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혼혈왕, 충선왕
★ 글쓴이 : 이승한
★ 펴낸곳 : 푸른역사
충선왕[忠宣王], 고려의 제26대 왕으로 아버지 충렬왕과 어머니 제국대장공주(원세조 쿠빌라이의 딸) 사이에서 출생한 인물입니다. 역사교과서에서는 연경에 만권당을 지어서 학문연구에 힘썼다는 정도만이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왕명에 충(忠)이 들어가는 고려왕들의 경우 원 지배기의 일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점도 고치기는 해야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보통 무신집권 및 대몽항쟁기 다음에 잠깐 원 지배기가 나오고(정치적으로는 관제격하, 그 외에 문화적 영향 일부), 바로 공민왕의 개혁정치 및 조선시대 개막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랄까요.
이 책은 원 지배기 혹은 원 간섭기의 고려시대 왕 중 충선왕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충선왕은 고려시대 최초의 혼혈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충렬왕이 원에 사실상의 귀부를 하고, 원나라의 부마가 됨으로써 원의 제국대장공주를 아내로 맞았고, 그 사이에서 출생한 것이 충선왕이니까요. 아버지 충렬왕은 단순히 원나라의 부마였을 뿐이지만, 충선왕은 원세조 쿠빌라이칸의 외손자가 되는 셈입니다. 고려의 왕인 동시에, 원 제국 황제의 외손자이며, 다시 원 제국 황실의 부마라는 그의 특이한 정체성 만큼이나 그의 삶도 평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원 황실의 일원이었고 동시에 원의 지배 아래에서 ‘변경’이 된 고려의 왕자였습니다. 고려 왕실의 무력감을 보며 부마국 체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범위를 확립하고자 역설적으로 다시 어머니 나라의 사위가 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개혁적인 성향으로 부왕인 충렬왕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고, 강력한 개혁정책을 펼쳤지만 7개월 만에 폐위되어 왕에서 물러난 아버지와 자리를 바꾸었다가 다시 즉위하는 이른바 '중고'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고려의 군주로 있으면서도 통치 시기의 대부분을 원 제국에서 보내며 원격으로 국가를 통치했으며, 한편으로는 원 제국 내 정쟁에서 맹활약하면서도 그 안에 온전히 투신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세자인 아들을 살해하기도 합니다.
원 제국과 고려라는 양 국가 및 인물집단의 교집합에 해당하고, 고려에서는 세자이자 국왕으로서, 원에서는 원제국의 부마이자 심양왕이며, 황제 책봉의 공신이기도 했던 그지만.. 그는 그 어느 집단에서도 주류에 속하거나 섞여들지는 못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고려의 국왕이기는 했지만 일생의 대부분을 원 제국에서 보냈다는 점이나, 강한 개혁정책을 추진하다가 고려왕에서 폐위되는 일을 겪는 등 그는 고려에서도 진정한 주류였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초기에는 아버지의 지지세력들과의 갈등에 휩싸여 있었고, 나중에도 그런 신하들의 갈등으로 인해서 세자였던 장자를 죽여야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왕이었지만, 주류는 아니었던 인물이라고 봐야하겠습니다.
원 제국의 부마라는 지위, 번왕, 그리고 원세조 쿠빌라이의 외손자라는 신분은 그를 원 황실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만.. 그는 원에서도 그렇게 주류에 속하는 생활을 하지는 못합니다. 고려 출신 환관의 음해에 시달리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고, 다시 황제 옹립에 기여해서 일약 정권의 주도그룹에 속하기도 합니다만.. 자신의 출신과 신분을 생각하여 그는 적극적으로 원의 정치에 뛰어들지 못하고, 권력의 가장자리에 위치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후원자인 인종 사후에 티벳으로 유배를 가기도 하는 등 파란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저자는 충선왕을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충선왕은 안으로는 무인정권에서 벗어나 왕권의 정상화를 꾀하고 밖으로는 원이라는 막강한 제국과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설정하던 시기에 고려 왕과 원 공주 사이에서 출생한 '혼혈'이다. 고려에서 자라 원에서 살았고, 원 제국에서는 고려를 그렸으며 고려에서는 원 제국을 지향했다. 군주로서는 아버지의 구폐를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측근을 중용하고 원의 영향력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등 아버지의 한계를 그대로 좇았다.
충선왕은 부마국 체제를 이용해 고려의 독자성을 지키고자 했지만 대를 이은 원 황실과의 혼인은 고려의 부마국 체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공주 개가 책동에서 명징하게 드러났듯이 충선왕의 정치적 선택은 치정과 같은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원 조정으로까지 비화되기 십상이었다. 충선왕 당시 고려와 원의 관계는 마치 하나의 정치체로 작동하는 중앙과 지방의 관계처럼 보였다. 혼혈 왕, 충선왕은 그러한 양국관계의 현실이 응축된 상징이었다."
그리고, 충선왕이 만권당을 설치해 다양한 인사들과 교류하고 불교에 심취했던 연유는 경계에 선 데서 온 허무감과 결핍감 때문이었고,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다른 문화와의 교류 속에서 더욱 깊게 자각되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말입니다.다. 경계에 위치한 그의 이와 같은 선택은 《광장》의 명준처럼 '자발적인 망명'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동안 별다른 관심 없었던 원 간섭기의 왕들 중 충선왕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되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충선왕은 원 인종의 즉위과 관련한 부분이나, 원나라 왕위 세습을 둘러싼 정쟁에 포함된터라.. 기존에 다른 책이나 주제에서도 단편적으로 계속 접했던 인물이었지만.. 막상 충선왕을 중점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다른 책들도 기대가 됩니다.
첫댓글 새로운 발굴
역사는 항상 새롭지요.
왜곡된 역사가 판치는 한에는
정말, 새로운 발굴!!!!! 겅부해야겄다!
이제현 선생이 쓴 서정록을 찾아서라는
책이 있습 니다.
역시 충선왕이 티벳으로 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