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랫동안 ‘죄’라는 단어를 들으면 정죄와 형벌, 그리고 ‘전적 부패’라는 신학적 공포를 떠올려 왔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결을 촘촘히 읽어내는 사상가들의 텍스트를 파고들다 보면, 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단순히 법정적 단죄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문명사를 관통한 문학가 윌 듀런트(Will Durant)와 현대 신약학의 거장 톰 라이트(N.T. Wright)의 입장을 대조해 보면, 서로 다른 영역에 서 있는 두 거장이 ‘죄’와 ‘인간성’을바라보는지점에서묘하게닮아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1. 듀런트의시선: 죄는승리의유물이다 (Relics of Rise)
"인간의죄악은
그의몰락을보여주는주홍글씨(Stigmata)라기보다는,
오르는(생존해온) 과정에서남겨진
유물(Relics)일지도모릅니다."
— 윌 듀런트, 《역사의 교훈》 中
듀런트는 인간의 탐욕, 공격성, 부족주의 같은 악덕을 본질적 부패의 산물로만 보지 않습니다. 수렵·채집 시절, 포식자와 기근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위장의 최대 부피(cubic capacity)까지 음식을 쑤셔 넣고, 적에게 잔혹해져야만 했던 ‘생존의 필수 기제’가 문명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충돌하며 남겨진 고고학적 자취라고 해석합니다.
즉, 죄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해서라기보다 과거의생존본능이문명화된사회의도덕과비호환성을일으킨역설적유산입니다.
2. 톰라이트의시선: 왜곡된형상과사명 (Distorted Image)
톰 라이트 역시 전통적인 형벌적 대속론의 틀을 넘어 성경 전체의 거대한 서사를 복원합니다. 라이트에게 인간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에 서서 세상을 다스리는 ‘제사장이자 관리자(Image-bearer)’로 창조되었습니다.
라이트가 말하는 죄의 본질은 규범 몇 개를 어긴 상태가 아니라, 피조물을하나님처럼섬기는우상숭배로인해인간본연의고결한위임(Vocation)이하향추락한상태입니다.
3. 두거장의묘한교차점: 정죄에서 ‘사명’으로
(1) 죄와 악덕의 본질
윌 듀런트: 수렵·채집 시절,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발휘해야 했던 원시적 본능의 잔재(Relics of Rise)로 바라봅니다.
톰 라이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우상숭배로 인해, 만물을 다스리도록 위임받은 고결한 인간의 형상과 직무가 하향 왜곡된 상태로 풀이합니다.
(2) 인간의 현재 상태
윌 듀런트: 여전히 거친 야만적 생존 본능과, 고도화된 문명사회의 도덕적 윤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을 겪는 존재입니다.
톰 라이트: 적자생존과 제국적 폭력, 그리고 죽음의 공포라는 세상의 왜곡된 권력과 질서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입니다.
(3) 회복과 도약의 방향
윌 듀런트: 도덕적 성숙과 학문적·문명적 지혜를 축적하여 야만성을 극복해 가는 역사적 진화의 길을 제시합니다.
톰 라이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시작된 '새 창조(New Creation)'의 역동 속에서, 이 세상을 섬기는 참된 인간이자 제사장 직무를 회복하는 길을 선포합니다.
두 사상가 모두 인간의 부패를 ‘단죄 받아 마땅한 형벌’로만 가두지 않습니다.
듀런트는 야만적 생존 본능에서 문명적 협력으로 나아가는 인류의성숙을 말하고,
라이트는 생존과 권력에 매여 있던 옛 질서를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삶을 살아가는 참된 인간화(Humanization)를 선포합니다.
[나의묵상] 부끄러움을넘어, 이세상을하나님의지성소로
이 두 거장의 통찰을 잇다 보면, 과거 교리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섣불리 단죄하고 윤리적 상대주의나 신학적 냉소에 빠졌던 나의 미숙함이 떠올라 부끄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이 부끄러움은 자책이 아니라, 지평이 넓어지는 구도자의 자각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단죄 받아야 할 흉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 온 역사의 흔적’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정죄의 칼을 내려놓고 인간을향한숭고한연민과온기를 회복하게 됩니다.
복음은 나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규율이 아닙니다. 생존 본능에 매여 서로를 집어삼키던 거친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초청입니다.
"이세상은하나님의지성소이며, 만인은그제사장이다!"
우리가 일상의 현장—운전대 위에서, 도서관의 책상에서, 그리고 정갈하게 드리는 예배의 자리에서—오래된 생존의 법이 아닌 ‘사랑과 섬김의 새 창조의 법’을 살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듀런트가 꿈꾼 문명의 등불이자 라이트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참된 인간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