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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어머니는 무당등의 미신을 극도로 광신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집에는 빨간색 물감으로 흘려쓴 부적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으며, 뜻모를 그림과 주문같은게 적혀있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학교에서 시험을 볼때마다 유명한 무당에게서 얻어왔다는 부적을 가방에 넣어줬는데
친구들에게 들켜서 바보같다고 놀림받던 기억이 난다.
수능을 보는 날에는 TV에서도 나온다는 유명한 무속인에게 100만원짜리 부적을 사왔었다.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는 대학 교수였다. 그것도 물리학과.
아버지는 어머니의 행동을 어느정도 묵인하는 듯 했으나 거부감을 숨기지는 않았고
어머니를 정상인의 범주-미신을 믿지 않는-로 만들고 싶어하셨다.
어떤날은 어머니께 이백장정도의 '극히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를 내밀며
'귀신은 없다'라는 것을 인지시키려고 하셨던 적도 있다.
물론 그 이백장짜리 두꺼운 A4용지를 어머니가 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물론 나라도 읽기 싫을테니까.
이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이어졌는지는 이해가 안가지만
갈라서는 것은 확실히 이해가 갔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했고, 나는 아버지의 손에 자라게 됐다.
이혼했다고 하지만 완전히 연락이 끊어진건 아니라 어머니의 집에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했다.
위에도 말했듯이, 수능날에는 100만원짜리 부적을 받았으니까.
'귀신은 믿는사람에게 보인다'
아버지의 좌우명이다.
당신께서는 나를 어머니와 같은 광신도로 만들고 싶지 않으셨는지
나에게 '귀신은 없다'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 과학공부나 시사,논술등을 열혈적으로 시키셨다.
아버지의 노력의 결실이었는지, 부적덕인지 어쨌는지 서울안에서 상위권 대학에 입학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귀신은 없다. 나의 확고한 신념이다.
믿지 않는이상, 보이지 않는다.
당장 나에게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믿지 않으니까.
같은 논리로 귀신도 보이지 않는다.
간단하고 명료하며 이성적인 논리 아닌가?
아버지의 좌우명은 곧 나의 좌우명까지는 아니고 신념 비슷한 것이 됐다.
하지만 그게 깨지는 사건이 있었다.
2)
대학 1학년의 일이다.
막 대학에 입학한 나는 집에서 통학하기에는 무리라는 판단 하에 자취방을 구하러 다녔다.
첫번째 부동산에 갔을 때, 대학에서 10분정도 거리에 좋은 방이 나왔다는 부동산 주인의 권유에 바로 그 집을 보러갔다.
그 집은 언덕위에 볕이 잘드는 위치에 있는 신축빌라였는데 전망도 좋아보였다.
방3개 화장실2개, 부엌, 거실이딸린 40평집. 먼지가 많고 지저분하긴 했지만 넓고 좋은 집이다.
(이때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뭔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는데, 집에 먼지가 많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집주인은 빙글빙글 웃는 인상 좋은 40대정도의 아저씨였다.
혼자살기에는 집이 너무 넓었고, 고향이 일이 있어서 어서 내려가 봐야해서 집을 처분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취방 레벨이 아니었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에게는 과분하다못해 깔려 죽을정도의 집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부동산 주인에게 항의했다.
알고보니 집주인이 아주 급하게 팔아야한다고 부동산에 오는 사람이면 아무나 좋으니까 붙잡고 데려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지 10분후에 내가 왔다고 한다.
나는 어이가 없다못해서 화가날 지경이었다.
분명 나는 '자취방'을 구하겠다고 했지 '신혼집'을 구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며 부동산 주인에게 내 뜻을 전했더니
옆에서 듣고있던 집 주인이 '1억에 주겠다'라고 믿기 힘들정도의 조건을 제시했다.
대학 1학년인 나라도 보통 그정도 조건의 집을 서울에서 구하려면 2~3억이상이 들어간단것쯤은 알고있었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니 '사기 아니냐?'라고 하실 정도였다.
당신께선 집주인과 부동산주인과 번걸아 통화를하시더니 이쪽으로 오겠다고 하셨다.
20분쯤에 도착해 집을 둘러보신 아버지는 믿기지 않는듯이 '이걸 1억이요?'라고 물었고 집주인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모아놓은 재산-엄청 부유한 편이다.-이 있기도 했지만 집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쌌기 때문에
혹시 흠이 있는 집을 후려치게 아닌가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셨다.
"정말 좋은 집이에요. 제가 오늘이라도 당장 처분하고 내려가봐야 해서 그럽니다."
"여기 가전들도 다 두고갈거에요. 바로 쓰시면 됩니다."
"사고 바로 1억 5천에만 되팔아도 이득 아닙니까?"
하면서 아버지를 설득하셨고 아버지는 결국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쓰셨다.
마지막까지 사기가 아닌가 계약서를 한자한자 읽어보신 아버지는 결국 싸인을 하셨고
"대학 입학 선물이다"라고 하시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나는 그날 바로 그 집에서 살게 됐고, 갑작스럽지만 내 집이생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물론, 그 기분은 얼마 가지 못했지만.
3)
이사는 꽤나 힘든 일이었다.
기껏해야 박스 5개를 옮겼지만, 물건을 다 꺼내고, 옮기고, 배치하고
기존에 있던 물건들을 버리고, 먼지가 수북한 집을 청소하는데는 상당한 체력이 요구됐다.
기이한 점은, 분명 집주인은 남자였지만 가구 아래에서 여자 머리카락이 상당히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가족이 있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청소를 끝마쳤다.
또 하나, 기이한 점은 그 집에서 유일하게 화장실은 청소가 잘 돼있어 반짝반짝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채 가시지 않은 락스냄새가 났다.
이또한 나는 '화장실의 청결은 중요하게 생각했나보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데, 청소후에 지친 몸이 따듯한 물에 들어가 노곤노곤해지니 깨무룩하게 졸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내가 몸을 담그고있는 목욕물은, 물이 아니라 시뻘건 핏물이었다.
강렬한 피비린내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비명을 지르며 욕조에서 뛰쳐나왔다.
손을 털어냈더니 욕실 사방팔방에 피가 튀겼다.
손으로 문질러내니 붉은색의 피가 끈적하게 문데졌다.
하얀색의 욕조타일의 붉은색의 발자국이 생겼다.
분명 나는 맑은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피다.
물에 피가 섞인것도 아니고 이 자체가 피다.
뭐지? 뭐야? 뭔데?
이상한 입욕제를 넣었나?
-입욕제는 커녕 비누도 안들어갔다.
수도관이 낡아서 녹물이 나왔나?
-신축빌라인데다가 들어갈때 까지만 해도 맑은 물이었다.
내 몸에서 나온 피인가?
-몸 구석구석을 살펴봐도 상처는 없었으며, 이정도 피는 치사량이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납득이 안간다.
20년의 '이성적인'사고능력이 과부하를 일으키고 있었다.
부글부글
욕조에서 부글거리는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봤다.
시뻘건 핏물 안에서 누군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벌거벗고 있는, 피가 묻어서 몸은 물론 눈동자까지 시뻘건색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가 얼굴을 찡그렸다. 우는 것 같았다. 여자의 눈에서 왈칵하고 피가 흘렀다.
문득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이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여자는 욕조밖으로 걸어 나와 내가 디딘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겁에 질려서 뒷걸음질쳤다. 매끈한 타일바닥에 피로 미끌미끌한 발바닥이 미끌어진다.
그대로 벽까지 몰렸다. 그녀가 내 머리를 잡아채더니 욕조쪽으로 질질 끌고가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려고 했으나 어느새 목에 큰 상처가 있어서 피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있는데로 손을 휘두르다가 무릎높이에 있는 수도꼭지를 잡았다. 수도꼭지가 비틀어지면서 피가 뿜어져나왔다.
여자는 나를 강하게 잡아당겼고 나는 머리카락이 뜯겨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결국 핏물때문에 미끌어져 수도꼭지를 놓치고 말았다.
나는 그대로 핏물속으로 쳐넣어졌고,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욕조에 얼굴까지 잠긴채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입에 들어간 물을 토해내면서 일어나고 나니 상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욕조에서 졸다가 꿈을 꾼 것이다.
그 여자는 나의 무의식의 산물이며 실존인물이 아니다.
나는 내 꿈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몸을 닦았다.
몸이 미끌어져 물에 얼굴이 들어가서 숨을 못쉬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꿈으로 표현이 된 것이며,
또한 꿈에서 나온 목의 상처는 기도로 물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피와 피냄새는 화장실에서 진동하는 락스냄새에 의한 것이며
내가 욕조에서 뛰쳐나온 것과 욕조 안에서 나온 여자는 어서 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존본능의 산물이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잡은 것은...?
무심코 수도꼭지를 봤다. 이 수도꼭지는 내 꿈에서 어떤걸 상징할까.
무릎높이에 있는, 세면대와는 별개로 세숫대야를 놓고 쓰는, 손빨래등을 하는 그런 용도의 수도꼭지.
수도꼭지를 돌려보니 꿈과는 다르게 맑은 물이 나온다.
순간 허무해졌다. 겨우 꿈을 심각하게 생각한 자신이 바보같아졌다.
결론은 앞으로 목욕할때는 졸지 말아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손에 피가 묻어있었다.
4)
손에 묻은 찐득한 붉은색의 액체는 거의 굳어가고 있어서 손으로 비비니 가루가 되어서 부스러졌다.
피가 묻어나온곳은 수도꼭지 뒤편의 벽과 연결된 곳이였다.
그곳에 약간의 말라 굳어가는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왜 피가 묻어있는가?
순간 꿈에서 손을 휘젓다가 잡은게 이 수도꼭지라는게 생각났다.
나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해봤다.
a전 주인이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코피를 쏟은게 묻었을 수도 있다.
b피가 아니라 다른 물질이다. 예를 들면 락스가 무언가 섞여서 변색됐거나,수도관의 녹물일수도 있다.
c.여기에 피가 묻어있어서 문제라도 되는가?
결론적으로, 당장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게 나의 결론이었다.
만약에 이 피가 심각한 무언가라면?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수도꼭지에 피가 묻어있어요. 라고?
불가능하다. 이정도로 사소한걸로 신고한들 나만 부끄러워지겠지.
아마 경우의 수는 a,b둘중의 하나일 것이고, 아니라고 해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c와 같이 이 피는 딱히 심각한 사안은 아니었다.
나는 벌거벗고 무슨 궁상이냐 싶어서 몸을 일으켰다.
혹시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 손을 깨끗이 씻어냈다.
출처 : 오늘의유머, 시타필리아 님
첫댓글 귀짤있음 귀짤있음 귀짤있음
아 미친.....짤있다더니 귀짤...
ㅋㅋㅋ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