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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주 요 섭
1
우뽀는 갈보였다.
착취와 과도한 생식기 노동과 번민과 실없는 한습이 소녀이던 그로 하여금 삼 년이 못 되어 삼십이 넘어 보이는 노파를 만들어주고 말았다. 태양은 꽃을 피어오르게 하되 구박과 무정의와 학대는 얼굴을 밉게 만드는 것이다.
삼 년 전 호남에 큰 기근이 있을 때 열여섯 살이던 우뽀는 열흘씩 굶어서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눈이 뒤집힌 아비 어미에게 보리 서 말에 팔려 그때 기근 구제도로 건축 공사 십장인 어떤 양고자¹에게 처음으로 정조를 깨뜨리었다. 그때 그 어둑신한 널판 얼거리 좀은 방 안에서 그 쇠뭉치 같고 노란 털이 부르르 난 양고자 팔에 꽉꽉 안기던 그 두려움 그 부끄럼 또 그 어떤 알수 없는 쾌미를 우뽀는 지금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훅훅하던 그놈의 입김에서 여우 가죽내 같은 노랑내가 숨을 콱콱 막히게 하던 것과 영문은 모르고도 좀 대항을 해보다가 그가 시커먼 육혈포²를 꺼내 헛방³을 쏘면서 위협하던 것과 무서운 김에 찍소리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면서 그 짐승 같은 가슴에 부둥켜 안기던 것, 그러고는 후끈후끈하는 뺨, 어찔한 아래 아픈 허리, 그러고는 기절, 이런 것들이 어린 그의 첫 경험으로는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 강한 인상을 남기고 갔다. 거기서 그놈에게 연 사흘 밤을 고생을 하고 그러고는 뒷동리에서 또 보리 서 말 주고 저보다 더 고운 처녀를 사 왔으므로 그는 그만 쫓겨나고 말았다. 쫓겨는 났으나 하여간 시원하다고 생각을 한 때 그 양고자의 심부름하던 노동자 하나가 양고자에게 청을 대서 그날 하룻밤은 또다시 그 노동자와 같이 자고 그런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도 상관없다는 허가를 얻었다. 그날 밤에 그는 그 노동자에게 연 세 번을 거듭 치르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그래 그는 이튿날 새벽에 허덕거리며 그래도 부모의 집이라고 뛰어간 때에는 벌써 병석에 눕지 아니치 못하였다.
그가 사흘인가 앓고 좀 나아서 문밖에 나앉게 된 때 그는 다시 대양 칠 원에 팔려서 어떤 양복 입은 신사를 따라 같이 팔려 가는 수십 명 먼 동리 가까운 동리 처녀들과 함께 백 리나 되는 길을 걸어 나와 생전 처음 보는 기차를 타고 상해(上海)까지 와서 또다시 얼마엔지는 모르나 지금 같이 있는 뚱뚱할미에게로 팔려 와서 이래 삼 년을 하루같이 하룻밤에도 서방을 적어도 네다섯씩
많은 때는 한 더즌⁴씩까지 갈아대게 되었다.
곱던 그의 얼굴이 진흙에 말발굽 자리 같아지고 말았다. 볼그레하던 뺨이 뼈만 남도록 수척한 위에다 값싼 분을 매일 발라서 퍼러무리하고도 거무튀튀하게 되고 샛별 같던 눈이 공포를 발산하는 두려운 동굴처럼 우둔해졌다. 영양 부족으로 눈 아래는 퍼런 멍이 지고 벌써 한 이태 전에 걸린 매독은 이곳저곳 번지기를 시작해서 요새는 코와 입가에도 얼른 보이지는 않으나 근질근질한 보둡지⁵가 맺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계 사마로(英界 四馬路)에서 밤마다 뚱뚱할미와 함께 사마로 아래위를 오르대리면서 헙수룩한 인력거(人力車)꾼들을 끌어들이고 있었으나 재작년 영계 공무국(公務局)에서 밀매음을 금한 이후로는 지금 있는 이 법계 대세계(法界 大世界) 앞 거리에 와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마음 놓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하비로(霞飛路)로부터 영계, 법계가 갈리는 에드워드로(路)까지 죽 서문에서 북정 거장(北亭車場)으로 다니는 전찻길 좌우편이 모두 이 갈보 무리의 횡행지였다. 그래 저녁이 어슬어슬해지기만 하면 수백의 갈보들이 모두 제각기 제 농당(농당은 상해 세집의 전형이다. ㄷ 자형으로 집을 총총히 연달아 짓고 사면팔방 복도 어구에는 쇠문을 해 달아서 밤에는 닫았다가 낮에는 열곤 하게 되어 있다) 복도 어구에 마치 개미들이 개미구멍 밖에 나서듯 모둥켜 서서 지나가고 지나오는 부랑자들과 노동자들을 잡아끌고 추파 보내고 하는 것이 이곳 상업이다. 그러나 그것도 순사한테 더욱이 불란서 경부한테 들키면 벌금 푼이나 톡톡히 무는 바람에 갈보 주인들은 사람을 하나 사서 거리 어구에 세워두었다가 그 사람이 순사가 들어온다고 암호를 하면서 길 앞으로 빨리 지나가면 해 쪼이느라 구멍 밖에 나붙었던 벌레들이 몰려 들어가듯 농당 복도 어둑신한 쪽으로 우루루 쫓겨 들었다가는 순사가 지나간 뒤에는 또다시 우루루 몰려나와서 서방을 잡아들였다.
우뽀는 처음에 얼굴이 똑똑해서⁶ 하룻밤에도 퍽 많은 손님을 얻었다. 비슬비슬 엿보러 혹은 놀러 나와서 거리를 공연히 오르고 내리고 하던 젊은 사람들도 우뽀가 쫓아 들어가서 소매를 휘어잡고 얼굴을 쳐다보며 한번 생긋 웃으면 그만 그를 거역하지 못하고 줄레줄레 따라 들어왔다. 그래 이것으로 어떤 때는 주인의 사랑도 받고 또 동무 갈보들의 시기와 미움도 더러 샀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전 일이요 요새 갑자기 그의 몸과 얼굴이 급전직하적으로 쇠퇴해가는 지금에는 그도 젊은 남자의 가슴을 끌 만한 자태를 거의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 다른 애들처럼 매는 몹시 얻어맞지 않았다. 그러나 이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보증할 수가 없었다.
갈보들은 대개 밤 일곱 시가량부터 새로 세 시까지가 대활동을 하는 제일 분주한 사무 시간이었다.
이 여섯 시간 동안에 잘되면 사내 서넛씩은 늘 들어왔다. 값은 사내의 주제를 보아가지고 요구하는 것이다. 인력거꾼이나 공장노동자가 오면 대개 한 사십 전 보아서 이십 전을 주어도 받고 또 흥정이나 없는 날은 동전 열두어 닢도 받고 했다. 그러다가 이따금(작년부터) 아라사 거지 같은 것이 오면 한 오십 전씩 떼내고 했다. 그러니 매일 밤 수입이 대개 이십 전으로부터 육십 전 내외였다. 이렇게 번 돈은 말끔 주인 할미가 가져가고 갈보들은 낮에 두르고 있는 누더기와 밤에 남자의 마음을 끌기 위한 육욕을 발동시키기 알맞은 각색의 비단옷 한 벌과 값싼 분과 머릿기름 그리고는 그 좋아하는 담배 한 달 먹어야 이 원(二元)어치도 안 될 밥만을 그 주인에게서 받았다.
우뽀의 삼 년 생활이 이 사무의 반복으로 다 지나갔다.
2
요새 우뽀의, 몸이 상해 들어가는 것과 한가지로 그의 가슴, 그의 마음, 그의 영(靈)이 또한 상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육체적 쇠퇴는 다만 영의 번민의 그림자인지도 모른다.
벌써 한두 주일 전부터 우연히 그는 오정이 좀 지나 그가 피곤한 몸을 더러운 침대에서 일으켜가지고 얼굴 단장을 시작하려고 하는 때마다 그는 그의 창문 앞(그의 방은 가장 길거리 방이어서 그 조그만 창틈으로는 바깥 전찻길이 내다보였다)으로 어떤 미남자(美男子)가 늘 지나가고 하는 것을 그는 보았다. 처음 볼 제는 그도 심상히 보아두었지만 얼결에 한두 번 보는 동안 차차 마음이 뒤숭숭해지기를 시작했다.
사랑! 사랑은 인류의 가슴에 영구히 잠겨 있는 불멸의 씨다. 이 씨가 구박과, 무식과, 착취와, 몰염치라는 돌멩이 밑에 눌려 있는 동안 자라지도 않고 따라서 당자도 그 씨의 존재를 인식지 못한다. 그러나 이 씨가 어떤 우연한 기회를 만나 한번 햇빛을 엿보는 날에는 이 씨는 마치 비 온 뒤 참대순과도 같이 하룻밤 새에 싹이 쏙 솟아오르고 하루 새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이며 이 자람을 막을 자는 세상 아무것도 없다. 이 자람의 세력은 세상 모든 무력을 압도하고 부셔 없애고 마는 것이다.
이 죽은 줄 알았던 사랑의 씨가 지금 우뽀의 가슴 땅 위에 기운차게 살아난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울렁울렁하는 가슴으로 그가 지나갈 때쯤 해서는 창문 구멍으로 바깥을 열심으로 내다보다가 그가 힐끗 지나가는 것이 보이면 봄날의 종달새 모양으로 혼자 즐기고 창백한 얼굴의 순진한 처녀가 가지는 것과 꼭 같은 부끄럼의 홍조가 떠올랐다. 이것이 그에게는 상상도 못 했던 새 경험이었다. 그가 일찍 삼 년 동안이나 수천 수백의 사람의 품에 안기었으나 조금도 이와 같은 다만 그의 얼굴이라도 일순간 보는 이런 흥분과 고민을 주지는 않았었다.
며칠 후 견딜 수 없어서 그는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 단장을 잘하고 복도 어구까지 나가 서서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삼 년 동안이나 가지각색 남자들의 소매를 붙들고 추파를 보내본 그도 웬일인지 그렇게 그립고 새벽잠 때 꿈에까지 보던 그가 앞으로 올 때에는 무엇인지 알지 못할 힘이 그를 잡아끌어서 그만 낯을 다홍빛으로 붉히면서 뒤로 물러서서 벽 뒤에 숨어서 발딱발딱하는 가슴을 손으로 짚으면서 껑충껑충 빨리 걸어가는 그의 뒷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그 남자는 깨끗한 옷을 입은 깨끗한 청년이었다. 왼손에는 책을 들고 지금 늦은 봄 남들은 모두 맥고를 쓰는 때에 아직 겨울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그는 저편으로 가서 에드워드로(路) 저쪽까지 가서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우뽀는 보았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거리가 되어서 늘 자세히 보이지는 아니해도 이따금 힐끗 그가 보일 때에 우뽀는 그가 저를 바라다보는 것같이 생각이 되어서 몸을 흠칫하며 어린애 모양으로 방으로 뛰어들어와 침대에 가 엎어져서 한참이나 씩씩거렸다. 그의 부드러운 손이 저를 어루만지고 그 향내 나는 입김이 제 머리카락을 날리는 듯하게 감해서 그는 혼자 극도로 흥분했다.
그 후 며칠을 계속해서 그 청년을 본 결과 우뽀는 대략 아래와 같이 그 청년을 짐작했다. ‘그는 아마 어느 학교 교사일다. 그래 점심때마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전차를 타고 이 길거리 어구까지 와서는 이 교차점에서 내려서 다시 법계 쪽에서 전차를 타면 한 백여 보밖에 안 되는 요 거리에 동전 너 푼 주고 그러고는 저편 영계에 가서 또 표를 사야 하는 고로 그는 경제하려고 이 교차점에서 저편 영계 어구까지는 걸어간다.’ 그래 전차 하나가 그가 늘 서 있는 자리 앞에 머물렀다가 다시 떠나간 때마다 우뽀는 그 청년을 다시 보지 못하곤 했다.
이 발견이 우뽀에게는 꽤 큰 치명상을 주었다. 그보다도 매일 그를 볼 적마다 그는 자기는 본 체도 아니하고 앞으로 쑥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는 울지 아니치 못했다. 그는 그가 그 청년이 지나가는 것을 볼 적에는 저 혼자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도 그 청년이 저편에서 전차 속으로 사라진 후에는 늘 저 자신의 모양을 돌아다보고는 그만 낙망의 절통으로 방으로 뛰어들어와 울며 자리에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받은 장래가 구만리 같은 깨끗한 청년! 그런데 나는! 아! 더러운 것! 그것이…… 그것이 가능한가…… 바랄 수나 있는가……?’ 하고 그는 울고 부르짖었다.
3
오늘 아침 주인 할미는 우뽀가 특별히 늦도록 일어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오후 두 시가 되도록 소식이 없으므로 그는 어청어청 가파른 층층대를 내려와서 우뽀의 방으로 들어왔다. 우뽀는 실컷 울대로 울었다. 머리를 산산이 풀어헤치고, 눈이 뚱뚱 부었다. 그리고 침대에는 그가 몸을 비비 꼬며 뭉개던 자리가 남아 있다. 주인 할미는 놀랐다.
“얘 네가 오늘 미쳤니? 이게 무슨 놀음이냐? 어서 일어나서 세수하고 탐예해라,⁷ 그러고 어서 머리토 빗고 해야지, 망할 년!”
우뽀는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대답을 하면 무엇하나!
실컷 두들기우고 꼬집히고, 위협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장작개비로 얻어맞고야 우뽀도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분 발랐다.
저녁에 역시 복도 어구에 나가 섰으나 마치 미친 여자 또 혹은 정신 빠진 여자처럼 멀거니 서 있었다. 순사가 온다고 해도 띌 생각도 없었다. 주인 할미가 억지로 떠밀고 되뚜록되뚜록하면서 농당 안까지 와서 쥐어지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무슨 귀신이 붙었느냐? 얌전하던 애가 왜 오늘 이 모양이냐?
너도 네 몸값을 해야 하지 않니, 개 같은 년!”
밤 열두 시나 되어 주인 할미는 우당뚱땅하게 생긴 노동자를 하나 끌고 와서 억지로 우뽀에게 맡겼다. 우뽀는 몸부림을 해가면서 반항했으나 그 우악한 팔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우뽀가 기절을 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때에는 그는 어떤 천근이나 되는 무거운 것이 저를 내리누르고 있는 것을 감했다. 그러고는 숨이 턱턱 막히는 고린내와 시시한 땀내, 콕콕 쏘는 아픔, 뗑한 머리, 헐럭헐럭한 남자의 숨소리, 남자의 입에서 질질 흘러 뺨 위를 적시는 탁하고 더러운 침. 우뽀는 다시 정신없이 되고 말았다.
우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사면이 고즈넉해진 때였다. 그렇게 떠들고 돌아다니던 행상인들의 길게 외치는 소리까지 끊어지고, 그리 분주하던 상해의 거리가 평화스러운 꿈속에 잠긴 때였다. 우뽀는 어두운 방 안에 일어나 앉았다. 일 초도 잊지 못할 그 청년의 자태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자기로부터는 너무 먼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중간에 건널 수 없는 구덩이가 있어서 제가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그가 찹힐 것 같지도 않았다. 더욱이 그는
“더러운 년! 더러운 년!” 하면서 멀리멀리 몸을 피하는 것 같았다.
“더러운 년” 하면서 그는 제 팔때기로 제 얼굴을 문질러보았다.
“더러운 년……”
그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푹 마루 위에 고꾸라졌다.
사랑은 사람을 깨끗하게 한다. 삼 년 동안이나 아무런 생각이나 관념도 없이 이렇게 하는 것이 사는 것이거니 하고 자기 몸을 수다한 남자들의 자유 욕심에 내맡기던 그가 오늘 밤의 당한 그 욕은 참말로 견딜 수 없이 부끄러운 일이요 욕스러운 일처럼 생각이 되었다. 그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오! 더러운 년 더러운 몸! 더러운 피!…… 아웨 씨(그는 그 청년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이렇게 이름 지어 부르는 습관을 얻었다) 이 몸은 정말 더러운 몸이외다!”
사랑은 사람을 깨게 한다. 무식이 사랑 앞에서 스러진다. 우뽀는 이때껏 자기 몸, 또는 자기 생활에 대해서 절실한 생각과 연구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그는 일생 처음으로 제 몸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참이나 무엇이 무엇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으나 차차 머리가 깨끗해지고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깨달아지는 바가 있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왜? 왜? 왜? 누구의 죄 인가?…….”
그는 마침내 무엇을 깨달았다……
“그렇다!” 하고 그는 외쳤다. “그렇다!”
삼 년이나 같이 살던 주인 할미의 뚱뚱한 몸집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아 저 양도야지 같은 살, 내 피 빨아 먹고 찐 살…… 오! 내 피 내 피!” 하고 그는 바르르 떨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깨달았다. 그것은 운명도 다른 아무것도 아니요, 다만 자기 저 자신이었던 것이다.
‘왜 내가 이렇게 약했던가!’ 하고 그는 혼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원수다! 원수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모든 것이 밝은 등불과 같이 그의 머리에 인식을 주었다. 조금도 의심나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을 안 것 같았다.
그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사랑은 사람을 용감하치 한다. 그것이 짝사랑이었든 희망이 없는 절망적 사랑이었든 그것이 관계 있으랴. 사랑은 사랑 그것으로 위대한 것이었다. 우뽀는
“그래라. 그러면 너도 새사람이 되리라. 그리고 나를 따라오라”
하고 손짓하는 그 청년을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아, 삼 년 동안이나 내 살 내 피 빨아 먹은 미운 저것!” 그는 다시 그 주인 할미의 뚱뚱한 몸집을 보았다. 그 퉁퉁한 볼을 물어뜯고 할퀴고 잴기잴기⁸ 씹 어보고 싶었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미친 듯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속에서도 번들번들하는 식도 날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열대 삼림보다도 더 고즈넉한 침묵이 온 집 온 거리 온 도시 온 세계를 둘러싸고 있었다. 벌써 새벽 기운이 떠도는 것 같았다.
찌꿍찌꿍하고 소리가 나는 층층대를 걱정하면서 우뽀는 번듯번듯하는 것을 바른손에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4
외마디 소리와 끙끙하는 소리가 들리고 피비린내가 쫙 퍼지더니 우뽀가 황망히 층층대를 굴러떨어지다시피 쿵쿵거리며 내려왔다. 다른 방에서 갈보들이 놀라 깨었는지 “엉엉”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사⁹보다도 더 억센 초자연적(超自然的) 힘으로 우뽀는 쇠대문을 떠밀어 열었다. 그리고 그는 생전 처음으로 제 맘대로 문밖으로 내달았다. 거리는 어두컴컴하고 좌우의 집들은 모두 시커먼 상판¹⁰으로 ‘나는 모른다’ 하는 듯이 내대고 있었다.
우뽀는 에드워드로 전등이 있는 쪽을 향해 줄달음질 쳤다. 그는 잔돌 깐 길 밖에 나와 아웨 씨가 늘 서서 전차를 기다리던 곳을 지나 시멘트 깐 반들한 길 위로 미끄러질 듯이 내달았다…… 조롱을 벗어난 종달새가 파란 하늘 위로 노래하며 춤추며 울 듯이…… 영원히 영원히 우뽀는 달음질했다.
(1925년 4월 14일 밤)
-끝-
2016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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