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클럽에서 "서태지를 위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안티 서태지 공연이 열렸다. 문화사기단 소속 밴드들을 중심으로 한 이 공연의 중심에는 얼마 전 새롭게 앨범을 낸 노브레인의 이름이 있었다.
다음은 "청년폭도맹진가"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앨범과 서태지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충격을 주었던 "안티 서태지 공연"에 관한 내용으로 노브레인과 나눈 이야기이다.
안티 서태지 공연은 서태지라는 뮤지션 개인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사회적인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서태지 신화에 대한 문제 제기였고, 대중 음악의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에 관한 안티 테제anti-these였다. 안티테제가 없는 사회는 발전가능성도 없는 사회이지 않을까라는 말로 인터뷰 서문을 대신할까 한다.
블루노이즈(이하 "블"로 표기): 안녕하세요. 굉장히 오랜만에 뵙는데요, 그동안의 근황을 좀 말씀해주세요.
이성우: 그동안 앨범 내고요, 공연하고 그랬어요. 8월달엔 "영펀치"란 일본 밴드랑 공연했었구요, 이번 달에도 "가재"라는 일본 하드코어 밴드랑 공연을 했었어요. 가재라는 밴드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자면요, 일본 하드코어의 큰 형님뻘 되는 밴드인데… 81년부터 지금까지 음악을 하고 계신 분들이예요. 개인적으로 팬이라서 같이 공연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지요.
쭉.. 공연하고 그러면서 지내오고 있어요.
블: 예… 그러면 이번엔 앨범 얘기 좀 할께요. 중간에 아워네이션 2집도 있었고, 청춘 98도 있었긴 한데.. 데뷔 앨범치고는 굉장히 늦게 내신 거잖아요. 앨범에 대한 반응들은 어때요?
이성우: 음.. 좋은 것 같애요. 저희도 할 만큼 했고… 처음에 일찍 냈더라면 일찍 낸 나름의 신선한 그런 맛도 있었겠지만, 나이를 조금 먹고 지금 상황에서도 나름대로의 맛도 있고.. 그래서 꽤 만족해요.
블: 저희 사이트에 얼마 전에 올라간 앨범 리뷰 기사는 혹시 보셨어요?
이성우: 제가 요즘에 인터넷 할 시간이 없어서 아직 보질 못했어요.
블: 기사를 쓰기 위해서 앨범을 들으면서 느낀 건데, 이성우씨 보컬이 굉장히 많이 변하신 것 같거든요.
중간중간에 리얼상놈스 작업도 하고 그러셔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옛날에는 약간 걸쭉한 느낌이 강했잖아요.
"청춘 예찬편"의 경우에는 그래도 예전의 그 느낌이 남아 있는데, "난투편"같은 경우는 굉장히 많이 달라지셨더라구요.
이성우: 저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사람들이 이야기해서 들어보고 알았어요. 악 좀 강하게 내질러 보려고 노력도 많이 하고 그래서 보컬이 그렇게 나온 부분도 있고, 예전에 리얼상놈스 때 버릇이 남아 있어서 그런 면도 있는 것 같구요.
블: 물론 앨범의 컨셉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색깔이 지금까지의 노브레인의 음악과 참 많이 달랐거든요.
[청춘예찬편]은 옛날에 노브레인이 보여줬던 음악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지만 [난투편]의 경우에는 하드코어적인 면이 강하고, 격렬하고 이성우 씨의 목소리도 인위적으로 많이 변형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게 앞으로 나갈 방향을 보여주는 건지, 아니면 이 앨범에서 여러가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건지..?
이성우: 앨범 작업은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었거든요. 의도적으로 어떤 것을 보여주겠단 생각은 없었구요, 저희가 그냥 하고 싶었던 걸 햇어요.
격렬하다고 말씀하시는 곡이 아마 <호로자식들>과 <잡*패거리> 같은데, 그 곡들은 예전 앨범 끝나고 나서 만들어 놓은 것들이예요. 그게 우리 방향을 제시하는 건 아니구요, 예전부터 그런 영국 하드코어 스타일 음악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 때 차승우씨가 등장합니다.)
블: 차승우씨 안녕하세요. 근황 좀 말씀해주세요.
(차승우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는 상근 예비역 제도에 관한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나라 "뽕" 정서에는 차라리 교회음악 아니면 다이아토닉으로 이루어지는 음악이 나은데.. 코드도 단순하고 그래서 저희가 하는 펑크 음악이랑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블: 가사를 보면, 다른 펑크 밴드들의 가사랑 분명히 차이점이 있거든요. 되게 현실적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사회상을 많이 반영하는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이번 앨범같은 경우에는 구어체보다 문어체로 된 가사가 많았는데, 일종의 거리감도 느껴지면서 독특하게 다가오거든요. 어떤 의도로 그러신건가요?
차승우: 보통 한국말로 가사를 쓰게 되면 항상 "뭐했지" "뭐했어" 그런 건데, 저희들이 느끼기에 그런 가사 자체가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별로더라구요. 그럼 문어체로 써보면 어떨까 했는데, 문어체로 가사를 쓰면 단어가 딱딱 나오고 생각의 정리가 잘돼요. 쓰기도 편하구요, 나름대로 개성 있다는 사람들도 있구요…보통 통상적인 가사 쓰기로 하는 "뭐했지" "뭐했어"는 너무 설명적인 어투예요.
블: 가사 전달도 더 확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차승우: 함축시킬 수가 있죠. 그만큼.
블: 곡은..?
이성우: 얘요.
차승우: 예..(끄덕끄덕) 보통 노브레인 노래는.. 초기 때 막 나가는 노래같은 경우는 얘(이성우)가 만들었구요. 서로 많이 만들고 있어요. 근데 요번엔 제가 만든 게 많이 실린 거 같아요.
블: 제목이나 앨범 쟈켓의 이미지라든지 그런 것들도 분명히 노브레인의 의도가 들어간 …
이성우: 예, 분명히 의도가 있어서 그렇게 된 거죠.
블: "청춘은 불꽃이어라" 그런 것들도 그렇죠.. ? ^^;
차승우: "청춘은 불꽃이어라" 같은 경우에는 옛날 모타운 소울 스타일로 할려고 했다가 결국은 밤무대 스타일로 된 건데, 괜찮은 거 같아요.
이성우: 우리 원래 그래요. 의도한 대로 잘 안돼요. 의도한 건 굉장히 멋진 건데 되는 건 나중에 보면 전혀 다른 ..(이 때 차승우 "쌈마이" 같이 돼요!라고..^^) 3류같이 돼요.
블: 근데요.. 차승우씨나 이성우씨 교회 다니세요?
차승우 이성우: 아니오. (이성우 : 저 교회 한 번도 안가봤어요)
블: 노브레인 노래 듣다 보면 여러가지 장르의 음악이 뒤섞여 있기도 한데.. 한편 찬송가를 연상시키는 느낌이 전반적으로 들기도 하거든요.
차승우: 아.. 그건 제가 군대 있다 왔잖아요. 군가를 되게 많이 들었어요. 군가 멜로디란 게 상당히 단순하고, 서구 음악을 들어보면 주로 펜타토닉 스케일이나 그런 게 많이 쓰이는데, 우리나라 "뽕" 정서에는 차라리 교회음악 아니면 다이아토닉으로 이루어지는 음악이 나은데.. 코드도 단순하고 그래서 저희가 하는 펑크 음악이랑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블: 왠지 친근하고 그런 느낌을 주는 음악요?
차승우: 예, 귀에 팍팍 박히고. 저희는 음악을 하면서 양식이라든가 그런 거에 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거든요. 들어서 바로 좋은 게 좋은 거 같아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같기도 하고… 좋게 생각해요.
이성우: 서양 펑크 밴드들 노래 들어봐도 군가같은 그런 느낌도 많이 들고, 되게 단순하고 그러니까.. 찬송가 같기도 하고.. 합창도 많이 나오고..
차승우: 하지만 서양펑크랑은 다르게 의미를 두고 싶어요. 걔네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저희는 저희 음악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블: 노브레인에게 펑크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요?
차승우: 음악이라기 보다는…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기는 싫구요, 이젠 그럴 때도 지난 것 같아요.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한테 있어서 펑크라는 건 생활이고, 라이프 스타일이죠. 그냥. 사고방식이기도 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명분이 되는 것이 "펑크"지요.
(다소 충격으로 와 닿았던 안티 서태지 공연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안티 서태지 공연에 대해서...
다소 과격한 방식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안티 서태지 공연" 속에 담긴 메세지를 한 번쯤 차근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블: 문사단에서 나온 "왜 서태지를 죽여야 하는가?"라는 성명서와 그 뒤에 열린 안티 서태지 공연에 관한 질문입니다. 지금 서태지 팬들이 어떤 상황인지는 아시죠?
차승우: 예. 그렇게 흥분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것도 일종의 반응이니까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는 거잖아요.
블: 물론 문사단 성명에 보면 나오는 내용이긴 한데.. 안티 서태지 공연의 의도는 무엇이었어요?
차승우: 우리나라 문화 자체도 되게 획일적이고 시스템 자체가 되게 엉망이잖아요.
서태지란 사람이 이번에 컴백을 하는 것을 보면서.. 서태지란 게 과연 무엇일까,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서태지라는 뮤지션에 관해, 그 사람의 행보나 음악에 관해 생각을 해봤었고, 캠페인이 이뤄지는 동안에도 저희끼리 계속 생각을 했어요.
생각해보니까, 서태지란 존재 자체는 허상인 거 같아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서태지는 허상이고, 뮤지션 서태지나 인간 정현철에 대한 그런 것 보다는, 시스템에서 과장된 ..
블: 아이콘이나 상징으로서의 서태지요?
차승우:예, 신화화된 거죠. 그만큼. 글쎄요. 지금 생각해보면 서태지라는 사람 자신도 되게 자유롭지 못할 거 같애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저희가 공격하고자 하는 것도 뮤지션 서태지가 아닌 상징화되어 있는 서태지를 얘기하는 거구요.
블: 개인적으로 서태지라는 뮤지션을 싫어한다든지 음악이 싫은건 아닌데, 음악 외적인 파장이나 서태지 팬들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되거든요.
차승우: 서태지 신화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그 엄청난 팬덤이죠.
근데… 서태지가 그런 애기를 했다 그러더라구요. 괴수대백과 사전인가.. 그런 레이블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서 언더그라운드에서 능력 있는 신예들을 양성하겠다 뭐 그랬는데..
홍대 인디씬이 이제 거품도 다 빠지고 시작해보려는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고 있는데, 과연 엄청난 자본이나 거대 시장과 홍대 인디씬이 뒤섞인다면 인디의 의미라는 게 퇴색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을까, 자의적이고 독립적인 작업을 하는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블: 시스템 자체가 다르지 않아요?
차승우: 예. 그리고 솔직히, 메인 스트림이 어쨌건 간에 인디 씬은 나름대로 잘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그것부터 싹이 잘려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구요, 지금까지 인디씬에서 각고의 노력을 한 사람들의 공로는 결국 나중에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공중으로 붕 뜰 거 아녜요. 그것도 문제구..
성공을 했느냐 안했느냐는 저희한테 문제가 아니예요. 안 그러면 저희가 뭐..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는거구.
블: 서태지 팬들한테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차승우: 어.. 뭐.. 좋아요. ^^;;
블: 많은 사람들이 노브레인과 크라잉 넛을 비교하곤 합니다. 크라잉넛의 경우에는 오버나 언더 경계 없는 펑크를 통해, 그것이 비록 메이저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입지를 점점 넓히고 있는데, 그에 반해 노브레인은 자신들만의 선이나 지켜야 될 옳고 그름의 문제에 애착을 가지고 지금까지 일관해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드럭이라는 공간과의 문제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노브레인은 동떨어져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따른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은 없나요?
차승우: 그다지 어렵진 않아요. 우리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일명 잡*패거리^^;;)이 항상 우리를 지지해주기 때문에 절대 외롭진 않아요.
또.. 드럭이 가는 방향과 저희가 가는 방향은 전혀 틀리다고 생각을 해요. 다 친구들이고 같이 술먹고 좋아하고 그러지만, 하지만 가는 방향은 틀리다고 생각을 해요.
크라잉넛의 경우도 공중파에 나오고 안나오고를 떠나서 자신의 입지를 그렇게 넓혀가는 것도 우리나라 펑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이 안쪽에서 그냥 순수한 의미의 펑크씬 자체를 계속 일궈나가고 싶어요. 잡*패거리들이랑 같이.
이성우: 지금 문화사기단을 같이 하고 있는 밴드들이랑도 계속 재밌게 놀고..
차승우: 계속 이런 형태로 공존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성우: 저흰 그냥 이게 좋아요. 저희 가는 길이.
블: 노브레인이 그런 펑크씬을 일궈나가기 위한 계획이 있다면요?
차승우: 저같은 경우는, 지금 상황을 그대로 계속 가지고 갔으면 좋겠어요. 사람들과의 관계를 포함해서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인드나 상태가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이런 식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이성우: 별 거 없구 그냥 공연 계속 열심히 하고, 문화 사기단 밴드들 계속 같이 재밌게 하구.. 좀 더 열심히 하고 그러는 게 저희가 갈 길인 거 같아요.
블: 마지막으로 인사 좀 해주세요.
이성우: 많은 펑크 밴드들이 나왔으면 좋겠구요. 아무튼 열심히 음악 많이 들으시고 공연장에 오셔갖구 같이 "오이!"도 한 번 질러주세요. 저희가 다른 밴드도 아니고 그냥 공연 열심히 하고 그런 밴든데.. 음악 듣는 거 많으로 끝나지 말고, 공연장에서 그 열기도 한 번 느껴보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차승우: 서태지 팬 여러분 흥분하지 마십시오. (^^;;)
누군가의 의견에 내가 동의 하지 않더라도 그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여러가지 색깔의 의견과 문화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는 진정 바랄 수 없는 일일까?
노브레인에 대한 수많은 질타가 여기저기서 계속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안티 문사단'이라는 사이트가 개설되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안티 서태지 공연이 안티를 걸었던 대상이 서태지 개인이 아닌 서태지로 상징되는 거대 주류 쇼비지니스였고,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울트라파워 팬덤'이었다는 것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소 과격한 방식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안티 서태지 공연" 속에 담긴 메세지를 한 번쯤 차근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