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 안 팔려도 걱정? 우려가 현실이 되다 / 2018.05.03.
과연 디젤차 그 자체를 무조건 제한하는 게 합리적일까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디젤 자동차가 찍혀도 단단히 찍혔다.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디젤 게이트 전부터 배출가스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던 디젤차는 질소산화물(NOx)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폭탄은 결국 디젤 게이트로 인해 터졌고,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조절 능력을 상실한 디젤차는 마지막 보루였던 유럽에서조차 외면 받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디젤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돼버렸다.
그런데 올 초부터 소비자와 각국 정부, 특히 언론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던 디젤 자동차를 향한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 디젤차 줄고 가솔린차 늘어
디젤차 구입이 줄자 가솔린 자동차 판매량이 늘었다.
여전한 인프라 부족과 가격 부담을 안고 있는 전기차는 유럽의 탈디젤 분위기를 주도할 형편이 못 됐다.
일각에서는 이런 소비 흐름을 염려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영국의 자동차 제조 협회는 2016년에 비해 2017년 이산화탄소 평균 배출량이 늘었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도 마찬가지였다.
2021년까지 제조사들은 CO2 배출량을 평균 95g/km 아래로 묶여야 한다.
만약 이 기준을 넘기게 되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데 그 액수가 천문학적이다.
올해 초 한 컨설팅 업체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간다면
2021년 폭스바겐 그룹은 5g/km 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에서 455만 대가 팔렸을 경우 1대당 475유로의 벌금을 물게 돼 약 2조 8천억 원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
BMW는 1조 7천억, 피아트 크라이슬러 그룹은 약 1조 원 등의 벌금을 내게 된다.
그나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해왔던 것처럼 계속 줄였을 때 이 정도 수준이 된다.
그런데 되레 배출량이 는 것이다.
유럽연합 내 환경 문제를 다루는 유럽 환경청(EEA)이 내놓은 최근 자료를 보면
2017년 EU 회원국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18.5g/km였다.
2016년 118.1g/km 보다 0.4g 증가한 결과로 EU 차원에서 공식 집계를 시작한 201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 CO2 증가의 또 하나의 이유 SUV 열풍
제조사는 물론 국가별로 이산화탄소 감축 노력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받아 든 결과는
디젤차의 질소산화물 문제와는 또 다른 환경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참고로 2017년 EU에서 팔린 신차의 45%가 디젤차였고 가솔린은 53%였다.
2016년보다 디젤 점유율이 줄었다.
그나마 디젤 판매가 늘어난 곳은 유럽연합에서 이탈리아(0.6%)와 덴마크(6.9%)뿐이었다.
또 하나, SUV 판매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것 역시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의 중요 요인이다.
EEA에 따르면 EU 가솔린 자동차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평균 배출량은 121.6g/km로 디젤의 117.9g/km보다 높다.
또 다른 연구 기관인 운송 및 환경(T&E)에 따르면 SUV의 경우 평균 132g/km의 CO2를 배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형 세단 평균인 118g/km과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
그동안 제조사들은 마진 높은 SUV를 끊임없이 쏟아냈다.
소비자 반응도 뜨거웠다.
심지어 머지않아 세단이 사라지고 모든 자동차가 SUV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여기에 가솔린차 판매까지 늘고 있다.
특별한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CO2 배출량은 올해 역시 늘어날 것이다.
해법은 없는 건가?
◆ 디젤의 반격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최신 디젤차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급격하게 줄고 있음을 전했다.
이런 분위기를 이끈 것은 독일 제조사들이다.
전기차 못지않게 디젤 엔진 부활이 그들에겐 여전히 중요하다.
여기에 푸조 시트로엥 그룹 역시 단단히 맘먹고 질소산화물을 줄여나갔다.
모두 실제 도로에서 테스트하며 얻어낸 현실적 데이터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부품 회사 보쉬는 실제 도로에서 질소산화물 평균 배출 13mg/km 수준
(현재 실도로 테스트 기준치는 168mg/km)의 디젤 배출가스 처리 기술을 발명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배출량이 높은 도심에서도 평균 40mg/km의 질소산화물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운전자의 운전 습관과 무관하게, 복잡하고 비싼 장비 없이,
현재 디젤 엔진에서 큰 변화 없이 당장 적용이 가능하다며 보쉬 CEO는 글로벌 기자들 앞에서 디젤 부활을 자신했다.
이 정도라면 가솔린 자동차가 내뿜는 질소산화물 수준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디젤차가 질소산화물까지 이처럼 획기적으로 줄이게 된다면
디젤차를 향한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
전기차가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내연기관에 대한 투자와 개선을 통해 환경 문제 및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럽에서는 요즘 부쩍 디젤 배출가스 감소 관련한 기술 개발 소식과 이산화탄소 문제를 언론들이 자주 다루고 있다.
◆ 환경부 반 디젤 정책, 이게 최선인가요?
그런데 유럽의 이런 복잡하고 고민스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디젤에 대한 시선은 게이트 이후 비교적(?) 일관되다고 할 수 있다.
미세먼지 주범 논란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환경부가 자동차 배출가스 등급제를 개선하겠다며 다시 한 번 반 디젤 정책을 내놓았다.
대기오염물질이 전혀 없는 전기차와 수소차는 1등급,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1~3등급,
가솔린차와 가스차는 1~5등급으로 나누며, 디젤차는 3~5등급으로 분류를 하겠다는 게 개선안의 골자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질소산화물 저감 능력이 뛰어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차보다 덜 해도
디젤차는 3등급밖에 받을 수 없게 된다.
낡고 오래된 디젤차를 제어하기 위한 정책이라면야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이처럼 이산화탄소 증가 등, 새로운 고민거리를 두고(딱히 대안도 없이)
과연 디젤차 그 자체를 무조건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 정책인지는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최근 독일 등에서는 이동 수단의 환경오염과 관련해 장기적으로 자동차 수요를 억제하고 대중교통을 활성화하는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여기에 더해 전기차 활성화를 위한 고민, 그리고 기존 내연기관의 친환경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연구도 함께 진행 중이다.
우리 역시 유럽처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기술 경쟁, 제도 경쟁을 펼쳐야 한다.
시민들의 선택권을 제도로 제한하기보다는 선택하도록 놔둬야 한다.
디젤이 더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소멸하게 될 것이고,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국민을 더 나은 환경으로 이끌기 위한 도구로 잘 이용하면 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현명한 자동차 정책 수립이 필요한 때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