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 여행5 - 람세움과 람세스 3세를 구경하고는 멤논의 거상을 보다!
룩소르 서안으로 건너가서 왕의 계곡과 핫셉슈트 장제전 을 보고는
출구에 화려하게 채색된 기념품 을 파는 가게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출발한 1일 투어 미니 버스는 20여분을 달려서 티켓판매소
에 이르러 내려서 표를 두장 사고는 다시 되돌아가니 람세움 입니다!
람세움 이란 “람세스 2세의 장제전” 으로 현지말로는 라무시움 이라고 부르는
데, 람세스 2세의 장례식을 치른 곳으로..... 사후에 신격화 된 파라오
의 거처 이며 또 내세의 재생과 부활을 기원는 의식을 올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룩소르 서안에는 모두 36개의 장제전이 있다고 하는 데, 지금 남아 있는 것 중에 볼만한
곳은 핫셉슈트, 람세움 3세, 세티 1세와 여기 람세움 등 4곳이라고 합니다!
3천2백년 전의 람세스 2세는 강력하고 위대한 군주로 특히나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많이 남겼으니 여기 람세움의 원래 규모는 매우 컸을 거라고 보이나.....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남은 것은..... 제1탑문이 없어져 버린 맨 입구를 지나
곧장 가면 안뜰이 나오고 왼쪽에 제2탑문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열주실 입니다.
그 입구에는 머리 부분이 파손되어 버린 오시리스 형상의 람세스2세 동상이 네개가 서
있고 앞에는 떨어진 람세스 2세의 목 이 보이는데, 예전에 나일강이 범람하면
이 부근에도 강물이 밀려 들었다는데... 지금은 그냥 황량하기 까지한 마른 벌판입니다!
그래도 열주의 기둥 만은 엄청 크고 또 윗부분에 천장을 받친 부분은 그 조각이며 색체가
눈이 부시네요.... 기둥에는 람세스2세와 신들의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카데시 전투에서 전차를 타고 힛타이트군 진영으로 돌격하며 활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BC 1275년(?) 람세스2세는 이집트 군을 이끌고 가나안을 거쳐 시리아 까지 진격해서는 카데시
에서 히타이트의 대군과 격전 을 치루었는데, 승전을 여기 서안의 람세움에는
물론이고 룩소르 동안의 카르낙 신전이며 룩소르 신전과 아부심벨 대신전에 부조로 남긴 것입니다.
시인들은 람세스 2세를 “ 하티(히타이트) 땅을 유린한 레(태양신)의 아들 이며 날카로운
뿔을 가진 황소와 같고 힘센 사자, 순식간에 땅을 가르는 재칼, 신성하고
화려한 새 매 ” 라고 읊었던 것이니.... 그는 아몬, 라, 프타 및 세트 등 신의
이름으로 명명된 4개 사단 2만 대군을 이끌고 북진하여 가나안 의 항구를 확보합니다.
그러고는 3개 사단을 뒤따라 오라고 이르고는 아몬 사단 만을 이끌고는 북진하여 카데시
에 이르니 히타이트의 왕 무와탈리시 는 노련한 군주로 3만 대군으로
기다렸던 것이니 히타이트는 베드윈 2명을 거짓 투항하게 해서 람세스를 안심시킵니다.
히타이트군은 오론테스강에서 2진으로 뒤 따라오던 이집트 라 사단 5천의 부대를 기습으로 전멸
시켰으며 그런후 강을 건너 2,500대의 전차 를 몰아 이집트군의 배후를 공격하니
이집트군은 대혼란에 빠져 도망치는데, 보통의 경우라면 중과부적 포위망 속에 전멸할 법한 데....
람세스 2세 는 일부 잔여병력을 규합하여 오히려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가니
누가 보면 앞뒤 가리지 않는 자살 특공대라!!! 마침 이때
현지 가나안인으로 구성된 보조 부대 나아란군이 시의적절하게 도착합니다.
가나안부대인 나아란군이 히타이트군의 후미를 치니 천신만고 끝에 겨우 전세를 역전
시키는데.... 이때 히타이트의 왕은 예비부대 1만 8천명 을 투입하여 전세를
재역전 시킬수도 있었지만 무와탈리시왕은 그만 군사를 물려 화평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이집트 3진인 프타사단과 4진인 세트사단이 도착하기도 했거니와 여기서 이집트군과 맞장
을 떠서 설사 승리한다고 하여도 히타이트군도 병력의 손실을 보아야 할 것이고....
머나먼 남쪽땅 이집트 본토를 점령해 다스리자면 대군을 장기간 파견 해야 하는데, 터키
소아시아 반도에서 일어선후 바빌로니아와 미탄니등 제 국가를 정복하기는 했으나....
그 땅에서 다시 아시리아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가 많이 상하고 대군이 빠져나가면
제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니, 그 뒷감당을 할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BC 1270년에 작성된 평화 조약문 에는 두 나라는 서로의 땅을 침범하지 않기로 하고,
히타이트에 적이 쳐들어 왔을때 이집트가 군사원조를 하기로 한 것은 매우 일방적입니다.
이집트측도 상응하는 군사원조를 조약문에 기재하지 않은 것은 이때 이집트
인근에는 달리 침략할 만한 세력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람세스의 승전은 1906년 히타이트의 수도였던 터키의 보가즈코이에서 점토판이 발굴
되어 전투의 상세한 전적보고서가 출토됨으로써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 위 네 사진은 람세스2세와 그의 반지, 가슴장식및 네페르타리와의 딸의 모습입니다.
당시 이집트군은 청동제 무기를 사용한데 비해 히타이트는 훨씬 날카로운 철제
무기를 가졌으며.... 이집트의 전차가 마부와 전투병 2명이 타는 소형
이었음에 비해 히타이트는 마부, 궁수와 전투병등 3명이 타는 대형 이었습니다.
거기에 병사의 수도 2만 5천대 3만 5천으로 중과부적인 데다가, 무와탈리시의 교란과 포위
작전에 말려 이집트군은 분리되고 기습을 받아 각개격파 되는 상황이었는데...
람세스 2세가 귀국해서는 승전을 주장한 것은 역사에서 동서고금이 다 그러하였던 것이지요.
이런 저런 회상을 접고는 다시 대기해 둔 1일 투어 미니 버스를 타고는
10여분을 가서 내리는 데, 바로 람세스 3세장제전 으로 현지어로는...
"마아바두 하부" 라고 하는 데...... 지금 룩소르에서는
흔히 “하부신전” 이라고 줄여서 부른다고 합니다.
여기는 개선문을 들어서면 카르낙 대신전 처럼 제1탑문이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어서 이미 무너저 버린 람세움과는 비교가 됩니다.
제1 탑문을 지나면 바로 안뜰 이 두 곳 나타나고..... 일직선
상에 열주실 과 이어 지성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 벽이나 기둥 그리고 천장에는 전투장면과 들소사냥 등 부조가 있는데
3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채색부조가 아름다운 것이 불가사의 하네요!
람세스 3세 는 제20왕조 2대 파라오로, 제19왕조 람세스 2세 와는 아무 혈연관계가 없으나
그를 존경하는 뜻으로 람세스를 칭하니.... 이후 람세스 11세 까지 그 이름이 이어집니다.
람세스 3세 왕은 북쪽으로는 시리아에서 남쪽(나일강 상류) 으로는 누비아까지
통치하면서 여러 전투를 치루며 이집트를 강국으로 올렸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후일 이 일대에 유대땅에서 온 마가의 전도로 이집트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린후,
이집트내 기독교도인 곱트교도가 많이 거주하면서 신전이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20세기 초 까지도 람세스 3세의 장제전과 아몬신의 에배당이 한 때는
채석장 으로 활용되기도 했다니 그 무지를 어찌 다 탓하랴!!!
다시 1일 투어 미니 버스를 타고 되돌아 나오니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인데
그 한가운데에 큰 짐승 두 마리가 울부짓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름하여 “멤논의 거상” 이라고 하는데 여기는 입장료가 필요없는 곳으로 멤논거상
Clossi of Memnon 은 신왕국 시대 제18왕조 9대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의 장제전 앞 입구에 서 있었던 인물상으로 일종의 스핑크스 입니다.
하지만 엣날의 화려했을 장제전은 파괴되어 흔적도 없어지고 황량한 들판에
오직 두 인물상이 외로운데, 오페라 아이다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합니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후 알렉산드로스 대제가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이집트를
정복한후 죽는데... 그 부하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조 이집트 시대에
그리스 신화 에 나오는 멤논의 것으로 잘못 여겨져 이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그리스 신화에 멤논은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티토노스 사잉 난 아들로 절세 미남인데,
트로이 전쟁에서 헥토르가 죽은후 참전했다가 그리스군 아킬레우스 손에 죽습니다.
이에 어머니 에오스가 시체를 에티오피아 땅에 옮겼는데 슬픔의 눈물이 아침 이슬
이 되었고 그 부하들은 새가 되니 멤노니데스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제우스가 이후 그를 불사의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는 데.... 실은 두 인물상이
왼쪽은 바위 하나를 깍아서 조각했고 오른쪽 것은 바위를 쌓아 만들었다네요!
아침햇살이 비칠때 바람이 우측 조각상의 바위 틈새를 지나며 기괴한 소리 를 내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멤논이 그 어머니에게 안부 인사를 드린다거나... 혹은 반대로
어머니 에오스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해 우는 소리라고 해석한데서 오해가 생겼답니다!
그나저나 18~ 21세기 서구문명의 주인공인 유럽과 미국인들은 모두 그리스 - 로마
의 신화와 역사 를 이어 받았으니 이런 구차한 설명이 불필요하지만....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황제”, “치우”, “요”, “순”, “진시황”, “환웅”
이라면 몰라도...... “멤논” 이라면 이렇게 사설이 길어지는 것이지요?
하여 로마에 가서 “트레비 분수”나 “나보나 광장”에서 거기 조각되어 있는
것들의 모습만 보아도 서양인들은 대체적인 줄거리가 이해 되지만....
우리 동양인은 “바다의 신 넵튠” 이 “반인반어 트리톤” 이 모는 마차에 탔다든지.... 또
나보나에서 “넵튠의 분수” 며 “무어인의 분수”등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 입니다!
여기 멤논의 거상 주위만 해도 나일강이 가까운 탓인지 그 황량하던 왕가의 게곡이며
장제전과는 달리 농사를 짓는데, 보리인지 밀인지 한창 추수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뜻밖에도 여기서 우리 민박집 사장을 만났는데, 눈칠르 보니 우리
투어 일행중 4명을 데리고 어디 다른 데를 갈 모양이네요!
멤논의 거상에 앉은 새 떼에게 작별을 고하며 이만 미니버스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룩소르 동안으로 가서는...... 카르낙이며 룩소르 신전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 위 두 사진은 왕가의 계곡 세티 1세의 무덤 벽화 입니다 ***
첫댓글 자신(自身)의 마음 그릇이 제대로 놓여 있는지
‘확인(確認)’해 볼 일입니다.
사람이 쓰는 말 중에서 ‘감사(感謝)’라는 말처럼
아름답고 귀한 말은 없습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늘 ‘인정(認定)’이 있고,
늘 ‘웃음’이 있고, 늘 ‘기쁨’이 있고,
늘 ‘넉넉함’이 있습니다.
감사(感謝) 합니다.
🍊🍊🍊
룩소르.... 옛날 이집트의 수도 테베!
이런 오래된 유적들이 남아있는게 놀랍습니다!
꼭가보고 싶었던 룩소르를 배길유럽여행 보게 되네요.
상세한 사진과 설명이 마치 현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네요^^
언제 다시 이집트를 갈수 있을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