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1.火. 맑음
춘천 도심都心 걷기, 춘천역에서부터 여기저기.
빠아앙~ 빠아앙~ 기적소리와 함께 철커덩거리는 기차 바퀴소리가 들려오는 기차역사汽車驛舍에 들어서면 그곳에는 항상 추억을 물어 나르는 검은 새가 우울한 날개 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합실 안은 언제나 약간 어두웠으며, 갈색의 긴 의자는 낡았고, 유리창에는 희부연 먼지가 앉아 있어서 바깥경치가 흐릿하게 보였다. 사람들이 대합실에 들어설 때마다 서늘한 바람이 뒤를 따라 들어와 침묵하고 있던 공기를 가볍게 흔들면 열차 출발시각을 기다리며 앉아있던 승객들은 옷깃 속에 묻혀있는 가슴이 괜히 허전해졌다. 벽에 걸린 시계를 표정 없이 바라보며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사람들이 역장이 작은 펀치를 손에 들고 발차시각을 외치면서 개찰구에 설 때면 우르르 일어나 출구 쪽으로 말없이 사라져갔다. 이내 텅 비어버린 대합실待合室 안에는 쓸쓸한 낭만이 낙엽처럼 굴러다녔다.
이런 상상想像을 하면서 내린 춘천역에는 쓸쓸한 낭만 같은 것을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공항청사처럼 말끔하게 단장한 춘천역사驛舍는 세련되고, 깨끗하고, 효율적이어서 도착한 승객들에게 빨리 역사에서 나서기를 은근히 종용하는 듯 했다. 화장실에 들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와 춘천시 관광안내도 하나를 집어 들고 시내 쪽을 향해 걸었다. 지나치는 역 광장에는 잡상인 한 사람, 과자봉지 하나 없이 말끔했지만 뭐랄까, 도덕 교과서를 펴들고 읽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그곳으로부터 경직되어 옴을 느꼈다. 하늘에는 오랜만에 얼굴을 내민 해가 겨울을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우리가 낯선 고장을 방문했을 때 그곳을 관광지로 보느냐 생활의 터전으로 보느냐는 순전히 자신이 결정할 문제다. 유명한 장소를 골라 유람을 하면 관광을 위한 것일 터이고, 발 내키는 대로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돌아다니면 그곳을 생활의 터전으로 본다는 뜻일 게다. 나는 후자를 더 선호하는 편이라 오늘도 그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물론 여행자들 사이에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전해오는 말이 있기는 하다. 그 도시에 여행을 가면 세 군데를 꼭 들러봐야 한다. 하나가 박물관博物館이고, 또 하나가 시장市場이고, 나머지 하나가 대학교大學校인데 그 이유는 그 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압축해서 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 방법에 따라 충실하게 낯선 도시나 고장들을 섭렵해왔는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 방법을 내 방식으로 변형을 시켜 그때그때 편리하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니게 되었다. 내 행선지가 소양강이나 의암호 방향이 아니라 시내로 향하는 길인지라 다른 중소도시와 별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자세히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건물과 간판을 유심히 보면서 걸어가면 이 도시가 알리고 싶고, 또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눈치 챌 수는 있었다. 이정표를 따라 걷다보니 효자동인가의 사거리 께에서 한림대와 강원대江原大로 가는 갈림길이 양쪽으로 나누어졌다. 부산에 가면 부산대에 들르고, 경북에 가면 경북대에 들르는 것처럼 강원도에서는 강원대에 먼저 들러보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에 강원대라 쓰인 이정표를 따라가며 걸었다. 내 두꺼운 겉옷 위로 따뜻한 햇살을 줄곧 뿌려대니 슬슬 몸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겉옷을 벗어들고 시내를 쉬엄쉬엄 걸었다. 강원대 캠퍼스는 생각보다 시내와 가까이 붙어 있었다. 아마 원래는 서로 간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던 것이 시내가 점차 커지다보니 대학촌과 맞닿게 되었을 테지.
교문 안으로 들어섰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후문이었지만, 아직 하얀 눈이 깔려있는 작은 광장 가운데 세 사람의 씩씩한 알몸의 청년들이 지구를 들고 있는 청동상 옆에는 ‘실사구시實事求是’라 쓰여 있는 바위돌이 서 있었다. 이것은 강원대학교의 교훈校訓인데 ‘실제로부터 진리를 탐구하라.’라는 뜻이 담겨 있는 말인 듯하다. 어느 학교나 교훈이 있고, 그것이 그 학교 교육이념과 목표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광장 한켠에 있는 벤치에 앉아 바윗돌에 새겨진 그 교훈을 보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솟아난 내 생각들이 날개를 달고 강원대 푸른 하늘 위를 훨훨 날아다녔다. 나도 개인적으로 유달리 좋아하는 학교가 있기는 하다.
‘잠은 약한 자들을 위한 것이다.’ ‘시카고에는 <재미>라는 단어가 없다.’
그 학교 T-셔츠에는 이런 슬로건이 새겨져있다. 대학원 중심의 학교로 대학원 학생 수가 학부생 수의 3배이고, 가장 파티가 없는 학교의 하나이고, 가장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이고, 가장 졸업하기 힘든 학교이자 춥고 음울한 날씨와 학문적 스트레스로 코넬대와 더불어 자살률이 높은 학교인 그곳은 바로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이다. 나도 그런 곳에서 공부를 하고, 그런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재미나 즐거움이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재미없는 재미와 즐거움 없는 즐거움에 빠져 내가 언젠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다보니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강원대 종합운동장 뒤쪽 동산의 오솔길은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밟고 지나가면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귀에 울려왔다. 그 길을 지나다니는 학생은 없었지만 산책삼아 돌아다니는 주변 동네의 영감님 몇 분과는 목례를 하며 서로 지나쳤다. 청강제지연구소도 둘러보고, 약학연구소와 새로 신축한 남녀 기숙사 동도 둘러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돌아다녔다. 푸슬거리는 눈을 뭉쳐 멀리 있는 나무 둥치를 향해 던져도 보고, 흰 구름이 드믄 드문 흘러가는 파란 하늘을 보며 잣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기도 했다. 강원대를 나올 때는 반대편에 있는 정문으로 나왔다. 다시 이정표를 보고 걸어서 중앙로와 명동과 중앙시장을 돌아보고 다시 춘천역을 향해 돌아왔다. 정오正午에 춘천역에 도착을 해서 오후5시에 다시 춘천역을 떠났다.
(- 춘천 도심都心 걷기, 춘천역에서부터 여기저기. -)
첫댓글 금과옥조 중 한 곳 강원대는 캠퍼스가 가장 넓은 대학이라고 들었는데 아직 들어가보지는 못했네요.
춘천에 자취생들이 많음을 실감한 것은 춘천에서 금요일 오후에 서울행 버스나 기차를 타려면
거의가 한림대,강원대 생으로 감히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예약없이는 못탔었지요.
전철개통으로 자취생들도 많이 줄었을 것 같습니다.
'잠은 약한 자들를 위한 것이다' 앞으로 시카고대학 출신을 인정해 줘야겠습니다.
춘천을 다녀가셨군요. 지난해 말 전철 개통으로 수도권이나 다름이 없는 춘천이지요. 덕분에 많은 분이 찾아주시는 명소이기도 합니다. 명동 닭갈비거리나 소양댐행 버스는 만원이랍니다. 좀 더 따뜻해지면 공지천 언저리 둑길과 김유정 실레길도 걸어보시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강원대....15년전데 얼떨결에 들렀던 곳인데...지금도 강원대는 있겠죠? 그때 그들은 없겠지만...그 후로 춘천은 느닷없을때 달려가던 곳이었는데....그짓도 안 한지 벌써 3년이 지났네요...언제 한번 다시 가보고 싶네요..조용히..
박물관과 시장은 언제 둘러 보실란가요?
멀게만 느껴졌던 춘천이 이젠 훨씬 가까워진 것 같아요. 올해는 저도 가봐야겠어요. 유람도 하고 시장도 보고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