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Ⅱ 북위 38도, 이번엔 전쟁이다! _ 호로고루
221024 송혜영
캠핑장을 나설 즈음에는 이미 정오라 점심식사 시간이지만, 우리는 연계 프로그램까지 신청을 한 상태다. 바로 박물관에서 35분 정도 떨어진 호로고루로 간다. 45인승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는데 탄 사람은 스텝들 포함하여 반이 안 된다. 초가을부터 석 달 동안 주말에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번 주는 신청자 8가족 중 5가족이 취소를 했다고 한다. 아마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도 있을테고, 금,토캠프다 보니 금요일 오후에 시간내기가 힘들어진 부모님 사정도 있겠지. 그래도 정성껏 차려진 이리 좋은 프로그램에 참석자가 적다는 것은 내가 아쉬울 정도였다. 연천군 소속으로 박물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지인을 초청하였고 여기 사는 친구들 몇 명도 참석하여 열 명 안 되는 아이들이 모였다.
도로에서 '38도선' 이라 적힌 표지판을 보고 조금 후 도착이다. 성의 한 쪽 면이 낮은 언덕처럼 눈에 쏙 들어오는데 일단 시야가 확 트여서 좋다. 호로고루는 삼국시대 고구려 성곽으로서 임진강 건너편으로 신라군이 쳐들어오는지를 지켜보기 위해 만들었다 한다. 참 프로그램이 센스있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했던 곳이니만큼 화살쏘기 시간이 주어졌다. 화살의 끝부분에는 뽁뽁이도, 뾰족한 촉도 아닌 원기둥 모양의 폼블럭이 붙어 있어 과녘을 맞추면 끼워져 있던 스티로폼이 튕겨나가게 되는 것이다. 보다 안전하기도 하고 활의 무게도 적당했는지 아이들은 쏘는 족족 또 화살을 주워 계속 쏘아댔다. 어찌나 신나게 쏘아대던지 아마 적군이 앞에 있었으면 꽤나 겁을 먹을 기세다. 한참을 하고도 아쉬워하며 다음 순서로 이동하였다.
호로고루는 돌과 흙을 함께 쌓아 만든 성이다. 삼국시대 당시 연천 지역에 현무암이 많았고 원래 이 지역 주민이었던 고구려인들은 현무암을 즐겨썼기에 현무암 가공 기술이 뛰어났다. 그래서 이 보루도 흙과 현무암을 동시에 사용하여 정교하게 쌓아올렸다. 그러나 점차 신라의 힘이 강해지고 668년 고구려 멸망 후 호로고루가 신라의 땅이 되자 신라도 여기를 보수하여 썼는데, 신라인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편마암을 경상도 등지 등으로부터 실어와 쌓았다고 한다. 그래서 육안으로도 현무암의 검은색 부분과 아래쪽 신라가 보수한 부분이 확실히 차이가 났다. 고고학자와 다니니 이런 점이 재미있구나! 고구려인과 신라인의 손길이 함께 묻어있는 곳, 그리고 두 개의 문화가 합쳐진 곳이라는게 새롭다. 내가 살았던 아랫동네에는 김해를 중심으로 가야시대 이야기가 풍성했는데 수도권에 오니 어디를 가든 삼국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호로고루 이름이 독특하지 않은가. 호리병 모양을 닮은 지형이어서 그리 붙였다고도 하고 임진강을 호로하라 부르던 시절, 그 옆의 보루여서 그리 불렀다고도 한다. 임진강은 어디에 있나 궁금해 하며 성의 뒷쪽으로 돌아서는데 눈 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바로 아래가 임진강이다. 임진강 뒷쪽으로 또 차분하고 여유로운 수채화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여기서 10분 정도 더 가면 북한 땅이라니. 연천에 사는 똘똘이 학생 왈, 가끔씩 강 건너편에서 탱크 다니는 것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이야기지만, 나이 지긋한 연천 주민이 말씀에 김신조 일당이 남한으로 내려올 때 다닌 경로가 이 쪽이었다 한다. 그 때 연천의 경계태세가 엄청 강화되고 긴장된 분위기였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았겠는가! 북한과 바로 붙은 지역의 긴장감이 조금은 전달되는 것 같다.
호로고루는 성이라 하지만 높이 10m, 길이90m로 언덕처럼 덩그러니 놓여진 느낌이다. 한강 성곽의 일부가 유실된 것처럼 여기도 다 사라지고 남은 일부인 것인가? 아니다. 원래 이만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신라군이 임진강을 넘어 이 곳에 오려면 천연 장애물을 지나야 한다. 바로 꽤 높은 수직 절벽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 쪽만 유속이 낮아 흙이 쌓이고 섬처럼 되어 마음만 먹으면 건너올 수 있는 곳이 있다. 사실상 그 곳만 지켜보면 되었기에 높은 곳에서 신라군의 움직임을 잘 볼 수 있을만큼만 만든 것이다. 실제 올라서서 보니 아래 지형이 잘 보였다. 모래더미 옆으로 작은 모래섬이 두 개나 있고 강변지형도 절벽이 아니라 완만한 언덕이라 넘어오기 쉬워 보였다.
6세기 경 한반도 임진강 어귀에서 고구려군과 신라군이 대치하듯, 21세기에도 38선이며 휴전선을 그어가며 남한과 북한이 대치하고 있다. 스물도 안 되었을 앳된 고구려 병사는 새벽의 단잠을 끊고 일어나 눈 부비며 망루에 섰을테고 전쟁의 기운과 긴장감을 가장 먼저 느꼈을 것이다. 호리병 모양의 길을 따라 성에서 가장 먼 지점에 놓여진 망향단을 보며 잠시 북녘땅을 바라보는 실향민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지인의 아버지는 생전에 고향집 이야기를 하시며 통일이 되면 너라도 꼭 가 보라 당부하셨다는데, 그 언니는 황해도 어디 그 주소를 외우고 있었다. 전쟁과 실향의 아픔은 가족의 이야기가 되어 전승되고, 통일에의 바램도 대를 이어 내려온다. 여전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왠지 이 곳 연천에선 통일을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해지는 것 같다. 샌드아트 작가가 이전 그림을 다 지우고 새롭게 모래그림을 그리듯, 몇 십년 후에는 한반도 땅에 경계선이 없어져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