님으로 나중엔 줄까지 서더라구요.
메밀로 만든 부드러운 국수에 맛깔나게 무친 북어무침을 듬뿍 얹어주는 국수는 별미중의 별미였습니다.
우리가 점심을 살 차례라고 여긴 남편은 친구내외가 말리는데도 기어이 수육을 주문했습니다.
수육이 문제였습니다.
한 점을 입에 넣자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유난스레 많이 났고,색갈도 누르스름하니 왠지 신선해 보이지 않아 께름칙했지만,우리가 시킨 거라서 먹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속이 메슥거리고 약간 어지러운 증세까지...
까스활명수를 먹어도,메슥거림을 진정시키는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자리 보전하고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일요일이라 응급실 말고는 갈데도 없었습니다.
대구 여동생에게 전화로 증세를 이야기 했더니,바이러스성 장염일거라며 이삼일은 고생해야겠다고 했습니다.
주부가 할일을 못하고 누워만 있으니,남편이 부엌에서 식사준비를 해서 아들과 함께 먹고 나더니 하는 말,
"우째 당신은 맨날 아프다 카노,"
'뭐가 맨날이야, 진짜로 맨날 아프면 내다 버리겠네.'
바로 댓구는 안했지만 속으로 엄청 서운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박내과에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동생의 진단과 꼭 같이 바이러스성 장염이라고 했습니다.
같이 먹은 네 사람중 나만 이런 증세를 보인 것은 면역력저하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함께 온 남편은 자상한 남편처럼 진찰실에도 따라 들어오고,처방전이 나오자 약국에서 약도 받아다 주었습니다.주사 후유증으로 약간 어지러울 수도 있으니 10분쯤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가라고 해서 남편 먼저 볼일 보러 가고,나는 천천히 집으로 향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도 꼭같은 증세로 동네 내과에서 링거까지 맞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픈 사람에게 꼭 그렇게까지 쏘아부쳐야 했을까, 이해가 안갑니다.
끓인 유동식과 약을 먹고는 차츰 기운을 차리고 있지만,내일은 대구에 내려가야 합니다.
엄마 간병 당번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동생 내외가 집을 비우게 되어 내가 엄마 옆에서 말동무도 해드리고,병원에도 동행해야 합니다.
다음 주 주말에나 다시 컴을 열 수 있겠습니다.
첫댓글 선배님.건강챙기시고 조심해서 다녀오시길 .....
바이러스성 장염은 다 나았고,덕분에 무사히 댕겨왔어요.
말 재미상 없이 하는 남자, 그 말로 상처 남기지 말고 너도 히 히 웃으며 받아 넘겨라.. < 내가 언제 맨날 아프다고 합디껴>고 웃으며 내 뿜어야지...참지마라. 시어른, 아이들 있을 때는 참는 것이 집 안 분위기
뭘 속으로 참니
이 언니 좋은것 가르친다
좋은 모습 보일려고 참지만 나이로 이제는 모든것이 여자가 누나같은 역활을 할 때니
<보이소 .. 해 가면서 아닌것은 아니고 맞는것은 맞다>는 식으로 경상도 말로 예쁘게
얘기하여라. 참는것이 대세가 아니야. 건강에 해롭다.
이제는 할말은 하고 삽니다.
남편왈,'당신 재경동창회 열심히 나가더니 디기 똑똑해졌다.'
몸도 아픈데 서운헸겠다.컴에 이렇게 좀 털고 나면 그래도 좀 시원하지
남편들 부인 아픈 것 제일 싫어서 자기맘 아픈 걸 그렇게 꼬집는 말 하는 것 같애,
이쪽으로 듣고 저쪽 귀로 흘려버려,잘 다녀와요.건강 조심하고,
본래 성미가 급해서 앞뒤 안가리고 툭 던지는 말인줄 알지만 서운했어요.
이쪽으로 듣고 저쪽으로 흘리는 방법은 이미 터득했어요.
몸 아플때 나이가 백살이라도 서운한 말에는 속상하는데 옥덕씨가 너무 착하여
이런 말씀을 마음놓고 하십니다.저도 자주 아프니 짜증나곘지만 한번은
큰맘먹고 나 죽은후 후회하지말고 있을때 잘하라고 했더니 조심하더라고요.
아주 결정적일 때,정곡을 찌르셨군요.
저도 할말은 하지만,말주변이 없어서 한참 생각하다 보면 말할 타임을 놓치게 되더군요.
가정에 안주인이 건강에 적신호면 온 집안이 우울해지지요.
매사에 건강 조심하셔요.
이 나이가 되고보니 건강보다 더 소중한 건 없더군요.
어쩌면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나 걱정이 되고 불안하여 말은 엉뚱하게 나온 것 아닐까요? 우리 나라 남자들은 마음을 전하는 것에 미숙하니까....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몸도 성찮은데 조심해서 다녀 오세요. 어머님께서도 잘 견뎌내시니 감사 합니다. 저는 마흔 다섯 쯤에 어머님께서 입적 하셨지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려서, 자라서는 학교 다니니 그 뒷바라지를 해야 해서... 그렇게 구실을 붙이던 사이에 문득 어머니께서는 세상과의 끈을 놓으셨지요. 왜 좀 더 자주 찾아뵙지 못 했을까 ? 어머니 살아계실 때 왜 좀 더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을까? 때늦은 후회가 회한으로 남습니다. 지금도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 딸들이 일에 쫒겨 혹은 제 자식을 키우느라 허덕이는 것을 보며 저 아이들이 나의 어느 부분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을런지... 훗날 저처럼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지.
언니,고맙습니다.
여태까진 내 살림 하느라고 엄마 생각을 많이 못했습니다.
중환을 얻으시고 나서야 엄마곁에 머무를 시간을 갖게 되는군요.
건강 하실 때 좀 더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고생 하시면서도 딸들 바르게 키우신 덕을 보시는 것이 보람이라고 하시네요.
특히 여동생 내외의 지극정성 효도를 받으시는 엄마는 행복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