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기 2569년 1월 5일 1월 첫째주 포살법회 및 정기법회 (법회소식 1514호)
금강경 수행(칠보 보시와 사구게 공덕)
법문: 회주 지명스님
이칠보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 이용보시 득복다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불고수보리
以七寶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 以用布施 得福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佛告須菩提
약선남자선여인 어차경중 내지수지사구게등 위타인설 이차복덕 승전복덕
若善男子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 勝前福德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가지고 널리 보시를 행한다면 얻은바 복덕이 얼마나 많겠는가?”수보리가 사뢰었다. “대단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의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녀 다른 사람을 위해 설명해 준다면 이 복덕(사구게)이 저 복덕(칠보)보다 더 수승(殊勝)하니라”고 하였다. (11.無爲福勝分) ❷
이전에는 항하와 모래에 대하여 물었는데, 이번에는 삼천세계에 가득한 칠보의 보시와 이 경의 사구게(四句偈)를 들면서 어느 것이 복이 더 많겠는가? 하시며 복의 경중(輕重)에 대하여 묻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11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부처님께서는 복의 량(量)도 중요하지만, 질(質)은 더욱 중요히 생각하십니다. 때문에 칠보 보시와 경전의 사구게를 예로 들면서 어느 것이 복이 더 수승하겠는가를 물은 것 입니다. 분명한 것은 한 가지는 물질로서 수와 량이고, 또 한 가지는 물질과 량으로 비교할 수 없음에도 이를 예로 든 것은‘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행의 핵심인 집착상’에 대하여 논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은‘생멸 형상으로 지은 복(有爲福)은 결국은 생멸의 복이지만, 사구게는 무형의 복(無爲福)이기에 이 복덕(四句偈)이 저 복덕(七寶)보다 더 수승(殊勝)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끝 없는 대자비심의 발로로서 일시적 복 보다는 영원히 함께하는 반야바라밀의 영원한 복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구게가 어떤 것이기에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실까? 사구게(四句偈)는 이 경의 내용을 더 압축시킨 것으로써 부분적 내용을 심도있게 드러내기 때문에 사구게를 수지독송하는 것은 곧 부처님의 깨달음을 전수 받는 일이요, 그것을 타인에게 전해준다는 것은 곧 세상을 정토로 만드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을사년(乙巳年)의 새해입니다. 그렇다면 새해 우리의 믿음은 무엇일까?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오직‘중생의 안락을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목적은‘해탈과 열반’입니다. 당연히 불자의 수행은 여기에 입각한‘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실천이 되겠습니다. 수행의 전체 내용은 어리석음과 미망, 집착과 번뇌를 깨트리는 것이 주 내용이므로 이러한 말씀을 받아 지닌다는 것은 마치 차가운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따뜻한 물을 부어주는 것과 같고, 바위처럼 단단한 업을 지닌 사람에게는 이를 깨트리는 큰 햄머와도 같습니다. 때문에 이 경을 수지독송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단단한 업은 더욱 엷어지게 되고 끈끈한 집착심과 원망과 미움의 마음은 모두 녹아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상(四相)을 타파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곧 수행이며“음력 12월 8일 성도재일(成道)”의 의미가 됩니다.
모든 경전의 구성은 어둠을 몰아내고 반야지혜를 밝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믿음의 실천적 자기 경험이 부족한 중생이라도 수지독송한다면 본래의 마음이 밝게 드러납니다. 세속의 법은 아무리 암송한다 할지라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면 그것으로써 궁극적 해탈이 이루워지지 않지만, 이 경은 사구게 하나만이라도 받아 지니게 되면 탐착의 거치른 마음과 잠재되어 있는 업식은 모두 사라지므로 반야법신의 공덕은 밝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경의 가피공덕으로 사상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보살의 복인 무위의 복 반야바라밀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