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 돌아오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은 선생님에게 얼마나 새로운 사랑인가요?"
"(눈을 빛내며) 성경은 참 새로워. 정말 새로워."
"성경의 어떤 면이 그렇게 새롭다는 거지요?"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거든. 성경처럼 우리의 상식을 통째로 뒤집는 책은 없어.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그런데 생각해보면 기가 막힌 애기야. 자식 키워본 사람은 알지. 성한 자식보다 학교도 안 다니고 말썽 피운 놈이 더 눈에 밟히거든. 그게 사랑이잖아. 회사에서는 무능한 놈 해고하면 돼. 그런데 어머니는 자식을 못 바꿔 다른 애하고 바꿀 수 있어? 못 바꾸잖아. 그게 한 마리 양을 버리지 못하는 예수님 얘기야. 숫자로 따질 수 없다는 거지."
"하지만 양으로 장사하는 주인 입장에서 보면 아흔아홉 마리 버려두고 한 마리 찾기 쉽지 않습니다. 한 마리 찾으러 갔다가 늑대가 아흔아홉 마리 다 먹어버리면 어쩝니까?"
"이보게. 성경의 '탕자' 이야기를 생각해보게나. 자기한테 효도하는 큰아들 놔두고, 집 떠났던 작은아들이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오니 반가워하잖아. 탕자이기 때문에, 집을 나갔기 때문에, 그 한 마리 양이 아흔아홉 마리보다 뛰어날 거라는 생각은 왜 못 하나?
아흔아홉 마리 양은 제자리에서 풀이나 뜯어 먹었지.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놈은 늑대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저 멀리 낯선 꽃향기도 맡으면서 지 멋대로 놀다가 길 잃은 거잖아. 저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하는 놈이야. 탁월한 놈이지. 떼로 몰려다니는 것들, 그 아흔아홉 마리는 제 눈앞의 풀만 뜯었지. 목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닌 거야. 존재했어?"
허공에 날아든 단도처럼, '존재했어?'라는 스승의 말에 뒷골이 서늘해졌다.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그렇게 허를 찌르시면 어떡합니까?"
“길 잃은 양은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목자를 바라본 거지. 그러다 길을 잃어버린 거야.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길 잃은 양은 그런 존재라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는 종교조차 문학이었다네. 신학에서 'ㄴ'자를 빼면 시학이잖아. 보들레르도 니체도 나는 성경을 읽는 마음으로 읽었지."
부모 입장에서도 시키는 대로만 사는 효자보다 '존재하겠다'고 아버지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갔다 돌아온 자식이 얼마나 더 장하고 측은하겠느냐고, 그가 탕자의 변호인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집을 나가 자수성가한 아이가 울퉁불퉁해도 자기 금덩이를 캐고 돌아온다고. 목장 물려받아 유산 상속하면 유산세 내고 몇 푼이나 남겠느냐고 자기 집 목장에 없는 쓴 열매라도 따온 탕자가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앙드레 지드의 「탕자, 돌아오다가 생각납니다."
"앙드레 지드가 서른여덟 살에 쓴 단편이 탕자, 돌아오다」라네. 그걸 읽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어. 집 나갔다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에게 차마 못 한 말을 어머니에게 고백하지.
'나는 아버지가 잡아주는 기름진 양보다 가시밭길 헤매다 굶주림 속에 따먹은 썩은 아가베 열매가 더 달았어요'라고.
앙드레 지드의 이런 경지를 모르면 문학을 못 하네. 정치를 하고 경제는 할지 몰라도 문학은 못 하네. 동생과 형의 대화도 말할 수 없이 깊어. 동생이 그러지.*
'집 나간 형을 생각하고 그 꿈을 꾸며 살았는데, 형이 돌아오면 나는 어떡하느냐.'
'미안하다. 나는 실패했지만, 너는 떠나라. 나는 실패했지만 너는 돌아오지 말아라. 낯선 곳에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살아라. 내가 도와주마.'
새벽에 떠나는 동생을 형이 도와줘. 돌아온 탕자인 형이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그거잖아.
'계단 헛딛지 마라. 쓰러져. 발밑 조심해. 쓰러지면 돌아오지 못해.'지드는 「탕자, 돌아오다」를 쓰고 기독교인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네. 나는 생각이 달라. 이 정도의 성경을 읽을 줄 모르면 예수님을 뭐하러 믿나? 예수 자체가 바보 예수잖아. 보통 사람의 눈에는 예수가 바보가 아니고 뭐겠나. 바보니까 그렇게 죽지, 누가 그렇게 죽어. 그런데 예수의 바보스러움, 앙드레 지드의 이 바보스러움, 스티브 잡스가 '스테이 풀리시'라고 할 때의 그 바보스러움을 자네는 깨달아야 하네."
* 앙드레 지드의 소설 「탕자, 돌아오다」에서는 성경의 이야기와 달리 형제가 아닌 삼형제로, 집나간 탕자에게 동생이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