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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탈시설운동의 성과, 국회의원 68명 공동발의로 ‘탈시설지원법안’ 발의
기자명 허현덕 기자 입력 2020.12.10 18:59 수정 2020.12.10 19:28
탈시설지원법안, 최혜영·장혜영 의원 비롯 국회의원 68명 공동발의
“10년 내 모든 거주시설 폐쇄한다” 법안에 담겨 …장애계 ‘환영’
탈시설지원법 제정 넘어 거주시설폐쇄법으로 실효성 근거 마련해야
‘장애인 탈시설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발의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감회에 젖어 있다. 사진 허현덕
‘장애인 탈시설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발의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감회에 젖어 있다. 사진 허현덕
“탈시설”이란 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개인별 주택에서 자립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탈시설지원법안 제2조 5항 ‘탈시설’의 정의)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장애인 탈시설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아래 탈시설지원법안)’을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68명이 공동으로 입법발의했다. 국회 내 발의를 알리는 소통관 기자회견 후, 장애계 또한 환영의 뜻을 내비치며 국회 앞에서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10년 내 모든 장애인은 시설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근거 제시
전체 4장 총 53개 조항으로 구성된 탈시설지원법은 모든 장애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고,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완전한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인 생활시설의 인권침해 실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과 운영법인을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사항을 규정한다. 법안에서 말하는 장애인 생활시설은 △장애인거주시설 △정신건강증진시설 △장애인이 거주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 등을 말한다. 법안에는 10년 내 모든 시설을 폐쇄하고, 시설 내 거주인들은 탈시설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탈시설은 이미 세계적 흐름이다. 뉴질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연합은 물론 미국과 일본에서도 장애인을 지역사회와 분리하는 시설 그 자체가 ‘차별’이자 ‘인권침해’라고 규정하고 시설폐쇄와 탈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도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도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수용하는 듯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 42번은 ‘장애인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이다. 여기엔 △탈시설 정책방향과 목표, 추진일정 및 예산 △탈시설 전담기구 및 전담부서 설치 △지역사회 전환주택 및 지역사회 복지서비스 확대 △신규 거주시설 설치 제한 등을 담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가 1년 반이 남은 상황에서 중앙정부 차원의 탈시설 정책은 없다. 이런 지지부진함에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에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마련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탈시설 정책은 여전히 선언에 그치고 있다. 내년도 탈시설 관련 예산은 ‘지역사회전환지원센터(탈시설지원센터)’ 1개소 설립에 2억 6900만 원이 책정된 것뿐이다. 장애인 자립생활지원 예산은 2% 증액되는 데 그쳤다. 반면 장애인거주시설 운영 예산은 올해보다 10.1%나 증액된, 5804억 3600만 원이다. 정부는 그동안 탈시설 정책과 예산 책정에 ‘근거 법이 없다’는 이유로 수수방관해왔다.
10일 10시, 국회 소통관에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탈시설지원법’ 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국회 영상자료 캡처
10일 10시, 국회 소통관에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탈시설지원법’ 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국회 영상자료 캡처
- 탈시설 추진할 법적 근거 미비해, 탈시설지원법안 마련
10시,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법안을 대표발의한 최혜영 의원은 “그동안 장애인의 탈시설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비했기에 탈시설지원법안을 발의하게 됐다. 장애인의 인권신장에 이바지하기 위한 법안으로 전혀 급진적이지도 빠르지도 않다”라고 설명했다. 최 의원은 지난 3일 국회의원들에게 소쩍새마을, 에바다농아원, 장항 수심원, 성람재단, 광주 인화학교, 인강원, 대구시립희망원 등의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벌어진 인권침해를 상기시키며, ‘장애인들이 다른 삶을 선택하게 하는 대책 마련’에 함께하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68명의 의원이 탈시설지원법안에 동의했다.
탈시설장애인의 가족인 장혜영 의원도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난 발달장애인 동생은 영문도 모른 채 18년간이나 낯선 시설에서 지내야 했다. 누군가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더 나은 보호’라고 말하지만, 시민이라면 누구나 응당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라며 “탈시설지원법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선언이다. 또한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안이다”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12월 10일 세계 인권의날, ‘장애인 탈시설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68명이 공동으로 입법발의했다. 장애계는 환영의 뜻을 내비치며,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염원했다. 사진 허현덕
12월 10일 세계 인권의날, ‘장애인 탈시설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68명이 공동으로 입법발의했다. 장애계는 환영의 뜻을 내비치며,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염원했다. 사진 허현덕
- 진정한 ‘탈시설’ 의미 담긴, ‘장애인 인권 선언문’
이번 법안 발의에 지난 15년 간 한국의 탈시설운동을 이끌어온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계는 11시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시설지원법 발의를 환영하며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했다.
탈시설지원법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탈시설’이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를 담은 것이다. 탈시설지원법안을 만드는 데 함께한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탈시설’이라는 명칭조차 없었다. 이번 탈시설지원법안에서는 탈시설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라며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에서 나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설에서 나와서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원을 받는 것까지가 탈시설이다. 그리고 모든 시설거주인들이 탈시설 권리가 있다는 것을 법에서 명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드디어 ‘탈시설’이라는 단어를 국회가 품었다. 그동안 탈시설이라는 용어는 그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아이’, 정의내릴 수 없는 용어처럼 여겨졌다”라며 “그러나 이 법의 제2조 5항은 탈시설의 정의를 담고 있다. 이제 탈시설이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이 조항을 내보일 수 있다. 탈시설은 시설을 쪼개서 더 나은 시설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개인이 자립을 위한 개인별 주택에서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의미를 짚었다.
- “탈시설에 연대하라” 탈시설 장애인들도 적극 환영
김종옥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왜 중증장애인은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모든 장애인이 시설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해외 사례에서 봤다. 여러 나라에서 시설을 폐쇄하고 탈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곳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존엄을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라며 “그러나 우리나라 장애인 부모들은 시설의 유혹을 수시로 받는다. 탈시설지원법안에서는 그 유혹에 견뎌낼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누구나 존엄하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이미 준비했어야 했고, 했어야 할 일이었다. 이미 늦었지만, 탈시설지원법안은 평등한 세상을 향한 시작이 될 것이다”라고 의미를 짚었다.
탈시설 당사자인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헌덕
탈시설 당사자인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헌덕
탈시설 장애인들은 ‘시설 그 자체가 감옥’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탈시설 당사자인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는 “시설에서 살던 15년은 어둡고 고단한 골목 같은 길이었다. 3~4평 되는 방에서 적게는 8명 많게는 12명이 지냈다. 개인 사생활은 꿈도 못 꾸고 그저 단체 생활에 맞춰 살아야 했다”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서문에서도 ‘장애인은 모든 영역에서 자기 선택권을 부정당했고, 자신이 선택한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며 장애인 시설 수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탈시설당사자모임 벗바리 또한 당일 법안 발의를 환영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이 탈시설에 연대 할 것”을 촉구했다. 벗바리는 “원주귀래사랑의집, 대구시립희망원, 인천 해바라기 등 시설에서 소리없이 죽어간,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동료들을 애도한다”면서 “지금 시설에 있는 3만 명의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 완전한 탈시설 위해 ‘거주시설폐쇄법’도 제정돼야
기자회견에서는 탈시설에서의 정부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탈시설지원법이 발의됐으니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국가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또한 탈시설 지원을 넘어 시설폐쇄를 이루겠다는 국가의 의지가 필요하다”며 “탈시설지원법이 보다 효과적으로 발휘되려면 거주시설폐쇄법도 함께 제정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15년간 장애인 탈시설운동을 이끌어온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가 법 제정의 중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15년간 장애인 탈시설운동을 이끌어온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가 법 제정의 중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15년간 장애인 탈시설운동을 이끌어온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양심이 있다면 정부 발의안으로 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적극적인 찬성 의견을 내라”고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 발의안으로 탈시설지원법이 나오지 않은 것을 반성해야 한다. 탈시설지원법이 제정되면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는 ‘법이 없어서 할 수 없다’는 핑계를 이제 더 이상 댈 수 없을 것이다. 탈시설지원법에는 현재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 3만 명의 자유에 대한 근거가 담겨 있다. 이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 그동안 사회가 권리를 박탈해왔다는 것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사죄를 통해 그들의 자유로운 삶, 지역 안에서 함께 사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늘 발의된 법안 그대로 토씨하나 빠뜨리지 말고 제정되어야 한다. 오늘 법안에 동의하지 않은 230명의 이름을 기억하겠다. 시설수용의 역사를 끝장내는 법안인 만큼 모든 국회의원이 동참해야 한다.”
한편,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당일 강원, 대구에서도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이 열렸으며 향후 경기, 부산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기자회견이 개최될 예정이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지역사회에서 나(도), 함께 산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기자회견 참가자가 ‘지역사회에서 나(도), 함께 산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 ‘탈시설지원법안’ 보러가기(대표발의 최혜영 의원)
- 공동발의(68인) : 강민정, 강병원, 강선우, 강은미, 고영인, 권인숙, 권칠승, 김민석, 김상희, 김성주, 김수흥, 김승남, 김승원, 남인순, 노웅래, 도종환, 류호정, 민병덕, 박완주, 박영순, 박정, 박홍근, 배진교, 서동용, 서삼석, 서영교, 서영석, 송영길, 심상정, 양경숙, 양이원영, 양정숙, 양향자, 오영환, 용혜인, 위성곤, 유동수, 윤영덕, 윤재갑, 윤준병, 윤호중, 이광재, 이규민, 이상헌, 이수진(지), 이용빈, 이용선, 이은주, 이재정, 이탄희, 인재근, 임오경, 임종성, 장경태, 장혜영, 전혜숙, 정일영, 정춘숙, 정태호, 정필모, 조승래, 진선미, 최혜영, 허종식, 홍기원, 홍성국, 홍영표, 홍익표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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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