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표와 흥정 사이
마트 계산대 앞에 서면 마음이 편하다. 바코드가 ‘삑’ 소리를 내는 순간, 물건의 값은 이미 정해진 운명처럼
확정된다. 말 한마디 보탤 필요도, 눈치를 볼 이유도 없다. 가격표는 침묵하지만 단호하다. 정찰제는 일종의
약속이다. “이 가격은 모두에게 같다”는 공평의 선언이다.
국제시장 같은 전통시장에 가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가격은 숫자로 붙어 있어도, 그 숫자는 어딘지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상인의 눈빛, 손님의 표정, 날씨와 시간, 심지어 그날의 기분까지도 가격에 스며든다. 거기
서는 계산이 아니라 ‘관계’가 오간다.
백화점에서는 몇백만 원짜리 물건을 사면서도 아무 말 없이 카드를 내미는 사람이, 시장에서는 천 원짜리 채소
를 들고 “조금만 깎아 주세요”라고 말한다. 금액의 크고 작음 때문만은 아니다. 정찰제 공간에서는 흥정이 어색
하고, 시장에서는 흥정이 예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공간의 규칙에 따라 다른 얼굴을 꺼내 든다.
나는 한때 먼 항구 도시 타란토에 들른 적이 있다. 상점 진열장에 걸린 재킷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격표
에는 숫자가 분명히 적혀 있었지만, 막상 값을 묻자 상인은 되물었다. “얼마면 사겠습니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가격이란 종이에 인쇄된 숫자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합의라는 것을.
흥정은 물건값을 깎는 행위이기 전에, 서로의 의중을 탐색하는 대화였다.
정찰제는 투명하다.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대신, 누구도 특별 대우를 받지 않는다. 그 안에서는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반면 에누리는 불투명하다. 대신 그 속에는 온기가 있다. 단골에게 더 얹어 주는 덤, 아이 손에 쥐여
주는 사탕 한 알, “다음에 또 와요”라는 말 한마디가 가격표에는 적히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가격의 적정성을 잘 모른다는 데 있다. ‘가성비’를 따진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사실 우리는 숫자
보다 분위기에 흔들린다. 바가지를 쓸까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 흥정했다는 뿌듯함을 원한다. 손해 보지
않았다는 확신이 아니라, ‘이겼다’는 감정이 필요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정찰제와 에누리는 단순히 상거래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정찰제는 신뢰를 제도화한 것이고, 에누리는
신뢰를 사람 사이에서 직접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하나는 시스템을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믿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두 세계를 모두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피곤한 날에는 바코드 소리가 위로가 되고, 여유 있는 날에
는 흥정 한마디가 하루의 재미가 된다. 숫자로 고정된 가격 속에서는 평등을 배우고, 흥정 속에서는 관계의 묘미를
배운다.
삑 소리로 끝나는 거래와, 한참의 실랑이 끝에 웃으며 마무리되는 거래. 그 사이에서 우리는 오늘도 물건을 사고, 동시
에 사람을 만난다.
정찰표와 에누리 사이에는 결국 ‘얼마’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가 놓여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