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 |
게시 순서 1. 대불정능엄신주 독송
2. 보례진언
3. 대불정능엄신주 ('예불대참회문' 페이지 그대로)
4. 대불정능엄신주 회향게(해석/풀이)
5. 대불정능엄신주 공덕(능엄경 제7권)
6. 대불정능엄신주를 독송하는 이유('고경'지에서)
7. 대불정능엄신주가 설(說)해진 배경
8. 대불정능엄신주에 대한 세간의 잘못된 견해
9. 진언(다라니)에 대하여 / 진언수행하는 바른 태도
10. 능엄주 - 뜻보다는 소리에 집중하는 이유
11. 기사(법보신문) - 능엄주로 자성 밝혀 번뇌 업장 녹이리
12. 기사(법보신문) - 절과 능엄주 수행 '명지행' 불자 (상, 하)
13. 기사(현대불교신문) - 번뇌없애고 정진력 키워줘
※ 능엄주와 관련한 글이 다음 카페 '정림사랑방'에 있습니다.
(능엄주하는 법, 능엄주를 하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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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佛頂楞嚴神呪 廻向偈 》
대불정능엄신주 회향게
※ 능엄주를 끝내고자 할 때, '능엄주 회향게'를 한 뒤에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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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림사'에서는 예불의식 때는 한문본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 외는 이 해석본으로 합니다.
여기 이 청정한 대중이
능엄(楞嚴)의 비밀주(秘密呪)를 풍송(諷誦)하여
삼보(三寶)와 이를 수호하는 보살님께 회향하오니
삼도(三途)와 팔난(八難)의 모든 고통 없으며
사은(四恩)과 삼유(三有)는 모두 은혜 입으며
나라가 평안하여 전쟁이 없고
비와 바람 순조로워 국민이 안락하며
대중의 수행이 매우 뛰어나서
어려움 없이 십지(十地)를 뛰어넘고
가람(伽藍)이 청정하고 아무 근심 없어져
신도(信徒)들 귀의함에 복과 지혜 자라지이다
시방삼세 제불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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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불대참회문'에 실려 있는 해석입니다.
맑고도 깨끗하온 우리대중들
능엄의 비밀주를 높이외우고
삼보님과 용의무리 여러천신과
가람수호 성중들께 회향하오니
삼악도 팔난고를 다벗어나고
사은삼유 빠짐없이 은혜입으며
나라가 편안하여 싸움이없고
바람비 순조로워 백성즐기며
대중들 닦는도업 날로나아가
삼문이 청정하여 근심끊어져
심신단월 귀의하여 복혜받으세
시방세계 삼세의 모든부처님
높으시고 거룩하온 여러보살들
크고큰길 밝게비친 부처님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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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엄주 회향게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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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來現前淸淨衆
(상래현전청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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諷誦楞嚴秘密呪
(풍송능엄비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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廻向三寶衆龍天
(회향삼보중룡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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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護伽藍諸聖衆
(수호가람제성중) |
천신의 무리들과 가람을 수호하는 모든 성스러운 대중들에게 회향하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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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途八難俱離苦
(삼도팔난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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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恩三有盡霑恩
(사은삼유진점은) |
사은과 삼유는 점차 점차 은혜 입기를 다하며, |
國界安寧兵革銷
(국계안녕병혁소) |
나라가 안녕하여 병장기[전쟁무기] 등은 일상용품으로 다 바뀌어지고, |
風調雨順民安樂
(풍조우순민안락) |
‘바람과 비’[자연조건]는 고르고 순하여 국민들이 안락하게 되며, |
▶ 三途(삼도) : 육도(六道) 윤회의 세계에서 가장 좋지 않다는 세가지 세계로 보통 삼악도(三惡途)라고 한다.
즉, 지옥계(地獄界), 아귀계(餓鬼界), 축생계(畜生界)를 말한다.
나머지는 수라계(修羅界), 인간계(人間界), 천계(天界)로 삼선도(三善道)라 부르기도 한다.
▶ 八難(팔난) : 부처님을 볼 수 없고, 가르침도 들을 수 없는 8가지 어려움을 뜻하는 말로
지옥, 아귀, 축생, 장수천(長壽天), 변지(邊地), 맹롱음아(盲聾音啞), 세지변총(世智辯聰),
불전불후(佛前佛後)를 아울러 이른다.
※ ‘지옥과 아귀, 축생’은 이른바 삼악도(三惡道)라 하여 불법을 들을 수 없는 상태이며,
‘장수천’은 오래 살아 도를 구하려는 마음이 일지 않는 상태이다.
‘변지’는 즐거움이 넘쳐 도를 구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하고,
‘맹롱음아’는 감각기관에 결함이 생겨 보고 들을 수 없는 상태,
‘불전불후’는 부처님의 전과 후로 부처님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 四恩(사은) : 불교사전적인 의미로는 '네가지의 은혜'를 말한다.
하지만 이 회향게에서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내가 온전하고 평화롭게
살아 갈 수 있도록 현실적인 은혜를 주는 4부류의 존재들'을 의미한다.
4부류의 존재는 불교사전에 나오는 아래 '사은(四恩)'의 의미에서 파악하기 바란다.
경전에 따라 지칭하는 네 가지가 다소 다르다.
1) 부모은(父母恩;부모에 대한 은혜) / 중생은(衆生恩;더불어 사는 모든 존재에 대한 은혜) /
국왕은(國王恩;나라를 잘 다스려주어 태평성세를 만들어주는 통치자에 대한 은혜) /
삼보은(三寶恩;불, 법, 승 삼보에 대한 은혜) :(心地觀經 卷二 報恩品)
2) 모은(母恩) / 부은(父恩) / 여래대사은(如來大師恩) / 설법법사은(說法法師恩) :(正法念處經 卷六十一)
3) 부모은(父母恩) / 사장은(師長恩) / 국왕은(國王恩) / 시주은(施主恩) :(이것을 出家 4恩이라 한다)
4) 천하은(天下恩) / 국왕은(國王恩) / 사존은(師尊恩) / 부모은(父母恩) :(大藏法數 卷二十三)
▶ 三有(삼유) : 먼저 '유(有)'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12연기법’에서 ‘10번째 유(有)’의 의미는 이렇다.
유(有)는 내가 선호하는 것을 유지하고 지속시켜 나가려는 의식의 성향이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성향은 ‘나’라는 ‘자아(自我)’를 지키고 유지하고 지속시켜 나가려는
'마음의 열망(熱望)'으로 발전한다. ‘나’라는 자아가 있어야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고의 절정은 ‘존재에 대한 열망’으로 귀결되는 셈이다.
이 열망은 현재의 몸[명색(名色)으로 이루어진 현재 자신의 존재방식]이 제 기능을 다하여 마치면,
새로운 몸을 받아 태어나려는[12연기의 11번째 ‘생(生)’] 원인이 된다.
거듭된 태어남을 있게 하는 이 ‘존재에 대한 열망’을 ‘유(有)’라 한다.
‘쌍윳따니까야’ 경전 등, 여러 경전에서 이 ‘유’를 ‘존재’로 번역하고 있어, 마치 ‘유’의 의미가
어떤 형태를 가진 존재로써 자칫 이해될 수 있으나,
나-日行千里-의 견해로는 이 ‘유’는 자아의식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예컨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신을 지속시켜 나가려는 강한 심리적 성향-열망-’이다.
이 심리적 성향으로 인해 ‘명색(名色)’을 갖춘 존재방식으로의 태어남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이 ‘유’를 단지 ‘존재’라고 하기보다는 ‘존재하려는 성향(性向)’이라고 구분해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존재하려는 성향’이란 명색(名色)의 형태를 가진 존재방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식(識;마음)이 가지고 있는 강한 ‘열망(熱望)’이라 정의하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존재방식’이란 ‘유’에 의해서 이루어진(조건 지어진) 명색(名色-육체와 정신)의 형태를 띠고 있는
존재를 말한다. 예컨대,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는 형태의 존재를 ‘존재방식’이라 정의한 것이다.
‘쌍윳따니까야’ 경전에서 이 ‘유’에는 3가지 유형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3가지를 ‘삼유(三有)’라 한다.
1)욕유(欲有) : 감각적,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존재를 유지하려는 심적인 성향.
2)색유(色有) : 거친 물질적 욕망은 떨어졌으나, 미세한 욕망이 잠재되어 있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존재를 유지하려는 심적인 성향.
3)무색유(無色有) : 미세한 물질적 욕망마저 떨어져, 물질에 대한 욕망이 제거된 존재가 가지고 있는
존재를 유지하려는 심적인 성향.
※ 이 삼유는 삼계(三界)의 존재들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존재하려는 성향'이다.
이 성향은 에고에 물들어 있는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을 유지하려는 본능인 셈이다.
결국 능엄주 회향게에서 띄고 있는 삼유의 의미는 욕계, 색계, 무색계와 같이 모든 우주법계에
살고 있는 중생들의 '물든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면 될 듯 하다.
*** 《참조》 ***
'사은삼유진점은(四恩三有盡霑恩)'인가, '사은삼유진첨은(四恩三有盡沾恩)'인가?
백련암 간행 '예불대참회문' 책에 '진첨은(盡霑恩)'으로 표기되어 있다.
'霑'자는 한자사전에서 '첨'으로 찾으면 나오지 않는다. 음(音)이 '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책에 '첨(霑)'이라 되어 있을까? 오기(誤記)일까?
해서 자료를 뒤져 정리하고 결론을 내려 보았다.(혹, 잘못되었으면 지적해 주길 바랍니다.)
『 霑 : 젖을 점 / ㉠젖다 ㉡적시다 ㉢은혜를 입다 ㉣(은혜가)두루 미치다
沾 : 더할 첨 / ㉠더하다 ㉡첨가하다(添加--) ㉢엿보다, 관찰하다 ㉣강 이름
젖을 점 / ⓐ젖다 ⓑ적시다 ⓒ넘치다 ⓓ누리다, 혜택을 받다 ⓔ만족하는 모양 』
한자사전을 찾아보면 위와 같다.
'霑'과 '沾'은 이형동의어(異形同義語)이다. 글자는 다르나, 뜻은 같다는 의미이다.
'沾'은 '첨'과 '점', 2개의 음(音)을 가지고 있다.
단어로 보면, '점은(霑恩)'이나 '첨은(沾恩)'이 모두 '은혜를 입다'는 뜻이다.
중국 문헌을 검색해 보면 이 두 단어가 같은 의미로 문장에서 쓰여 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능엄주 회향게의 ‘사은삼유~’의 부분도 어느 글에서는 '진점은(盡霑恩)'으로,
어느 글에서는 '진첨은(盡沾恩)'으로 쓰이고 있다.
사례)
<중화전자불전협회(CBETA) 電子佛典 V1.13 普及版>
“…三途八難俱離苦, 四恩三有盡霑恩, 國界安寧兵革銷, 風調雨順民康樂…”
<中國漢傳佛教禮儀——早課>
“…三途八難俱離苦, 四恩三有盡沾恩, 國界安寧兵革銷,風調雨順民安樂…”
결론) '霑'과 '沾'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沾'은 2개의 소리(첨, 점)를 가지고 있으나, '霑'은 1개의 소리(점)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자(漢字)를 '霑'으로 쓴다면 음(音)을 '점'으로 내야하고,
'沾'을 사용한다면 '첨'또는 '점'으로 소리내야 한다.
소리를 '첨'으로 발음하면 한자(漢字)는 '沾'으로 표기해야 한다.
정림사는 그동안 책에 표기되어 왔던 '霑' 자를 취하되, 소리는 '첨'이 아닌 '점'으로
수정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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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衆熏修希勝進
(대중훈수희승진) |
대중들의 수행이 (깊이) 배어들어[熏] 놀라울 정도로 수승하게 (본래의 근원자리로) 나아가, |
十地頓超無難事
(십지돈초무난사) |
보살의 열 가지 지위를 단박에 뛰어 넘는데 어려움이 없고, |
三門淸淨絶非虞
(삼문청정절비우) |
가람[三門;사찰]이 청정하여 부정[非]과 근심이 끊어지고, |
檀信歸依增福慧
(단신귀의증복혜) |
단월[檀;신도]들이 신심으로 귀의함에 복과 지혜가 증장(增長)되어 지이다. |
▶ 십지(十地) : 대승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구도자(求道者)의 모습으로 언급하는 보살을
10단계로 분류한 경지(境地).
《능가경(楞伽經)》 《화엄경(華嚴經)》 등에 나온다.
특히 《화엄경》의 십지품(十地品)은 그 성립연대가 11세기로서 전체 《화엄경》 중 가장 이른데,
처음에 《십지경(十地經)》으로 독립되어 있다가 《화엄경》에 편입된 듯하다.
《화엄경》의 52위(位), 즉 보살이 수행해야 할 52단계에서는 이 십지가 41~50위에 해당한다.
또한 십지는 십바라밀(十波羅蜜)과 관련하여 보살의 이타자리행(利他自利行)의 깊은 단면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교훈으로서의 의미도 지닌다.
① 환희지(歡喜地) : 중도(中道)의 지혜를 깨달아 일체의 견혹(見惑)을 끊고 환희가 넘쳐나는 경지.
② 이구지(離垢地) : 인간의 번뇌를 다 끊고 더러움을 씻어 깨끗해진 경지.
③ 발광지(發光地) : 명지(明地)라고도 하는데, 모든 번뇌를 끊어 지혜의 광명이 발현되는 경지.
④ 염혜지(焰慧地) : 염지(焰地)라고도 하는데, 번뇌가 사라지고 지혜가 불꽃처럼 솟아나는 경지.
⑤ 난승지(難勝地) : 번뇌를 모두 끊음으로써 속지(俗智)와 진지(眞智)가 잘 조화를 이루게 된 경지.
⑥ 현전지(現前地) : 번뇌를 끊고 무위진여(無爲眞如)가 드러나는 경지.
⑦ 원행지(遠行地) : 2승(二乘)의 각(覺)의 영역을 넘어서 원대한 진제(眞諦)의 세계에 이른 경지.
⑧ 부동지(不動地) : 완전한 진여(眞如)를 얻어 조금도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경지.
⑨ 선혜지(善慧地) : 부처의 십력(十力)을 얻어 때와 경우[根機]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는 지혜를 터득한 경지.
⑩ 법운지(法雲地) : 많은 공덕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대비심(大悲心) 같은 존재가 된 경지를 말한다.
▶ 삼문(三門) : 사원(寺院)의 누문(樓門).
건물은 일문(一門)이지만 삼문이라고 한 것은, 사원의 법당(法堂)을 열반(涅槃)으로 하고,
문(門)은 그 절대경(絶對境)에 이르는 삼해탈문(三解脫門)에 비유한 것이다. ‘가람(伽藍)’과 뜻이 같다.
※삼해탈문(三解脫門) : 해탈에 들어가는 문호(門戶)가 되고, 방법이 되는 3종류의 선정(禪定). 즉,
공해탈문[空解脫門 ; 사람과 법(法)이 공(空)한 것을 관(觀)하는 것],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 ; 차별의 상(相)을 떠나는 것],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 ; 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이라고도 하고,
구(求)하고 원(願)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의 셋.
▶ 단월(檀越) : 산스크리트어 '다나파티(danapati)'를 음역한 것으로 시주(施主)라 번역한다.
본래의 뜻은 은혜를 주는 사람이다.
보시는 육바라밀의 하나로 자기가 소유한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행위로 불교초기부터
매우 중요시되어 승단을 유지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단월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경전에 나온다.
단월은 사찰 혹은 스님에게 재물을 주고 사찰과 스님은 그 대가로 가르침을 주는데,
재물을 주는 것을 재시(財施), 가르침을 들려주는 것을 법시(法施)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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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方三世一切佛
(시방삼세일체불) |
어느 곳[十方] 어느 때[三世]나 항상 존재하고 계시는 모든 부처님들이시여 ! |
諸尊菩薩摩訶薩
(제존보살마하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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摩訶般若波羅蜜
(마하반야바라밀) |
큰 지혜로써 당신들의 세계로 건너가고자 하나이다. |
▶ 바라밀(波羅蜜) : 산스크리트어 'pramita'의 음역. 바라밀다(波羅蜜多)라고도 하며,
도피안(度彼岸)이라고 번역한다.
'미혹(迷惑)의 이 언덕[此岸]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彼岸]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이 마땅히 닦아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을 강조하는데, 이를 6바라밀이라 한다.
6바라밀은
①보시(布施), 즉 단나바라밀(檀那波羅蜜:재물을 주는 것,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
공포를 없애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등의 3종이 있다.
② 지계(持戒), 즉 시라(尸羅)바라밀:계율을 지키는 것.
③ 인욕(忍辱), 즉 찬제(俊提)바라밀 : 적개심에서 나오는 행동에 대해 인내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참아내는 것
④ 정진(精進), 즉 비리야(毘梨耶)바라밀 : 한결같이 깨달음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
⑤ 선정(禪定), 즉 선나(禪那)바라밀 : 명상으로 정신을 통일하고 안정시키는 것.
⑥ 지혜(智慧), 즉 반야(般若)바라밀 : 대상에 대한 온갖 집착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깨닫는 것.
10바라밀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다음 4가지를 더한 것이다.
⑦ 방편(方便)바라밀 : 상대방에 알맞은 방법으로 교화하는 것.
⑧ 원(願)바라밀 : 서원에 의하여 최상의 지혜를 구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것.
⑨ 역(力)바라밀 : 10가지 불가사의한 능력.
⑩ 지(智)바라밀 : 온갖 사물의 실상을 여실하게 아는 것.
- 日行千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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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불정능엄신주의 공덕(功德) -
수능엄경 제7권에 부처님께서 대불정능엄신주를 설하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었다.
「아난아, 이 부처님의 정수리광명이 모이어 된 시타타파트라 비밀한 가타, 미묘한 글은 시방의
온갖 부처님을 내는 것이니,
시방 여래가 이 주문으로 인하여 위없는 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며,
시방 여래가 이 주문을 듣고 모든 마를 항복 받고 외도를 이기는 것이며,
시방여래가 이 주문을 타시고 보배연꽃에 앉아 미진 같은 세계에 들어가시는 것이며,
시방 여래가 이 주문을 머금고 미진 같은 세계에서 법문을 설하시며,
시방 여래가 이 주문을 가지고 시방 세계에서 수기를 주시며,
시방 여래가 이 주문을 의지하여 여러 고생하는 이를 제도하시며,
시방 여래가 이 주문을 따라 시방 국토에서 선지식을 섬기어 공양하고 항하사 여래의 법왕자가 되며,
시방 여래가 이 주문을 행하여 친한 이와 인연 있는 이를 붙들어 주시며,
소승들로 하여금 비밀한 법문을 듣게 하며,
시방 여래가 이 주문을 외우사 위없는 정각을 이루시며,
시방 여래가 이 주문을 전하여 열반하신 뒤에 불법을 유촉하여 머물러 있게 하며 계율을 청정하게
하시나니, 내가 만일 이 주문의 공덕을 다 말하자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치지 않고,
항하사 겁이 지나도록 말하여도 다할 수 없느니라.
이 주문을 여래의 정수리라고도 이름하나니, 너희 배우는 사람들이 윤회를 벗어나는 도를 얻고자
하면서도, 이 주문을 외우지 아니하고 몸과 마음에 마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아니하니라.
아난아, 만일 여러 세계, 여러 나라에 사는 중생들이 나무껍질이나 잎이나 종이나 천에 이 주문을
써서 간직할 것이니, 설사 외울 수 없거든 몸에 갖거나 방안에 두기만 하여도 독이 이 사람을
해치지 못하니라.
아난아, 내 다시 이 주문이 세상 중생들을 구호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에서 뛰어나는 지혜를
이루게 하는 일을 말하리라.
내가 열반한 뒤에 말세 중생들이 제가 이 주문을 외우거나 남을 시켜 외우게 하면
이 중생들은 불이 태우지 못하며, 물이 빠뜨리지 못하며, 독이 해치지 못하며, 용이나 하늘사람이나
귀신이나 마귀의 나쁜 주문들이 건드리지 못하고, 마음에 삼매를 얻어서, 독한 약과 만물의 독기가
이 사람의 입에 들어가면 골 감로로 변할 것이며, 나쁜 귀신들이라도 이 사람에게는 해를 주지
못하며, 항상 이 사람을 보호할 것이니라.
아난아, 이 주문은 8만4천 나유타 항하사 구지되는 금강장왕보살의 권속들이 밤낮으로
따라다나면서 보호하나니, 설사 어떤 중생이 삼매가 아닌 산란한 때에라도,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이 주문을 외우면 이러한 금강왕들이 항상 이 사람을 보호할 것이어든, 하물며 보리 마음을
결정한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 좋은 사람이 이 주문을 읽거나 몸에 간직하면 이 사람은 보리심을 처음 낼 때부터 부처님 몸을
얻을 때까지, 세세생생 나쁜 곳에 나지 아니하며, 천하고 가난한 곳에도 태어나지 아니하느니라.
이 중생들이 설사 제 몸으로 복을 짓지 못하였더라도 부처님의 공덕을 얻어 한량없는 겁 동안을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하느니라.
그리하여 계를 파한 사람으로는 계를 청청하게 하며, 계를 얻지 못한 이로는 계를 얻게 하며,
정진하지 못하는 이로는 정진하게 하며, 지혜가 없는 이로는 지혜를 얻게 하며, 재계를 가지지
못하는 이로는 재계를 이루게 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중생이 한량없는 옛적으로부터 지은 죄업을 이때까지 한번도 참회하지 못하였더라도,
이 주문을 읽거나 외우거나 써서 가지면 모든 죄업이 없어질 것이며, 오래지 않아서 무생법인을
얻게 되느니라.
아난아, 어떤 사람이 소원이 있어 지극한 정성으로 이 주문을 외우면 소원이 이루어 질 것이며,
나라나 지방에 싸움이나 기근이나 질병의 재앙이 있더라도 그 지방에 사는 중생들로 하여금
이 주문을 모시거나 예배하게 하면, 온갖 재앙이 모두 소멸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이 주문을 일러서 이 다음 세상까지 전하여서,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수행하는
이들을 보호하여 삼매에 들게 하며, 마의 장난과 전세의 업장이 방해하는 일이 없게 하느니라.
너와 이 회상에서 배우는 이들이나 이 다음 세상에 수행하는 이들은 이 규모대로 수행하여 부모에서
얻은 육신으로 도를 이룰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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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에서 아비라기도 중 능엄주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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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글은 "고경지(古鏡誌)"(백련불교문화재단 발행) 창간호(불기 2540년)에 실린
"동진스님"의 글입니다.
내용 중 "중국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이 능엄주를 하게 된 유래"는(파란색 글자)
제가 성철 노장(老丈)님께 직접 들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노장님 말씀에 따르면 그 이후로 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도 능엄주와 참회로써의
절(108팔배)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日行千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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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주를 독송하는 이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수행하는 것은 성불(成佛)을 하기 위함이다.
이 오탁악세(五濁惡世) 중생들은 애욕(愛慾)과 명리(名利), 허영(虛榮)과 재물(財物)에
집착하여 눈이 가리워져 어둡고 험한 길로 치달으며 나를 위해 남을 해쳐 불꽃 속을
헤매이니 흡사 지옥(地獄) 아귀(餓鬼) 벗을 삼듯 독사 굴(窟)을 내 집같이 밤낮으로
드나들어 빠져 나올 줄을 모른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지칠 줄 모르는 굳고 굳은
망상에 사로잡힌 무지한 중생들….
성인(聖人)들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이러한 죄업(罪業)에 형태나 모양이 있다면 한사
람이 평생에 지은 업장(業障)으로 이 허공(虛空)을 다 채우고도 남을 지경이라고 했다.
또 비유하시기를, 칠통(漆桶)같이 검은 업장이라 하시기도 하고, 혹은 무쇠 철판같이
무거운 업장이라고도 하시면서 수좌(首座)가 부처가 되고자 참선수행을 하는 것은
마치 모기가 침(針)으로 무쇠 철판을 뚫고자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중생이 다하고 중생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고 허공이 다할지언정
부처를 이루고자 하는 나의 원(願)은 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현보살님의 대원(大願)이
생겼을 것이다. 또 대원본존(大願本尊) 지장보살님도 지옥중생이 다 성불하여 지옥이
비어야 내가 성불할 것이라는 원을 세웠을 것이고, 극락에 태어났더라도 극락세계에서
또 삼아승지겁을 닦아야 성불할 수 있다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세존께서는 중생들이 이러한 줄 아시면서도,
한 가닥 선근(善根)의 끄나풀을 휘어잡아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소굴에서
중생을 건져내고자 입이 쓰도록 무상심심미묘법(無上深深微妙法)을 베푸신 것이다.
이와 같은 불보살님의 대원력(大願力)은 칠통(漆桶)같고 철판(鐵板)같은 무쇠업장을
뚫었으니 그 어찌 갸륵타 아니하겠는가.
"금생에 이 몸을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약하여 이 몸을 제도하리오"
이러한 서원(誓願)이 이루어진 것은 중생들의 풍전등화(風前燈火)같은 한가닥
선근(善根)의 발로(發露)에 의(依)함인데, 하물며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운 최상승
(最上乘)의 미묘법(微妙法)을 만남에 있어서야….
금생(今生)에 이 몸을 제도할 수 있는 최상승 수행법 중의 하나가 바로
선문일송(禪門一誦) 가운데 있는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의 독송(讀誦)이다.
그렇다면 어떤 까닭으로 성철큰스님께서는 이 "대불정능엄신주"를
수지독송(受持讀誦)하게 하였을까?
첫째는 중국에서 불조(佛祖) 혜명(慧命)의 대(代)를 잇기 위해 수백 수천명의 스님들이
모여 총림(叢林)을 이루고 수행하는 가운데, 그 생활의 일과(日課) 중에 능엄주의
독송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관음도량(觀音道場)으로 유명한 중국 보타낙가산 총림의 주지이신 진헐 대화상 밑에
사천명 청정(淸淨) 비구(比丘) 대중이 정진하고 있었다.
어느 날 피부 돌림병이 발생하여 온 대중이 병마(病魔)에 휩쓸리게 되었다.
진헐스님은 부전을 시켜 병의 쾌유를 비는 백일 관음기도를 시켰다. 백일기도 회향날,
주지스님 꿈에 관음보살이 화현(化現)하여 "주지스님이시여, 무엇 때문에 나를
찾으시오!" 하셨다.
주지스님은 "대성(大聖)이시여, 보시는 바와 같이 총림대중이 돌림병에 걸려 수행에
지장이 있사오니 대의왕(大醫王)이신 대성의 위력(威力)으로 대중의 병을 거두어
주소서" 하시니 관음 보살님은 "주지스님이시여, 청정대중의 병고(病苦)는 이 관음의
힘으로써는 거둘 재간이 없사옵니다. 오직 대불정능엄신주의 위력(威力)만이 이 청정
대중의 병고를 거둘 수 있사옵니다"라고 하셨다.
다음날부터 진헐스님의 분부로 대중스님들이 대불정능엄신주를 수지독송한지 불과
몇 주만에 온 총림 대중의 병이 일시에 완쾌되었다.
당시 진헐스님께서 능엄주 독송의 공덕을 회향했던 글이 예불대참회문(禮佛大懺悔文)
에도 실려 있다.
둘째로는 이 대불정능엄신주를 수지독송함으로써 얻는 영험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능엄주를 독송하면 온갖 죄업(罪業)이 남김없이 사라져 청정(淸淨)한
본래(本來) 근본(根本)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즉 계(戒)를 얻지 못하더라도 계를
얻게 되며, 계를 파(破)하더라도 도로 계가 청정으로 되돌아서며, 정진을 하지 못하는
이라도 정진을 하게 되며, 지혜가 없는 이라도 지혜를 얻게 되며, 재계(齋戒)를 갖지
못한 이라도 재계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불정능엄신주의 맨 첫머리를 보자.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파트람 아파라지탐 프라튱기람 다라니..."
이 주문의 신비한 말은 오직 지극히 염송하여야 아는 것이지만, 그 말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대여래(大如來)께서 정수리의 육계상(肉 相)에서 그 어떤 자도 능히 미칠 수 없는
대지혜광명을 놓으시어 광명의 큰 우산을 만드시어 그 우산 안으로 끌어안으셨습니다."
즉 이 말은, 여래께서 이 다라니를 수지독송하는 수행자를 보호하시되 안팎으로
이들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를 완전히 조복시켜서 어떠한 위신력이나 신통력도 미치지
않아 일체의 방해를 안 받도록 보호하여 주신다는 뜻이다.
그 다음은 능엄신주 전체를 5회로 나눌 수 있는데, 각 회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회의 내용은 "나맣 사르바붇다보디사트베뱧"(1쪽 3줄)부터
"쿠르반투 마마샤"(6쪽 4줄)까지 이다.
시방에 계시는 부처님, 보살, 아라한, 천신, 그 밖의 모든 선지식과 성현들에게
귀의(歸依), 정례(頂禮), 공양(供養), 기원(祈願)을 해서 수호(守護)하여 줄 것을
발원(發願)하는 부분이다.
둘째, 2회의 내용은 "옴 리시가나 프라사스타"(6쪽 4줄)부터
"옴 스바스티르바바투 마마"(7쪽 7줄)까지"이다.
제1회에서 귀의 ,정례, 공양, 기원을 올린 시방 부처님, 보살, 아라한, 천신, 성현,
선지식들께서 나에 대하여 좋은 일이 있게 해달라고 발원하는 부분이다.
셋째, 3회의 내용은 "라자비야 초라바야"(7쪽 7줄)부터
"키라야미 랔사랔사맘"(10쪽 8줄)까지 이다.
시방세계 및 삼계(三界)에서 나의 수행을 방해하려고 오는 모든 "고난"과 "재앙"과
"주력의 힘"을 거룩하신 세존의 불정계(佛頂 ) 대지혜 광명으로써 금지시키고
차단시키고 파괴해서 나에게 방해가 되지 못하게 해줄 것을 발원하는 부분이다.
넷째, 4회의 내용은 "바가밤 시타타파트라 나모스투테"(10쪽 8줄)부터
"예케칱타 사트바 마마"(13쪽 6줄)까지 이다.
백산개(白傘蓋;부처님 정수리에서 나오는 위신력) 아래 세존에게 귀의함으로써
백광(白光)이 분명하고 빛이 밝고 밝아 석가모니 부처님 이외의 모든 부처님, 보살,
신장, 아라한, 천신, 선지식 등이 사용하는 "다른 주력"의 힘을 파괴하여 주기를
기원하는 부분이다.
다섯째, 5회의 내용은 "두스타칱타 파파칱타"(13쪽 7줄)부터
"반트라파다 스바하"(마지막)까지 이다.
시방세계 내(內)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나쁜 씀씀이와 모든 귀신(鬼神;악귀, 선귀,
일체의 귀신)의 장난으로 일어나는 고난(苦難)과 재앙(災殃), 재난(災難) 그리고
병고(病苦)를 백산개(白傘蓋) 아래 "대금강불정계(大金剛佛頂 )"가 자연히
조복(調伏) 후퇴시키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재난, 고난,
재앙, 병고" 등의 장애를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들쳐내어 대불정계 백산개 대지혜
광명의 위신력으로 소멸시키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아무리 무쇠철판같이 두터운
업장(業障)일지라도 뚫리지 않을 수 없으며, 아무리 검은 칠통(漆桶)일지라도
희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용수보살 말씀에, "정법(正法) 500년, 상법(像法) 1000년을 지난 말법시대(末法時代)에
사는 중생들에게 있어서 자력신앙(自力信仰)은 뗏목을 만들어서 타고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를 건너서 저 언덕인 피안(彼岸)에 이르고자 하는 것과 같고,
타력신앙(他力信仰)은 순풍(順風)에 돛단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 저 언덕인 피안에
이르고자 하는 것과 같다. 말법시대에는 자력(自力)의 고승(高僧)도 불보살의
애민보호(哀愍保護)를 입지 않으면 뗏목을 만들어 타고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를
건너고자 하는 것과 같도다" 하셨다.
그러므로 성철큰스님께서는 미망(迷妄)에 허덕이는 우리 불자(佛子)들에게 이 능엄주를
매일(每日)의 일과(日課)로써 수지독송(受持讀誦)하도록 시키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도 "인연(因緣)없는 중생은 구제(救濟)하기가 어렵다" 하시면서,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하여 냇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으나 말이 물을 먹지 않으면
도리가 없는 법이라고 하셨다.
부처님 말씀 중에 뭇 중생의 업장을 면(免)하지 못하게 하는 경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많은 경전(經典)이나 다라니(多羅尼) 중에서도 유독 이 대불정능엄신주의
위신력은 그 어떤 경전이나 다라니에 비(比)할 바 없이 위대(偉大)하고 완벽(完璧)한
것이다. 진심(眞心)으로 믿고 수지독송하면 외마(外魔)가 장애를 주기 위해
전후(前後), 좌우(左右), 사방(四方), 팔방(八方), 상하(上下)에서 종횡무진(縱橫無盡)
침범을 해와도 부처님, 보살, 아라한, 천신 등 모든 성현들이 올리는 귀의, 정례,
공양, 기원이 완벽하게 짜여져서 철통(鐵桶)같은 수비(守備)로 막아주기 때문에
그들을 완전히 조복(調伏)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불자들은 성철큰스님께서 수지독송하라 하신 그 깊은 뜻을 헤아려서 매일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를 진심(眞心)으로 독송하여 몸과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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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다음 카페 '정림사랑방'에 올려진 글입니다.
능엄주가 설해진 배경
'능엄주'는 능엄경(楞嚴經) 제7권에서 설(說)해지고 있다.
이 경전에 의하면 능엄주가 설해진 배경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한 분인 아난(阿難) 존자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서 어릴 때 출가한다.
뒤에 부처님의 시자(侍者)가 되어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까지 24년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시봉을 한다.
훗날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가섭존자의 뒤를 이어 불교 교단을 이끄는 2대 조사(祖師)가 된다.
아난존자는 기억력이 아주 뛰어났다. 그 탁월한 기억력은 부처님을 수행하고 다니며 들은 부처님의
법문을 상세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점은 훗날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가섭존자를 중심으로 경전(經典)을 결집(結集)하게 될 때에
크게 공헌을 하게 된다.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아난 존자지만 장애(障碍) 또한 많았다.
그 중에서 특히 여난(女難)을 많이 겪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아난존자의 체격이 당당하면서도 용모(容貌)가 수려하며, 피부(皮膚)는 맑고 부드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뭇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난존자는 점심 때가 다가오자 발우(鉢盂)를 들고 탁발(托鉢)을
나갔다.
어느 마을의 우물 곁을 지나다가 마침 목이 말라 우물가로 다가갔다.
그 곳에는 한 처녀가 물을 긷고 있었다.
아난존자는 그 처녀에게 물 한그릇을 떠 줄 것을 정중하게 청하였다.
그 처녀는 왠 잘생긴 수행자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이미 가슴이 쿵쿵거리고 있던 터였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아주 정중한 태도로 부탁을 하는 것을 보고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재차 물을 떠 줄 것을 청하는 수행자에게 그 처녀는 물을 떠 줄 수 없노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신분이 사성계급 중에서 가장 미천한 '수드라(노예 계급)'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아난존자는 자신은 세속의 모든 차별에 의미를 두지 않는 수행자이기에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고 대할 뿐이다 라고 말을 하며 재차 물 떠 주기를 청한다.
자신의 미천한 신분에 아랑곳 하지 않고 미려(美麗)한 사람이 아주 정중한 태도로 청하는 모습에
그 처녀는 그만 그 수행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그 처녀는 앓기 시작한다. 상사병(相思病)이 생긴 것이다.
식음(食飮)을 전폐하며 앓기 시작하는 딸을 보다 못한 엄마가 그 까닭을 추궁하였다.
그 엄마의 이름은 '마등가'였고 직업은 주술사(呪術士)였다.
딸로부터 자초지종 얘기를 들은 마등가는 딸을 위해 옳지 못한 줄을 알면서도 그 수행자를
유혹하기로 한다.
평소에 아난존자가 탁발을 하기 위해 지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주술(呪術)을 걸어 아난존자의
정신을 홀리는데 성공을 한다.
주술에 걸린 아난존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처녀의 집으로 가게 되고, 그 처녀는 엄마의 지시대로
자신의 방을 신방(新房)으로 꾸며놓고 있었다.
마침내 아난존자는 그 처녀의 방으로 들어서게 된다.
때마침 선정(禪定)에 들어 계시던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을 신통력으로써 보시게 된다.
급히 제자들을 불러 아난이 위기에 처했음을 알려주고는 가서 구해오라고 지시를 하게 된다.
부처님으로부터 명을 받은 제자들은 무엇으로써 아난에게 걸린 주술을 풀어서 데려 올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잘 들으라고 하시고는 다시 선정에 드신다.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시자 부처님의 정수리에서 한줄기 큰 빛이 뿜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그 빛 속에서 무수히 많은 선정에 드신(좌선의 형태로) 부처님들이 출현하시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많은 부처님들이 한결같이 무언가를 암송(暗誦)하고 계셨다.
이 외우고 계신 내용이 바로 '능엄주'였다.
제자들은 이 능엄주를 듣고 외우고는 급히 가서 위기 일발의 순간에 처한 아난존자를 주술을
풀어
데려 올 수 있었다.』
이렇게 능엄주는 설(說)해졌다.
이 능엄주가 부처님의 정수리에서 나왔다고 해서 '정수리 정'(頂)이 들어간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라고 명칭되었다.
그리고 능엄주는 '능엄경'에 그 설해진 배경과 주문(呪文)의 내용, 그 주문을 했을 때의 공덕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記述)되어 있다.
능엄주가 비록 아난존자의 주술에 걸리는 실수에 의해 설(說)해지긴 하였으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능엄주 공덕에 의하면
능엄주가 단순히 삿된 주술(呪術)이나 귀신(鬼神) 또는 기운을 퇴치하기 위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게 들어나고 있다.
오히려 이 능엄주로 인해 '위없는 정각(正覺)를 이루고, 여래의 법왕자가 되며...'라고 하였다.
이러한 능엄주의 근본취지를 잘 살펴서 바르게 해야지, 잘 못 받아들여서 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 日行千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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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다음 카페 '정림사랑방'에 올려진 글입니다.
능엄주에 대한 세간의 잘못된 견해
- 능엄주는 신(神)을 불러들이는 주문인가? -
어느 백련암 문중 절에 다니고 있다는 보살님으로부터 문의를 받았다.
“스님, 제가 초하룻날 그만 시간이 늦어서 다니던 절엘 가지 못해서 집에서 가까운 절에 갔었는데
그 절의 스님이 능엄주는 신(神)을 불러 오는 것이니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더라도 출가자인 스님이나 하는 것이지, 일반 신도들은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절에 다니는 주변의 분들도 능엄주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며
대다라니주를 하라고 권합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이 보살님은 평소에 늘 능엄주를 해 오셨다고 한다.
다른 절에 다니는 아는 분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지만 무시하였는데,
이번엔 스님으로부터 직접 말을 듣게 되니 걱정스런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나 보다.
이런 내용은 내가 정림사를 만든 이후에 때때로 들려오곤 했다.
또 이와는 반대로 ‘능엄주는 귀신을 쫓아주는 주문이다’라고 얘기하는 스님도 있다고 한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능엄주는 귀신과 관련 있는 주문이니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스님들과 불자(佛子)들은 능엄주(楞嚴呪)에 대해 얼마나 알고 경험을 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불자들은 차치(且置)하고 왜 일부 스님들은 능엄주를 '신(神)을 불러 들이는 주문(呪文)'이라고
알게 되었을까?
어디에 근거를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리고 출가자(出家者)인 스님들만 하는 것이라면
능엄주 하는 스님들은 신(神)을 부르기 위해서 능엄주를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부처님이 기껏해야 신(神)을 불러들이라고 능엄신주(楞嚴神呪)를 설(說)하셨고,
능엄경(楞嚴經)은 그런 주문이나 모아놓은 경전(經典)이란 말인가?
능엄경 후반에 보면 오히려 공부 중에 생기는 50여가지 경계에 대해서 부처님이 말씀해 놓으신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 보면 공부 중에 설령 부처님의 형상이 나타나서 공부를 참 잘한다며 수기(授記)를 주시더라도
이는 부처를 가장(假裝)한 마군(魔軍)의 모습이니 속아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부처님의 형상이 나타나도 속지 말라고 가르치는 마당에,
그 외에 다른 잡다한 신(神)들에게도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런 장애(障碍)를 최소화시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능엄주(楞嚴呪)를 하라고
하는 것인데, 어찌 이런 능엄주를 신(神)을 불러들이는 주문이라고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능엄경(楞嚴經) 제7권에 능엄주(楞嚴呪)에 대한 공덕(功德)이 설(說)해지고 있다.
여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난아, 이 부처님의 정수리 광명이 모이어 된, 시타타파트라 비밀한 가타, 미묘한 글은,
시방(十方)의 온갖 부처님을 내는 것이니,
시방여래가 이 주문으로 인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며,
시방여래가 이 주문을 듣고, 모든 마(魔)를 항복받고, 외도(外道)를 이기는 것이며,
시방여래가 이 주문을 타시고, 보배연꽃에 앉아 미진(微塵)같은 세계에 들어가시는 것이며,...
...시방여래가 이 주문을 따라 시방국토에서 선지식을 섬기어 공양하고 황하사 여래의 법왕자가 되며,
... 시방여래가 이 주문을 외우사 위없는 정각(正覺)을 이루시며...
...이 주문을 여래의 정수리라고도 이름하나니,
너희 배우는 사람들이 윤회를 벗어나는 도(道)를 얻고자 하면서도,
이 주문을 외우지 아니하고, 몸과 마음에 마(魔)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아니하니라...
... 내가 열반한 뒤에 말세 중생들이 제가 이 주문을 외우거나 남을 시켜 외우게 하면
이 중생들은 불이 태우지 못하며, 물이 빠치지 못하며, 독이 해치지 못하며,
용이나 하늘사람이나 귀신이나 마귀의 나쁜 주문들이 건드리지 못하고,
마음에 삼매(三昧)을 얻어서, 독한 약(藥)과 만물의 독기(毒氣)가 이 사람의 입에 들어가면
곧 감로(甘露)로 변할 것이며,
나쁜 귀신들이라도 이 사람에게는 해(害)를 주지 못하며, 항상 이 사람을 보호할 것이니라...
... 아난아, 이 주문은 팔만사천 나유타 황하사 구지되는 금강장왕 보살의 종족들이
밤낮으로 따라다니면서 보호하나니, 설사 어떤 중생이 삼매가 아닌 산란한 때에라도,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이 주문을 외우면, 이러한 금강왕들이 항상 이 사람을 보호할 것이어든,
하물며 보리 마음을 결정한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 좋은 사람이 이 주문을 읽거나 외우거나 몸에 간직하면 이 사람은 보리심을 처음 낼 때부터 ...
... 그러므로 여래가 이 주문을 일러서, 이 다음 세상까지 전하여서,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수행하는 이들을 보호하여, 삼매(三昧)에 들게 하며,
마(魔)의 장난과 전세(前世)의 업장(業障)이 방해하는 일이 없게 하느니라.
너와 이 회상에서 배우는 이들이나 이 다음 세상에 수행하는 이들은 이 규모대로 수행하여
부모에게서 얻은 육신으로 도(道)를 이룰 것이니라.”
다소 길게 서술하였지만, 능엄경전에 분명히 나오는 내용이다.
경전(經典)이라면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책인데
어찌 부처님의 말씀을 부정(否定)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뜻을 우리의 좁은 소견(所見)으로 정확히 읽어내지 못하는
허물은 범할 수 있을지언정 어찌 말씀자체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고,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갖가지 장애(障碍)들이 소멸된다고 하는데
왜 거꾸로 신(神)을 불러들인다는 등 함부로 얘기를 해서 불자(佛子)들로 하여금 혼란(混亂)을
겪게 만드는 것인지 그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하더라도 스님들만 해야한다’라는 점에 대해서도 짚어보자.
내 마음을 찾고, 내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 공부하는 데에
출가자(出家者)의 공부가 따로 있고, 재가자(在家者)의 공부가 따로 있다는 말인가?
출가자의 마음과 재가자의 마음은 서로 다른 마음이란 말인가?
내가 하지 않으면 그 뿐이지,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너무 함부로 말하고 있지는 않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는데...
이번 기회에 나 스스로도 되돌아본다.
그리고 능엄주를 하는 불자(佛子)들도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능엄주처럼 그 출처(出處)가 명확한 진언(眞言)도 드물다.
어느 때 어떤 이유로 누구에게 설했으며, 그 진언을 하게 되면 어떠한 공덕이 있는지
'능엄경(楞嚴經)'에 분명히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해도 좋을 것이다.
- 日行千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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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다음 카페 '정림사랑방'에 올려진 글입니다.
진언(다라니)에 대하여
"진언(眞言)" 또는 "주문(呪文)"이란 무엇인가?
주문은 인도어(印度語)인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다.
인도어로 된 불교 경전이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한자어(漢字語)로 번역이 되었다.
번역의 대부분은 의역(意譯; 뜻으로 풀어 옮김)으로 되었다.
그러나 유독 "주문(呪文)" 또는 "진언(眞言)"이라 불리는 부분은 음역(音譯; 소리를 그대로 옮김)을
하였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 경전을 번역하시던 분들은 뛰어난 고승(高僧)들이었는데 왜 진언이라 불리는
부분은 뜻으로 번역을 하지 않고 소리의 음(音)을 그대로 옮기는 번역을 하였을까?
그에 대한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진언에 담겨있는 뜻이 어느 하나로만 풀어내기에는 벅찬 복합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 뜻으로만 번역을 할 경우 나머지 다른 의미들은 죽고 만다.
둘째, 진언이 갖는 소리에는 일정한 파장(波長)을 띄고 있는 에너지가 있는데, 이 에너지의 힘이
참으로 미묘하다고 한다.
따라서 뜻으로 번역을 하면 소리가 달라져 미묘한 에너지의 힘을 살릴 수가 없게 된다.
진언(주문)은 불보살(佛菩薩)님들의 원력과 공덕이 담겨 있는 글이라 한다.
불보살님들의 원력과 공덕이 무궁(無窮)하고 무한(無限)하기 때문에 이러한 원력과 공덕을 풀어서
다른 글로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진언도 문자(文字)로 표시되어 있기에 분명히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이유로 당시의 뛰어난 스님들도 고민 끝에 결국 진언은 번역을 하지 않기로
하고 소리의 음(音)을 그대로 살려 한자로 옮긴 것이다.
따라서 진언 또는 주문은 그 글자에 어떤 뜻이 담겨있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질 않는다.
뜻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다는 말이다.
처음에 진언을 할 때는 소리를 내서 하는 것이 좋다.
진언의 소리에 있는 파장, 즉 에너지를 소리를 내면서 함으로써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처음의 "주문(呪文)"이 나중에는 "주력(呪力)"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진언에 담겨있는 불보살님의 원력과 공덕의 힘이 소리를 통하여 느껴질 때 나 자신에게도
원력과 공덕의 힘이 충만되어지며, 오랜 숙세의 업으로 인한 갖가지 장애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고, 결국 내 속의 법신불(자성불)을 찾게 될 것이다.
진언 수행하는 바른 태도
『진언을 외는 것은, 금생에 지은 업은 다스리기 쉬워서 자기 힘으로도 고칠 수 있거니와,
전생에 지은 업은 지워 버리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신비한 힘을 빌려야 하느니라.』
- 서산스님「선가귀감(禪家龜鑑)」-
진언의 효용(效用) 중에는 '업장소멸'이라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진언만이 '업장을 소멸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불교의 목적이기도 하다) 내 속에 있는 '참 나'의 발견이다.
모든 문제는 내가 내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을 제대로 알면 모든 근심과 걱정, 슬픔, 불행 등 어떠한 업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역대 큰스님들께서 말씀하셨다.
때문에 모든 수행(참선, 기도 등)은 바로 나를, 내 속의 '참 나'를 알기 위해 하는 것이다.
내 속의 '참 나'는 머리로 이해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실제적인 수행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수행을 하더라도 이것저것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어떠한 한 가지를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나의 내면의 세계로 깊숙이 몰입(沒入)해
들어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현재의 물들어 있는 내 자신이 변하고 바뀌어 나갈 수 있다.
내 자신이 정화(淨化)되어 바뀌고 변해 나가면 비로소 나로 인해 오는 업(業)도 달라진다.
능엄주를 비롯한 각종 주력(呪力)들도 여러 가지 수행 방법 중의 하나이다.
바른 목적으로 하게 되면 내가 바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의 업(業)도 달라진다.
능엄주 자체가 업장을 소멸시켜 주기보다는 능엄주 수행을 함으로써 내가 바뀌고,
그럼으로써 자연히 업장도 소멸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바뀌지 않고 업장(業障)이 소멸될 수는 없다. 다른 수행 방법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진언만이 특별히 '업장을 소멸시킨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며, 설사
진언 수행을 하더라도 그 의도(意圖)와 방법이 바르지 못하다면 오히려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진언이란 것에 특별히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의미를 두면 삿(邪)된 방향으로 빗나갈 수 있다. 다만, 나를 찾기 위한
하나의 수행법으로 진언을 한다고 생각하고 진득하게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 日行千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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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다음 카페 '정림사랑방'에 올려진 글입니다.
능엄주 - 뜻보다는 소리에 집중하는 이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그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
한 보살님이 어느 날 가족과 외식을 하며 나누던 대화중에 남편으로부터 이런 얘기가 나왔다며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능엄주는 내용이 아니라 소리가 중요한 것이래. 그리고 그 소리에는 공덕이 있다고 하셨어...”
이렇게 아는 지식을 꺼내놓기 시작하였는데, 그만 대학생인 딸이 공덕이란 말에 피식 웃더랍니다.
그래서 정림사에서 배운 대로 2대의 실로폰 건반 실험을 예로 들며, 소리의 진동이 같은 주파수대의 사물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었더니 그럴 수 있다며 공감을 하더랍니다.
소위 진언(眞言)이라고 불리는 다라니는 그 글이 갖는 내용보다는 소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진언은 번역을 하지 않고 음을 그대로 옮겨 놓습니다.
경전을 보는 이유는 큰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내용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가르침을 이해할수록 나의 사고(思考)는 깊이와 넓이를 더해갈 수 있습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직시하여 바르게 사물을 인식하는 힘이 길러집니다.
서적 등을 통하여 성현들의 지혜를 배우는 것은 자신을 개선하기(발전시키기) 위해 취하는
가장 일반적이면서 훌륭한 방법입니다.
다만 현재 자신의 지적 수준에 의해 보는 책의 수준과 내용을 소화시키는 정도가 좌우되는 점이 있습니다.
지적수준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내용이 아니라 소리를 통한 방법입니다. 진언 수행은 이 방법에 속합니다.
몇 년 전에 모 방송국에서 다큐스페셜로 보여준 ‘소리가 약이 된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이런 실험이 나옵니다.
『 2대의 실로폰이 있다. A 실로폰의 '파' 건반 위에 고운 모래를 뿌려 놓는다.
옆에 있는 B 실로폰을 '파'를 뺀 나머지 건반을 쳐서 소리를 낸다. 아무 반응이 없다.
이번엔 '파' 건반을 친다. 그러자 A 실로폰의 '파' 건반 위에 있는 모래가 파르르 떨며 진동한다. 』
다른 음을 칠 땐 반응하지 않던 '파' 건반이, 옆에 있는 실로폰의 '파' 건반을 치자 진동을 하며 반응을 보였습니다.
소리의 진동은 같은 주파수대의 영역에 영향을 주어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소리가 약, 즉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원리입니다.
비록 가르침의 내용을 이해하여 사고(思考)의 깊이를 더해주는 방식은 아니지만,
내 깊은 의식의 깨어 있는 영역, 예컨대 불성(佛性)과 같은 ‘각(覺)의 영역’을
같은 파장대의 소리로 공명(共鳴)시켜 활성화하는 수행법이 ‘진언 수행법’입니다.
능엄주는 나의 정신(의식)이 깨어나도록 공명시켜주는 파장대(波長帶)의 소리입니다.
내 깊은 의식의 맑고 아름다운 영역이 깨어나게 해주는 소리입니다.
맑은 소리를 내는 명품악기도 오랫동안 방치해두면 굳어집니다.
마음의 주 영역인 ‘각의 영역’이 에고에 가려져 관심 받지 못한다면(파악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얕은 의식의 활동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그윽한 명품악기(각의 영역-8식)가 있는 줄도 모른 채 값싼 악기(현재의식-분별식-6식)만을
자기 악기의 전부로 여기고 연주(마음작용-생각)하고 있는 셈입니다.
능엄주와 같은 진언은 내용을 이해함으로써 자기 발전을 도모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소리로써 공명시켜 각의 영역을 활성화시키는 수행법입니다.
이런 이유로 진언은 내용이 아니라 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 ...... 그러므로 여래가 이 주문을 일러서 이 다음 세상까지 전하여서,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수행하는 이들을 보호하여 삼매에 들게 하며,
마의 장난과 전세의 업장이 방해하는 일이 없게 하느니라. ...... 』 (능엄경 7권 공덕편에서)
- 日行千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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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법보신문 제906호(07.06.27)에 실린 기사입니다.
능엄주로 자성 밝혀 번뇌 업장 녹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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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 초보자 위한 능엄주 정진 현장
기사등록일 [2007년 06월 25일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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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한 자 한 자 발음하기에도 힘든 능엄주를 열심히 따라하는 초보수행자들. 초보수행이지만 그 열기는 뜨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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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에 사는 주부 이영실(42·묘법화) 씨는 흔히 말하는 초보수행자다. ‘수행을 하면 행복해진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시작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참 막막했다. 그런데 요즘은 절에 가는 것이 너무 즐겁다.
과천에서 아침 일찍 그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 곳은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정림사(주지 일행). 올 4월부터 매주 화요일 ‘초보자를 위한 능엄주 기도’가 열리고 있는 이곳은 성철스님문도회 사찰 중 하나로 5년 전 주지 일행 스님이 도심 포교에 원력을 세운 뒤 불자들의 수행을 중심으로 이끌고 있는 곳이다.
초보 위해 천천히 한 자씩
6월 12일 오전 10시30분. 예불을 마친 불자들의 능엄기도는 108참회부터 시작됐다. 시방의 여러 부처님께 절을 올리면서 업장을 참회하고 그 공덕을 모두 일체중생에게 회향하겠다는 발원을 담은 ‘예불대참회문’을 마친 뒤 불자들은 좌복을 둥그렇게 만들어 둘러앉은 뒤 일념으로 능엄기도를 시작했다.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 파트람 아파라지탐 프라튱기람 다라니 나맣 사르바붇다보디사트베뱧 나모샆타남 사먘삼붇다 코티남….”
『천수경』신묘장구대다라니와 함께 가장 많이 지송되는 다라니 가운데 하나인 능엄주는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의 줄임말로 ‘부처님 정수리에서 나온 진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진언을 마음과 입으로 외우면 온갖 죄업이 소멸되고 청정한 본래의 자기로 돌아간다고 해 성철 스님을 비롯해 많은 스님들과 불자들이 온 마음을 다해 염송하는 진언이다.
한 자 한 자 발음하기에도 힘든 능엄주를 열심히 따라하는 초보수행자들. 초보수행이지만 그 열기는 뜨겁다. 스님은 독송 중간 중간 지도 말과 능엄주의 공덕, 능엄주 호흡법까지 세심한 지도를 겸하고 있다. “자, 이번에는 조금 속도를 내볼까요?” 그런데 이번엔 이들의 주력 속도가 베테랑 불자 못지않다.
보통 1편 독송에 걸리는 시간은 7,8분 내외. 초보자수행자들은 시간이 더 걸리지만 시간이 지나 능엄주가 입에 익으면 익을수록 독송시간은 가속도가 붙는다.
“처음에 독송하는 것은 고사하고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었어요. 지금도 어렵긴 하지만 얼마 전 스님께서 이번 하안거 결제부터 매일 능엄주 3독과 108참회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에 매일 반복하다보니 이제 조금씩 따라 읽기 시작했죠. 그래도 아직 멀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수행하시는 선배님들 보면서 ‘아, 나도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스로에게 자극제가 되어 더욱 정진하게 됩니다.” (김수경·41·분당)
돌림노래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능엄주 독송소리는 법당이 우~웅하는 진언소리로 울려 퍼진다. 시간이 갈수록 불자들은 점점 집중하고 정오가 훌쩍 넘어갔는데도 독송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정림사 주지 일행 스님은 “진언은 소리이기 때문에 정신(마음)을 기울여서 잘 들을 수 있게 되면 그 소리의 힘을 느낄 수 있다”며 “목에 힘이 실리지 않게 자꾸 읽고 또 읽다보면 내 몸에 힘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능엄주를 읽는 나와 듣는 나가 하나가 되면 내 속으로 몰입이 돼 진정한 수행을 경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읽는 나와 듣는 나 ‘하나’
또 “능엄주 수행은 분노, 상실, 좌절감이 일어날 때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 주고 언제어디서나 할 수 있는 수행”이라며 많은 불자들의 동참을 권유했다.
현재 능엄주 기도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사찰로는
합천 백련암 055)932-7300,
서울 정안사 02)523-8088,
대구 정혜사 053)624-9852,
마산 정인사 055)256-5450,
하남 정심사 031)791-7732,
의왕 정림사 031)426-4004,
부산 혜월정사 051)703-9641,
부산 정수사 051)246-3065,
부산 고심정사 051)464-0068 등이 있다.
안문옥 기자 3D3D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moonok@beopbo.com">3D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moonok@beopbo.com">3D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moonok@beopbo.com">3D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moonok@beopbo.com">3D3Dmoonok@beopbo.com">3Dmoonok@beopbo.com">3Dmoonok@beopbo.com">moonok@beopbo.com"> 법보신문 906호 [2007-06-27] | | |
※ 이 글은 법보신문 제911호(07.08.01), 제912호(07.08.13)의 '나의 발심수행'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절수행 안부전 씨 (상) |
기사등록일 [2007년 08월 02일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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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능엄주·절수행…성격 극복 집착 욕심 버리니 포용력, 이해 생겨
어느 날 법당에서 새 초에 불을 켰다. 심지가 새 것이라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심지의 불은 가물가물 흔들리며 꺼질듯 말듯 초 몸을 향하여 가는데 마치 꺼질듯 하던 작은 불꽃이 초를 만나는 순간 불꽃이 ‘우뚝’ 제 모습을 하고 여여하게 웃는 듯 보였다. 마치 애쓰고 기도하는 내 모습이 그곳에 있는 듯하다.
시댁이나 친정이 불교집안이라 일 년에 한두 번 절에 가곤 했었는데 10년 전 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스스로를 좁은 세상에 가두어 힘들게 살았는데 불교를 알고 절 수행을 접한 이후 그러한 욕구불만을 아마도 절을 하며 풀었던 것 같다. 108배, 300배, 500배, 1000배, 3000배로 수를 늘려가며 땀을 실컷 흘리면 밖으로만 돌던 마음이 다소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처음엔 300배 만하여도 24시간 온통 절만 한 기분이었다. 300배 절을 하느라 애 쓴 마음이 인생사 건성건성 살고 있는 하루를 온통 덮고 남았을 것이다.
사실 처음 절 할 때에는 온몸, 뼈마디마디가 쑤시고 아팠다. 몸의 세포와 마음의 의식이 그동안 제대로 쓰여 지지 않아 오랜 세월 동안 잠들어 있었는데 힘든 절로 인해 잠들어 있던 세포들이 잠에서 깨어나느라 온 몸이 아우성 쳤다. 세포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치니 잠자고 있던 의식도 시끄러워 몸과 마음이 야단법석이었고 힘든 삼 천배 하느라 아파서 죽을 것 같아도, 기운을 다 써서 죽을 것 같아도, 사실은 죽어가는 세포와 의식을 살려 놓아 힘이 생기는 일이라 생각하며 정성껏 한 배 한 배 절을 했다.
잠자던 세포들이 모두 깨어나면 아마도 아픔이 잠잘 것 같고 잠자던 의식이 깨어나면 세상이 밝게 보일 것이라는 희망을 가슴에 되새기면서 말이다.
점차 숫자를 늘려 절과 능엄주를 하면서 인생사의 집착과 욕심을 기도로 옮겨와 죽기 살기로 헐떡이며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2년 정도 하다 보니 몸에 기운이 다 빠지고 욕심도 집착도 기운 없는 만큼 내려놓게 되는 것 같았다. 그 때가 나의 관심사가 세상이 아닌 기도로 바뀌는 길목이었던 것 같다.
절수행이 몸에 익을수록 밖으로 나갔던 의식을 불러들이고 몸으로 돌아온 의식은 절 할 때마다 내 몸을 살피고 몸과 마음을 읽어 내려 밖으로 향하던 의식이 내 자신의 몸과 생각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픔이 커도 숨어있던 생각들이 되살아나고 아파서 고민하는 마음이 큰 번뇌가 되어 새로이 만들어내는 번뇌는 있을 자리가 없게 되니 어느덧 하루일과를 절 수행으로 시작과 끝을 맺게 됐다.
쉬지 않고 꾸준히 하다보면 점차 아픔이 사라지면서 아픔에 매였던 의식이 없어지는 것만큼 번뇌가 없어지고, 헤매던 번뇌 속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생각과 만났던 모든 인연들에 애증이 있었음을 자연히 알게 됐다.
어느 날 애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보니 아이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절 할 때 내 마음처럼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몸이 잠자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몸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아이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절을 하면서 자신을 보게 되는 만큼 상대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된 것이다.
주부(47·경기도 산본) 법보신문 911호 [20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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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수행 안부전 씨 (하) |
기사등록일 [2007년 08월 14일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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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정림사에서 본격적 수행 시작 몸 힘들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즐거워
날마다 절과 능엄주 기도를 자신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겨우 할 수 있음을 알기에 주변 인연들이 못 마땅하다가도 조금씩 이해가 됐다.
정림사에서 본격적으로 수행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연습해온 것이 있어서인지 불교 수행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물고기가 물 만난 듯, 힘은 많이 들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즐거웠다.
절, 능엄주 주력, 사경을 날마다 일과표에 동그라미를 치고 틈틈이 법문을 경청한지도 만 4년이 넘었다. 4년 동안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이 여러 번 바뀐 것 같다. 날마다 기도하기가 힘이 들어 어느 날은 울면서 하기도 했었지만 지나고 보니 작은 마음을 갖고 인생살이 살기가 너무도 힘이 들어 세상을 외면하려 기도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기도하던 모습은 내 자신이 인생살이 겉껍데기를 붙잡고 울고 웃었던 모습처럼 기도 역시도 겉껍데기에 매달려 울고 웃었던 것 같다. 많은 세월은 아니지만 열심히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온 10년 세월의 나의 기도가 이제라도 정법을 만나 한 단계 한 단계 계단을 밟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든다.
정림사에 다닌 이후부터 인터넷 daum카페 ‘정림사랑방’에 마음을 옮겨 적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코너에 날마다 하는 절과 능엄주 기도, 그리고 일 년에 4차례 아비라 기도를 하면서 힘든 순간들을 조금씩 적었다. 서툰 글 솜씨이지만 기도하며 느낀 순간순간들을 글로 옮기고 또 그 순간들을 머릿속에 저장하지 않고 버리고 또 퍼서 버리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림사 주지 일행 스님께서 잘못 알고 있는 불교에 대해 바르게 알려 주시고 절하는 자세, 주력하는 호흡법과 경전공부 등을 지도해 주셔서 바른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방향과 점검을 해주신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또 부족한 내가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늘 배려 해주는 우리 집 거사가 너무 고맙다. 날마다 기도를 붙잡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던 거사가 절을 많이 해 얼굴이 노란색이 되었다고 조금씩만 하라며 “종교는 적당히 믿어야지 지나치면 큰일 난다”고 말하는데 뭔가 이치에 맞게 설명을 하고 싶어도 머릿속으로만 맴돌 뿐 적당한 답이 생각나질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나름대로의 이치를 예로 들며 설명을 하면 “우리 집 부처님 알았습니다”라고 하며 부처님과 같이 살아서 걱정이 없다고 농담을 한다. 아마도 기도하느라 자신과 싸우느라 바빠서 식구들에게 시비를 걸지 않아 오히려 식구들이 편안해 졌는지도 모르겠다.
기도를 하면서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알고 싶으면 주위의 인연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연들이 자신에게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오는지를 보면 자신을 대하는 모습 모습들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기도를 하며 가는 길이 때론 힘이 들어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주저앉게 될까봐 몸부림치며 애를 쓰지만 인생사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것 보다는 행복한 일이라 생각하며 하던 힘든 기도가 서서히 편안해지고 기도가 편안해 지는 만큼 인생사도 편안함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기도생활이나 인생살이나 모두 내가 하는 일이라 탐(貪), 진(瞋), 치(痴)가 녹아내리는 만큼 평온함으로 같이 오는 일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주부(47·경기도 산본) 법보신문 912호 [2007-08-1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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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홋~ 감사합니다_()_
이렇게 컴에 올리시니 넘 좋아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좋은 하루 되시길~!
매일 이걸 보며 능엄주 1편씩 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네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오예~! 스님 짱이십니다. 정수리광명 진언을 그대로 실행 해 보이셨네요. Good, Good!!!
이렇게 듣고 있어도 좋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스크랩해갈께요
고맙슴니다~ 사경을 하고 있슴니다~~ 독송도 하구요~~
매일능엄주를독송하고있는데참뜻을이제야정확하게알게되었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니무 마하 반야바라밀_()_
마하반야바라밀 감사 합니다 _()()()_
늘감사드립니다부처님법 널리퍼지고,가피가 함께하시길 빕니다
능엄주도 잘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