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 : 19-23)
김영민 목사님의 [친구]라는 시집에 나오는 글입니다.
“평안하냐!”
주님 부활하시고 첨 하신 말씀
일하라 선교하라
아니 하시고
제자들에게 첨 하신 말씀
“평안하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후에 제자들을 만나고 나서 평안하냐고 물어 보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평강이 주는 의미가 어떤 의미가 있나요?
1. 두려움에서 평강으로(19절)
본문 19절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나타나신 일의 기록입니다.
19절에 제자들이 모여 있던 곳의 문들을 닫아두었다고 합니다.
왜 문들을 다 닫아 두었느냐? 이유는 유대인들이 두려워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아가 죽인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부하들을 말합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혹시 자기들도 잡아가 죽이지 않을까 두려워서 제자들은 한 집에 모여 문들을 잠그고 숨어있었습니다.
그 때 그 곳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 반응이 어땠을까요?
“할렐루야. 정말로 부활하셨네요.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랬을까요? 아닙니다.
“당신 누구요? 이 안에는 어떻게 들어왔나요?”
제자들은 전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새벽에 무덤에 갔던 마리아도 처음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죠.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겉 모습이나 목소리는 전혀 모르는 분인데 손에는 못박힌 자국이 있고, 옆구리에는 창에 찔린 자국이 있는 겁니다.
제자들은 그제서야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 보고 기뻐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맨 처음 하신 이 말씀.
연속으로 두 번을 반복하여 강조하신 이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유대인들이 흔히 했던 인사말 샬롬이 바로 이런 의미이긴 합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그런 ‘일반적인 인사’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3년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가르침을 받았고, 표적들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죽임 당하신 이후로 유대인이 두려워 숨어있는 제자들.
그들에게 주시는 평강. 이것이 구속사역의 핵심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사야 26장 3절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남미의 안데스 산맥 위로 비행을 하던 비행기가 있었습니다. 안데스 산맥은 세계에서 가장 변화가 심한 기류가 있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 그곳에 헬기가 추락해서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비행기가 갑자기 난기류(air pocket)를 만나 500 feet 이상 뚝 떨어지며 급강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끼며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놀랍게도 맨 앞에 앉아 있던 어린아이는 비행기가 쿵 떨어질 때마다 오히려 깔깔 웃으며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20분쯤 후에 비행기가 안정을 찾고 날아가게 되자 사람들이 그 아이에게 질문했습니다. “얘, 넌 무섭지 않았니?” “아니오,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다들 무서워하는데 어떻게 너만 무섭지 않았니?” “그건요, 이 비행기의 조종사가 내 아빠거든요.” 이 아이는 조종사인 자기 아빠를 신뢰했기 때문에 그 무서운 상황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평강의 비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상황과 관계없이 누리는 평강이 진짜 평강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2. 평강에서 보냄으로(21절)
본문 21절에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평화, 평강의 성경에서의 특별한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자신과 깊은 교제를 할 대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는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므로 죄인이 죄를 완전히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게 회복되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 졌습니다.
메시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핵심인 이사야 9장 6절에서 말한 평강의 왕이라는 명칭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 진 겁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믿음으로 죄 용서를 받은 사람들에게 많은 경우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 50절의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부었던 여인에게도,
8장 48절의 혈루증 걸린 여인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하셨죠.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받으면 근심과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을 만난던 그때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으로 되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안으로 사람을 찾아 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17절에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3. 성령받고 용서으로(22절)
본문 22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약속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담대하게 세상에 나가 평화의 복음을 전합니다.
23절에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죄 용서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 평강을 얻은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6절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고린도전서 2장 10절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로마서 14장 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요한복음 16장 13절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두려움에서 평강으로, 평강에서 보냄으로, 성령받고 용서으로
데살로니가후서 1장 2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립보서 4장 7절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