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22년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연산대리에서 한학자인 김학봉 씨의 2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에 저희 동네 서당에서는 일요일마다 동래읍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셔서 아이들에게 찬송과 율동을 가르쳐 주며 예배를 드렸는데, 저도 평일에는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배우고, 일요일에는 그곳으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쯤 저희 형제 중에 특히 저를 귀여워하셨던 할머니께서는 저를 전라북도 정읍군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데리고 가셔서 키우셨습니다. 저는 그때 할머니를 따라 북면장로교회에 다녔고, 17세에 집으로 와서 생활할 때는 동래읍에 있는 장로교회에 나갔습니다.
그 후 저는 20세 되는 해에 일본 시모노세키역 무선전신국 주석으로 있던 한국인 청년과 결혼하여 일본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큰딸숙자가 세 살 되던 해 해방이 되어 저희 가족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남편은 교원 양성소에서 6개월 동안 교육을 받고 부산 영도에 있는 목도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잠시 지내다가 남편이 정읍에 있는 정읍 동초등학교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저희 가족은 남편의 근무지인 정읍으로 다시 이사를 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소식(小食)을 하고 음식을 가려 먹던 저는 첫아이를 낳은 후부터 음식을 더 못 먹어 야위고 몸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얼굴은 노랗게 핏기가 하나도 없었고 악성빈혈로 쓰러지는 일도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장병,관절염에 폐까지 나빠져 집안일도 잘 못 하고 누워 지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 후 1961년 군산교육청 장학사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저희 가족은 군산으로 이사를 하여 교육청 사택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이사다니며 집 가까운 장로교회에 다녔던 저는, 군산으로 이사 온 후 건강이 더욱 안 좋아져서 교회에 다니다가 쉬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1년 정도 지내던 중, 옆집아주머니(故 채전례 권사)는 저희 집에 놀러 오실 때마다 자주 자리에 누워 있는 저를 보고 안타까워하시면서 “이렇게 계속편찮으시니 어떡합니까. 우리 전도관에 나와 보세요.그러면 병도 나을 수 있을 거예요.”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병 나으려고 교회에 갑니까? 저는 딴 데 안 갑니다.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장로교회에 다녔는데 어떻게 딴 데로 갑니까? 그렇게 못 합니다.”하고 거절하며 아주머니가 전도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무심히 듣고 넘겼습니다.
1962년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막내아들 창균이가 오후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아 걱정이 된 저는, 밖에 나가 동네 아이들에게 창균이를 못 봤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창균이 전도관에 갔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응? 전도관이 어디에 있지?" 하고 물으니 그 아이는 “저 따라오세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하며 앞장을 섰습니다. 저는 관절염을 앓고 있는 다리로 동네 아이를 따라 힘들게 한참 걸어가니 전도관 건물이 보였습니다. 전도관은 저희 집이 있는 영화동에서 30분이 넘게 걸리는 야트막한 월명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막내아들은 전도관 문 앞에서 놀고 있었는데,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왜 이렇게 왔니?" 하니, 놀다가 금방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고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서 전도관 주위를 한 바퀴 빙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에 옆집 아주머니가 전도관 관장님(故 김영환 승사) 한 분을 저희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저는 본래 독서를 좋아하여 아파서 누워 있으면서도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다가 의문점이 생기면 목사님께 묻곤 하였는데, 그것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못해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그런데 그날 오신 전도관 관장님과 얘기를나누다 보니, 제가 그동안 성경을 읽으면서궁금해하거나 잘 몰랐던 부분을 너무나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후로도 그분은 전도관 교인 몇 분과 가끔씩 찾아와서전도관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를 해 주시곤하셨습니다. 하지만 신문이나 사람들의 말을 통해 전도관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많이 들어 왔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전도관에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저희 집 마당 수돗가에 하늘에 키가 닿을 정도로 크고 시커먼 사람이 우뚝 서 있는데, 누군가가 “아이고, 그게 마귀요.”하는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퍼뜩 깨 보니 옆집 아주머니인지 전도관 관장님인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 두 분 중 한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귓가에 교회의 음악종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벌써 새벽이 된 모양이었습니다. 잠이 깨고 난 뒤에도 얼마나 무서운지도저히 잠을 못 이룰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갈 준비를 하며 “나 교회 갈래요.” 했더니, 남편은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추운데 가기는 어디를 가느냐고, 가다가 감기에 걸리면 더 아프니까 나가지 말라고 만류하였습니다. 저는 그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교회에 가야 되겠다는 마음만 앞섰습니다. 외투를 걸치고 나오는 저를 보고남편은 그러면 제일 가까운 교회로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대문을 나서며 생각하니 다른 교회에는가기가 싫고 문득 전도관에 한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몇 개월전 막내아들을 찾으러 전도관에 가 보았기때문에 가는 길이 어렴풋이 기억나, 쉬엄쉬엄 걸어서 월명산 중턱에 있는 전도관을 찾아 올라갔습니다. 아담한 예배실 안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저는 맨 뒤에 앉아 찬송을 부르다가예배 마치기 전 영광을 돌릴 때 나왔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신기한 일은 관절염으로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붓고 아파 몇 번이나 쉬어 갔던 길을, 예배 마치고 집으로돌아오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어온것이었습니다. 또한 어디서 그렇게 힘이 솟아나고 기분이 좋은지 저는 집에 오자마자긴 빗자루로 마당을 쓸어 나갔습니다. 그런제 모습을 본 여동생은 놀라 뛰어나오며“형님, 웬일이요. 이러다가 더 아프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하고 말리면서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고 몸이 가뿐하여 넓은 마당을 혼자서 다쓸었습니다.
그렇게 전도관에 다녀와 얼마간 지내면서 전도관에 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니지,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믿는 데를 두고 어떻게 가나. 할아버지가 믿던 뿌리가 있는데.' 하는 생각으로 갈등하며 마음이 몹시 괴로운 상태로지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끝에 어느 일요일날, 저는 전도관에 다시 가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옆집 아주머니께 찾아가 “아주머니, 저 오늘 아주머니네 교회에 예배드리러 갈래요.”하고 얘기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는 너무나 좋아하시면서어서 가자고 하셨습니다. 전도관에 도착하자 아주머니는 저를 앞자리로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자리에 앉아 예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후 관장님이 단에 서서 찬송을 인도하셨습니다. 앞에서는한 분이 북을 치고 또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손뼉을 치면서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저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뒤에 앉을 것을 괜히 앞에까지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들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는데 혼자 가만히앉아 있으려니까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저도 가만가만 손뼉을 쳐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어색해서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으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옆집 아주머니는 쉬었다가 가자고 하면서 저를 전도관 사택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사택은 가운데에 부엌을 두고 양쪽으로 방이 하나씩 있었는데,그중 한쪽 방에 들어가 몇몇 교인들과 함께앉아 있었습니다. 잠시 후 옆집 아주머니가캐러멜 봉지를 몇 개 가지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그 순간 너무나도 향기로운 냄새가진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로는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좋은 냄새였습니다.아주머니는 그 캐러멜을 한 봉지씩 나누어주시면서 저에게 그것이 신앙촌에서 나온캐러멜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계속해서 향기가 맡아지는데 어쩌면 그렇게 향기로운지 저는 내심 ‘어머나! 이 사람들 상술이 좋구나, 이 조그마한 캐러멜 속에 어떤향을 넣었기에 온 방에 이렇게 좋은 향기가가득 찰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많은 교인 한 분이 “어서 드셔보세요.” 권하셔서 저도 캐러멜을 하나 까서 입에 넣는 순간, 그렇게도 좋게 나던 향기가 싹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아! 내가 지금 감기로 코가 막혀 가지고 있는데, 향을 맡을 수가 없지. 방금 전에 맡은 냄새가 혹시 지난번에 아주머니가 얘기하셨던 그 향취라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얼마 동안 전도관에 다니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을 해 보고, 또 전도관에서 찾아오신 관장님, 권사님들과 말씀을 나눠 보기도 하였는데, 결국 저는 전도관에 다니기로 마음의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신보 〈207회 2000. 1. 16./23. 게재>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잘보고가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