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픽 미스테리
정리 김광한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오드리 토투 주연의〈시작은 키스〉영화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다비드 포앙키노스의 신작 소설. 프랑스 서쪽의 땅끝 마을 도서관장은 출판사들이 거절한 모든 원고를 받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지나 이 원고들 중에서 발굴된 한 책이 많은 사람의 삶을 뒤흔들어놓는다.
문학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코미디와 미스터리 형식으로 쓴 이 소설은 책과 작가와 독자의 소용돌이치는 운명을 재기발랄하게 써내려간다.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이지만 문학은 여전히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욕망과 기만과 거짓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사랑은 우리 옆에 늘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다비드 포앙키노스 소설가, 영화감독
소르본 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별도로 음악 공부도 했다. 재즈 밴드를 결성하려고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집에 책이 없어 16살까지 거의 책 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유일한 문화 체험은 형이 데리고 간 영화관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죽을 정도로 심하게 병을 앓고 난 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스 여행중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쓰다 글쓰기에 눈을 뜨게 되었다. 주요 작품 『백치의 역전―두 폴란드인의 영향을 받아서 씀』(2002), 프랑수아 모리아크 상 수상(아카데미 프랑세즈) ,『내 아내의 에로틱한 잠재력』(2004, 아셰트 문예창작기금), 로제 니미에 상 수상, 『누가 다비드 포앵키노스를 기억하는가?』(2007, 페미나 상 후보), 장 지오노 상 수상, 『귀와 귀 사이』(2002), 『행복의 경우』(2005), 『자치적인 마음』(2006)
책 속으로
마갈리는 상사가 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지만 거절당한 책들에 관한 프로젝트에 대해선 의구심을 표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책들을 쌓아놓고 뭘 하시게요?”
“그건 미국인 아이디업니다.”
“그래서요?”
“브라우티건을 기리는 거죠.”
“누구요?”
“리처드 브라우티건. 《바빌론을 꿈꾸며》 안 읽어봤어요?”
“안 읽어봤는데요. 하여튼 진짜 희한한 생각이네요. 우리 도서관에 거절당한 원고를 들고 사람들이 찾아온다니…. 그런데 정말 그런 걸 원하시는 거예요? 온갖 정신병자들을 보게 될걸요? 작가들이 별난 종자라는 건 온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어요. 더군다나 책 한 권 못 낸 작가라면 오죽하겠어요? 이상한 꼴만 잔뜩 볼 거라고요!”
“그런 작품도 자기 자리를 찾는 거죠. 우리가 그런 책을 위해 자선을 베푼다고 생각하면 돼요.”
“아하, 저더러 실패한 작가들을 돌보는 마더 데레사가 되라는 말씀이군요.”
“맞아요! 일리 있는 말이에요.”
“….”
마갈리는 점차 그 아이디어가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새로운 모험을 꾸려가는 일에 기꺼이 동참했다. 장 피에르 구르벡은 〈리르〉나 〈마가진 리테레르〉 같은 문학잡지에 광고를 냈다. 출판되지 않은 원고를 제출하러,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책들의 도서관’이 있는 크로종으로 오라고 제안하는 광고였다.
이 아이디어는 즉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고 실제로 원고를 들고 찾아오는 이들도 생겨났다. 어떤 작가들은 실패의 산물을 내려놓으려 먼 길을 감수하고 찾아오기도 했다. 그 길은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의 문학 버전처럼 성스러운 여정이었다.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마다하지 않는 정신, 그건 자신의 책이 출판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상처 입은 마음을 떨쳐버리고 단어들을 지우기 위한 상징적인 의식이 되었다. 크로종이 프랑스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라 그 의식이 더욱 신성하게 느껴진 건지도 몰랐다.
특별한 도서관에서 생긴 일
글을 쓰는 사람들의 소망은 자신의 글이 출판되는 것이다. 하지만 출판사를 통해 자기 책을 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여러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도 거절당하기 일쑤이고 그러다가 결국 좌절하고 마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
자신이 쓴 글을 누군가 보아주지 않는다면 그 글은 자기 위안 외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프랑스 서쪽의 땅 끝에 위치한 소도시의 시립도서관장 구르벡은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책들의 도서관’을 만들고, 여러 문학잡지에 출판되지 못한 책들을 제출하러 오라고 광고를 낸다.
그의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고 실제로 원고를 갖다내러 땅 끝에 위치한 이 도서관까지 찾아온다. 바다에 병을 던지고 그 안에 넣은 편지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처럼.
그러나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도서관에 쌓인 버림받은 원고들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으며,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구르벡마저 숨을 거둔다.
낭만적인 문화의 도시 파리와 한적한 바닷가 마을 크로종을 잇는 인물은 파리의 대형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델핀 데스페로이다. 촉망받는 젊은 편집자 델핀은 어린 시절부터 책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살다가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파리로 올라와 살고 있다.
여름휴가를 맞아 애인과 함께 고향을 찾은 델핀은 이 도서관에 대한 얘기를 듣고 구경하러 갔다가 놀라운 소설을 하나 발견한다. 《사랑의 마지막 순간들》이라는 제목의 이 원고에 적힌 저자의 이름은 앙리 픽.
베스트셀러에 대한 촉이 뛰어난 그녀는 곧바로 이 소설의 저자, 앙리 픽을 찾기 시작하는데, 그는 이미 이 년 전에 죽은 사람으로 피자가게 주인으로 살아왔다. 문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았던 남편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앙리 픽의 과부는 경악하지만, 그의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학계를 뒤흔들며 대대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꾸어놓는다.
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찰
가볍고 경쾌한 필치로 삶의 진지함을 써내려가는 프랑스 작가, 다비드 포앙키노스의 열다섯 번째 소설 《앙리 픽 미스터리》는 그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미스터리물이다. 그러나 다른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처럼 살인사건이 일어나거나 피가 흐르는 무서운 이야기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굳이 장르를 정하자면, ‘문학’을 주제로 삼아 책과 관계된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을 기발하고도 엉뚱한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하는 문학 코미디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