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9>
첫댓글 구연서원(龜淵書院)은 조선 중기의 학자 요수(樂水) 신권(愼權, 1501~1573)을 배향한 서원이다.
요수(樂水) 신권(愼權)이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던 구주서당(龜州書堂) 자리에 1694년(숙종 20년) 지방 유림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으로 세우고 위패를 모셨다.
관수루(觀水樓,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구연서원의 정문(문루) 역할을 하는 2층 누각이다. 다듬지 않은 거대한 자연 암반 위에 울퉁불퉁한 자연목 기둥을 그대로 올려 세운 특이하고 아름다운 건축 양식으로 유명하다.
맹자(孟子)의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의 아름다움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는 구절에서 따온 이름으로, 흐르는 물을 보며 학문과 덕성을 단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듬지 않은 거대한 자연 암반과 삐뚤삐뚤한 자연목 기둥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여 건물을 올려,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얹은 2층 층루 건물로, 아래층은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문루) 역할을 하고 위층은 풍류와 학문을 즐기는 누각 역할을 한다.
2층 누각 마루 주위에는 약식 난간을 두르고 사방이 탁 트여 있어, 바로 앞 수승대 계곡의 명경지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觀水樓(관수루)'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서예가인 관아재 조엄(趙曮, 1719~1764)이 쓴 필체이다.
요수 신권(愼權)은 영남의 대표적인 선비로, 관직에 나아가기보다 명경지수의 자연 속에 거하며 후학 양성과 소학(小學) 실천에 힘썼다. 수승대 인근에 요수정(樂水亭)을 짓고 유유자적한 인물로 유명하다.
첫댓글 구연서원(龜淵書院)은 조선 중기의 학자 요수(樂水) 신권(愼權, 1501~1573)을 배향한 서원이다.
요수(樂水) 신권(愼權)이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던 구주서당(龜州書堂) 자리에 1694년(숙종 20년) 지방 유림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으로 세우고 위패를 모셨다.
관수루(觀水樓,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구연서원의 정문(문루) 역할을 하는 2층 누각이다. 다듬지 않은 거대한 자연 암반 위에 울퉁불퉁한 자연목 기둥을 그대로 올려 세운 특이하고 아름다운 건축 양식으로 유명하다.
맹자(孟子)의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의 아름다움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는 구절에서 따온 이름으로, 흐르는 물을 보며 학문과 덕성을 단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듬지 않은 거대한 자연 암반과 삐뚤삐뚤한 자연목 기둥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여 건물을 올려,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얹은 2층 층루 건물로, 아래층은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문루) 역할을 하고 위층은 풍류와 학문을 즐기는 누각 역할을 한다.
2층 누각 마루 주위에는 약식 난간을 두르고 사방이 탁 트여 있어, 바로 앞 수승대 계곡의 명경지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觀水樓(관수루)'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서예가인 관아재 조엄(趙曮, 1719~1764)이 쓴 필체이다.
요수 신권(愼權)은 영남의 대표적인 선비로, 관직에 나아가기보다 명경지수의 자연 속에 거하며 후학 양성과 소학(小學) 실천에 힘썼다. 수승대 인근에 요수정(樂水亭)을 짓고 유유자적한 인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