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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탁스 (DOTAX) 원문보기 글쓴이: 모태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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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와 바람이 제법 거세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쓰고 있음에도 무릎까지 빗물이 젖어드는 듯 했다.
조금씩 콘테이너 사무실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박형사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개 끌려오듯이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시멘트로 다져진 콘크리트 길이 서서히 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20여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니 길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로 신기할 뿐이었다.
서서히 그 길은 곧 맨 진흙밭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산중턱을 옆으로 돌아 사무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정면에 그 폐가가 눈에 들어왔다.
번갯불이 번쩍일 때마다 그 심상치 않은 위용이 눈에 꽂혔다.
비닐 조각인지 천 조각인지 모를 기다란 그 무엇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 듯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아....김형사님. 왜 하필 지금 가야 합니까?"
빗줄기 속에서 박형사의 외침은 그다지 크게 들리지 않았다.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나!! 지금 밖에는 시간이 없어!! 정신 바짝 차리고 따라와!!
어느새 땅바닥이 질퍽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우산을 쓴건지 안쓴건지 온 몸이 속부터 젖어가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 폐가 수미터 앞에 도착하였다.
현관 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우리를 집어 삼킬 듯이 그 집을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어둠이 굉장히 짙어졌음을 느낀 나는 손전등의 불을 밝혔다.
손전등이 밝히는 조명의 공간 속으로 시선이 모아지자 그 폐가는 더욱 더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것 같았다.
"들어가자."
나는 폐가의 현관통로로 발을 디뎠다.
그 집을 관통하는 세찬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나와 박형사는 우산을 접으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짜그르...."
작은 유리조각 밟히는 소리가 제일 먼저 우릴 반겼다.
"짜그르...짜그르..."
나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박형사를 여기까지 끌고왔지만, 지금은 박형사만큼이나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나와 박형사는 손전등으로 이곳 저곳을 비추었다.
순간 손전등의 동그란 불빛에 거실에 걸린 영정사진이 비추어졌다.
백발의 할머니인데 그다지 평화로운 모습의 사진은 아니었다.
김태섭의 말이 맞다면 황승균이 가져온 사진이 바로 저것일 것이다.
"짜그르...짜그르..."
유리조각 밟히는 소리는 여전히 멈추질 않았다.
이 집안의 모든 유리제품이 다 박살이라도 난 것처럼 사방에 유리조각 천지였다.
가전제품같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거미줄로 뒤덮힌 나무탁자, 철제 선반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김...김형사님 여기 좀 보세요."
나는 박형사가 말한 곳을 바라보았다.
먼지로 뒤덮혀 무슨 색인지 알아볼 수 없는 소파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먼지 위에 사람의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누..누가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더 나를 놀라게 한건 따로 있었다.
그 먼지 위에 난 자국이 너무나도 선명하다는 것이다.
바로 조금 전까지 사람이 앉아 있었던 것처럼.....
"누구지?"
싸늘한 기운이 온 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안방쪽으로 발걸음을 조금씩 옮겼다.
번쩍이는 번갯불과 함께 잠시 후 천둥소리가 멀리서 몰려오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계속 옮기려는 순간...
다시 한번 큰 번갯불이 집 안으로 파란색 섬광을 내뿜었다.
나는 제자리 서서 나무처럼 굳어버렸다.
박형사는 봤는지 모르지만, 지금 내 왼쪽 편에 누군가 서있는 모습이 그 찰나의 섬광과 함께 나타났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왼쪽빰이 얼음물에 젖는 듯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나는 잠시 몇 초간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시간이 끝나자 즉각적으로 그 곳에 손전등을 비추었다.
사각진 벽의 구석만 보일 뿐 그 형상은 온데간데 없었다.
오른손은 이미 권총의 손잡이에 가 있었다.
"김형사님...왜 그래요?"
"아...아냐...뭘 잘못 봤나봐."
내가 잠시 정신을 가다듬는 동안 박형사가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김형사님, 창고 쪽에 뭐가 있는데요?"
나와 박형사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것을 살폈다.
녹이 슬어 두꺼운 갑옷을 입은 듯한 쇠기둥에 수십차례 무엇을 둘둘 감은 듯한 청테이프였다.
바닥에는 알 수 없는 영수증 같은 것들이 나뒹굴었다.
나는 그것을 천천히 집어 들었다.
"뭐야..이거....신용카드 영수증이네. 이건 현금 영수증....액수도 몇천원짜리네..."
"누구건가요?"
"서명을 봐....황씨가 맞는것 같지?"
"예. 그런 것 같네요. 그런데 이런게 왜 여기에 떨어져 있죠?"
"주머니를 뒤진거야. 황승균을 여기에 묶어놓고...
바닥에 유리조각이 사방으로 쓸려나간 걸로 보아 여기에 묶여있는 상태로 발버둥을 친 것 같애."
갑자기 으스스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아들....."
나는 순간 박형사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응? 방금 뭐라 그랬어?"
박형사는 뜬끔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예?"
"방금 뭐라 그랬냐구?"
"아..아무 말도 안했어요."
나는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박형사는 모르는 듯 했지만 나에겐 정말 들린다.
지금도 그렇다.
"아들....."
"뭐..뭐라고?"
박형사는 정말 아무 것도 안들리는 걸까?
나의 독백에 박형사가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나는 갑자기 알 수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김..김형사님..왜 그래요?"
"아들...."
중년 남자의 그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들...."
나는 쏜살같이 권총을 빼내 들어 보이지도 않는 그 누군가를 향해 겨누었다.
"누구야? 새꺄!!"
그러나 돌아온 것은 박형사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김형사님!! 미쳤어요? 총 내려요!!"
나는 빠른 속도로 사방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며 그 소리 정체를 찾았다.
이유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졌다.
"김..김형사님 정신 차려요!!!"
박형사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박형사!! 정말 못 들었어? 장난치는거지?"
나는 박형사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그의 얼굴에 손전등을 비추었다.
나보다도 박형사가 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발 정신차리세요. 여기 오기 전에는 저더러 정신차리라고 하셨잖아요!!"
박형사는 장난을 치는게 아니었다.
순간 번개의 섬광이 내부에 쏟아졌다.
박형사의 뒤에 누군가가 서 있다.
그리고 섬광의 잔상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왜 가슴이 설레고 눈물이 멈추질 않는걸까?
나는 손전등을 들고 재빨리 집 안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비와 와서 그런지 여기저기 쾨쾨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누구야...어떤 새끼가 장난치는거야!!!"
나의 행동이 기이해 보였는지 박형사가 내 뒤를 좇았다.
집 안 구석구석을 미친 듯이 살폈지만 그 정체모를 형상과 소리는 어느 곳에도 있지 않았다.
나의 뒤를 급하게 좇던 박형사가 저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리고 침착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김형사님....귀신한테 홀린거예요? 귀신 없다면서요? 총 주세요."
"왜?"
"사고날 것 같아요. 주세요."
박형사 말대로 사고날 것 같았다.
그런데 손에 든 권총을 박형사에게 건내려는 순간 거실창 너머로 누군가의 어두운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번갯불이 그 곳을 밝히고 나서야 그것이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미친듯이 그를 향해 뛰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질퍽거리는 땅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의 모습을 확인했는지 그 검은 형상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가까이 근접해서야 나는 그가 우비를 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새꺄!!!"
마음 같아서는 권총의 방아쇠라도 당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박형사 말대로 사고가 날지 몰랐다.
나는 들고 있던 권총을 주머니 깊이 박아 넣었다.
손이 가벼워지자 나의 뜀박질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야!! 이 개1새끼야!! 거기 안서!!!"
천둥같은 나의 외침에 놀랐는지 그가 힐끔 뒤를 쳐다보는 시늉을 하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발을 헛딛은 것 같았다.
넘어진 그는 발목을 잡고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나는 순식간에 그를 덮쳤다.
"개1새끼..너 누구야!!!"
나는 넘어져 잇는 그의 가슴을 제압하고 머리를 덮고있는 우의를 벗겨냈다.
김태섭이었다.
"너...이 새끼....이럴 줄 알았어."
그가 저항을 하려하자 나는 그의 팔을 비틀었다.
"아아아악!!!!"
그의 비명소리에 고막이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니가 황승균이 죽였지!!!"
쏟아지는 빗줄기가 화살처럼 얼굴을 때리자 태섭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헐떡거리며 벌리고 있는 입 속으로 빗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말해 새꺄!!! 니가 죽였지? 뒤가 켕기니까 여기까지 감시하러 온 것 아냐!!!"
나는 이미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어느새 주머니 깊숙히 박혀있던 권총이 그의 이마를 겨누고 있었다.
"김형사님!! 뭐하시는거예요!! 당장 총 치워요!!!"
뒤늦게 따라 온 박형사가 나를 만류했다.
그러나 나는 박형사의 말을 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안죽였어요....정말이예요!!"
"그럼 누가 죽였어? 왜 나한테 거짓말 했어? 새꺄!!!"
"거짓말 안했어요!! 정말이예요!!! 켁켁...."
"이 개1새끼 또 거짓말 하네...
좋아...너와 노영주가 황승균를 묶어놨던 곳으로 가면 떠오를거다.
일어나 새꺄!!"
나는 그의 목을 틀어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는 발을 접질렀는지 제대로 땅에 발을 딛지 못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했다.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를 죽은 개 끌고 가듯이 끌고 갔다.
그 폐가를 향해서....
박형사는 어찌해야 될 지를 모르며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박형사에게 도움이라도 요청하는지 태섭은 더 크게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제발 그만 해요!!! "
"이 새끼 아직도 정신 못차렸군. 저 집에 들어가면 뭔가 떠오르겠지. 안 그래?"
"제..제발 살려주세요. 부탁이예요. 아아악!! 형사님. 저 집에 들어가면 안 돼요!!"
"그러니까 말해 새꺄!! 누가 황승균이 죽였어?"
나는 그의 목덜미를 더 세게 틀어 쥐었다.
"아아악!!! 사장님이 입 다물고 있으라고 했단 말예요!!"
그제서야 나는 내 손에 끌려오던 태섭에게 시선을 보냈다.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사...사장님이 입 다물고 있으라고 해서....으허헝헝"
갑자기 그는 하염없이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쥐고 있던 그의 목덜미를 놓았다.
나는 누운 자세로 한참 동안 통곡을 멈추지 않고 있던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리고 자세를 낮춘 후 그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장은 다 알고 있었군."
"흑흑흑......"
"포커를 치던 그날 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콜록.. 콜록.."
숨을 돌리는지 아니면 목구멍으로 빗물이 들어가서인지 모르게 태섭은 연신 기침을 해댔다.
박형사가 우산을 펴고 조용히 다가와 태섭과 나에게 쏟아지는 빗물을 막아 주었다.
"그날 다툼이 있었어요.
전에 말했듯이 승균이 형님이 돈을 제일 먼저 잃었어요. 콜록...
남은 둘이 치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대로 판을 접으려고 했죠.
그런데 승균이 형님이 계속 돈을 꿔달라는 겁니다.
노름판에서 돈을 꿔주면 그냥 돌고 도는 거잖아요.
우리가 전문 타짜도 아니고...
안된다고 했죠.
그러자 갑자기 형님이 내 멱살을 잡더니 마구 윽박을 지르는 거예요.
지금 당장 내가 꿔준 천만원을 갚으라는 거예요.
옆에 있던 영주 형님이 말릴려고 했는데 소용없었어요.
어린 놈의 새끼가 도박에만 맛을 들여 돈 귀한 줄 모른다며 타박을 하는 거예요.
우리 셋 다 술에 취해 있었는데...무시하는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분노가 치밀더라구요.
한 대 치고 싶었죠. 그러나 꾹 참았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형님을 놀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한 겁니다.
그 폐가의 영정사진을 들고 오면 100만원을 빌려주는게 아니라 그냥 주겠다고......
그 날 엄청나게 비가 쏟아졌어요.
오늘처럼요.
약속이나 지키라면서 승균이 형님이 빗속을 뚫고 비틀거리며 그 폐가로 가는 겁니다.
저와 영주형님은 뒤를 좇았어요.
그 집 현관에 다다르자 승균이 형님이 정신이 들었는지 한 참을 머뭇거리는거예요.
역시나 예상했던대로였죠.
뒤따라 온 저희는 거기서 승균이 형님을 놀려댔죠.
그러자 승균이 형님이 열이 뻗치는지 갑자기 저의 멱살을 잡고 그 집으로 끌고 가는 겁니다.
제가 반항하며 발버둥쳤는데 그 형님이 자꾸 제뺨을 때리고 욕을 하면서 그 집으로 저를 밀어 넣는 겁니다.
그리곤 그 영정 사진 앞에 저를 세우더니, 내가 가져가는 걸 똑바로 보라며 윽박을 질렀죠.
화가 났죠.
저는 100만원어치 값어치를 하려면 혼자 와야지 왜 끌고 왔냐면서 승균이 형님의 밀쳐냈습니다.
벽에 잠시 머리를 부딫힌 형님은 죽겠다는 엄살을 부리는거예요.
그리고는 저를 고소해서 콩밥을 먹이겠다는 겁니다.
이건 뭐..사람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 날 술을 먹지 말았어야 했어요.
저는 분에 못이겨 그 집 창고 쪽에 있는 쇠기둥에 형을 묶어놨죠.
묶어놓고 보니까 그 차용증이 생각나더라구요.
그래서 형님의 주머니와 지갑을 뒤졌는데 종이 쪼가리만 있고, 그 차용증은 없는 겁니다.
귀신하고 노름이나 하고 있으라며 형님을 버려놓고 그 집을 빠져나왔어오.
영주 형님이 말리긴 했지만, 영주 형님을 강제로 이끌고 저는 그 집을 내려왔어요.
그 땐 정말 겁만 주려고 했던 겁니다.
사무실에 있다보니가 조금씩 술이 깨더라구요.
그 때 승균이 형님이 조금 걱정되는 겁니다.
1시간 쯤 지나서 저와 영주 형님은 다시 그 집으로 올라갔어요.
혹시나 죽지나 않았을까 걱정도 되더라구요.
현관에 다다르자 저희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승균이 형님이 나무토막처럼 거실에 떡하고 서 있는 겁니다.
창고 쪽에는 청테이프 같은 것부터 낫이나 호미같은 녹슨 연장이나 도구들이 가득했는데...
형님이 한 손에 낫 같은 걸 들고 서 있는 겁니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아요.
우린 그 형님한테 죽임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예요.
그런데 형님이 조금 이상했어요.
후레쉬로 비친 얼굴은 웃고 있는거예요.
그러면서 저희에게 그러는 거예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이제 왔냐고....
그러면서 등 뒤에 감쳐 둔 영정사진을 저희에게 건네는 겁니다.
소름이 쫘악 돋았어요.
다리가 후덜덜 떨리고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어요.
사진을 내밀며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사진을 받아들지 않으면 죽일 것 같았어요.
우린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걸 받아들었죠.
그런데 갑자기 형님이.....
저희에게 자기 딸을 소개시켜 주겠대요.
그러면서 안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승균이 형님 딸은 5년 전에 죽었거든요.
우린 본능적으로 형님이 귀신 들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린 형님이 안방으로 들어간 틈을 타서 미친 듯이 그 폐가를 도망쳐 나왔습니다.
정말 미친 듯이요."
태섭의 눈빛에는 거짓이 섞여 있지 않았다.
"그 뒤로 형님이 조금 이상해졌어요.
생각보다 무척 밝아진 겁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술담배도 잘 안하고....특히 노름을 갑자기 끊었어요.
그런데 그건 잠시였어요.
시간이 지나자 형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한 동안 끊었던 술을 다시 했는데, 정말 깜작 놀랐어요.
어느 날부터인가 소주 대여섯병을 그 자리에서 나발 부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와 같이 있는 시간이 조금씩 줄었어요.
자꾸 어딘가로 사라지는 겁니다.
어떤 작업자는 승균이 형님이 한 밤 중에 그 폐가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하더라구요.
뭔가를 잔뜩 싸들고 말이죠.
심지어 그 폐가에서 승균이 형님이 한 밤중에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죠.
그 집을 부수기로 했어요.
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 형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저희는 도망을 쳤고, 사장님과 다시 그 자리에 돌아갔어요.
그런데 거기서 저희는 이상한 말을 듣게 됐어요."
"무슨 말?"
"사장님이 형님을 달래려고 가까이 가는데...........
형님이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며 사장님한테 말하는 거예요.
'이봐....홍선이 오랜만이네'이러면서요.
순간 사장님이 우리만큼이나 무척 당황해 하셨어요.
형님은 말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 때 자네 왜 그랬나? 왜 나를 죽도록 내버려 두었나' 이러잖아요.
더 놀랄 줄 알았는데 사장님 표정은 의외로 담담해지더라구요.
오히려 미소까지 짓더라니까요.
그러더니 '형님, 그 땐 미안했소이다' 이러면서 화를 풀고 승균이 좀 돌려달라고 하더군요.
저와 영주 형님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 했습니다.
승균이 형님한테 승균이를 돌려달라고 하다니요.
사장님이 저 폐가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어떤 사람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이 드니까 갑자기 사장님이 무서워졌어요."
"사장이 니들 입막음을 했겠군. 그렇지?"
"사장님이 우릴 협박하거나 윽박지르지는 않았어요.
단지 돈을 몇 푼 쥐어주면서 오늘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하셨죠."
"그래서 그 뒤로 황승균이는 어떻게 된거야?"
"사장님이 저와 영주 형님에게 번갈아가면서 승균이 형님을 감시하라고 했어요.
특히 저 폐가에는 절대 가지 말도록 명령하셨죠.
그 날 일당을 톡톡히 챙겨 주시니까 저희들이야 아쉬울게 없었죠.
폐가로 가려는 승균이 형님과 몇 번의 몸싸움이 있기도 했어요.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어느 날 감시를 하고 있던 영주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승균이 형님이 집을 들락날락하면서 계속 소주를 사가지고 온다는 겁니다.
사장님은 무엇을 눈치 챘는지 급하게 승균이 형님 집으로 달려갔어요.
저 또한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갔죠.
저희 셋이 승균이 형님 집에 들어섰을 때 이미 형님은 죽어 있었어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소주를 입에 들이부은 것 같더라구요."
"지금 하는 말 진짜야?"
"뭐든 조사해 보세요.
지문이 되었든, 족적이 되었든, CCTV가 되었든...
우리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 형님은 이미 숨이 멎어 있었습니다.
사장님이 그 때 넋두리를 하시더라구요.
승균이를 최씨 형님이 데려갔다는 거예요.
밖으로 나온 저희는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했죠.
그런데 영주 형님이 승균이는 우리가 죽인거라며 탄식을 하는 거예요.
경찰이 오면 얘기하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요.
승균이 형님 차용증을 경찰이 보면 분명히 저를 의심할텐데, 거기다가 그 폐가에서 있었던 일까지 말해 버리면
용의자 1순위로 몰릴 것 같았어요.
놀란 저는 입막음을 하려고 했지만, 사장님은 오히려 담담해 하셨습니다.
신고해 봤자 바뀌는게 아무 것도 없을거라고......
살아있는 이승의 사람이 명을 끊은 게 아니니, 경찰이 믿어주지도 않을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영주 형님은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불안 했어요.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황승균이 집을 털었군."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가만히 있었어야 했는데....허허허.."
태섭은 기가 차는지 눈물섞인 웃음을 쏟아냈다.
"그런데 그 영정 사진은 황승균이가 다시 갖다 논거야?"
"뭔 소리예요?
우린 그 사진을 어디다 집어 던졌는지도 기억도 안 날뿐더러,
그 뒤로 그 거실의 영정사진은 보이지도 않았어요.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훗...이 새끼 봐라...."
나는 상의 주머니를 뒤져 촉촉히 젖어가는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인 후 길게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
나는 태섭을 노려보며 아무 말없이 연신 담배를 빨았다.
빨고 내뱉고...다시 한번 빨고 내뱉고....
두려웠다.
뭔지 모를 두려움이 몰려왔다.
손이 떨려왔고, 정신이 혼미했다.
나의 이러한 소름끼치는 감정도 모른 채 박형사가 거들었다.
"김형사님, 폐가에서 영정사진 봤어요?"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쉬지 않고 담배만 빨았다.
간혹 터지는 푸른색 섬광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