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서 축구 경기를 보러 간다고 하면 아직도 많은 이들이 놀란다. 부천에도 축구팀이 있었냐고도 하고, 부천SK가 제주로 떠난 이후에 팀이 다시 생겼냐고도 묻는다. 대중들에게, 특히 부천 시민들에게도 부천FC1995(이하 부천FC)가 아직은 깊은 인상을 못 미쳤다는 뜻이겠다. 하지만 이 작은 규모의 구단을 보면, 대한민국 축구의 발전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다. 2013년 프로구단으로 창단된 부천FC의 뒤에 붙은 ‘1995’라는 숫자는 대한민국 축구에 있어 기념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역사와 철학을 가진 팀인 만큼, 다시 K리그의 중심으로 성장하여 새로운 모범이 되길 기대해본다. 부천FC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고, 어떤 의의를 가진 팀일까?
(부천SK 시절의 윤정환 현 울산현대 감독. 윤정환 선수는 제주유나이티드의 레전드인가, 부천의 레전드인가. 출처:연합뉴스)
1. 부천FC1995 이전의 부천 축구의 역사
부천의 프로축구 역사는 현재 부천FC1995가 이어가고 있지만, 부천의 축구 역사를 보려면 부천SK 그리고 그 이전의 유공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공 코끼리 축구단(부천SK)은 1982년 서울, 인천, 경기 지방을 연고로 창단된 축구팀이다. 1991시즌부터는 서울의 동대문 운동장을 홈으로 삼았다. 2002년 월드컵 유치활동과 맞물려 지방 축구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에서 시행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1996년 1월 부천으로 연고지를 변경하였다. 당시 부천종합운동장이 건설 중이었기 때문에 목동 구장에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 2001년 부천종합운동장의 완성과 함께 부천에 연고를 정착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부천의 축구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부천SK는 윤정환, 이을용, 이임생, 강철, 김기동, 윤정춘, 남기일, 이용발, 이성재, 이원식, 곽경근 등 짜임새 있는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1995시즌 니폼니시 감독의 지도를 받은 이후 패스를 강조하는 팀 철학이 자리 잡으면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스타플레이어가 많진 않았지만, 좋은 축구를 보여주는 팀이었다. 매 경기 구름 관중을 동원하진 못했지만 개막전이면 약 35000석 가량 되는 부천 종합 운동장을 가득 메운 팬들이 파도타기 응원을 할 정도로 부천 시민의 사랑을 받았다.
부천SK 구단은 2003년 말과 2004년 초에는 구단 매각과 시민구단 전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팬들을 불안하게 했다. 더구나 2000년대 초중반 팀의 주축 선수들을 대거 이적시키면서도 선수 보강은 제대로 하지 않는 파행적 운영을 이어가고 있었다. 2002년~2004년 사이에 부천의 패스 축구를 이끌었던 주전 미드필더 이을용, 김기동, 남기일, 윤정춘 모두가 팀을 떠났다. 이임생, 곽경근, 이원식 등 팀의 주축 선수들도 팀을 떠났다. 부천에 둥지를 튼 후 부천 팬들에게 받았던 사랑과 인기를 구단 스스로 깎아먹고 있었다. 2005년은 다시 부천SK의 재도약을 위해 팬들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시기다.
2. 부천FC1995의 탄생
그러나 부천SK(前 유공)이 2006년 2월 급작스럽게 부천을 떠나 제주로 팀을 옮기면서 부천의 축구팬들은 응원할 팀을 잃었다. 연고 이전은 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현재 유공 코끼리/부천SK의 뒤를 이은 구단은 제주를 연고로 하는 제주유나이티드이다. 현재 부천FC1995는 과거의 부천SK와는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지고 시작된 새로운 구단이다. 팀은 부천을 떠났지만 부천의 축구팬들은 제주로 떠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팀을 잃은 부천의 축구팬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지자 연대인 ‘헤르메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축구팀을 창단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2007년 가을 창단된 부천FC1995이다. 프로구단으로서 시작하진 못 했고 아마추어리그인 K3리그에 2008년 첫 참가했다. K3리그에서도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팀과 지지자들의 열정은 대단했고, 2009년 연고 이전의 아픔을 공유하는 잉글랜드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팀과의 친선 경기를 갖는 등 아마추어 팀 같지 않은 과감한 행보를 이어갔다. 2013년 K리그에 승강제가 도입되자 프로구단으로의 창단을 추진하여 현재에 이른다.
부천FC1995는 불과 3년 전에야 프로구단으로 창단했고, 아마추어 시절까지 포함해도 그 역사는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팀 이름에 1995라는 연도가 붙어있는 것일까. 1995년은 사실 팀의 지지자들의 모임이었던 ‘유공 코끼리 팬클럽’이 모임을 가졌던 해이다. 팬들이 처음 모임을 가졌던 1995년을 기억하고 '부천의 축구'를 이어가기 위해서이다. 팬들을 위해 구단이 존재한다는 '팀의 창단 취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현재 부천의 '헤르메스'는 1995년 동대문운동장 시절 인터넷 동호회를 모태로 시작된 대한민국 최초의 서포터다. 서포터는 12번째 선수라는 생각으로, 그리스 신화의 12번째 신인 헤르메스를 이름으로 삼았다. 연고와의 밀착성을 중요시하여 응원가와 구호에서 모기업의 명칭을 제외하고 '부천FC'를 사용하는 파격을 보이며 타 구단 서포터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선구적인 서포터이다. 현재 붉은악마의 응원가로 유명한 '오 필승 코리아'는 원래 헤르메스의 응원가로 사용되었던 것을 개사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서포터 문화에 있어서도 '부천'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최초로 등장한 유니폼 통천. 부천SK와 부천의 축구 인기를 느낄 수 있던 시절. 출처:부천FC 서포터즈 사이트)
3. 부천FC1995의 의의
K리그는 '정치적 논리'에 강한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1980년대 초반 전두환이 정치적 불만을 돌리기 위한 3S(Sports, Sex, Screen) 정책의 일환으로 축구의 프로화 과정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먼저 프로리그를 창설한 야구에 자극을 받아 5개의 팀이 ‘수퍼리그’라는 이름 아래 리그를 서둘러 출범했다. 이후 축구단 창설에 나선 팀들은 모두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하는 ‘기업구단’이 주를 이뤘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대구FC의 창단으로 시작된 시민구단들의 창단 역시 월드컵 경기장의 활용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된 면이 있다.
참고: '포스트 월드컵’ 대책 확정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200495
주변을 둘러보면 유럽 축구의 뜨거운 열기를 부러워하는 축구팬들이 많다. 특히 독일은 비록 명문클럽이 아니라고 해도 ,경기장에 많은 팬들이 찾는 리그로 축구팬들 사이에서 이름이 높다. 이러한 열기는 역사적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소속의 명문 구단 아스날FC는 군수공장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창단되어, 철저히 지역적 기반을 두고 자생적으로 성장했다. 동네에서 축구 잘하는 선수들이 모여 만든 팀이 전국적 대회에 나간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되었을 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응원하는 팀은 자연스레 아들과 손자에게도 이어진다.(물론 베컴 부자처럼 다른 팀을 응원할 수도 있지만.) 지역에 기반을 두고 팬들의 지지를 받는 팀이 많은 관중을 동원할 수 있는 이유이다.
때문에 부천FC의 탄생은 K리그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정치적 논리와 관련이 없으며 대기업의 홍보 매체로서 창단되지도 않았다. K리그에서 처음으로 시민들의 손으로 창단된 구단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팀들이 팀이 창단되고 연고를 정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부천은 연고를 중심으로 팀이 창단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시민 구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창단 후 3년이라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고 시민들에게도 큰 관심을 받진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부천FC의 성장은 지역에 밀착한 프로축구단의 모범으로 남을 수도 있다. 아직 구단의 '지역 밀착'은 긴밀하지 못하다. 창단 초기인 지금 구단, 부천시, 팬들의 노력이 중요한 때이다.
(△ 시즌 최종전 부천FC1995의 선발출전 선수들. 출처:부천FC1995 공식홈페이지)
사실 ‘시민구단’이란 이름보단 ‘지방자치단체 구단’이란 이름이 현재 K리그 여러 시민구단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인지 모르겠다. 시민 구단이라곤 하지만 시민의 힘에 의해 창단되었다기 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따라 창단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생적으로 출발한 시민구단의 경우는 첫 사례는 부천FC를 첫 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물론 현재의 부천FC 역시 지자체에서 구단을 소유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부천FC의 행보가 곧 한국 축구에 있어 새로운 한 걸음이 될 수 있다. 앞으로 부천FC를 비롯한 시민구단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이유로 ‘시민 구단’으로 불릴 것이 아니라, 시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아 지자체의 예산 없이도 자생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진정한 ‘시민 구단’의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
*뱀다리: 연고 이전 문제는 대한민국 축구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현재 연고이전을 감행한 성남FC(일화 시절에 연고 이전), FC서울, 제주유나이티드는 연고 이전을 한 후 지역에 잘 정착해서 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의 구단과 이를 응원하고 있는 팬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하지만 성남FC, FC서울, 제주 유나이티드의 팬들의 입장에서 간단하게 바꿔서 생각해보면 될 문제이다. 지금 응원하는 팀들이 다른 도시로 연고를 이전한다고 하면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연고이전이 잘못되었으니, 이제 와서 팀을 돌려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팀이 연고 도시를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에 대한 것을 공감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기장을 찾을 수 있는 팬들과의 유대감은 프로스포츠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이다.
(AFC 윔블던 팬들. 밀턴케인스로 팀이 연고이전을 감행하자, AFC윔블던이란 팀을 새롭게 창단했다. 출처:텔레그라프)
<참고 사이트>
부천FC 서포터즈 사이트 : http://erikkim.mireene.co.kr/
부천FC팬페이지 : bucheonfc.net
위키백과
http://blog.naver.com/hyon_tai
첫댓글 Sk놈들이 지금 구단운영하는 방식을 부천에서도 하면 열기가 어땠을까 가끔씩 생각하네요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러게요. 저도 SK 지원 기다리던 때보다 뭔가 지금이 더 소속감이 크네요. 입장권 살 때마다 구단 살림살이에 도움되는 것 같아 기분도 좋고.
@hyon_tai 시즌권 구매했지만
입장권 별도로 구매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_^
헤르메스가 최조의 서포터였군요^^
잘 읽었습니다
k리그에서 앞으로는 연고이전하는 슬픈일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천도 빨리 클래식에서 봤으면 좋겠습니다
알레~ 부천!! 알레~~!!
부천의 승리를 원해~
@hyon_tai 위대한 부천을 위해서
더 소리를 높이자~~!!
내년에도 부지런히 다녀야겠네요. 아 봄까지 어찌 기다리나.
@hyon_tai 송선호 감독님의 팀운영스타일
너무 좋고 또 기대가 큽니다
올시즌 후반기 성적 생각해보면
내년에는 큰 꿈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후반기에 축구 볼 맛 났죠. 전술에 감독님 철학이 딱 드러나는 게 좋았습니다. 시민의 날에 한고양fc전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