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 제 몫은 조르조네의 작품 설명이 다 입니다.
저는 토요일에 행사가 두 개나 있어 참석이 어렵습니다.
오역한 부분에 대한 수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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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우르비노에 있는 궁궐의 화려하고 호화로운 방을 따라 거닐면서 “예이츠가 귀도발도는 훌륭한 예절과 취향의 문제를 상담하지 않으리라고 정확하게 추정한 목자들 또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들은 자신들 고유의 문명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명화된 전원과 같은 것들도 있다. 사이프러스 나무의 어둡고 수직적인 강조와 포도덩굴과 올리브 나무의 테라스가 있는 토스카나의 풍경을 살펴보면, 사람들은 영원한 질서에 감명을 받는다. 그곳은 모두 한 때 형체도 없고 짜임새도 없는 숲과 늪지였다. 문명화의 과정은 혼돈에서 질서를 가져오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의 전원rustic 문명은 농가 외에는 어떠한 기록도 가지고 있지 못한데, 농가의 고결한 비례가 이탈리아 건축의 토대가 된 듯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들이 전원을 살펴보았을 때, 그곳은 쟁기질을 하고 땅을 파낼 장소가 아니라 일종의 지상earthly 낙원이었다.
이것이 유럽 회화에서 처음으로 진화된 풍경, 반 에이크의 <어린 양의 경배 Adoration of the Lamb>의 배경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는 설명이다. 전경은 중세적인 세부 묘사의 날카로움을 갖고 그렸다. 하지만 우리의 눈은 짙은 녹색의 월계수와 털가시나무를 무시하고passing over 빛나는 저 먼 곳으로 떠간다. 이미 자연에 대한 의식은 탈출하고 싶은 욕망과 연계되어 있으며,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과 관계있었다. 중세 말기에 화가들은 우아한 company(친구들, 무리, 동석자들,)를 선보였는데 성처녀 마리아 그녀까지도 꽃과 잔디 사이에 땅에 앉아 있었다. 그 뒤 16세기의 첫 해에 베니스의 화가 조르조네는 자연과 접촉하는 이러한 행복을 좀 더 공개적으로 육감적인 어떤 것으로 변환시켰다. 고딕 양식의 정원에서 헐렁헐렁한voluminous 주름잡은 옷을 걸치고 있던 여인이 지금은 발가벗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전원 축제 그림(우아한 향연화)는 유럽 예술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조르조네는 정말 영감이 뛰어난 사람 중 하나이며, 예측할 수 없는 혁신가여서 역사의 진로를 교란 시켰다. 자신의 그림에서 조르조네는 문명화된 인간에 어울리는comporting 환상-시인 산나차로에 의해 20년 전에 유행하
였던 목가적 이상향의 신화myth of Arcadia- 을 묘사하였다. 물론 그것은 단지 신화일 뿐이다. 전원생활은 전혀 이와 같지 않다. 심지어 피크닉에서도 개미들은 샌드위치를 공격하고 말벌은 와인 잔 주위를 윙윙 거린다. 하지만 목가적인 오류pastoral fallacy가 테오크리토스(기원전 3세기 전반의 그리스 목가적 시인)와 버질(기원전 1세기 로마의 라틴 시의 왕자)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중세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르조네는 얼마나 근본적인 이교도pagan(로마 시대에는 paganus란 말은 pagus(시골)에 사는 사람을 가리켰는데, 차차 그리스도교 밖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토속 신앙인)였는지. 태양과 그늘의 쾌활한 대조, 팔랑거리는 나뭇잎, 우물에서 흐르는 물소리, 류트의 소리와 어우러져 이 모든 것은 육감적인 즐거움이며, 고대 조각의 리듬과 형태를 충족시키길 요구한다. 이러한 목가적 이상향arcadia은 플로렌스 인본주의자의 공화주의적 미덕만큼이나 고대에 대한 찬사이며 인간의 재발견의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조르조네의 지적인 자연보다는 육감적인 자연에서 더 그러하였다.
조르조네의 피크닉과 더불어 우리 인간의 능력에 대한 균형과 즐거움은 완벽함에 달한 듯 보인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 모든 완벽함이 예정되는 모든 시점들은 위험의 징후hint이다. 그리고 조르조네 자신은 폭풍Tempesta라고 알려진 신비로운 그림 안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지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여기 젖을 물리고 있는 반나체의 여인의 의미는 무엇인가? 부러진 기둥 번쩍이는 번개의 의미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조르조네 당대에 “군인과 집시‘로 묘사되었다. 음well,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인간 이성의 빛에 비추어 보면 확실히 어떠한 확신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그가 하고자 한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 개개인이 자신과 동반하는 공포와 기억의 엄청난 양을 생각할 때 알베르티의 선언은 얼마나 순진한가? 전적으로 자신의 통제를 넘어서는 외적인 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순진한가? 조르조네는 물리적 아름다움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 조르조네는 한 늙은 여인을 그렸는데 그 그림을 ‘시간과 함께Col Tempo’라고 불렀다.
이 작품은 새로운 비관주의의 첫 번째 걸작 중 하나이다. 새롭다는 것은 왜냐하면 종교의 위안이 없기 때문이며 비관주의라는 말은 햄릿에 의해 마침내 표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추측하건데 사실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명화는 토대가 충분히 넓지는 않았다. 소수가 다수로 부터 지나치게 멀리 나갔다. 지식에서 뿐만 아니라 지성에서도. 이 것은 소수자가 항상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추측일 뿐이다. 인본주의자의 처음 두 세대가 죽었을 때 그들의 운동은 그 뒤에 실체적인 무게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인간적인 크기의 가치로부터 멀어진 반동이 있었다. 운 좋게도 그들은 조각과 회화, 건축을 남겼으며, 이성과 명쾌함, 조화로운 비례를 높게 평가하고, 그리고 개인을 믿는 메세지를 모든 세대에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